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인의 사람과 길] 온통 綠이었다… 온몸의 毒을 씻었다
강원 삼척 무건리 이끼계곡
허풍이라고 해도 할 말은 없다. 강원도 삼척 육백산 산중에 있는 무건리 계곡은 무릉도원(武陵桃源)이다. 가보지 않고서는 쉽사리 동의하지 않겠지만, 방법이 없다. 그만큼 깊은 산 속에 숨어 있는, 천하 비경이다. 인간이 끼어들 틈 없이 산과 바람과 물과 이끼가 자기들끼리 만들어낸 낙원이다. 여정은 이렇게 잡아본다. 영월 산솔마을~상동 이끼계곡~태백~무건리. 당신은 지금, 무건리로 가는 길이다.
#산솔마을과 상동 이끼계곡
영월 청령포에 갇혔다가 사약(賜藥)을 받은 단종은 태백산 산신령이 되었다. 산을 지키려 고개를 넘다가 들른 곳이 산솔마을이다. 자리를 털고 일어서는 그를 배웅한 이가 마을 소나무였다<윗 사진>. 산솔마을은 31번 국도 영월에서 태백으로 넘어가는 길목에 있다. 구절양장(九折羊腸) 수라리재를 넘어 중동면을 지나면 나온다.
오른편엔 맑은 옥동천이 흐르고 왼편 언덕에는 기품 있는 소나무 한 그루가 서 있다. 제약회사 조선무약이 이 소나무를 모델로 기업 로고를 만들고 주변을 관리한다. 이곳 주차장에서 일단 멈춤. 소소한 산책을 즐기기에 딱 좋다. 여기에 민박하며 나머지 여정을 이어도 좋다.
태백산신령이 지나간 길을 따라 태백쪽으로 이어간다. 상동읍소재지를 지나면 두 번째 기착지 이끼계곡이다. 길 왼편으로 칠량이계곡 장산야영장 팻말이 보이면 차 머리를 돌려 500m 내려간다. 왼쪽으로 인공 구조물이 보이면 중앙선을 넘어 그 앞 공터에 차를 댄다. 나물 채취를 막기 위한 바리케이드 옆으로 들어간다.
서늘한 흙 냄새와 피톤치드 향이 가슴을 파고들고, 당신은 놀란다. 태고의 자연이 거기에 있다. 길 끝까지, 왼쪽 개울은 흙도 바위도 모두 이끼로 뒤덮여 있다. 당신만 숨을 죽인다면 들리는 소리는 오직 물소리밖에 없다. 여린 이끼 위로는 사람 발자국이 보이지 않으니, 푸름으로 가득한 그 신비 앞에서 사람들은 도덕적이 된 듯하다. 여기 더 머물고 싶은 유혹을 얼른 떨쳐버리자. 우리는 무건리로 가야 한다.
길은 태백에서 일단 멈춤이다. 수도권에서 떠났다면 이 즈음이 저녁 시간이다. 관광도시 태백에서 1박을 하면서 한우로 체력을 보충하며 고원도시의 서늘한 밤을 즐긴다. 안타깝지만, 낙동강 발원지인 황지(黃池)는 공사 중이라 출입금지다.
- 武陵桃源
#치유의 공간 무건리
김밥과 물을 쟁여놓고 떠난다. 무건리는 삼척시 도계면에 있다. 태백에서 40분이면 무건리 입구에 닿지만, 무릉도원 입구는 아직 멀었다. 비경을 보려면 대가를 치러야 한다. 대가는 땀이다.
태백에서 북상해 하고사리역 산기교 건너기 전에 우회전해서 산속으로 들어간다. 끝없이. 시멘트 공장을 가로질러 한참을 가면 길이 끝난다. 오른쪽에 빈집이 있고 그 옆에 또 바리케이드가 나오면 제대로 찾은 것이다. 대가를 먼저 치르자.
