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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 로컬푸드를 구현하는 식당에서 보리밥을 먹다

호젓한오솔길 2012. 6. 14. 08:29

 

[식당밥일기]

90% 로컬푸드를 구현하는 식당에서 보리밥을 먹다

 

 

 

중년 남자에게 어색하기만 한 가로수길


오후 5시에 신사동 가로수길 커피숍에서 창업카페를 운영하는 사람과 약속이 있었다. 오래 만에 찾아간 가로수길은 화려하고 번잡한 젊은이의 거리였다. 생면부지의 중년 남자 두 명이서 오래 앉아 있기에는 영 불편하다. 10년 전 독일을 방문했는데 독일의 도시는 저녁 때 중년층과 노년층이 점령했었으며, 노천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맥주를 마시면서 대화를 하는 장면이 아주 인상적이었다. 한국의 도시와 달리 독일은 중노년층의 거리였고 라인강변에서 마시는 맥주는 저렴하고 각별했다.

그러나 가로수길 카페는 세련되지 못한 중년 남자가 장시간 있기에는 정말 어색하다. 음료수는 식사 한 끼 가격이고, 발레파킹 비에 대한 부담도 있다. 가로수 길은 임대료가 과도하게 비싸기로 유명하다. 불과 30분만에 명함을 주고받고 짧지만 의미 있는 대화로 만남을 완료했다.

100년 된 가옥에서 먹는 보리밥

사무실에서 아내를 픽업을 하고 경기도 수지로 차를 몰았다. 오늘 저녁식사는 아내가 추천했다. 용인시 수지로 이사 온 지 10년이 훌쩍 넘었지만 바로 집 근처에 이런 식당이 있는 줄은 몰랐다.

강원도 산골에 온 느낌이다. 가정집이기도 한 이 식당은 거대한 아파트 촌에 포위되어 있다. 마치 아파트 촌 가운데 단 한 채 있는 고립무원의 섬이었다. 주인아주머니가 100년 된 가옥이라고 친절하게 설명한다. 무쇠 가마솥도 있고 오래 된 농기구도 보인다. 보리밥(6000원)과 잔치국수(4000원)를 주문했다. 알뜰한 아내는 잔치국수로 저녁을 때우려고 한다. 보리밥과 잔치국수는 2000원 차이지만 가치와 품질은 보리밥이 훨씬 낫다.

주인아주머니 왈, 콩나물을 제외하고는 모든 채소와 나물은 직접 재배한다고 한다. 식당 겸 가옥 옆에는 채소밭이 있다. 올해 85세 된 업주의 부친이 채소를 키운다. 식사를 하고 가게를 빠져 나올 때 보니 어르신은 농사일로 얼굴이 새카맣게 탔지만 걸음걸이가 정정하기만 하다. 

고추장과 된장도 직접 담든다고 한다. 보리밥에 나물을 다 넣고 고추장과 참기름을 쓱쓱 비벼서 먹었다. 자연의 맛이다. 업주가 경기도 원주민이라 음식은 자극적이지 않다. 찬으로 나오는 얼갈이 김치는 심심하지만 오히려 먹기에 편하다.

오리지널 서울 사람인 필자는 소싯적 보리밥을 먹어본 기억이 거의 없었지만, 식사를 하면서 ‘나는 소양인이므로 보리밥이 잘 맞는다’고 스스로 생각을 했다. 단지 70년대 초반 정부에서 쌀 부족으로 분식과 혼식을 장려(?)해 쌀밥에 보리를 약간 올린 도시락으로 선생님의 감시를 피한 기억밖에 없다. 따라서 보리밥은 나에게는 추억의 음식이 아닌 별미였다. 또한 나이가 들고나서 부터는 현저하게 나물이 잘 맞는다.


6000원짜리 웰빙 먹을 거리

여하튼 오늘 먹은 저녁식사는 말 그대로 자연친화적인 웰빙 먹을 거리였다. 보리밥에 직접 재배한 채소와 나물, 그리고 직접 담든 된장과 고추장. 도심에서는 먹기 힘든 음식이다. 보리밥에는 육류도 완전히 배제되었다. 시중 식당에서 육류를 완전히 피하고 식사를 선택하는 것은 용이한 일이 아니다. 여기에다 60년대~70년대 풍취와 분위기는 덤이다. 일주일에 한 두 번은 오고 싶은 곳이다. 건강과 가격을 고려한 판단이다.

신사동 가로수길에서 차만 안 막히면 30~40분 거리에 이런 식당이 있는게 신기하기만 하다. 식사를 다 마치고 나올 때까지 손님은 달랑 우리 부부뿐이다. 그래도 식당주인은 유유자적(悠悠自適) 하기만 하다. 그 여유가 부럽다. 그러나 메뉴 판을 보니 미니 돼지족발의 원산지가 수입산이다. 이런 보기 드문 산골풍 식당에서도 100% 로컬푸드를 실천하기가 결코 쉬운 일이 아닌가 보다. 강원도 막국수 집에서도 국산 메밀을 사용하는 곳이 거의 없는 것이 작금의 현실이다.
'성복골 잔치국수 보리밥'경기도 용인시 수지구 성복동 172번지   (031)261-9811

글,사진 제공 / 김현수 외식콘셉트 기획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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