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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만한 미인을 닮은 사막… 8300㎢ 티티카카 호수… 해발 3400m 잉카 수도 쿠스코… 페루의 별난 볼거리에 여행 내내 경이로움

호젓한오솔길 2013. 2. 15. 08:39

 

풍만한 미인을 닮은 사막… 8300㎢ 티티카카 호수… 해발 3400m 잉카 수도 쿠스코… 페루의 별난 볼거리에 여행 내내 경이로움

  • 페루=글·사진 변희원 기자

 

 

 

잉카인이 내는 수수께끼… 칸칸이 쌓은 이 계단은 뭘까?

파라카스 국립공원의 사막. 켜켜이 주름이 진 보드라운 땅에 발자국을 내기가 황송할 정도다.

 

부드러운 살결과 풍만한 곡선을 가진, 포근한 미인이었다. 굳이 닮은 이를 찾자면, 르누아르(19세기 말 프랑스 화가)의 그림에나 나올 법한 그런 여인이다. 페루 파라카스 국립공원 내에 있는 사막엔 식생(植生) 하나 없었지만, 을씨년스럽긴커녕 관능적이었다. 여인의 가슴과 둔부를 닮은 모래 언덕이 끊임없이 펼쳐졌고, 사구(沙丘)와 사구가 이어져 움푹 들어간 부분은 잘록한 허리를 연상케 했다. 쨍하게 빛난 하늘 덕분에 곱고 가는 모래로 이뤄진 그 몸엔 깊고 극적인 음영(陰影)이 드리워졌다.

페루에는 관광책자나 역사책에서 수차례 봐온 ‘공중 도시’ 마추픽추만 있는 줄 알았지, 이런 미인을 마주치게 될 줄은 몰랐다. 별난 페루의 자연환경 덕분에 여행 내내 이런 경이는 꽤나 빈번했다.

마추픽추에 오기까지 관광객들이 꽤나 고생한 걸 아는지 모르는지, 이곳에 사는 알파카는 마추픽추를 굽어보며 한가로이 풀이나 뜯어먹는다.

 

파라카스 국립공원이 있는 이카 지역을 떠나 잉카 제국의 수도였던 쿠스코에 도착했다.전 세계의 배낭 여행객들이 모여드는 쿠스코의 중앙광장엔 스타벅스와 노스페이스, 그리고 한국 식당까지 있었다. 해발 3400m의 고도(古都)까지 온 이들은 마추픽추를 구경하거나 잉카트레일(잉카인들이 마추픽추까지 드나들었던 산길)에서 트레킹을 하기 위해 왔다. 마추픽추는 쿠스코에서 북서쪽으로 약 112㎞ 떨어져 있다.

마추픽추는 책이나 사진에서 봐왔던 그 모습 그대로였다. 너무 똑같아선지 산에 올라 사진에서 나오는 그 각도로 전경을 내려다봤을 땐 별로 놀라지도 않았다. 사람들이 왜 ‘마추픽추, 마추픽추’라고 하는지는 가까이서 봐야 알 수 있다. 20t이 족히 나가는 돌을 바위산에서 잘라내 신전과 집을 지었는데, 돌과 돌 사이엔 접착제를 쓰지 않았다. 돌을 마모시켜 서로 맞물리도록 쌓았다는 얘기다. 잉카제국이 정복한 부족민들을 노예로 삼아 지었기에 가능했다.

흔들림없이, 견고하게 쌓인 육중한 돌을 보자 오래전 이 땅을 디뎠을 사람들이 떠올랐다. 잉카 문명에선 바퀴도 쓰지 않았다고 하니 마추픽추를 만들다가 돌에 깔려 다친 이는 부지기수였을 것이고, 죽은 이도 그랬을 것이다. 스페인 군대가 이곳을 침략하자 많은 노예가 왕을 배신했단 얘기를 들었을 땐, 속으로 조용히 쾌재를 불렀다.

비가 그칠 무렵 마추픽추와 그 주변 골짜기에 큼지막하고 또렷한 무지개가 걸렸다. 잉카인들이 숭배했다는 태양의 신이 꽤나 영험한 듯하다.

