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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에도 급수가 있다

호젓한오솔길 2006. 4. 21. 00:12
                  등산(登山)의 급수(級數)


 

 

9급 - 강압입산(强壓入山)


동료나 가족의 강압 혹은 강권에 의해 어쩔 수없이 등산을 가는 경우가 아니면 절대 산에 오르지 않는다. 그리고 등산을 가면서도 요구조건과 말이 많다.
<특징> 청바지와 운동화를 신고 아무 가방이나 메고 산에 오른다. 여자의 경우 짙은 색조화장을 하기도 한다.

 

 

8급 - 타의입산(他意入山)


휴일이면 TV리모컨을 쥐고 산다. 회사에서 평일 단합대회로 가는 산행도 가지 않으려는 궁리를 하다가 어쩔 수 없이 따라나선다.
<특징> 멀쩡한 하늘에서 갑자기 억수같은 비가 쏟아지기를 기대한다. 그래서 산행이 취소되기를 은근히 바란다.


 

7급 - 증명입산(證明入山)


산이 좋아서라기보다는 사진 찍으러 간다. 애써 걷기보다 물좋고 경치 좋은 장소를 배경으로 기념촬영하느라 정신이 없다.
<특징> 경관 좋은 곳을 배경으로 기념사진 찍는 버릇. 그 사진을 산에 왔다 갔다는 증거로 활용한다.


 

6급 - 섭생입산(攝生入山)


오로지 먹기 위해서 산에 간다. 배낭 가득히 먹을거리를 챙기고 계곡을 찾아 퍼질러 앉고는 음식을 탐한다.
<특징> 엄청 먹었는데도 음식의 절반 이상이 남아서 다시 지고 내려오며 “아! 요즘 왜 이리도 입맛이 없을까”라고 말한다.



 

5급 - 중도입산(中途入山)


산행을 하긴 하되 꼭 산 중턱까지 자동차로 올라가거나 고개마루까지 올라가서 들머리를 삼고 목적지까지 가지 않고 중도에 하산하기도 한다. 그리고 제 다리 튼튼하지 못함을 탓하지 않고 꼭 뫼만 높다 탓한다.
<특징> “정상에 꼭 가야되느냐? 뭐 정상에 올라가면 누가 상이라도 준단 말이냐? 여기도 같은 산인데 나도 이 산에 오른 것이나 마찬가지다”라고 하면서 자기합리화를 한다.

 

 

4급 - 화초입산(花草入山)


줄곧 집에만 있다가 진달래, 철쭉꽃이 피는 춘삼월이나, 만산홍엽 불타는 가을이 되면 갑자기 산에 미친다.
<특징> 예쁜 꽃이나 단풍을 꼭 끼고 사진을 찍는다.

 

 

3급 - 음주입산(飮酒入山)


산을 좀 아는 인간이다. 하지만 술을 약(藥) 혹은 링거라고 부르면서 식사할 때 꼭 술을 마신다. 그리고 산행을 마치면 꼭 하산주(下山酒)를 마셔야 산행이 완결된다. 산을 열심히 찾는 이유가 성취감 뒤에 따르는 맛난 하산주 때문이라고 주장하며 주종불문하고 마신다.
<특징> 가끔씩은 음주산행으로 인해 주의력이 떨어져 다리를 삐거나 추락사고를 당해 헬리콥터가 뜨기도 한다.

 

 

2급 - 선수입산(選手入山)


산을 마라톤 코스로 생각하고 산을 몇 개 넘었다느니 하루에 이렇게 많이 걸었다느니 하면서 무지하게 자랑한다. 그러나 달리기 경기에 나가면 신통치 않다.
<특징> 이 인간들을 따라 나서면 대개 굶게 된다. 먹을 때도 번갯불에 콩구워먹듯 해치우고 오로지 걷고 또 걷는다. 체력이 뒷받침되지 않는 사람이 따라가면 탈진 혹은 무릎 부상을 입을 수 있다.

 

 

1급 - 무시입산(無時入山)


산행의 정신을 좀 아는 까닭에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바람이 부나 제사가 있으나 아이가 아프나 계획한 산행은 꼭 한다. 산행도구도 어느덧 프로급으로 바뀌었음을 발견할 수 있다.
<특징> 폭풍이 몰아칠 때 누군가 “오늘 산행 취소지요?”하고 물으면, “넌 비온다고 밥 안먹냐?”라고 말하면서 아예 쳐다보지도 않는다. 단순무식이 돋보인다.

