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최고(最古)의 양조장은 어디?
수년 전 외국인 여성이 패널로 나와 토크쇼를 진행하던 미녀들의 수다란 프로그램에서 대한민국에서 느낀 문화적인 충격 중 하나로 이러한 언급이 있었다. 내용인즉슨 어떻게 역사가 20년도 안 된 음식점에서 간판에 ‘SINCE 1993’ 등의 표현을 쓰며 자랑할 수 있느냐는 것이다. 서양에서는 최소 50년~100년 이상이 돼야 ‘SINCE’란 표현을 쓴다고 말이다. 듣고 보니, 외국인 입장에서는 충분히 이해가 가는 내용이었다. 좋게 표현해서 역동적인 대한민국의 문화는 언제 어떻게 그 트랜드가 바뀔지 모르는 만큼, 하나의 아이템으로 20년 이상 사업을 진행하기가 극히 어려운 사회구조인 것을 그들은 이해하지 못했던 것이다. 그렇다 보니 식당을 20년만 운영하더라도 그 역사를 자랑할 수 있는 사회체계가 되었다. 그렇다면 우리에겐 한 세기를 풍미할 만큼의 역사성을 가진 단일 사업체가 없을까? 정답은 ‘아니다’ 이다. 20~30년으로는 깊은 역사라고 감히 자랑하지 못하는 곳. 바로 대한민국 방방곡곡에 수백 개가 존재하는 양조장이다. 오늘은 최고의 양조장으로 떠나는 막걸리 여행이다.
- 1935년 발간된 조선 주조사
우리나라 최고(最古)의 양조장은 과연 어디인가?
이 물음에는 다양한 설이 있다. 정식 양조장으로 설립이 가장 오래된 곳, 상회로써 설립이 가장 오래된 곳 등, 마니아들 사이에서는 설왕설래가 오고 가고 있다. 필자의 생각으로는 이 부분은 독자들이 판단할 몫이 아닌가 한다. 그런 면에서 대한민국 대표 최고(最古) 양조장이라고 일컫는 3개의 양조장을 소개해 본다.
- 배다리 술 박물관 전경, 5대째 박상빈 대표가 직접 건축, 설계한 작품이다
조선주조사에 기록된 최고(最古) 양조장 배다리 술도가 ‘SINCE 1915’
1935년에 출판된 조선주조사(朝鮮酒造史)에 따르면 1915년 ‘인근 상회’라는 곳에 대한 기록이 있는데, 이것이 현재 고양시에 있는 배다리 술도가의 시초이다. 정식적인 양조면허가 나온 것은 1928년이지만, 조선주조사란 술 문헌에 기록되어 있는 것은 그만큼 당시에 술 관련된 제조/유통 등을 진행했다고 볼 수 있다. 현재 배다리 술도가는 홍익대 건축학 석사 출신인 5대 박상빈 대표가 경영을 맡고 있으며, 고양시 원당역에 배다리 술 박물관을 직접 설계 및 건축, 운영까지 진행하고 있다. 주변에는 서삼릉 누리길이라고 해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인 서삼릉, 서오릉 등 하이킹 등으로 방문하는 길과. 약 8km 떨어진 곳에는 임진왜란의 3대 대첩인 행주산성이 있으며, 매년 10월에는 일산동구 문화공원에서는 대한민국 막걸리 축제가 열리는 것으로 유명하다.
- 지평 양조장의 전경
양조장 면허취득으로는 최고의 양조장 지평 양조장 ‘SINCE 1925’
현존하는 정식 양조장 중 주류 면허취득으로 가장 오래된 곳이라고 평가받는 곳은 1925년 설립된 경기도 양평군 지평면 지평리에 위치한 ‘지평 양조장’이다. 오동나무로 된 틀에 밀 흩임 누룩(입국)을 만드는 방식을 고수하고 있는 이곳은 건물조차도 1920년대 지어진 일제강점기의 건물 그대로를 가지고 있다. 한국 전쟁 시에는 UN군 기지로도 활용되어 중공군과의 승리를 이끌기도 했다. 90년도에는 MBC 드라마 아들과 딸, 2003년도에는 SBS 드라마 술의 나라 등의 배경이 되기도 했으며, 2010년도에는 CNN에도 방영, 막걸리를 문화를 전 세계로 전파하기도 했다.
- 영양 양조장 전경. 오른쪽에 가장 오래된 양조장이라는 간판이 보인다
군지(郡誌 )에 쓰여진 양조장 인가년도 영양 양조장 ‘SINCE 1925’
상기의 두 양조장이 수도권에 있는 양조장이라면, 영양 양조장은 경북에서 울릉도 다음으로 오지로 평가 받는 영양군에 있는 양조장이다. 등기상은 1926년도에 설립된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당시에 등기가 나오기 전 군지(郡誌 군의 연학을 기록한 책)에 1925년 주조장 인가가 나왔다고 한다. 벽에 금하나 없는 압록강 적송으로 된 83년 된 건물 그대로를 가지고 있으며, 나무못을 쓴 구조 역시 지금 세대와 비교하면 특별함이 느껴진다. 내부에는 옛날 양조장 그대로의 모습으로 아직도 우물을 쓰고 있다. 이곳에는 전화6이라는 푯말이 있는데, 영양군에 6번째 전화기가 설치된 곳이라고 한다. 관공서가 1번, 경찰서가 2번 등, 관공서가 1번부터 5번까지 차지하고, 6번째가 영양 양조장인 것이다. 당시의 영양군 경제에서 차지하는 위치를 잘 알 수 있다. 쌀과 밀을 50대50으로 브랜딩한 막걸리를 제조하고 있으며, 근처에는 한국 3대 정원이라 알려진 서석지 (瑞石池·영양군 입암면 연당리 394-1)가 있으며, 전통가옥 30채가 남아있는 집성촌 두들 마을에는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한글 요리책 ‘음식 디미방’을 집필한 안동장씨의 생가가 있다.
- 서석지의 모습
1909년, 일제의 주세면허 자격이 없으면 술을 빚지 못한다는 주세령 발표 이후, 집집이 빚던 대한민국의 가양주 문화는 그 힘을 잃게 된다. 조선시대에도 술 빚는 부분을 담당하는 정부처는 있었지만, 이 역시 주권이 넘어가게 되면서, 유명무실한 기관이 되어 버린다. 그 이후에 생긴 양조장은 서민적이지만 그 지역의 술 문화를 지탱해오며, 동시에 대한민국에 1,000종류가 넘는 막걸리 문화를 만들어 왔다. 그런 문화를 통해 때로는 밥 같은 술로 보이기도 하고, 농번기의 배고픈 속을 달래기도 하였으며, 최근에는 막걸리 바, 프리미엄 무첨가 막걸리 등 고급 영역으로도 발전해 가고 있다.
한 피스에 10만원이 넘기도 하는 일본의 최고급 초밥메뉴인 오토로(참치뱃살)역시, 100년 전만 해도 기름이 많다고 하여 버려지기도 했던 부위였다. 이처럼 시대에 따라 달라지는 문화의 가치로써 양조장을 단순히 술만 만드는 문화로 만들어 갈 것이냐, 아니면 문화가 있는 곳으로 만들어 가느냐는 결국 어떻게 가꿔가느냐의 문제이다. 겨우 20년만 지나도 역사가 있다고 생각되는 대한민국의 시장논리. 100년의 가치를 가지고 간 양조장의 문화를 이제는 잘 가꿔나가야 하는 시기가 왔다는 생각이다.
글,사진 제공 / 주류문화 칼럼니스트 명욱 <mw@jurojur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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