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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트레스 쌓고만 사는 당신은…극단행동 부르는 ′외상후격분장애(外傷後激忿障礙>′ 키우는 중

호젓한오솔길 2012. 1. 20. 08:29

 

한국인의 정신 건강에 '빨간불'이 커졌다. 2008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통계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자살율은 10년 동안 4위에서 1위로 상승했다. OECD 회원국 중 10년 동안 자살자 수가 급증한 나라는 우리나라가 거의 유일하다. 우울증 조울증 등으로 진료받은 환자도 2년만에 48% 증가했고, 스트레스로 병원을 찾은 사람도 4년 동안 2배 이상 늘었다(2008년 국민건강보험공단 자료). 이홍식 세브란스병원 정신과 교수는 "지금 한국인의 정신 상태는 언제 터질지 모르는 화약고이다. 우리나라는 단연코 '정신 건강 후진국'이다"고 말했다.

▲ 한국 사회는 평범한 소시민이 언제 정신적으로 비정상적인 일탈을 할 지 모르는‘정신 건강 후진국’이다. 일부 전문가들은 감당 하기 어려운 상황에 닥쳤을 때 느끼는 정신적 충격을 제대로 다스리지 못해 나타나는 외상후격분장애로 이런 문제를 설명한다. / 신지호 헬스조선 기자 spphoto@chosun.com

 4명 중 3명이 폐쇄적 정체성… 과격한 분노 표출할 가능성

2010년 한국 사회에서는 '평범한 이웃'들이 정상적인 정신 상태를 일탈해 충격적인 사건을 일으키고 있다. 올들어 지난 달까지 범죄 전력이 없던 '소시민'이 홧김에 살인이나 폭행 등 크고 작은 사건을 저질러 언론에 보도된 것만 30여 건이다. 전문가들은 이처럼 평범하고 열심히 살던 사회 구성원이 갑자기 일탈을 감행하는 것도 정신 건강에 문제가 있기 때문이라고 입을 모은다.

이홍식 교수는 "실적 위주의 끊임없는 경쟁에 경제 위기까지 겹치면서 우리 사회는 전쟁터가 됐다. 여기에 연일 쏟아지는 사건사고 보도는 자신이 사는 사회를 의심하고 분노하게 만든다. 이런 사회적 압박감과 개인적 스트레스가 복합적으로 작용하면 멀쩡했던 사람의 정신 건강도 나빠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같은 상황이 수면 위의 거센 파도라면, 우리 사회의 뚜렷한 상하관계와 권위적인 문화는 기저에 흐르는 압박 요인이다. 삼성사회정신건강연구소가 2007년 성인 남녀 199명의 자아정체감을 분석한 결과, 74.4%가 '정체성 폐쇄군'으로 나타났다. 정체성 폐쇄군은 자존심이나 체면이 손상됐다고 느끼면 타인을 비난하거나 분노를 과격하게 표출하는 공격적인 모습을 보일 수 있다. 이동수 삼성사회정신건강연구소 소장은 "한국인은 개인의 희생을 바탕으로 집단적 목표 성취를 강조해 온 우리 사회의 수십년 특성 때문에 자아정체감을 성숙시키지 못했다. 이 때문에 우리나라는 정서적으로는 '미성년자의 사회'"라고 말했다.

정신 건강 신경쓰면 정신질환자 취급하는 세태도 원인

사회 분위기만 탓할 것도 아니다. 한국인은 신체 건강을 꼼꼼히 챙기는 것에 비해 스스로의 정신 건강에는 무관심하다. 스트레스는 상담을 하는 것 자체만으로도 개선된다. 현재 대부분의 보건소가 스트레스 상담실을 운영하기 때문에 굳이 정신과를 찾지 않아도 된다. 하지만 활용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서울 강남구 정신보건센터의 스트레스상담실 이용자는 방문·전화·온라인을 합쳐 하루 평균 6~7명에 그친다. 1회성이 아닌 정기적인 상담을 받는 사람은 이 중 절반 정도에 불과하다.

'불안정한 정신 건강 상태=정신병'이라는 잘못된 등식을 고집하는 사회 분위기도 문제를 키운다. 채정호 서울성모병원 정신과 교수는 "우리 사회는 감정을 드러내면 나약하게 여기고, 정신 건강에 신경쓰면 무조건 정신질환자 취급한다"며 "부정적인 감정을 적절히 처리하지 못하면 만성적으로 누적됐다가 어느 순간 갑자기 실제 정신질환이나 자살·범죄 행위 등으로 폭발한다"고 말했다. 채 교수는 "이는 '외상후격분장애(PTED)'라는 새로운 개념으로 설명할 수 있다"고 말했다.

외상후격분장애란 해고·이혼·파산·펀드 손실·가까운 이의 사망·불치병 진단 등 충격적인 상황이 닥쳤을 때 '나한테 왜 이런 일이 일어나느냐'는 감정을 3개월 이상 제대로 다스리지 못하다가 결국 방화 자살 폭력 등 극단적인 행동을 보이는 증후군이다. 외상후격분장애는 무엇이 원인인지 확실하지 않은 화병(火病)과 달리, 뚜렷한 원인이 있다. 채 교수는 "토지보상비 문제로 속을 끓이다가 숭례문에 불을 지른 범인이 대표적 사례"라며 "누구나 이렇게 될 수 있으며 이렇게 발생하는 사건은 엄청난 사회적 파장을 일으키기 때문에 사회적인 차원에서 예방하는 것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가상(假想)의 화 다스려서 정신 건강 유지하는 법 익혀야

하지만 국민의 정신 건강을 유지하기 위한 사회적 시스템은 아직 부족하다. 홍진표 서울아산병원 정신과 교수는 "이런 실정에서는 현실적으로 각자 자신의 정신 상태를 건강하게 유지하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말했다. 홍 교수는 이어 "산에 올라 크게 소리를 지르거나 억울한 심정을 글로 써 보면 억눌린 감정을 해소하는 데 도움된다"고 말했다. 스트레스를 담아두지 말고 술자리에서 원인 제공자의 흉을 보거나 노래방에서 감정을 터뜨리는 것도 임시방편이 될 수 있다.

스스로 화를 다스리기 힘들면 인지행동요법의 도움을 받을 수 있다. 채정호 교수는 "상담하는 의사가 다양한 부당한 사례를 제시하면서 '당신이라면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하겠느냐'고 질의응답을 하는 방법을 쓴다"고 말했다. 예를 들어 본인이 회사에 많은 공을 세웠는데 보상은 다른 사람한테 돌아간 경우, 타인의 과실로 교통사고가 나서 가족 중 누군가가 사망한 경우 등을 상상한 다음 가상(假想)의 화를 다스려 봄으로써 부정적인 감정을 슬기롭게 처리하는 방법을 미리 배워두는 것이다.

/ 김맑아 헬스조선 기자 malga@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