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산] <295> 창녕 영취산 |
발길에 부딪히는 옛 가야의 흔적… 비취색 하늘만 무심했다 |
전대식 기자 |
영남알프스가 있는 경남 양산, 원시림이 유명한 경남 함양군. 진달래 축제로 알려진 전남 여수시에도 이 산과 같은 이름의 산이 있다. 바로 경남 창녕 영취산(靈鷲山·681.5m)이다. 석가모니가 설법한 인도의 영취산을 따라 붙은 이름이다. 영취의 한자 '취(鷲)'는 독수리가 살 만큼 높은 봉우리라는 뜻도 있다. 대개 영취산은 '천축(인도)의 산'이라는 뜻에서 불교식으로 '영축산'으로 혼용해 쓰기도 한다. 국토지리정보원 2만 5천 분의 1 지도는 이 산을 한자 '靈鷲山'으로 적었다. 하지만 같은 지도에서 영취산에 있는 산성을 한글 '영축산성'으로도 표기했다. 어느 게 맞는지 가려 정리해야 할 일이다.
험한 비탈길 지나면 암릉 능선 이어지고
정상 오르면 화왕산 등 명산들이 한눈에
영취산은 이름 난 산이 즐비한 화왕지맥의 산 중에서도 산꾼들이 즐겨 찾는 곳이다. 유명세 만큼 다양한 산행 코스가 있다. 기점을 어디로 잡느냐에 따라 산행의 '맛'이 달라진다. 어느 코스든지 산행 초입은 육산의 진득함을 느끼다가 중반부터 암봉 타기 등 골산의 풍모를 맛보는 매력이 있다.
'산&산' 팀은 이번에는 보덕사 인근에서 출발해 541봉~신선봉~영축산성~정상~암릉 능선~청련사 코스를 선택했다. 이 코스는 산행 초기부터 비탈을 타야 해 다소 힘들지만, 이 비탈만 끝나면 산행 재미가 새록새록 솟아나는 특징이 있다. 특히 영축산 북쪽의 화왕산~관룡산 능선, 남쪽의 함박산~종암산 능선을 양쪽으로 관망하는 이점이 있어 권할 만하다.
기점은 보덕사를 조금 못 간 데서 시작했다. 5분 정도 걸어 보덕사에 도착했다. 대웅전과 조그마한 요사채로 이루어진 단출한 절이다. 대웅전과 산신각 사이에 있는 약수에 '영취세심(靈鷲洗心)'이라는 한자가 새겨져 있다. '마음을 씻자'는 '세심' 두 글자를 가슴에 새기고 왼쪽으로 진행했다.
산세가 산행 초부터 팍팍하다. 길은 된비알이다. 무게중심을 앞쪽으로 주지만 한 발 떼기가 수월치 않다. 소나무, 참나무가 하늘과 주변을 가려 어둑하다. 상쾌하기보다는 답답한 느낌이다. 그래도 조금만 참자. 이 길만 오르면 산행의 본 진도가 나갈 수 있을 게다.
꽃샘추위가 찾아 왔다는데 산행을 하다 보면 그런 말이 거짓말인 것 같다. 산새 소리가 시끄러울 정도로 활기찼다. 돌탑 몇 개가 이런 기분을 알까? 40분 정도 걸어 전망 좋은 곳에 도착했다. 위성항법장치(GPS)의 표고는 519m. 보덕사에서 출발할 때가 189m였으니 300m 이상을 훌쩍 올라온 셈이다. 잠시 쉬면서 창녕읍과 영산면 일대를 쳐다봤다. 날씨가 좋아 하늘빛이 층을 이루면서 파노라마로 다가왔다. 합천군, 의령군 산들의 마루금이 춤을 추는 듯했다.
이제부터 '고생 끝, 행복 시작'이다. 육산 산행의 밋밋함을 떨치고 본격적으로 암릉 능선을 탄다.
여기서 5분 정도 걸어 541봉에 다다랐다. 앞서보다 경관이 더 좋다. 영산읍내가 발아래에 있다. 함박산~종암산~덕암산이 사이좋게 어깨 능선을 하고 있다.
신선봉까지 15분 정도 걸었다. 비로소 영취산 정상이 자태를 드러내기 시작했다. 산정 뒤편은 비취색 하늘이 배경으로 깔렸다.
