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맛을 깨우는 다디단 나물, 충남 청양 원추리
이른 봄 가장 먼저 올라오는 원추리. 씹을수록 달고 시원한 맛이 일품인 이 봄나물은 새콤달콤하게 무치거나 된장찌개로 끓여 내면 밥 한 그릇이 뚝딱 비워지는 밥도둑이다. 섬유소와 단백질 등 영양분 또한 풍부해 이른 봄 원기회복을 위한 매일 반찬으로도 제격이다. 본격적으로 출하를 시작한 원추리의 맛이 궁금해 원추리의 본고장 청양군 죽림리로 가보았다.
“원추리는 한번 뿌리를 심어두면 거름을 주거나 따로 약을 칠 필요 없이 잘 자라요. 풀이 나는 것을 예방하기 위해 은행 껍질을 밑에 깔아두면 따로 제초를 칠 필요도 없죠. 여린 잎을 모두 채취한 후 억세져서 식용으로 사용할 수 없는 원추리는 잘라서 거름으로 씁니다. 소비자는 유기농 식품이어 좋고 재배자는 따로 비용이 들지 않으니 최고의 농작물이라 할 만하죠.”
요리연구가 이보은은…
제사와 손님이 많은 딸부잣집 맏딸로 태어나 어릴 때부터 자질구레한 음식 심부름을 도맡아 했다. 충청북도 진천이 고향인 친할머니의 넉넉한 손맛을 그대로 이어받아 토속요리를 잘하며, 그 덕분에 향토음식전시회를 진행하기도 했다. 한식 실용화 사전과 실용화 조리서 발간에 참여했고, 다수의 요리 단행본도 출간했다. 2010년부터는 쌀가루 홍보대사로 위촉되었다. 현재 16개의 국내 쿠킹쇼를 진행하고 있으며, <여성조선>을 비롯한 각종 잡지와 KBS <무엇이든 물어보세요> 등 방송을 통한 다양한 활동으로 자신만의 요리 스타일을 선보이고 있다.
원추리김가루숙채 올린 조밥
기본재료 기장조밥 4공기, 원추리 350g, 구운 김가루 5큰술, 들기름·들깨가루·다진 파 1큰술씩, 참치액·다진 마늘 1작은술씩, 소금 약간
만드는 법
1 원추리는 다듬어 씻어 소금물에 데쳐 찬물로 헹궈 물기를 뺀다.
2 데친 원추리와 구운 김을 볼에 넣고 참치액과 들기름, 다진 파, 다진 마늘을 넣어 조물조물 무친 후 소금으로 간한 뒤 들깨가루를 뿌려 버무린다.
3 뜨거운 기장조밥을 그릇에 담고 원추리김가루숙채를 소복하게 올려 낸다.
※ 원추리와 김은 궁합도 잘 맞을뿐더러 김은 원추리의 맛을 훨씬 깔끔하게 한다. 김은 파래김, 돌김을 넣으면 영양이 더욱 높다.
시간이 키워주는 작물
산과 들에서 나는 나물은 대부분 독특한 향과 쌉싸래한 맛을 가지고 있기 마련인데, 원추리는 별다른 향이 나지 않는 반면 씹을수록 단맛이 나는 독특한 나물이다. 게다가 추위에 강해 봄이 시작되면 가장 먼저 땅 위로 고개를 내미는 식물이기도 하다. 오랜 시간 우리 조상들은 이른 봄 가장 먼저 봄을 알리는 원추리 어린잎을 나물로 무쳐서 먹고 여름에는 잎과 꽃을, 가을에는 뿌리를 건조시켜 차로 마셨다. 이렇듯 원추리는 잎은 물론 꽃과 뿌리까지 모두 식용할 수 있는 알토란 같은 식재료다.
충남 청양군 장평면 죽림리에서는 30년 전부터 원추리를 재배해왔다. 배산임수의 죽림리 냇가에는 예로부터 원추리가 빼곡하게 자라고 있었다. 이른 봄 아낙들은 이 원추리를 잘라 나물로 무치거나 국을 끓여먹었다. 먹을 것이 귀하고 냉장 시설이 발달되지 않았던 시절 먼 냇가까지 나와 원추리를 캐는 것이 번거로웠던 아낙 한두 명이 텃밭이나 울 안에 야생 원추리를 옮겨심었는데 의외로 잘 자랐다. 이때부터 재배된 원추리는 농사 기술의 발달로 이제는 한겨울에도 맛볼 수 있게 되었다.
