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군 세 아들이 쌓은 산성길 걸으며 '나'를 찾는다
강화도 전등사 삼랑성
- 전등사 대웅보전 지붕을 떠받치고 있는 모습의 벌거벗은 여인상(왼쪽). 전등사를 둘러싸고 있는 삼랑성. 가파른 정족산 능선에 돌을 쌓아올려 호국의 염원을 담았다. / 염동우 영상미디어기자 ydw2801@chosun.com
강화도는 섬 전체가 박물관이다. 오랜 역사 동안 우리 민족의 삶의 흔적이 담긴 유적, 유물이 널려 있다. 새로운 문물이 들어온 통로이기도 하고 외세 침략에 맞서 저항 정신을 기른 곳이기도 하다. 서울에서는 한걸음에 달려올 수 있는 데다, 산과 바다를 동시에 구경할 수 있어 가을철 가족 나들이 장소로 제격이다.
세 개의 산봉우리가 세 발 달린 가마솥의 발(鼎足·정족)처럼 생겼다고 해서 이름 붙여진 정족산(220m) 중턱의 전등사에는 강화도의 애절한 역사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우리나라에 불교가 전래된 초창기인 381년(고구려 소수림왕 11년) 아도화상이 창건했다. 현존하는 국내 최고(最古) 사찰이다. 고려시대에는 몽골에 대항했고, 조선시대에는 왕조실록을 보관했으며, 병인양요 때는 프랑스군을 무찌른 역사의 현장이기도 하다.
◇삼랑성에 둘러싸인 전등사
전등사는 삼랑성(三郞城·일명 정족산성)이란 산성에 둘러싸여 있는 게 특징. 외세 침략에 맞선 호국 정기가 서린 유적이 곳곳에 남아있다.
전등사는 창건 당시에는 진종사였는데, 고려 충렬왕 비인 정화궁주가 옥등(玉燈)을 헌납한 뒤 전등사로 고쳐 불렀다고 한다.
전등사에 가기 위해서는 삼랑성 동문이나 남문을 거쳐야 한다. 동문의 석축을 통과하자마자 조선 고종 3년(1866년) 병인양요 때 삼랑성으로 공격해오는 160여명의 프랑스군을 무찌른 장수 양헌수의 승전비가 여행객을 맞이한다. 울창한 소나무 숲길은 전통 찻집 '죽림다원(竹林茶園)'으로 이어진다. 야외 나무 탁자에서 솔잎차, 연잎차, 매실차를 마시는 풍경이 평화롭다. 강화에서만 나는 순무로 스님들이 직접 만든 순무잎 떡 맛도 볼 수 있다.
전등사의 대표적 건물인 대웅보전은 조선 중기 건축양식을 보여주는 단아한 건축물이다. 이 건물이 세상에 더 유명하게 된 것은 지붕을 떠받치고 있는 나부상(裸婦像) 때문이다. 전설에 따르면 대웅보전 건축을 지휘하던 이름난 도편수가 마을 주모와 사랑에 빠져 불사를 마치면 그와 혼인할 생각으로 모아둔 돈을 모두 맡겼는데, 어느 날 주모는 자취를 감추고 말았다. 도편수는 공사를 마무리하면서 대웅보전 처마 네 군데에 지붕을 떠받치고 있는 벌거벗은 여인상을 조각했다고 한다. 욕심에 눈이 멀어 사람을 배신한 여인을 징계하기 위한 것이라는 해석도 있고, 자신을 배신하고 달아난 여인이 대웅보전에서 들리는 부처님 말씀을 들으며 잘못을 참회하고 세상을 올바르게 살아가라는 도편수의 사랑과 염원이 반영된 것이라는 해석도 있다.
전등사에서 5분 정도 산기슭을 올라가면 고려시대의 임시 궁궐터였던 가궐지(假闕址)가 나온다. 한때 임금이 거처했던 궁궐이었지만, 몽골의 침입으로 불에 타 없어져 지금은 궐 터만 남아있다. 인근 능선에는 정족산 사고(史庫)가 자리하고 있다. 조선왕조실록을 보관하던 곳으로, 현재 실록은 서울대 규장각에 보관되어 있다.
