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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봉산

호젓한오솔길 2012. 1. 2. 22:40

 

[꽃남 한승국의 조곤조곤 산행기]

오봉산

 

 

국사봉 중턱에 따로 마련된 옥정호 전망대에서 남쪽으로 옥정호를 바라보는 두 탐방객. 이곳은 사진 작가들의 안개낀 옥정호 촬영 포인트이기도 하다.

 

수많은 사진작가들 매혹한 그 풍경을 보다
아름다운 옥정호 조망하는 호남정맥 세 번째 구간의 다섯 봉우리

지난 달 초 송백산악회가 안내하는 오봉산엘 다녀왔습니다. 오봉산은 우리나라에 여러 곳이 있지요. 제일 유명한 게 강원도 춘천과 화천 사이에 있는 거고요, 경기도 양주군 장흥, 전남 남원과 경남 함양 사이, 전남 보성 등지에도 있지요. 이번에 하지만 제가 다녀온 오봉산은 전북 완주와 임실 경계에 있는 것으로 이 산 아래 자리한 옥정호가 경치 좋다는 말 많이 들었을 겁니다.


 

아침 7시 10분 천호동에서 출발하는 산악회 버스를 타기 위해 꼭두새벽에 일어나 차를 세 번이나 갈아타야 했지요. 5분쯤 먼저 도착해 자리를 찾아 앉는데 이상하게도 분위기가 참 차분합니다. 왜 그럴까 궁금해 옆자리 분에게 물었더니 ‘호남정맥 종주 세 번째 구간 산행’이랍니다. 어쩐지 낯선 지역에 있는 오봉산이다 싶더니 제가 이렇게 용의주도하지 못합니다.


 

아니나 다를까, 산악회장님이 인사를 하는데 오늘 차량은 강남에서 출발하는 거랑 2대고, 다들 백두대간을 여러 번씩 탄 사람들이라 그런지 너무 빨리들 산을 타는 경향이 있는데 제발 그러지 말라고 당부를 합니다. 덜컥 겁부터 납니다. 그래도 산행 안내문에 A, B, C코스로 나누어 각각 6시간, 4시간, 3시간씩 걸린다고 적혀 있어 다행입니다. 호남정맥을 타는 사람은 A코스를, 다른 사람들은 자기 능력에 맞게 B코스든 C코스를 선택해 탈 수 있다는 말이니까요.


 

회장님이 B코스를 탈 사람을 묻습니다. 손을 들었더니 정상이 해발 513.2m로 높진 않으나 이름답게 다섯 봉우리의 높낮이가 심해서 힘이 드니 C코스를 타라고 권합니다. 겁을 줍니다. 또 경치를 보는 데도 C코스가 최고라며 부추기길래 무겁게 들고 온 카메라를 생각해서 C코스로 마음을 바꿉니다.


 

오봉산 정상과 표지석.

 

새벽 옥정호 풍경이
으뜸이라지만…

C코스를 택하는 사람들이 몇몇 더 있어 다행이다 싶습니다. 차는 11시 가까이 되어서야 서쪽 건너편에 모악산이 조망되는 불재에 도착, A코스 대원들을 내려주고는 구불구불 길을 더 달려 옥정호 전망대 앞에 우리 C코스 대원들을 내려줍니다. 27번국도 주변 같은데 입구에 메밀밭을 만들어 놓아 전망대 분위기가 한층 더 나는 것 같습니다. 근데 맑긴 하지만 연무가 좀 끼어 있는 날씨여서 멀리까지 쨍한 맛은 기대하지 않는 게 나을 것 같습니다. 


 

옥정호는 임실군 운암면과 강진면, 정읍시 산내면에 걸쳐 있는 저수면적 26.5평방킬로미터, 총 저수량 4억3,000만 톤 규모의 인공호수지요. 1926년에 처음 만들어진 섬진강 상류댐으로 형성됐고요, 1965년 2차댐 건설로 저수 면적과 저수량이 크게 늘었는데, 운암면이 절반 가까이 물에 잠기게 돼 수몰지역 주민들이 계화도 간척지로 이주하기도 했지요.