“어린 시절 봄이 되면 어머니는 원추리를 살짝 데쳐 고추장에 새콤달콤하게 무쳐주시곤 했어요. 식구들 모두 원추리를 좋아하니까 텃밭에 원추리를 심어두고 필요할 때마다 잘라오셨는데 원추리라는 식물이 생명력도 강하고 한 번 잘라먹으면 2주 후에는 또 새잎을 내는 거예요. 식구들이 먹고 남을 정도로 양이 풍족해서 장날이면 새벽부터 원추리를 잘라 장에 내다팔기도 하셨죠.” 죽림리 원추리 작목반 반장 김주홍 씨의 설명이다.
- 1 1월 수확 후 두 번째 원추리를 채취하고 있는 죽림리 원추리 작목반. 칼로 쓱쓱 잘라 흙만 털어 박스에 담기만 하면 돼 채취가 간편하다. 2 이중수막 하우스에 들어서면 마치 빗방울이 떨어지는 것처럼 물이 순환하는 소리가 들린다. 3 6년 차 애기농부인 죽림리 원추리 작목반 반장 김주홍 씨와 그의 부인. 귀농 후 원추리와 취나물 등을 재배하고 있다.
현재 청양군 장평면에서는 죽림리를 비롯해 30여 농가가 원추리작목반을 조직하고 10여㏊ 규모로 원추리를 재배하고 있다. 수막시설을 갖춘 농가는 1월 10일부터 20일 단위로 3월까지 수확하고, 일반시설 재배농가는 4월 중순까지, 노지 재배는 5월 하순까지 수확·출하한다. 잎이 억세고 꽃이 피는 여름 하절기에는 농사를 짓지 않는다. 다른 작물에 비해 추위에 강하기 때문에 겨울에는 이중으로 비닐하우스를 씌우고 이중 비닐하우스 사이에 지하의 따뜻한 물을 끌어다가 계속 순환시키면 따로 난방시설 없이도 원추리가 자랄 수 있는 온도가 유지된다. 시설비는 거의 들지 않고 한 번 뿌리를 심으면 3~4번은 채취가 가능하다. 게다가 최근에는 원추리 소비가 계속 늘어 서울 가락시장에서 2㎏ 상품 한 상자에 1만2천원으로 거래되고 있는 만큼 농가 고소득 작물로 인기가 높다.
“가장 맛있는 원추리는 첫 번째 채취한 것이에요. 새순이 15㎝로 자랐을 때 첫 번째로 채취한 원추리는 두세 번째 채취한 것보다 식감이 훨씬 부드럽고 단맛도 많이 나는 편이라 국이나 찌개보다는 나물로 무쳐먹는 것이 가장 맛있게 즐길 수 있는 방법이죠. 올해에는 엄동설한의 연속으로 첫 출하가 조금 늦었지만 1월 10일께 본격 출하를 시작해 3월 중순까지 수막 재배한 원추리를 맛볼 수 있습니다.”
기본재료 소고기(다진 것) 300g, 원추리 200g, 대파 ½뿌리, 홍고추 ½개, 소금 약간
볶음양념장 다진 마늘·청주 1큰술씩, 간장·참기름·통깨 1작은술씩, 소금·후춧가루 약간씩
만드는 법
1 다진 소고기는 키친타월로 눌러가며 핏물을 제거한다.
2 원추리는 다듬어 씻어 물기를 털고 먹기 좋은 크기로 썬다. 대파와 홍고추는 이등분해 잘라 곱게 채 썬다.
3 팬에 기름을 두르고 다진 마늘을 볶다가 다진 소고기와 간장, 청주를 넣고 볶는다.
4 ③의 소고기가 얼추 익으면 원추리와 대파, 홍고추, 참기름을 넣고 볶다가 마지막에 소금과 후춧가루로 간한 뒤 통깨를 살짝 뿌려 낸다.