 

이날은 비가 왔다 하늘이 개기를 서너 차례 반복했다. 이 골짜기의 날씨가 원래 그렇다고 한다. 마추픽추를 떠날 때쯤 비에 미끄러질까 봐 땅만 쳐다보며 걸었는데, 사람들의 웅성거리는 소리에 고개를 들었다. 골짜기 한가운데에 빨간색부터 보라색까지 다 보일 만큼 선명한 무지개가 걸렸다. 400여년 전 이곳에서 돌을 들어 올리고, 모서리를 깎아내던 이들도 고개를 들어 저 무지개를 봤으리라.

1 마추픽추 유적지에 오르면 작은 오두막처럼 생긴 쉼터 겸 전망대가 나온다. 변덕스러운 이곳 날씨에 비를 피하려는 사람들이 쉼터에 모여들었다. / 2 사진을 찍겠다는 시늉을 하자, 천을 짜던 소녀는 쑥스러운 웃음을 지었다.

 

마추픽추를 다녀온 다음 날, 쿠스코에서 고산병에 시달렸다. ‘머리가 아프고, 속이 메스껍다’ 정도로는 표현할 수 없는 요상한 고통이다. 이곳 선인(先人)들이 고지대에 적응하기 위해 무던히도 노력한 흔적을 보니 기분이 더 요상해졌다. 이들은 ‘모라이’라 불린 계단식 경작지를 만들어 온도 차이에 따른 작물들을 실험하고, 같은 작물이라도 시기에 따라 높이를 달리해 심어 경작하기도 했다. 소금물이 흘러나오는 암염계곡을 염전으로 만든 ‘살리네라스’도 다 먹고 살기 위한 방편이었을 것이다. 여기서 나오는 소금은 미네랄까지 풍부했다고 하니 잉카인들에겐 하얀 황금이나 다름없었을 것이다. 이곳에 살았던 사람들의 끈질긴 적응력과 생명력을 확인하니, 고산병 따위는 별것이 아닌 것처럼 느껴졌다.

잉카인들의 ‘작물재배실험실’이었던 ‘모라이’. 계단의 층계마다 서 있는 작은점들이 사람임을 감안하면, ‘ 모라이’의 전체 크기가 가늠이 될 것이다. / 변희원 기자

 

쿠스코보다 해발고도가 400m나 더 높지만, 페루 여행에서 빼놓을 수 없는 지역이 바로 푸노다. 티티카카 호수가 있는 곳이다. 안데스산맥 정상의 만년설이 녹아내린 물이 북쪽으로 흐른 게 아마존이고, 다른 사면으로 내려온 물이 티티카카를 이루고 있다. 이 호수는 아주 높은 곳에 있기도 하지만 아주 넓기도(면적 약 8300㎢) 하다. 우리나라 전북보다 크다. 전체 면적의 40%는 페루가 아닌 볼리비아에 속해 있다.

‘티티카카’라는 마술 같은 이름 때문인지 잠이 오지 않았다. 새벽 4시쯤 호숫가에 나갔다. 바다와 달리 조류가 없어 잔잔한 수면에 구름이 맞닿을 것만 같았다. 호수의 역할은 하늘을 비추는 거울이었다. 잉카인들은 그들의 조상이 티티카카 호수에서 왔다고 믿었다. 수도를 ‘세계의 배꼽’(쿠스코)이라고 이름 지으며 위세를 떨치던 이들도 이곳에 경외를 느꼈을 것이다.

4000m 높이의 땅에선 구름이 머리 위에 닿을 것만 같다. 바람 한 점 없이 적요한 티티카카 호수는 하늘을 그대로 비춰낸다.