 

산등성이를 휘돌아가는 물굽이가 호수로 변하자 산 자락 일부가 섬이 되기도 했는데, 금붕어 모양의 붕어섬과 물에 잠겼다 떠오르는 자라섬이 볼 만합니다. 내륙 산간 지역이라 안개가 자주 끼는데, 자연 전망대인 호수 북쪽 국사봉 중턱에서 바라보는 경치가 일품으로 전국의 사진작가들에게 인기 지역이기도 합니다. 인터넷 검색 창에 ‘옥정호’를 쳐보면 수많은 네티즌이 올려놓은 풍경들을 어렵잖게 감상할 수 있을 겁니다.


 

옥정호 전망대공원에 조성되어 있는 메밀밭. 하얀 꽃이 핀 너머가 골짜기로 팍 패여 먼산이 뒷동산처럼 붙어보인다.

 

하지만 2008년 착공한 섬진강 댐 보강공사가 올해 완공되는데 현재 191.5m의 댐이 196.5m로 높아지게 돼 이럴 경우 자라섬이며 붕어섬이 물에 잠기게 되지 않을까 걱정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전망대에 오르니 전부는 아니지만 어느 정도 호수가 눈에 들어옵니다. 오늘 제가 담는 이 사진이 어쩌면 붕어섬의 ‘영정 사진’이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셔터를 몇 번 더 누르게 됩니다.


 

최근 임실군에서는 제주올레길 인기에 편승해, 여기 운암면 입석리 옥정호 전망대에서부터 호수 북쪽 국사봉을 거쳐 옥정호 북쪽 산 능선을 따라 오봉산을 거쳐 운암삼거리 쪽 학암리까지 17.65km를 ‘옥정호 마실길’이라고 정해 관광객들에게 홍보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우리 C코스 대원들은 오늘 옥정호 마실길을 따라 등산을 하나봅니다.


 

해발 475m의 국사봉으로 오르는 첫 구간은 계단 길입니다. 10여 분 오르니 중턱에 또 하나의 전망대가 나옵니다. 옥정호를 들여다보는 덴 아주 완벽한 전망대 같습니다. 조망을 다시 카메라에 담고 정오 가까이 국사봉에 도착합니다. 미상불 이곳 조망은 요 아래 중턱만 못 합니다. 정면 아래에 솟은 낮은 봉우리에 붕어섬이 가려지는 게 안타깝습니다. 대신 오른쪽 능선으로 이어지는, 오봉산 가는 산마루금이 멋들어지게 장관을 연출해 줍니다. 


 

대장님이 아까 차 안에서 옥정호를 설명할 때 ‘오늘 약간의 이내 때문에 옥정호가 가장 멋진 경치를 보여주진 않을 것’이라 했는데, 내 생각으로는 안개 낀 멋진 경치란 ‘오늘’이란 날짜가 아니고 구체적으로 ‘언제’라는 시간대 개념으로 말했어야 더 옳았을 것 같습니다.


 

1 점심을 든 장소. 남동쪽으로 옥정호 붕어섬이 손에 잡힐 듯 가깝게 조망된다. 2 바위 제단으로 쓰면 딱 좋을 것 같은 국사봉 정상 기암.

 

나중에 집에 와서 인터넷으로 확인한 바도 그렇지만 옥정호 안개는 요즘이 적기로 이날도 이른 새벽 안개가 자욱하게 끼었다 걷혔고 많은 사진가들이 꼭두새벽부터 찾아와 어둠 속을 뚫고 올라와 기다렸다가 안개가 서서히 걷히는 광경을 카메라에 담고 간 것입니다. 물론 드물게 어떤 날은 낮에도 구름이 끼거나 비슷한 안개 현상을 띠기도 하겠지요.


 

달리 말하자면 ‘광경’이 아니라 ‘현상’이랄까요. 물론 날씨에 상관없이 옥정호는 원래 모습 그 자체만으로도 아름답지요. 하지만 사람들은 그런 제 모습보다는 가장 아름다울 때를 염두에 두고 얘기합니다. 하지만 그것은 모습에 어떤 현상이 가미된 상태를 뜻하지요.


 

정상부 절벽 암릉지대의
옥정호 조망 으뜸


근데 함께 출발한 10여 명의 C코스 대원들의 걸음 걸이를 제가 도저히 따라가질 못하겠습니다. 여자분들과 노인, 부부 팀들로 형성됐는데도 ‘썩어도 준치’라고 송백산악회 멤버들 실력을 제게 유감없이 보여줍니다. 힘겹게 따라 붙으면 어느새 휑하니 앞서 가버리니까요. 국사봉 다음 길은 급경사를 이룬 가파른 내리막입니다. 다행히 나무계단을 설치해놔 난간을 잡고 천천히 내려갑니다.


