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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 바래봉, 초록 저고리 분홍치마… 산, 봄을 입었네

호젓한오솔길 2013. 5. 20. 08:19

지리산 바래봉


	지리산 바래봉 아래에 있는 팔랑치 철쭉이 장관을 이루고 있다.
지리산 바래봉 아래에 있는 팔랑치 철쭉이 장관을 이루고 있다. 그 뒤로 지리산 서북능선이 이어지고 끝에 바래봉이 우뚝 솟아 있다. / 정정현 영상미디어기자

 

봄꽃 향기가 코끝을 자극하는 계절이다. 계절의 여왕 5월도 절정으로 치닫고 있다. 들판에는 새순이 파릇파릇 상큼한 모습을 드러내고, 산에는 신록이 짙어지고 있다. 은은한 봄 향기를 따라 상큼한 차림으로 나들이에 나선다. 만발한 연보라 철쭉에 흠뻑 빠진다.

5월의 꽃은 단연 철쭉이다. 산과 들이 온통 울긋불긋 물들어 있다. 몇 년 전 ‘바래봉이 불났다’는 글을 읽은 적이 있다. 정말 바래봉에 불이 난 줄 알았다. 만개한 철쭉이 산을 뒤덮은 장면을 ‘불’로 표현한 것이다.

◇능선마다 철쭉 만개 시기 달라

철쭉이 북상(北上)하고 있다. 한라산을 제외하고 최남단 철쭉 군락지로 알려진 전남 보성 일림산과 제암산에서 지난 4일 시작한 철쭉축제가 지리산 형제봉에서는 12일, 산청 황매산에서는 14일 화려하게 열렸다. 덕유산은 5월 말, 소백산은 6월 1~2일, 태백산은 6월 8~9일, 연인산은 6월 초순에 각각 예정돼 있다.

지리산 바래봉 철쭉은 고도에 따라 만개 시기가 4단계로 나뉜다. 하단부(해발 500m 부근)인 남원 용산마을은 5월 초, 중간 부분인 700m 지점은 5월 10일 전후, 8부 능선은 5월 중순, 정상 능선은 5월 말쯤 활짝 필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국립공원관리공단 지리산남부사무소 박기연 소장과 함께 지리산 서북능선인 정령치에서 출발해 고리봉~세걸산~세동치~부운치~팔랑치~바래봉삼거리를 거쳐 용산마을로 하산하는 코스로 바래봉을 다녀왔다. 총 14.2㎞ 구간이다. 박기연 소장은 “지리산 태극종주의 출발지점인 고기리삼거리에서 올라오는 지점이 고리봉이며, 천왕봉으로 이어진 백두대간 역시 고리봉을 분기점으로 남덕유로 올라간다”며 “세걸산~바래봉 코스는 등산객이 많지 않아 호젓하고 평이한 코스”라고 소개했다.

출발지인 정령치는 기원전 84년 마한 왕이 정씨 성을 가진 장군을 시켜 진한과 변한의 침략을 방어하도록 했다는 데서 지명이 유래한다. 지리산의 오래된 고갯길로서 고도가 1172m에 이른다. 출발 자체가 1000m고지가 넘는 데다 바래봉도 1167m여서 등산로는 힘들지 않다. 능선 중 가장 높은 곳인 고리봉도 1305m가 조금 넘을 뿐이다.

지대가 높아 수종은 다양하지 않다. 주로 참나무 군락이다. 간혹 물푸레나무, 소나무도 보이고 관목으로는 진달래와 산죽 등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등산로 주변은 파릇파릇한 새순이 나 좀 봐달라는 듯 고개를 내밀고 있다. 계절을 바꾸는 초목들이다.

이윽고 백두대간 갈림길이자 서북능선에서 제일 높은 고리봉에 도착했다. 그 옛날 바다에서 배를 정박시키기 위해 고리로 건 흔적이 있다고 해서 고리봉이라 한다. 서북능선 최고봉답게 사방으로 조망이 확 트였다. 지리산 주 능선이 한눈에 들어온다. 천왕봉~중봉~삼도봉~반야봉으로 이어지는 봉우리들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졌고, 서북능선 끝인 바래봉도 저만치 보인다. 심산유곡, 첩첩산중, 금수강산 지리산의 면모를 한눈에 보여주는 곳이다.