전등사의 템플스테이는 자연과 전통문화, 그리고 마음의 휴식이 어우러지는 산사(山寺) 체험 기회를 제공한다. 숲길을 산책하며 온몸으로 자연을 느끼고, 불교 전통문화를 체험하며 잊었던 우리 것을 되살리는 한편 스님과 차를 마시고 대화하면서 하루를 보낸다. 전등사를 둘러싸고 있는 삼랑성길을 걸으며 '참 나'를 찾는 여정을 떠난다. 외국인을 위한 템플스테이 프로그램도 운영하고 있다.
◇단군의 세 아들이 쌓았다는 산성
전등사를 둘러보고 본격적인 삼랑성 답사에 나선다. 삼랑성은 단군의 세 아들 부여, 부우, 부소가 쌓아 이런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당초 흙으로 쌓은 토성이었는데, 그 위에 거칠고 둔탁한 돌들을 쌓아 석성(石城)으로 축조했다. 산의 지형을 이용해 능선을 따라 쌓은 성으로, 길이는 2.3㎞ 정도다. 동서남북 각 방향에 성문이 하나씩 있는데 1970년대에 남문인 '종해루'를 복원했다.
- 썰물로 모습을 드러낸 강화 갯벌을 찾은 시민들.
정족산사고와 가궐지 사이로 난 길을 오르니 서문이 나온다. 이곳에서 동문 쪽으로 가파른 능선을 따라 성벽이 견고하게 쌓여 있다. 산성 주위에는 키 큰 노송(老松)들이 성곽길에 그늘을 드리우고 있다.
서문과 남문 사이 산 정상에 오르니 숲에 둘러싸인 전등사 전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바다 쪽으로는 단군이 하늘에 제사를 지냈다는 참성단이 있는 마니산이 보인다. 그 산 너머로는 인천 앞바다의 섬들과 갯벌이 펼쳐져 있다. 세계 5대 갯벌 중 하나로 썰물 때면 족히 몇 ㎞는 될 것 같은 드넓은 갯벌이 드러난다. 갯벌의 생태와 동식물에 대해 알아보고 갯벌 체험도 할 수 있는 강화갯벌센터가 인근에 들어섰다. 갯벌 인근에는 낙조(落照) 전망대를 따로 만들어놓을 만큼 저녁 노을이 일품이다.
갯벌 사이에 있는 동막해변은 해변 소나무 숲이 아름답다. 마니산 줄기가 남쪽으로 뻗어내려 가면서 바다와 만나는 곳이다. 여름철 밀물 때는 해수욕장으로, 썰물 때는 갯벌 체험장으로 이용된다.
[여행 수첩]
전등사에서는 6~14일 '12회 삼랑성 역사문화축제'가 열린다. 6일 오후 6시 40분 가수 정재형, 루시드 폴, 김창완 밴드, 퓨전국악그룹 '다비' 등이 출연해 어쿠스틱과 록음악을 선사하는 가을음악회가 열린다. 화문석 공예, 짚풀 공예, 도자기 물레, 단청 등 각종 체험행사와 지역 특산물 장터, 전통 공연, 전시회 등도 마련된다.
■ 강화갯벌센터 : 국내 최대 규모의 갯벌이 있는, 강화도 서남단에 있는 전시관이다. 갯벌의 생태·동식물 전시장이 있고, 철새 관찰 체험도 할 수 있다. 하루 6차례 해설을 해준다. 단체로 신청할 경우 갯벌 탐방로를 관찰할 수 있고, 갯벌에 사는 도둑게·갯지렁이·저어새 등에 대해 알아보는 교육 프로그램도 이용할 수 있다. 어른 1500원, 청소년 1000원, 어린이 800원. 월요일 휴관. 인천 강화군 화도면 여차리. (032)937-5057
전등사 템플스테이 문의 및 예약 (032)937-0025
강화군관광개발사업소 (032)930-4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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