뭍에서 배를 타고 30여분 가면 타킬레섬이다. 호수 한가운데 덩그러니 놓인 섬에 누가 살까 싶지만, 양떼를 키우는 목장과 집들이 곳곳에 있다. 가이드를 따라 한 집에 들어가니 가장으로 보이는 남자가 나와서 수공예품을 늘어놓는다. 섬의 남자들이 허리에 차고 다니는, 화려한 색상의 벨트다. “이 벨트는 결혼할 때 여자가 만듭니다. 남자가 했던 약속들, 예를 들면 집과 가축, 사랑 등을 여기에 새겨넣죠. 벨트 뒷면에 보이는 검은 실은 여자의 머리카락이에요.” 애절하고도 섬뜩하지 않은가. 결혼생활 중 행여 남자가 가정생활에 충실하지 않으면 여자는 벨트를 내밀며 따질 것이다. “내 머리카락을 잘라 벨트까지 만들어줬건만!”

티티카카 호수보다 더 신기한 건 이곳에 떠 있는 인공섬 ‘우로스’다. 흙에 얽힌 갈대로 만드는 섬인데, 현재 이 호수에 70여개가 있다. 잉카제국의 침략을 피하기 위해 넓은 호수 한가운데 피난처를 만들었고, 잉카 군대도 더 이상 이들을 쫓지 않았다는 이야기가 내려온다.

티티카카 호수 한가운데 떠 있는 섬 ‘우로스’. 학교 교실만 한 섬에 두 가구가 살고 있다.

지금은 그 후손들이 배로 섬과 섬, 섬과 육지 사이를 오가고 새와 물고기를 잡는다. 한 섬에 한두 가구가 살고, 어떤 섬은 학교 역할을 하기도 한다. 달라진 게 있다면 모터보트도 있고, TV도 있어 세상 물정을 모르고 살지는 않는다는 것. “뭍에 나가서 살고 싶지 않냐”고 묻자 다들 고개를 저었다. 왜 싫은지는 묻지 않아도 알 것 같았다.

여행수첩

■한국에서 페루까지 직항편은 없으며, 로스앤젤레스나 도쿄를 경유하는 항공편을 많이 이용한다. 로스앤젤레스에서 아르헨티나항공, 란칠레항공, 바리그브라질항공 등을 이용해 수도 리마에 도착할 수 있다.

지리 페루의 면적은 남한의 13배이며, 에콰도르, 콜롬비아, 브라질, 볼리비아, 칠레와 국경을 접하고 있다. 페루의 지형은 크게 태평양 연안과 안데스 산지, 아마존 지역으로 나누어진다. 태평양 연안에 펼쳐져 있는 해안 평야는 너비가 좁으며, 대부분이 사막지역으로 리마를 포함한 대부분의 대도시가 이곳에 자리 잡고 있다. 안데스 지역은 태평양에서 시작해 내륙 100㎞쯤 들어와 6000m의 고봉을 이룬다. 안데스 산맥의 동쪽 비탈면은 경사가 완만하며, 아마존 열대 우림지역이 형성돼 있다.

기후 10월에서 4월까지 우기, 5월에서 9월까지 건기로 구분.

환율 1누에보 솔(PEN)=0.39달러

고산병 마추픽추와 티티카카 호수. 페루에서 유명한 이 두 여행지는 각각 해발고도 2450m, 3860m에 있다. 마추픽추를 가기 위해 거쳐야 하는 쿠스코도 해발고도가 3300m다. 사람에 따라 다르지만, 쿠스코에서 고산병을 호소하는 여행객이 많다. 이번 여행의 일행 중 절반 이상이 그랬다. 고산병은 낮은 지대에서 고도가 높은 해발 2000~3000m 이상의 고지대로 이동하였을 때 산소가 희박해지면서 나타난다. 고산병에 걸린 경험이 있다면, 두 번째는 정말 피하고 싶을 것이다. 머리가 아프고, 속이 울렁거리는데 그 증상을 딱히 말로 표현하기 힘들 정도다. 고산병을 예방하기 위해서는 수분을 충분히 섭취하고, 술이나 담배를 삼가야 한다. 이곳 고산 지대에서 흔히 구할 수 있는 코카잎을 씹는 것도 도움이 된다. 페루에선 고산병을 위한 약을 사려면 의사 처방이 있어야 하니 출발 전 한국에서 미리 마련하는 것이 좋다. 급할 경우엔 숙소나 차량에 비치된 산소호흡기를 이용할 수 있다.

문의 페루관광청 한국 사무소 070-4323-256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