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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야산 해인사 [海印寺]

호젓한오솔길 2010. 12. 2. 21:58

  

 

해인사 [海印寺] 

 

경상남도 합천군 가야면(伽倻面) 가야산 남서쪽에 있는 사찰. 대한불교 조계종 제12교구 본사이다. 신라 제40대 애장왕() 때의 순응()과 이정()이 당나라에서 돌아와 우두산(:가야산)에 초당()을 지은 데서 비롯된다. 그들이 선정()에 들었을 때 마침 애장왕비가 등창이 났는데 그 병을 낫게 해주자, 이에 감동한 왕은 가야산에 와서 원당()을 짓고 정사()를 돌보며 해인사의 창건에 착수하게 하였다. 순응이 절을 짓기 시작하고 이정이 이었으며, 그 뒤를 결언대덕()이 이어받아 주지가 되었다. 918년 고려를 건국한 태조는 당시의 주지 희랑()이 후백제의 견훤을 뿌리치고 도와준 데 대한 보답으로 이 절을 고려의 국찰()로 삼아 해동() 제일의 도량()이 되게 하였다.

1398년(태조 7)에 강화도 선원사()에 있던 고려팔만대장경판()을 지천사()로 옮겼다가 이듬해 이 곳으로 옮겨와 호국신앙의 요람이 되었다. 그 후 세조가 장경각()을 확장·개수하였으며, 그의 유지를 받든 왕대비들의 원력()으로 금당벽우()를 이룩하게 되었다. 제9대 성종() 때 가람을 대대적으로 증축했고, 근세에 이르러서는 불교 항일운동의 근거지가 되기도 하였다.

이 사찰은 창건 이후 일곱 차례의 대화재를 만나 그때마다 중창되었는데, 현재의 건물들은 대개 조선 말엽에 중건한 것들로 50여 동에 이른다. 창건 당시의 유물로는 대적광전(殿) 앞뜰의 3층석탑과 석등 정도가 있을 뿐이다. 특히 국보 제32호인 대장경판과 제52호인 대장경판고() 및 석조() 여래입상(보물 264)은 유명한데, 불가사의한 일은 몇 차례의 화재를 당하면서도 팔만대장경판과 장경각만은 화를 입지 않고 옛 모습 그대로 있는 일이다. 그 밖에 주요 문화재로 보물 제518호인 원당암 다층석탑 및 석등, 보물 제128호인 반야사 원경왕사비()도 있다.

통도사(:사찰)·송광사(:사찰)와 더불어 삼보()사찰 가운데 하나로 법보()사찰로 유명하다. 현재는 불교학원인 해인총림()이 있어 많은 학인()들로 붐빈다. 말사()는 150여개에 달하고 부속 암자로 백련암(홍제암(약수암()·원당암 등이 있다.

 

 

 

 

해인사 봉황문 [海印寺鳳凰門] 

 

 경상남도 합천군 가야면 치인리에 있는 해인사의 제2문. 1985년 11월 14일 경상남도문화재자료 제154호로 지정되었다. 해인사일주문에서 800m 정도 떨어져 있는 문으로 사천왕상()을 봉안하고 있어 천왕문 또는 금강문이라고도 한다. 창건연대는 알 수 없고 조선시대인 1717년(순조 17)에 중수하였고, 1761년에 재건하였다는 기록이 있다. 1817년 화재로 전소됨에 따라 1821년에 중건하였다.

봉황문은 정면 3칸, 측면 2칸의 익공계 단층 맞배지붕으로 건평은 21평이다. 1838년 탈색한 문수(), 보현상()과 함께 가야(), 제파() 등 사위() 탱화를 새로 조성하여 봉안하였고, 1932년 산청에 있는 화백 지송파()가 동서 양 벽면에 사천왕 탱화를 조성하여 이듬해 점안()하였다.

