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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난화의 역설… 꽃 없는 꽃축제

호젓한오솔길 2012. 4. 4. 21:32

온난화의 역설… 꽃 없는 꽃축제

 

 

/연합뉴스

 

북극 찬 공기 풀려 남하… 봄철 꽃 개화시기 늦춰

"매화는 구경도 못하고 사람 구경만 하고 왔어요. 미리 알았더라면 안 갔을 텐데…."

김석규(50·
대전시 서구 둔산동)씨는 지난달 24일 친구들과 함께 3시간여를 달려 전남 광양시 '광양 국제매화문화축제'를 찾았다가 썰렁한 풍경만 감상하고 왔다. 25일 폐막을 하루 앞두고 서둘렀던 꽃구경길이었는데, 매화는 주차장 주변에만 조금 피었을 뿐 멋진 풍경을 연출하는 청매실농원 일대는 거의 피지 않은 상태였다. 축제장은 주변 교통이 마비될 정도로 전국에서 몰려든 사람들만 북적댔다. 안혜경(48·대전시 대덕구 송촌동)씨는 "행사가 위축될까봐 개화 현황을 적극적으로 알리지 않은 것 같다"며 "날씨에 따라 개화가 달라지는 특성상 축제 시기도 탄력있게 운영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처럼 봄철 전국 곳곳에서 '꽃 없는 꽃축제'가 열리고 있다. 이에 대해 '지구 온난화가 부른 역설'이라는 해석도 나오고 있다. 온난화 탓에 북극권에 갇혀 있어야 할 찬 공기가 풀리면서 남하해 봄철 꽃 개화 시기를 늦추고 있다는 것이다.

허복행
기상청 관측정책과장은 "북극지방의 기온이 낮으면 제트기류가 강해져 찬 공기를 극지에 가둬놓는 효과가 나타나게 된다"며 "최근 북극의 기온이 올라가면서 제트기류가 약화돼 차가운 공기가 한국 같은 중위도 국가까지 밀고 내려온 것"이라고 설명했다.

기상청에 따르면 올해 2월 평균기온은 평년(영상 1도)보다 2.1도 낮은 영하 1.1도였고, 3월도 평년(영상 5.9도)보다 0.2도 낮은 5.7도였다.

국내 최대 벚꽃축제인 진해군항제는 지난달 31일 개막식과 전야제를 갖고 1일부터 축제에 들어갔다. 이틀 동안 18만여명이 다녀갔지만 꽃은 거의 구경도 못했다. 2일 들어서야 겨우 꽃망울이 터지기 시작했고, 오는 주말이나 돼야 본격적인 개화가 시작될 것으로 창원시는 예측했다. 군항제는 10일이면 끝난다.

산수유축제가 열리고 있는 2일 오후 경북 의성군 산수유마을 전경. 3월 31일부터 축제가 시작됐지만 아직 산수유 꽃망울이 터지지 않아 분위기가 썰렁하다. 아래는 산수유가 만발해 노란색으로 뒤덮인 이전 축제때 모습. /남강호 기자 kangho@chosun.com

창원시 관계자는 "개화시기에 맞춰 매년 들쭉날쭉하던 축제기간을 올해부터 4월 1~10일로 고정했는데, 첫해부터 낭패를 보게 됐다"고 말했다.

이처럼 '꽃 없는 꽃 축제' 현상은 최근 몇년간 반복되고 있다. 지난달 31일 개막한 경북 의성군 산수유축제도 이런 사정으로 고심하고 있다. 축제가 열리는 사곡면 화전리 산수유마을에는 3만여 그루가 군락을 이루고 있는데, 현재 50% 정도만 꽃망울을 터뜨렸다. 그나마 개화 초기여서 아직 노란 빛깔이 덜 올라온 상태다. 오는 15일까지 축제를 여는 의성군은 후반부 성황을 기대하고 있다.

지자체들이 일찌감치 축제 시기를 정하는 것도 '꽃 없는 축제'의 원인이다. 의성군 관계자는 "예산집행, 추진위 구성, 홍보물 제작 등에 걸리는 시간을 고려해 보통 4~5개월 전에 축제 날짜를 결정할 수밖에 없다"며 "매년 복권 당첨을 기다리는 심정으로 꽃이 피기를 기다린다"고 했다.

지난해 꽃축제 기간에 눈이 내리는 바람에 축제를 망친
경기도 이천 '백사산수유꽃축제' 추진위원회도 가슴을 졸이고 있다. 오는 6일 축제를 개막하는 추진위 이윤희 간사는 "일기예보를 매일 확인하면서 축제 현장을 찾아 꽃이 폈는지를 살펴보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