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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은 과거, 현재, 미래를 모두 아우른다. 과거의 역사를 고이 간직하고 있으며, 현재는 있는 그대로의 모습이고, 미래의 비전을 제시해 준다. 특히 모든 종교의 지도자들은 산에서 영감을 받아 크게 깨친 사례가 많다.
이영탁(李永鐸·65) 세계미래포럼 이사장. 제7회 행정고시 합격 이후 1970년 사무관으로 공직을 시작한 이래 장관급으로 30년 가까운 공직생활을 마쳤다. 그중 20여 년을 경제부처에서만 일했다. 이른바 ‘경제통’, ‘경제전문가’로 불린다. 그런 그가 인생 후반기에 미래학자로 변신했다.
- ▲ 엄홍길 대장이 “싱그러운 나무 색깔이 너무 좋다”며 나무를 가리키고 있다.
- “사람들을 만나면 대부분 과거 얘기를 하더군요. 과거는 쉽게 얘기해서 자기자랑입니다. 자기자랑도 한두 번이지, 계속하면 누가 가만히 듣고 있겠어요. 사람들은 그것을 깨닫지 못하는 것 같아요. 그래서 ‘아, 과거이야기를 가급적 자제해야겠구나’라고 절실히 느꼈죠. 그러면 상대방이 들어도 지겹지 않을 얘기, 미래에 먹고 살 얘기를 하는 수밖에 없었어요. 그래서 세계미래포럼을 만들게 됐습니다.”
과거에 얽매인 우리 사회에 미래의 비전을 제시하고 미래의 먹거리를 찾겠다고 만든 게 세계미래포럼이다. 포럼의 설립취지는 몇 가지 된다.
우선은 과거지향 내지 현실안주에 빠지려는 사회 분위기를 미래지향적 분위기로 조성하는 게 급선무다. 그리고 미래지식을 실용화해 체계적으로 전파함으로써 다수의 미래학자(Futurists: 사회흐름을 분석하고 향후 유행을 점치는 전문가를 말하며, 학자의 개념인 Futurologist와는 조금 다름)를 양성한다. 미래지식시장에 미래경영 교육 및 컨설팅을 통해 개인·기업·정부의 미래경영을 지원한다.
- ▲ 이영탁 이사장이 잠시 휴식을 취하며 물을 마신 뒤 엄홍길 대장에 건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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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럼은 이 같은 취지로 미래지식시장을 선점하겠다고 선언했다. “미래를 모르고 세상을 살아가는 것은 마치 어둠 속에서 방향감각을 잃고 절뚝거리며 걸어가는 것과 같다”는 미래 석학 윌리엄 할랄(William Halal) 워싱턴대학 교수의 말을 좌표로 삼았다.
경제전문가에서 미래학자로 변신한 이영탁 이사장이 가장 좋아하는 취미가 등산이다. 거의 매주 산을 찾는다. 산이 좋아서이기도 하고, 산을 통해서 만나는 사람이 좋아서이기도 하다. 공식적인 산행모임만 해도 두 개나 된다. 이사장으로 있는 세계미래포럼의 교육과정 수료생들로 구성된 ‘미래로산악회’ 회원들과 매월 전국의 명산을 찾아간다. 한 번도 빠진 적 없다. 그리고 과거 기획재정부 예산실에서 같이 근무하던 동료들이 ‘예우회’를 만들어, 거기서도 매월 한 차례 정기산행을 하고 있다. 이 이사장이 예우회 회장이다. 이 이사장은 당시 국가의 전체 예산을 집행하는 예산실장으로 있으면서 국가경제의 살림을 운영한 실질 책임자였다.
지난 7월 7일 이 이사장과 한국이 낳은 세계적인 산악인 엄홍길 대장이 함께 산행에 나섰다. 사람들이 덜 찾는, 그가 좋아하는 호젓한 팔당역 근처 예봉산 산행코스를 선택했다. ‘미래로산악회’ 회원 10여 명도 함께했다. 이 이사장이 먼저 나서 인사를 했다. -
“미래를 모르면 방향감각 잃고 걷는 것”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지금부터 일품 산행코스로 안내하겠습니다. 이 등산로는 사람들이 잘 찾지 않으며, 오르막길로 올라가다 힘이 들면 다시 평탄한 길로 바뀌는 등산하기 좋은 코스입니다.”
이 이사장의 말대로 완만한 길로 오르는 듯하다 조금 가파른 길이 시작된다. 제법 땀이 흐른다. 그러나 우거진 참나무들이 내려쬐는 햇빛을 가려준다. 나뭇잎에 한번 투과된 싱싱한 햇살만 어렴풋이 등산로로 비칠 뿐이다. 엄 대장도 처음 오는 코스라며 “너무 좋다”고 맞장구친다.