 

이렇게 길은 확하고 내려 꽂다가 슬며시 올라가고 또 내려 꽂기를 반복하는 가운데 남북으로 조금씩 꿈틀거리기도 하면서 정상부 능선 길로 올라섭니다. 길 빼곡히 참나무와 소나무들에 가려서 전망이 없던 길이 왼쪽 옥정호 쪽으로 조금씩 조망을 터주기도 합니다.

 

개여뀌가 소복하게 피어 있는 옥정호반 하산길 끝.

 

수많은 사진작가들 매혹한 그 풍경을 보다
아름다운 옥정호 조망하는 호남정맥 세 번째 구간의 다섯 봉우리

저만치 숲 속 능선 길 한 곳에서 일행이 잠시 휴식을 취하고 있습니다. 저도 간식을 들기로 합니다. 근데 이번에도 앞서 가던 사람들은 마치 나를 기다렸다는 듯이 동시에 일어서더니 앞다투어 길을 재촉합니다. 이들이 먹다 남은 음식 부스러기를 노리고 어디 숨어 있다 나왔는지 다람쥐 한 마리가 힐끔힐끔 내 눈치를 보며 어정거리고 있습니다. 허허 참 이 녀석 곁에 여기저기 떨어진 도토리들에는 눈길도 안 주네요. 벌써 사람 세상 음식 맛을 알아버렸나 봅니다.


 

급경사를 내려서기만 하면 무슨 무슨 고개들입니다. 산이 높지 않으니 산 남북 쪽 마을 사람들은 서로 가장 가까운 산과 산 사이 재를 택해서 다녔나 봅니다. 한 20여 분을 더 가니 국사봉에서 바라본 정상부 절벽 암릉지대로 여겨지는 옥정호 조망이 좋은 공간이 나옵니다. 먼저 와 자리를 잡은 대원들이 제게 함께 앉길 권합니다. 아마도 여기서 점심을 들려는가 봅니다. 하긴 정오가 벌써 30분이 더 지났습니다. 하지만 저는 촬영부터 합니다. 제가 볼 때 이제까지 본 여러 곳 중 가장 경치가 좋다고 생각돼서요.


 

등산에 조망이 없다면 콩쿠르에 상금이 없는 것과 마찬가지죠. 이 밋밋하고 잡목에 가려진 야산 같은 오봉산에 옥정호 전망이 없다면 말입니다. 절벽 위에 아름드리 소나무들이 여러 그루 자란 사이로 붕어섬이 ‘이런 모습도 있다’는 듯 정면으로 나타납니다. 바로 위에 샛노란 미역취 한 포기가 ‘여기가 촬영 포인트’라고 사인을 보내주는 것 같고요.

오봉산 개념도

 

달걀 몇 개 삶아온 제 점심이 이 경치로 한 맛을 더 내줄 것 같습니다. 그래선지 먼저 온 대원들 중 한 분이 막걸리 병을 들고 지원자를 찾습니다. 슬며시 가서 반 잔을 받아 목을 축입니다. 제게도 비장의 음식이 있지요. 아내가 싸준 냉동 파인애플 도시락입니다. 여남은 조각이 들어 있어 가까운 여성부터 한 조각씩 돌립니다. 아직도 차가운 것이 입 속을 상쾌하게 해주나 봅니다. 때 맞춰 “앞으로는 다들 먼저 가지 말고 함께 좀 가주시죠”라는 멘트도 챙깁니다. 굳이 이 말을 건네는 건 제 혼자 외롭다기보단 어떤 사진을 찍을 때 모델이 필요하기 때문이란 걸 아는 사람은 없는 것 같습니다.


 

좀 전에 ‘정상 500m’란 이정표를 봐서 앞으로 한 300여 m는 남았으려니 했는데 점심을 든 자리에서 50여 m를 더 가니 바로 정상입니다. 작고 까만 표지석이 서 있고 바로 곁이 동그마한 암릉 가장자리로 다시 한번 조망이 뻥 뚫립니다. 멀리로는 구불구불 돌아가는 서남쪽 호수 하류에 걸린 옥정교 운암교 두 다리도 눈에 들고, 암벽 바로 아래엔 이름을 알 수 없는 쑥부쟁이 여러 포기가 작은 꽃송이들을 하늘거리며 피어 있습니다.


