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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장의 담백한 순정이 알알이 박힌 차돌박이

호젓한오솔길 2012. 6. 22. 08:33

 

주인장의 담백한 순정이 알알이 박힌 차돌박이

 

 

어느 특정 음식과의 인연이 강렬하게 기억에 남는 경우가 있다. 그럴 때 그 특정 음식은 한 개인에게 지대한 영향력을 행사한다. 영양학적이나 생리학적으로는 도저히 설명이 안 되는 부분이다.

한 때 호기롭게 사표를 던지고 미련 없이 직장을 나온 적이 있다. 그러나 계획했던 일이 순조롭지 않아 어려움을 겪었으며, 그때 동생이 전화로 필자를 불러냈다. 동생의 회사 근처인 여의도에 있는 소문난 고깃집으로 나를 데려갔고, 이런저런 위로의 말과 함께 동생이 사준 고기가 차돌박이였다. 고소한 고기 맛도 일품이었지만 어느새 자라 못난 형을 다독이는 동생 모습이 든든했다. 이후 차돌박이는 내게 사랑스런 아우의 마음이고 정이었다. 힘들 때 먹으면 원기를 돋게 해주는 보양식이었다.

차돌숙주

 

느끼하지 않고 신선한 차돌박이 푸짐하게 제공

차돌처럼 단단한 지방이 살 속에 박혀있는 차돌박이는 원래 인기 있는 부위가 아니었다. 국으로 끓여도 마땅치 않고 구워먹자니 너무 질겼다. 별수없이 국으로나 끓여먹었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단단한 지방층 부위를 얇게 썰어 구워먹으면서 독립된 구이용 부위로서의 지위를 얻었다.

차돌박이는 얇게 썰기 때문에 불에 빨리 익어 성미 급한 한국인의 성격에 잘 맞는다. 소고기 지방 특유의 고소함과 쫄깃한 식감을 즐길 수 있다. 그러나 고기를 잘못 고르면 질겨서 식감이 떨어지고, 너무 많이 먹으면 느끼하다.

차돌박이

 

‘버그네 차돌박이 불고기’의 주인장 지대준(40) 씨는 직접 50CC 짜리 오토바이를 몰고 마장동 우시장에 가서 차돌박이 원육을 사다가 쓴다. 식당을 시작하기 전, 좋은 고기를 구하러 다니다가 찾아낸 업자와 삼고초려 끝에 거래를 텄다. ‘앉은뱅이 사장’은 되지 않겠다는 지씨의 성실함이 질 좋은 고기를 고객에게 제공하는 원천인 셈. 개점한 지 두 달밖에 안 되었지만 좋은 고기를 제공하겠다는 주인장의 열망이 가득하다.

차돌박이는 미리 고기를 썰어놓으면 맛이 떨어진다. 그래서 지씨는 신선한 차돌박이 원육을 그때그때 얇게 썰어서 내온다. 한눈에 봐도 푸짐한 양의 ‘차돌숙주’ 1인분(200g/1만5000원)을 시켜 먼저 숙주나물과 새송이 버섯을 익히고 어느 정도 익으면 차돌박이 참숯에 올려준다. 돌판이나 일반 금속제 불판보다 기름이 잘 빠져나가 고기가 생각만큼 느끼하지 않다.

위:차돌숙주/아래:참숯 불

 

잘 구운 차돌박이를 먼저 익힌 숙주나물과 함께 집어서 간장소스에 찍어먹는다. 소스의 간이나 향은 그리 진하지 않다. 파채를 소스 그릇에 함께 넣고 푹 잠갔다가 먹어도 짜지 않다. 1차로 숙주나물이 불판에서, 2차로 파채가 간장소스에서 느끼함을 잡아준다. 간장소스를 좀 더 얼큰한 맛으로 즐기고 싶다면 소스와 함께 내오는 땡초가루를 넣어서 먹는다. 밑반찬으로 나온 열무김치와 무생채도 차돌박이의 지방을 상쇄시켜준다. 특히 아삭아삭한 식감이 살아있는 무생채를 쫄깃한 차돌박이와 함께 먹으면 씹는 맛이 한결 좋다.

수수한 새색시 닮은 서울식 불고기, 달지 않고 짜지 않아

‘버그네 차돌박이 불고기’의 메뉴는 옥호에도 나와있듯이 차돌박이와 불고기, 달랑 두 가지다. 다른 건 신경 안 쓰고 오직 두 메뉴에만 집중해 음식 질을 높이겠다는 주인장의 의지가 엿보인다.  이 집의 ‘소불고기’(1인분 300g/1만 5000원)는 전형적인 서울식 불고기다. 사라져가던 서울식 불고기가 요즘 차츰 되살아나는 분위기다. 불고기 감은 목심 부위를 쓴다. 불고기에 맞춤 한 고기만 선별해내고 나머지 잔 고기는 된장찌개에 사용한다. 고기 외양과 양념 방식도 다른 서울식 불고기와 비슷하다. 고객의 주문을 받으면 그때부터 양념장에 고기를 재어서 내온다. 그래서 고기의 제 빛깔이 살아있다.

그러나 보통 식당용 불고기와 달리 간이 세지 않다. 마치 갓 시집온 착하고 수수한 새색시 같다. 짭짤하고 달달한 불고기 맛에 길들여진 사람이 먹으면 심심하다고 느낄 것이다. 주인장 지씨가 설탕과 소금을 최대한 자제하였다. 만일, 심심하다면 고기를 간장 소스에 찍어먹으면 간이 적당하다. 당면, 새송이, 양파, 팽이버섯을 넣고 끓인 육수를 떠서 공기밥과 먹어도 좋다.

소불고기

대체로 차돌숙주는 술 안주로, 소불고기는 밥과 함께 먹으면 훨씬 제 맛을 즐길 수 있다. 된장찌개(3000원)는 맛도 좋지만 풋고추의 알싸하고 풋풋한 내음이 그대로 폴폴 나서 고향 생각이 나게 한다. 불고기 감을 떼어내고 난 목심을 넉넉히 넣어 국물이 구수하다. 차돌박이 먹고 난 기름진 입안을 씻어내는데 더 없이 좋다. 물론, 공기밥과 함께 먹어도 훌륭하다. 가격대비 만족도가 높아 고기 먹은 손님들은 꼭 함께 주문한다.
‘버그네 차돌박이 불고기’의 고기와 음식은 대체로 맛이 담백하다. 먹은 뒤에도 배가 편하다. 외식 초년병인 주인장의 순수함과 정직함이 반영된 맛이다. 화학조미료를 자제하고 최소량만 넣는다. 그러나 음식의 양은 최대한 푸짐하게 제공한다. 김치 등 찬류나 모든 음식은 직접 조리한다.

해가 넘어갈 무렵, 어느 중년부부가 아들 딸과 함께 불판에 차돌박이를 올렸다. 밝게 웃는 네 식구의 입가에 초저녁 햇살이 가득 머물렀다. 아우가 보고 싶어졌다.
‘버그네 차돌박이 불고기’ 위치 : 서울 마포구 염리동  전화번호 : 02-703-6304
영업 :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오후 5시부터 10시까지 주문이 가능 / 휴무 : 일요일


글·사진: 월간외식경영 이정훈 기자, 변귀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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