세걸산을 거쳐 세동치를 지나는 등산로 주변엔 야생화인 얼레지가 보라색 꽃망울을 터뜨려 등산객의 눈길을 끈다. 자세히 보니 현호색과 흰색의 개별꽃, 노란 괭이눈도 낙엽 사이로 모습을 내밀고 있다.


	용산 마을 철쭉 군락지 지도

 

◇4㎞ 이상 이어진 철쭉 군락

부운치를 지나자 사람 키보다 더 큰 철쭉들이 서서히 모습을 드러낸다. 아직 철이 이른 듯 만개하지는 않았지만 그 넓이에 눈이 휘둥그레진다. 1000m 이상 고산지역 최대 군락지라고 한다. 활짝 피면 정말 장관일 것 같다. 박 소장은 “17~20일쯤 부운치와 팔랑치로 이어지는 철쭉이 활짝 필 것 같다”고 했다. 팔랑치를 지나도 철쭉은 끝날 줄 모른다. 푸른 초지와 어울린 철쭉과 신록의 봄은 한 번 다물어진 입을 다물 수 없게 했다.

어떻게 이런 군락이 생겼을까? 팔랑치 이정표에 그 답이 있다. ‘바래봉 지역은 1970년대 초 면양(綿羊)을 방목하기 위해 벌목 후 초지를 조성했다. 산철쭉은 독성이 있어 면양이 섭취하지 않아 우점종(優占種)으로 성장, 군락지가 형성됐다. 바래봉 산철쭉은 해발 500m부터 정상부까지 시차(時差)를 두고 피기 시작해 5월 내내 장관을 이루며, 진홍빛 물감을 풀어놓은 듯한 천혜의 비경을 자랑한다.’

부운치 직전부터 시작된 철쭉 군락은 바래봉삼거리까지 4㎞가 넘었다. 바래봉삼거리에서 바래봉까지 0.5㎞. 용산마을까지는 3㎞ 남짓. 용산마을로 가는 하산길은 시멘트길이 많아 다소 불편하지만 사람들이 가장 많이 다닌다. 용산마을 입구에 대형 철쭉 군락이 있기 때문이다. 등산객들이 발길을 멈추고 철쭉꽃밭으로 들어가 카메라에 추억을 담기에 바쁘다. 바야흐로 봄의 절정기다. 그 중심에 신록과 어울린 철쭉이 산천을 물들이고 있다.

여행 수첩

5월 한 달간 용산마을 철쭉 군락지를 거쳐 바래봉으로 가는 등산객이 50여만명에 이른다고 한다. 이 등산로가 너무 번잡하고 시멘트 길이라 싫다면 전북학생교육원에서 세동치로 올라와서 가는 길도 있다. 1.8㎞밖에 안 된다. 조금 가파르긴 하지만 흙길이고 햇빛을 가려주는 숲길이다. 용산마을 철쭉 군락지 입구에는 남원 야시장이 5월 한 달 내내 열린다.

서울센트럴시티에서 남원행 고속버스를 탄 뒤 남원에서 인월행 버스로 갈아타면 된다. 동서울터미널에서 함양 백무동행 고속버스를 타면 남원 인월에서 내린다. 인월버스터미널 (063)636-2000. 함양지리산고속 (055)963-3745. 인월에서는 정령치나 운봉으로 가는 택시들이 많다. 정령치까지는 대중교통은 없지만 자동차로 오르내릴 수 있다. 서북능선의 종주 끝지점인 운봉읍에서 정령치까지 택시로 2만5000~3만원.

남원의 별미는 추어탕과 어탕이다. 추어탕은 남원에서 비롯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고, 어탕은 붕어 등을 갈아서 만든 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