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만이라도… 送年, 심신을 비워보세요
몸과 마음을 정화하고 명상에 좋은 숲… 장성 축령산 편백나무숲을 가다
- 장성 편백나무 숲을 찾은 날은 흐렸다. 공기가 내려앉아서인지 편백나무 향이 더 짙게 코로 들어왔다. 내년엔 가슴이 꽉 막힌 듯 답답한 일이 생길 때마다 이날 맡은 편백나무 향을 떠올릴 것이다.
매년 똑같았다. 한 해가 저물 무렵 지인들과의 송년회가 두세 차례 열린다. 평소보다 더 기름지게 먹고 더 거하게 마신다. 다음 날 과음과 수면 부족으로 출근하면 제 몸에 남의 머리를 갖다 붙여놓은 기분이다. 간밤에 나눈 이야기는 기억도 안 나고(어차피 다 시시껄렁한 농담이었겠지만) 일은 손에 안 잡혀 괜스레 짜증만 난다. 직장을 안 다닌다고 뭐가 다를까. 크리스마스다, 연말이다 친구나 가족과 어울려 번화가에라도 한번 나가면 온몸이 인파와 콘크리트벽에 쓸리다 온 기분이다. 결국 몸에도, 마음에도 큰 돌덩이라도 얹어놓은 기분으로 새해를 맞는다.
올해는 이 돌덩이들, 다 내려놓고 가자. 주말매거진에서 ‘심신을 비우는 송년’ 특집을 마련했다. 몸과 마음을 가볍게 하는 명상에 좋은 숲과 ‘주지육림’을 대신할 사찰 음식을 소개한다. 추위에 움츠러든 몸을 펴고 건강한 새해를 맞는 데 도움이 되는 운동법도 곁들인다.
해마다 반복된 '송년(送年)' 때문에 이미 심신이 무겁다. 더 이상 이 무게를 감당할 수 없을 때가 온 것이다. '일단 쌓인 걸 좀 비우고 가자'는 생각에 전남 장성 축령산(621m)에 자리한 '장성 치유의 숲'에 갔다. 봄과 여름, 가을에 가는 숲은 '들뜬 숲'이지만, 단풍의 절정을 지나 황량한 겨울에 가는 숲은 '적요(寂寥)의 숲'이다. 혼자서 조용히, 그것도 느릿느릿 걷기엔 딱이다.
장성역에서 내려 택시를 타고 추암마을까지 갔다. 숲에 들어가는 길은 여러 갈래인데 편백나무 숲으로 가려면 모암마을이나 추암마을에서 시작하는 것이 좋다. 택시 기사가 "초여름서부터 피톤치드지 치톤피드지를 마시려고 오는 사람들로 숲이 바글바글하다. 겨울에까지 숲에 가는 사람들은 요양을 목적으로 하는 게 대부분"이라고 했다. 그의 말대로 숲을 걷는 동안 한 사람도 만나지 못했다.
원래 이곳을 비롯해 전국 휴양림에서 다양한 산림치유프로그램을 무료로 실시하고 있지만 겨울 혹한기는 쉬는 곳이 많다. 혼자 있을 수 있으니 차라리 잘됐다. 떠나기 전에 산림청 홈페이지를 통해 숲치유사들이 권하는 산림치유법을 미리 공부했다. 그 안내를 따라 숲을 다니기로 했다. 장성 치유의 숲에는 ▲하늘숲길(2.7㎞) ▲건강숲길(1.97km) ▲산소숲길(1.9㎞) ▲숲내음길(2.2km) 등 4가닥의 걷기 좋은 길이 있다. 이들 길을 이어주는 임도(林道)는 주변의 추암마을, 대덕마을, 금곡마을, 모암마을과 연결되어 있다. S자로 이어진 숲내음길을 택해 걸었다. 편백나무가 유독 많은 길이다.
숲에 들어서자 입 안에 박하라도 머금은 듯, 코로 들이쉬는 숨에서 시원한 냄새가 났다. 머릿속이 쨍하고 울렸다. 충북대 산림과학부 신원섭 교수의 '숲으로 떠나는 건강여행'(지성사)에 따르면, 나무가 피톤치드를 가장 많이 발산하는 계절은 봄과 여름이지만 다른 계절에도 피톤치드 발산이 없는 건 아니다. 어차피 숲 치유는 우리 오감(五感)에 자극을 주는 숲을 체험하는 것이기 때문에 계절은 상관없다.
이곳 숲길은 산책로에 가깝지만, 평소 운동량이 적어서인지 30분쯤 걷자 약간 숨이 차올랐다. 발걸음을 멈추고 나무에 기대 이전에 배웠던 복식호흡을 해봤다. 호흡으로 숨을 가라앉히고 나자 주위를 둘러볼 여유가 생겼다. 높이를 가늠할 수 없을 정도로 쭉 뻗은 편백나무의 둥치들이 꽤나 촘촘하게 들어서 있었다. 숲 치유사들의 조언대로, 고개를 들어 하늘을 봤다가 다시 숙여서 땅을 봤다. 최근에 내린 눈·비 때문에 물기를 촉촉이 머금은 흙이 꽤나 폭신폭신해 보였다.
명상을 하기 위해 이유없이 편해 보이는 나무 하나를 골랐다. 원래 숲 치유 프로그램에선 눕기도 한다지만, 그럴 용기는 없었다. 나무에 기대서거나 앉아있는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마음먹고 명상을 하려고 하지 않아도 생각의 가지들(흔히 잡생각이라들 한다)이 하나씩 끊어지는 것 같았다. 가끔씩 뺨을 스치는 바람이 아니었다면 잠이라도 들었을지 모른다.
숲길을 걸어나오는 길에서 사부작사부작, 발밑에서 밀리는 흙 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렸다. 미끄러운 길에서 중심을 잡으려고 움켜쥔 나뭇가지와 둥치의 차갑고도 까슬한 숲의 결이 느껴졌다. 어쩌면 올해보다 더 발랄하고 명징한 새해를 기대해도 될 것만 같은 예감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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