 

운암면으로 내려서는 길도 급경삽니다. 이제 1시가 조금 넘었는데 벌써 하산이라니… 장장 15.4km 구간, 중간에 오봉산보다 더 높은 600고지 봉우리를 타고 올 A코스 대원들을 생각하면 내려가서 뭘 할까가 고민입니다. 그래서 이때부터는 길가에 핀 들꽃들에 관심을 더 많이 쏟기로 합니다. 이제 막 꽃을 피우는 이고들빼기며, 까실쑥부쟁이, 찔레와 까치밥 열매들을 담는데, 드물게 하얀 꽃 한 송이가 눈에 띕니다. 바로 삽주란 식물입니다. 약초로 더 인기 있는 건데 용케도 길가 바로 곁에서 자라고 있군요. 이 역시 조만간 영정 사진 되는 게 아닐까 하며 조심스레 담습니다.


 

가시덩굴이 아예 밀림 이루어 곤욕

근데 이 하산 길이 보통이 아닙니다. 급경사도 그렇지만 잡목에 덩굴 식물이며 잡초들이 아예 밀림을 이룹니다. 일행이 앞서 가며 길을 내주어서 그렇지, 막 자란 덩굴 줄기들엔 작은 가시들이 돋아 있어 제치는 손바닥에 금방 핏방울을 돋게 만듭니다. 이럴 땐 장갑을 끼어야 하는데 안 갖고 왔군요.

1~3 오봉산에서 만난 들꽃들. 찔레 열매, 왕고들빼기 씨방, 울산도깨비바늘 등.(위부터)

 

그래도 들꽃 찍는 재미로 대열에서 아주 멀어지지 않을 만큼 뒤처져서 잘 내려갑니다. 근데 산길이 끝나고 차도가 나왔는데 이 사람들 다시 건너편 산길로 올라갑니다. “아니 왜 그러죠?” “이 길이 호남정맥 길이라서요.” 이거 혼자 뒤처졌다간 아주 알바하기 십상일 것 같습니다. 덕분에 다시 도로 하나를 더 건너고 산등성이 몇 개, 293.5m 봉우리 하나를 더 넘고서야 옥정호가 보이는 어느 골짜기, 그것도 길 아닌 길로 내려섭니다.


 

전에 산사태가 난 곳을 과수원으로 만든 곳인데 선두가 게릴라 식으로 개척한 길입니다.근데 과수원 터에 여뀌와 개여뀌가 지천으로 피어 있어 제겐 오히려 다행인 것 같습니다. 옥정호 팔각정과 주차장이 바로 앞에 나타납니다. 대리석이면 더 좋았음직한, 남녀 한 쌍이 어깨동무를 한 석회 조각상이 옥정호를 마주하고 있습니다. 타고 왔던 버스도 그 앞에 있고요. 저는 다 내려왔다는 사실보다 주변에 많이 피어 있는 여러 들꽃들이 더 반갑습니다.


 

낯익은 빨간 이삭여뀌와 이질풀은 물론 꽃에서 열매, 씨앗으로 변신하는 과정을 한눈에 알 수 있게 각각의 모습을 동시에 보여주는 울산도깨비바늘과 너무도 왕성한 번식력으로 다른 식물들을 고사시키는 환삼덩굴의 꽃, 이름과는 달리 예쁜 처음 보는 큰땅빈대 꽃들을 만나 기분이 좋습니다. 물론 전에도 모르고서 보긴 했겠지만요. 그래서 다른 땐 좀체 눈길도 주지 않던 화단의 코스모스 꽃까지도 ‘기분이다’라며 덤으로 한번 담아봅니다. 


 

근데 가장 놀라운 것은 이 산악회 회원들입니다. 불과 30여 분 뒤 A코스 첫 번째 완주자가 도착하는 겁니다. 우리가 4km를 3시간 반여에 타고 내려왔는데 15.4km 구간을 불과 4시간여 만에 그것도 별로 지쳐 보이지도 않는 표정이라니…. 그리고 2, 3분 간격으로 다음 완주자들이 속속 나타납니다. 우와! 나 오늘 울트라산악회를 따라왔나 봅니다. 요즘 정말 많아진 우리 등산인들. 하지만 개중에는 이렇게 보통 동호인에서 전문가로 변신하는 사람들도 많은 것 같습니다. 이분들이야 말로 강호의 산악 고수들 아닐까요. 물론 각자의  취향이겠지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