- ▲ 이영탁 세계미래포럼 이사장과 엄홍길 대장이 예봉산 자락에서 남한강과 북한강이 만나는 두물머리를 배경으로 대화를 나누며 웃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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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도 생각하기 나름 아닙니까? 무의도 호룡곡산 같은 산은 낮지만 얼마나 힘든지 모릅니다. 쉽게 올라갈 수 있는 높은 산도 있지만 수면에서 바로 시작되는 호룡곡산은 낮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숨이 찹니다. 낮은 산이든 높은 산이든 산은 낮은 자세로 조심조심 올라야 하지 않습니까, 엄 대장님?”
“맞습니다. 인간은 자연 앞에서 항상 겸손해야 합니다. 이사장님은 산행을 잘 하십니다. 언제부터 등산을 시작하셨습니까?”
“YS 시절 공직자 골프금지령이 내렸던 적이 있지요. 그때부터 본격적으로 산에 다니기 시작했어요. 당시엔 뭐든지 남들보다 잘한다는 얘기를 듣고 싶어 열심히 다녔던 기억이 납니다.”
“특별히 기억에 남는 산이 있습니까?”
“얼마 전에 두타산에 갔다 왔습니다. 무릉계곡이 있는 그 산 있지 않습니까. 시원한 계곡이 보기 좋았고, 여름산행하기에 딱 알맞은 산이었어요. 산마다 나름대로 특징이 있죠. 큰 산은 큰 산대로, 작은 산은 작은 산대로 다 다르죠. 그동안 다닌 곳 중에서 겨울에 눈꽃이 하얗게 내려앉은 한라산 등산이 가장 인상적이었습니다. 나뭇가지 위 하얀 눈꽃이 만들어낸 모습은 그야말로 장관입니다. 그 사이로 보이는 파란 하늘은 겨울철 한라산 눈꽃산행의 백미라 할 만합니다.”
“그동안 다니시면서 본, 계절마다 가볼 만한 산행지를 추천해 주십시오.”
“산은 계절마다 다른 옷을 갈아입고, 그래서 특징이 다 있습니다. 봄에는 철쭉이 흐드러지게 피어 연분홍색으로 물든 소백산이 장관입니다. 여름은 두타산 무릉계곡의 시원한 물살을 느끼는 산행을 추천하고 싶습니다. 그리고 가을은 온 산이 울긋불긋 단풍으로 물들지만 설악산 단풍이 단연 최고지요. 마지막으로 겨울은 그 계절에만 볼 수 있어 더 아름다운 태백산과 한라산의 눈꽃산행이지요.”
- ▲ 이영탁 이사장과 엄홍길 대장이 앞장서서 걸으며 대화를 나누고 있다.
- 산의 사계절은 곧 그 산의 과거와 현재, 미래의 모습이다. 미래가 어떻게 변할지는 아무도 모른다. 하지만 산에서 영감을 얻을 수 있고, 비전을 볼 수는 있다. 그 영감과 비전도 현재와 과거를 잘 알아야 얻을 수 있는 것들이다. ‘미래는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처럼.
이 이사장의 과거는 공무원이고, 현재는 미래의 비전을 제시할 인재를 양성하는 포럼의 이사장이다. 그의 이러한 과거와 현재를 알면 미래의 자연인 ‘이영탁’의 모습도 어느 정도 알 수 있지 싶다.
이 이사장은 재정경제원 예산실 실장으로 있을 때인 1995년 사상 첫 흑자예산을 편성했다. 흑자예산은 경기가 과열됐을 때 세입을 세출보다 많게 책정한 예산을 말한다. 세입을 많이 잡아 과열 경기를 조정할 필요가 있을 때 편성하는 예산이다. 당시 주가가 1,000포인트에 육박해 진정시킬 필요가 있었던 것이다. 동시에 1996년의 교육예산을 사상 첫 GNP 5%까지 편성하기도 했다. 미래 인재를 키워야 한다는 교육에 대한 그의 소신이 적극 반영된 결과였다. 이러한 결정으로 그해 연말 교육부 차관으로 발탁되는 의외의 인사가 단행됐다. 이후 국무총리 행정조정실 실장(장관급), 한국종합기술금융 회장(1999년 6월~2000년 3월), 국무총리 국무조정실 실장(장관급), 한국증권선물거래소 초대 이사장(2003년 2월~2004년 2월)에 이어 2009년 세계미래포럼을 만들어 이사장으로 취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