※ 원추리의 푸른색이 가시지 않게 볶아야 더욱 먹음직스럽다. 다진 소고기와 함께 볶은 다음에는 원추리의 뜨거운 열기가 가시도록 넓은 접시에 펼쳐 재빨리 식혀야 한다.
“나물 중 유일하게 단맛이 나는 원추리는 씹을수록 달콤한 맛이 나기 때문에 간장, 된장, 고추장 등 어느 양념에나 잘 어울려 다양한 요리에 활용할 수 있어요. 무침은 기본, 찌개, 국 그리고 전으로 만들어도 맛이 있어 남녀노소 누구나 즐겨먹을 수 있죠. 원추리를 너무 오래 삶으면 질겨지니까 살짝 데치는 것이 좋아요. 물에 담갔다가 짤 때는 지나치게 꼭 짜면 나물로 무쳤을 때 물기가 없어 식감이 좋지 않으므로 자작하게 물기가 남아 있을 정도로 살짝 짜주세요.”
순두부 넣은 원추리된장국
기본재료 원추리 300g, 소금 약간, 순두부 1팩, 대파 1뿌리, 양파 ½개, 청양고추·홍고추 1개씩, 된장 2큰술, 멸치육수(진한 것) 5컵, 소금 약간
만드는 법
1 원추리는 다듬어 씻어 끓는 물에 살짝 데쳐 찬물에 헹궈 물기를 짠다.
2 순두부는 채반에 한 숟가락씩 떠서 수분을 빼둔다.
3 대파는 송송 썰고, 양파는 사방 2㎝ 크기로 썬다.
4 냄비에 멸치 국물을 붓고 된장을 풀고 양파를 넣어 끓이다가 순두부와 원추리, 대파를 올려 한소끔 끓인다.
5 ④에 소금으로 간한 후 고추를 올려 칼칼한 맛을 더한다.
근심을 잊게 하는 풀
원추리의 꽃에는 섬유소, 수분, 당질, 단백질, 회분, 지질 등이 함유되어 있으며 카로틴 성분이 토마토보다 50배가 넘게 함유되어 있어 노화촉진과 암 발생 원인인 활성산소를 억제하여 노화방지와 암 예방에 좋고 동맥경화를 예방한다. 또 비타민 A도 풍부하고 비타민 B, C, 지방성분과 미네랄이 풍부하다. 원추리는 살균작용이 탁월하여 폐결핵, 각종 장기의 궤양, 황달에 효과가 있고 폐의 열을 내린다. 뿌리는 결핵균을 죽이는 효능이 있고 코피 나는 것을 멎게 하고 열을 내리는 효과가 있다. <동의보감>에는 원추리에 대해 ‘성질이 서늘하고 맛은 달며 독이 없다’라고 적고 있다.
원추리는 ‘시름을 잊게 해준다’고 해서 훤초 또는 망우초(忘憂草)라고 부르는 약재이기도 하다. 예부터 ‘임신부가 원추리를 몸에 지니고 있으면 아들을 낳는다’는 속설이 있어 남아선호 사상이 극심했던 유교사회에서 망우초라고 불렸던 것 같다. 몸에 좋은 원추리지만 다른 나물과 달리 조리법에서는 약간의 주의가 필요하다. 원추리는 성장할수록 ‘콜히친’이라는 물질이 많아져 독성이 나타난다. 이 때문에 어린순만 채취해 충분히 익혀 섭취해야 한다. 콜히친은 끓는 물에 데치면 독성이 쉽게 없어지는데, 더 안전하게 먹으려면 원추리나물을 데쳐 2시간 정도 찬물에 담가 독성을 제거한 후 물기를 짜서 식재료로 사용하면 된다.
원추리 구입법
정산농협 칠갑산산채작목반에서 생산하는 숲속 원추리는 서울 가락시장과 인천 농산물 시장에서 구입할 수 있다. 전화 주문도 가능한데 2㎏에 1만원이다. 택배비는 별도. 문의 041-942-6681
/ 여성조선 (http://woman.chosun.com/)
취재 강부연 기자 | 사진 이종수 | 촬영협조 정산농협 칠갑산산채작목반(041-942-66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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