 

 

 

 

 

 

 

해인사 석등 [海印寺石燈] 

 

경상남도 합천군 가야면 치인리 해인사 경내에 있는 석등. 1985년 11월 14일 경상남도유형문화재 제255호로 지정되었다. 해인사 대적광전(殿) 아래 삼층석탑(경남유형문화재 254) 앞에 있으며, 통일신라시대에 건립한 것으로 추정된다. 전체 높이 약 3.1m로 대석()은 1면에 2개씩 안상()을 새기고, 하대석은 밑을 8각으로 하여 높이 6cm 가량의 층을 두었다. 그 위에 8잎의 복련()을 새겼는데, 연꽃 잎면에는 보상화무늬를 음각으로 나타냈다. 상대석은 하대석을 역으로 뒤집어놓은 형태로서 지름 110cm이고, 8각 앙련()을 음각으로 새기고 연판 사이에 보상화무늬를 새겼다.

 

상대석 위에 놓인 8각의 화사석()은 높이 67cm, 지름 68cm로 4면에 사천왕상()을 양각하고 그 사이에 4개의 등창()을 내었다. 옥개석()은 8각으로 지름 140cm이며 그 위에 5개의 보주()로 마감하였고 귀꽃을 새기지 않았다. 높이 49cm, 지름 57cm의 기둥은 8각으로, 중간에 간석(竿)이 새로 보충되었다. 석등 바로 앞 서쪽에 봉로석()이 있는데, 본래 삼층석탑 앞에 있다가 지금의 자리로 옮겨졌다. 측면의 안상, 윗면의 연화무늬 등 조각이 모두 정교하다.

 

 

 

 

해인사 장경판전 [海印寺 藏經板殿]

 

경상남도 합천군 가야면(伽倻面) 치인리(緇仁里) 해인사에 있는 고려대장경 판전. 1962년 12월 20일 국보 제52호로 지정되었다. 해인사는 통일신라 애장왕 3년(802)에 지은 사찰이다. 통도사·송광사와 함께 우리나라 3대 사찰 중 하나이며 고려대장경판을 보관하고 있기 때문에 법보()사찰이라고도 부른다.

 

장경판고라고도 하며, 고려시대에 만들어진 8만여 장의 대장경판을 보관하고 있는 건물로 해인사에 남아 있는 건물 중 가장 오래된 것이다. 처음 지은 연대는 확실하지 않으나 기록에 따르면 1481년(성종 12)에 고쳐짓기 시작하여 1488년(성종 19)에 완공했다고 한다. 깊은 산 속에 있어 전쟁의 피해를 입지 않아 옛 모습을 유지하고 있으며, 1622년(광해군 14)과 1624년(인조 2년)에 수리했다.

 

높은 계단을 따라 보안문()으로 들어서면 크기와 양식이 비슷한 2채의 건물이 남북으로 배치되어 있는데, 남쪽 건물은 '수다라장()'이라 하고 북쪽의 건물은 '법보전(殿)'이라 한다. 규모는 앞면 15칸, 옆면 2칸의 단층 우진각지붕집 양식이다. 서쪽과 동쪽에는 앞면 2칸·옆면 1칸 규모의 작은 서고가 있어서, 전체적으로는 긴 네모형으로 배치되어 있다.

 

건물은 큼직한 부재()를 간단한 방식으로 가구하였고, 세부 역시 간결하여 장식적인 의장이 가미되지 않았다. 대장경판이 상하지 않도록 통풍을 위하여 각 칸마다 크기가 서로 다른 창을 내었다. 또한 안쪽 흙바닥 속에 숯과 횟가루, 소금을 모래와 함께 차례로 넣음으로써 알맞은 습도를 유지하도록 하였다. 평초석() 위에 배흘림이 큰 원주()를 세워 기둥 위에 주두()를 올리고 대들보를 올려 직접 주심() 도리를 받게 하였으며 그 밑에 간단한 초공()이 있을 뿐이다. 세계 유일의 대장경판 보관용 건물이며, 1995년 12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해인사 대장경판 [海印寺大藏經板]