10분 정도 지나자 영축산성의 흔적들이 조금씩 나타난다. 등산로 주변에 평평한 돌들이 널려 있다. 작은 돌을 밟으면 꿈틀거렸다. 산성이 무너진 곳이다. 이 성은 가야가 신라의 침범을 막으려고 축성했다고 알려졌다. 영취산을 북벽으로 하고 동서쪽 능선과 계곡을 성 둘레로 삼았다. 흔히 골짜기를 품었다고 해서 '포곡식 산성'이라고 한다.
붕괴한 산성을 따라 걷다가 잠깐 뒤돌아봤는데 사람 얼굴을 한 암벽이 뒤에 있다. 미국 작가 너대니얼 호손이 쓴 '큰 바위 얼굴'이 저랬을까. 산행팀은 그 자리에서 이 바위를 '큰 얼굴 바위'로 부르자고 의기투합했다.
567봉을 지나서 산행 안내 리본이 많이 달린 갈림길을 만났다. 오른쪽은 구계리로 가는 내리막길이다. 갈림길에서 직진해 583봉을 지나 암릉이 박힌 647봉을 만났다. 우회하려다가 그다지 위험한 것 같지 않아 암봉에 올랐다. 로프 도움 없이 양손만으로 충분했다. 암봉 사이사이 반송이 끼인 것처럼 자랐다.
암봉에서 내려왔다. 암릉이 짧은 구간에서 오르막내리막을 반복했다. 15분쯤 지나 정상이 바로 위로 보이는 데까지 도착했다. 암릉 오른쪽으로 돌았다. 구봉사가 솔밭과 암릉을 배경으로 발밑에 있다. 불경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힘을 내 정상까지 단숨에 올랐다. 북쪽으로 몇 년 전 화재 참사가 있었던 화왕산과 관룡산이 나타났다. 남쪽으로 함박산~종암산~덕암산이 줄을 지어 다가왔다. 합천 황매산, 밀양 재약산, 천황산의 마루금도 아련하게 윤곽을 드러냈다.
영취의 산정은 좁았지만, 품은 경관은 어느 산 못지않게 넉넉하고 수려했다. 표석이 서 있는데 누가 목을 잘랐는지 자잘한 돌로 위태롭게 세워 놓았다.
정상에서 내려와 병봉 방향으로 걸었다. 10분쯤 지나서 나온 갈림길에서 오른쪽으로 꺾었다. 잠시 뒤 이런 산에서 좀처럼 보기 힘든 묘비를 발견했다. 바로 김한출 추모비이다. 영취산에서 등산 왔다가 발을 잘못 디뎌 비명에 간 부산 출신의 한 의사의 묘비이다. 비문에는 "산이 좋아 산의 품에 안긴 당신이여. 당신의 메아리만 귓전에 맴돕니다. 구름, 산세, 들꽃 벗 삼아 산사람 되어 편히 잠드소서. 1994년 7월 10일. 당신의 아내 여옥이가'라고 적혀 있다. 산행팀을 인솔하던 박영태 산행대장이 배낭에서 꺼낸 막걸리로 술을 따랐다. 박 대장은 고인이 숨졌을 때 그의 시신을 수습한 인연이 있다고 말했다.
추모비에서 아까 지나온 갈림길로 다시 걸어 나온다. 삼거리에서 이번에는 오른쪽으로 꺾어 하산을 시작했다. 하산길은 암릉이 쭉 이어진다. 조금만 주의하고 무리하지 않으면 암릉 타는 재미를 만끽할 수 있는 구간이다. 627봉과 전망 좋은 곳을 잇달아 지나친다. 건너편 왼쪽 능선에 예전 화재로 쓰러진 소나무들이 성냥개비처럼 널브러져 있다. 안타까운 마음이다.
암릉을 따라 30분쯤 내려와 반송을 마주 보는 흔들바위를 만났다. 산행팀이 용을 써서 밀었더니 찔끔 흔들렸다. 이 바위에서 200m 가량 내려오면 비로소 암릉이 사라지고 소나무, 참나무, 억새지대를 통과한다. 한참 동안 암릉 구간만 걸은 터라 무척이나 반가웠다. 7분 정도 걸어 갈림길에서 청련사 방면으로 꺾었다. 묘를 지나 간벌하는 솔밭을 지나왔다.
갈림길에서 종점인 청련사까지 20분이 걸렸다. 청련사에는 전두환 전 대통령 내외가 시주해 만든 범종이 종각에 걸려 있다. 5.4㎞. 쉬는 시간 포함 소요시간 4시간 20분. 문의: 라이프레저부 051-461-4164. 박영태 산행대장 011-9595-84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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