 

 

초단 - 야간입산(夜間入山)


시간이 없음을 한탄하며 주말은 물론 퇴근 후 밤에도 산에 오른다. 산에 가자고 하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는 산병 초기증세.
<특징> 산꼭대기에 오르면 지가 무슨 늑대라고 "아우~" 달을 보며 소리를 지르는 해괴한 모습을 가끔 보인다.

 

 

2단 - 면벽입산(面壁入山)


바위타기를 즐기며 틈도 없는 바위에 온몸을 비벼 넣기도 하고 바위가 애인인 듯 안고 할퀴고 버텅거리고... 바위를 상대로 온갖 퍼포먼스를 한다.
<특징> 가끔 붕대를 감거나 깁스를 하고 목발을 집고 다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3단 - 면빙입산(面氷入山)


날씨가 추워지기를 학수고대한다. 얼음도끼와 쇠발톱을 꺼내놓고 폭포가 얼어붙기를 축원하다가 결빙소식만 들으면 만사 제쳐놓고 달려가 얼음벽에 몸을 던진다.
<특징> 빙판길에 애인이나 가족이 넘어져 다쳐도 겨울은 추워야 한다고 박박 우긴다.

 

 

4단 - 학계입산(學界入山)


더 높고 어려운 산은 없나 눈에 불을 켠다. 산에 관한 정보를 찾으려 외국원서를 구입해 번역하며 평소 안하던 공부를 하기도 한다.
<특징> 산병 중증환자로서 간혹 '운수납자'(雲水衲子:탁발승을 멋스럽게 부르는 말) 흉내를 내며 고행길로 들어서기도 한다.

 

 

5단 - 설산입산(雪山入山)


드디어 설산인 히말라야로 떠나게 된다. 생즉필사(生卽必死), 사즉필생(死卽必生)이라는 알 듯 모를 듯한 출사표를 내던지고 설산에 도전한다.
<특징> 설산으로 간다는 얘기는 들었는데 돌아왔다는 소식이 없는 경우가 종종 있다.

 

 

6단 - 자아입산(自我入山)


드디어 산심을 깨닫고 진정으로 넘어야 할 산은 마음 속에 있음을 알게 된다. 따라서 무조건 높고 험한 산에 취해 잊고 있던 '사람과 산'의 관계를 알게 된다.
<특징> 국가에서 주는 훈장을 가끔 받는 경우도 있다. 그동안 집사람에게 찍혔던 '산에 대한 집념'이 비로소 결실을 거둔다.

 

 

7단 - 회귀입산(回歸入山)


‘산의 본질적 의미는 자신을 발견하는데 있다’라고 하는‘머리에 쥐나는 진리’를 비로소 깨닫고 다시 우리나라의 낮은 산을 찾게 된다.
<특징>‘걷는 자만이 오를 수 있다’라는 지극히 쉬운 원리를 어렵게 깨우친 충격을 못 이겨 실실 웃는 하회탈 모습으로 평소의 표정이 바뀐다.

 

 

8단 - 불문입산(不問入山)


‘산 아래 산 없고 산 위에 산 없다’라는 평등 산사상의 경지에 이른다. 이 정도면 입신의 경지라 할 수 있다.
<특징> 묻지마 관광처럼 산에 오르는 이유를 묻지 말라는 선문답을 하며 유유자적하며 산을 즐긴다.

 

 

9단 - 소산입산(小山入山)


작은 산도 엄청 크고 높게 보는 겸허한 안목이 생긴다. 작은 산을 즐겨 찾으나 아무리 힘들어서 높은 산을 못 올라간다는 말은 하지 않는다. <특징> 다리에 힘이 빠지는 것과 비례하여 입에 양기가 오른다. 앞산 정도의 산행을 끝내고도 산행을 마루리 할 때면 과거를 회상하는 시간이 엄청 길어진다.

 

 

10단 - 독보입산(獨步入山)


머리가 백발이 되고 허리가 굽어져도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바람이 부나 틈틈이 산에 혼자 오른다. 대부분의 산친구들이 먼저 산으로 돌아갔기 때문에 마음속으로 산과 대화하면서 혼자 산행한다. <특징> 최신 고기능성 등산장비를 사용하지 않고 최소 10년에서 많게는 사오십년 동안 사용한 낡은 산행장비를 사용하는 움직이는 등산 박물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