 
경상남도 합천군 가야면(伽倻面) 치인리(緇仁里) 해인사 경내의 4동(棟)의 장경판고(藏經板庫)에 보관되어 있는 대장경판. 1962년 12월 20일 국보 제32호로 지정되었다. 현재 남아 있는 경판은 8만 1258판이다. 8만여 판에 8만 4000번뇌에 해당하는 법문이 실려 있으므로 팔만대장경이라고도 한다. 1237년(고종 24)부터 16년간에 걸쳐 고려에 침입한 몽고군의 격퇴를 발원()하여 대장도감()과 분사도감()을 두어 만든 것이다. 경판고 안에 5층의 판가()를 설치하여 보관하고 있는데, 판가는 천지현황() 등의 천자문()의 순서로 함()의 호수를 정하여 분류·배치하고, 권차()와 정수()의 순으로 가장()하였다. 

 

경판의 크기는 세로 24cm 내외, 가로 69.6cm 내외, 두께 2.6∼3.9cm로 양끝에 나무를 끼어 판목의 균제()를 지니게 하였고, 네 모서리에는 구리판을 붙이고, 전면에는 얇게 칠을 하였다. 판목은 남해지방에서 나는 후박나무를 썼고, 무게는 3∼4kg 가량으로 현재도 보존상태가 좋은 편이다. 천지()의 계선만 있고, 각 행의 계선은 없이 한쪽 길이 1.8mm의 글자가 23행, 각 행에 14자씩 새겨 있는데, 그 글씨가 늠름하고 정교하여 고려시대 판각의 우수함을 보여주고 있다. 처음에 강화 서문(西) 밖 대장경판고에 두었고, 그 후 강화의 선원사()로 옮겼다가, 1398년(태조 7)에 다시 현재의 위치로 옮겼다. 2007년 6월 '고려대장경판 및 제경판'으로 유네스코 지정 세계기록유산에 지정되었다.

 

 

 

 

 

 

해인사 삼층석탑(정중탑) [海印寺三層石塔(庭中塔)]

 

 

경상남도 합천군 가야면 치인리 해인사에 있는 석탑. 1985년 11월 14일 경상남도유형문화재 제254호로 지정되었다. 해인사 대적광전(殿) 아래 넓은 뜰에 자리잡고 있어 정중탑()이라고도 한다.

 

전체적으로 신라 석탑의 기본 형식이 나타나 있고 조각 수법 등으로 미루어 통일신라 말기인 9세기의 작품으로 추정된다. 높이 6m로 큰 탑에 속하며, 화강암으로 만들어졌다. 3층기단() 위에 3층 탑신()이 있고 정상에 상륜부()가 있는데, 원래는 2층 기단이었으나 1926년 중수할 때 1층이 더해졌다. 기단부는 상층 기단 양쪽에 우주()와 장주를 하나씩 모각했으며, 탑신에는 우주 이외의 별다른 조각이 없다.옥개받침은 모두 5단으로 되어 있고, 옥개석의 전각에는 후대에 설치한 풍경()이 달려 있다. 처마 끝의 반전은 심하지 않으며 탑의 상륜부에는 노반, 앙화, 구륜(), 보주()가 남아 있다.

 

1926년 6월 중수할 때 상층 기단의 석함() 속에서 9개의 작은 불상이 발견되었는데, 중수가 끝난 뒤 다시 석탑 안에 봉안했다. 석탑 앞에 놓여 있던 안상과 연화무늬가 새겨진 직사각형의 봉로석()은 석등(경남유형문화재 255) 앞으로 옮겨놓았다.

 

 

 

 

 

 

해인사 동종 [海印寺 銅鍾] 

 

경상남도 합천군 가야면 치인리 해인사 대적광전에 있는 종. 1997년 6월 12일 보물 제1253호로 지정되었다. 1491년(성종 22)에 해인사 대적광전에 봉안하기 위해 주조하였다. ‘해인사 대적광전종 홍치4년신해춘성( 殿 )’이라는 해서체()의 양주명문()에 주조 연대와 해인사 대적광전의 종으로 주조되었다는 내용이 있다.