바리케이드부터 가파른 시멘트 포장 임도 끝까지 어른 보폭으로 1500걸음이다. 이번에는 완만한 비포장길이다. 대략 2500걸음. 길 끝 왼편에 시멘트로 만든 우물이 나온다. 반드시 물을 마시고 받는다. 20m 전방 오른편에 비닐 씌운 비료 더미가 보인다. 그 옆 길 같지 않은 길로 내려간다.
등산 스틱이 필요하다. 밭 옆으로 작은 길이 있고, 갈림길이 나오면 오른쪽 길로, 또 길이 갈라지면 소달분교 폐교 안내판이 있는 왼쪽 길로 간다. 풀이 무성하게 자라 제대로 보이지 않지만, 틀림없는 길이다. 풀을 젖히면 아래로 길이 나 있다. 네 발, 혹은 엉덩이로 30분을 내려가야 한다. 몸도 힘들지만, 도무지 폭포가 나올 법한 지형이 아니기에 마음도 은근히 불안하다.
그런데 문득 들린다. 물소리. 소리가 커질 무렵 앞이 시원하게 틔고 왼편에 폭포가 출현한다. 무릉도원 마지막에서 두 번째 입구다. 온통 녹색 이끼로 뒤덮인 낮은 절벽에 폭포수가 흘러내린다. 오른쪽 등성이도 이끼 융단이다. 여기만 해도 고생한 보람이 있다.
폭포 위로 아련히 위쪽 계곡이 보인다. 폭포 왼쪽에 있는 밧줄을 움켜잡는 용기와 체력이 있을 때 열리는 최후의 문이다. 올라가면 언덕이 나오고 위 폭포가 모습을 드러낸다. 협곡(峽谷) 사이 저 멀리 푸른 이끼 절벽과 동굴이 보인다. 그 위로 폭포수가 흐른다. 하늘은 숲에 가려 보이지 않는다. 무릉도원, 유토피아, 중간계 기타 등등 그 어떤 단어를 떠올려도 좋다, 선계(仙界)라고 불러도 좋다. 바람 소리와 물소리와 숨소리밖에 들리지 않고 모든 것이 태초 그대로다. 언덕 아래로 난 또 다른 밧줄을 타고 가까이 가면 갈수록 인간의 언어는 조금씩 줄어들다가 아예 사라져버린다. 선계에 틈입한 당신, 몸은 땀으로 독소(毒素)를 다 쏟아냈다. 가슴 짓누르는 일상의 까만 앙금도 어느 틈에 사라졌다. 다른 비경과는 차원과 급(級)이 다른 신성한 무건리에 당신도 하염없이 서 보시라.
여행수첩
(서울 기준)산솔마을과 상동 이끼계곡: 중앙고속도로 제천IC→영월, 제천방면→38번국도 영월, 주천 방면→굉장히 많은 터널을 지난 뒤 석항2터널 지나 석항교차로에서 상동 방면 우회전 31번 국도→수라리재 고개→중동면소재지 지나 계속 직진하면 솔고개 넘고 산솔마을. 내비게이션 검색은 중동면 녹전리 81-1. 태백 방면 직진하면 상동읍 지나 상동 이끼계곡. 장산야영장 못 미침.
무건리 이끼폭포: 태백 중심인 황지교사거리에서 38번 국도 동해, 삼척 방면→SK통리주유소 나오면 오른쪽 길로 계속 직진→통리삼거리에서 왼쪽길→고사리 이정표가 보이면 속도 늦출 것→왼편으로 고사리마을 보이고 전방 오른편에 경동아파트 보이면 산기교 다리 직전 청수장 식당쪽 우회전. 이후는 시멘트 공장이 나오면 공장 안을 통과. 경동아파트 구내 수퍼마켓에서 물과 사탕을 준비하면 좋다. 내비게이션 검색은 하고사리역.
태백시내 및 산솔마을 민박(www.sansoul.com). 무건리에는 숙소가 없으니 태백시내가 가장 무난하다.
내덕콩마을식당(033-378-2391) 추천. 잣을 갈아 만든 육수 순두부전골 2만원부터. 산솔마을에서 상동 이끼계곡 가는 길 상동읍 내덕2리 246-1. 기타 태백시내 한우구이 식당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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