 

종의 크기는 높이 85㎝, 구경 58㎝, 두께 6㎝이며, 글자 너비는 1.8~2.5㎝이다. 몸체는 종신()과 용뉴로 구분되며, 연화무늬가 새겨진 상대()와 무늬가 없는 하대() 사이를 5단으로 구획하여 각각 돌선대()를 돌렸다. 종의 정상에는 용통()이 없는 쌍룡()의 용뉴가 새겨져 있고, 어깨부분의 상대에는 21엽()의 단판복련() 밑으로 유곽()과 보살이 교차하며 4좌()씩 배치되었다. 당초문대()의 유곽 내에는 9개의 유두()가 돌기되어 있고, 양각으로 새긴 보살은 원형의 두광()과 보관, 천의() 등이 모두 선각()으로 표현되었다.

 

종신 중앙에는 3개의 굵은 돌기선을 돌렸으며, 이것을 중심으로 상부와 하부에 각종 장식문양이 가득 새겨져 있다. 상부는 당초문보상화무늬를 연속으로 양각하였고, 하부는 운룡문과 파수문을 양각하였다. 하대는 파상문 밑에 태선일조()로 구획되었는데 위쪽에는 일정한 간격을 두고 팔괘()를 배치하였고 아래쪽에는 아무 무늬도 새기지 않았으며, 유곽이 있는 단 아랫부분에 글씨가 새겨져 있다.  조선 초기 양식의 특징을 잘 보여주는 종으로, 주조기법이 뛰어나고 조각이 아름다워 조선시대 동종()의 수작으로 꼽힌다. 종이 봉안된 대적광전은 경상남도유형문화재 제256호로 지정되었다.

 

 

 

 

 

 

 

 

해인사 길상탑 [海印寺吉祥塔] 

 

경상남도 합천군 가야면(伽倻面) 치인리(緇仁里) 해인사에 있는 통일신라시대의 석탑. 1996년 5월 29일 보물 제1242호로 지정되었다. 해인사합천군 가야면 가야산(:1,430m) 남서쪽에 있는 사찰로 신라 애장왕(:재위 800∼809) 때 세워졌으며 대한불교조계종 제12교구 본사이다. 이 석탑은 일종의 장엄탑으로 해인사 일주문()에서 남쪽으로 약 50m 지점의 길가에 있다.

길상탑의 높이는 3m이고 재료는 화강암이며 통일신라시대인 895년(진성여왕 9)에 건립되었다. 2중 기단() 위에 3층의 탑신()을 쌓은 통일신라시대의 전형적인 석탑 양식이다. 상·하층 기단에는 우주(:탑신의 모서리에 세운 기둥 모양)와 탱주(:탑의 기단 면석 사이에 세우거나 면석에 돋을새김한 기둥 모양)가 새겨져 있고 특히 상층 기단이 하나의 돌로 조성되어 있다. 탑신부는 옥신석()과 옥개석()으로 구성되었는데 옥신에는 우주가 본떠 새겨져 있고 초층 옥신이 높은 편이며 옥개 받침은 각층 5단이다. 상륜부()는 노반(:불탑의 맨 꼭대기 지붕 바로 위에 놓여 상륜부를 받치는 부재)에 찰주를 꽂았던 둥근 구멍이 남아 있다.

1965년 탑의 내부에서 157개의 소탑()과 최치원()이 지은 4장의 탑지석()이 발견되었다. 탑지는 진성여왕 때인 통일신라 말의 사회 혼란기에 봉기한 도적떼로부터 사보()를 지키다가 순교한 해인사 승려들의 영혼을 추모하려고 이 탑을 세웠다는 내용 등으로 통일신라시대 불교 연구에 귀중한 자료가 된다. 길상탑은 호국진혼탑으로 신라 하대의 대표적인 단아한 소탑이다.

 

 

 

2010. 호젓한오솔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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