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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비 내리는 오어사 (吾魚寺)

호젓한오솔길 2007. 3. 17. 22:45

 

 봄비 내리는 오어사 (吾魚寺)

 

* 오어사 (吾魚寺)

오어사(吾魚寺)는 포항시 남구 오천읍 항사리 34번지 운제산(雲梯山)에 자리한 대한불교조계종 제11교구 본사 불국사의 말사이다.

 

가는 길은 포항 시내에서 포항제철을 지나 929번 지방도로로 오천과 문충리 방면으로 24㎞ 정도 가면 오어사에 닿는다. 주변에는 1964년에 완공된 만수면적 12만 평에 수량도 500만 톤에 이르는 넓은 오어지의 초록빛 물이 눈길을 끌며, 운제산의 아름다운 산세가 어우러져 승경을 빚는다.


오어사는 『삼국유사』에도 그 이름이 나오는데, 신라 진평왕(眞平王, 재위 579~631) 때 자장 율사가 창건하여 처음에는 항사사(恒沙寺)라고 하였다. 그리고 창건이후 혜공(惠空)·원효(元曉)·자장(慈藏)·의상(義湘) 등이 주석하여 '신라 사성(四聖)'이 머물렀던 곳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 그런데 특히 혜공과 원효 스님에 대해서는 절 이름과 관련된 설화가 전한다.


옛날 오어사에서 원효 대사와 혜공 대사가 수도하고 있었다. 하루는 둘이서 계곡 상류에서 놀다가 문득 장난기가 발동했는지 서로 법력을 시험하여 보고자 하여, 고기를 낚아 다시 살리는 재주를 겨루었다. 그런데 둘의 실력이 막상막하여서 좀체 승부가 나지 않다가 딱 1마리 차이로 승부가 나게 되었다. 그래서 그 중 고기 한 마리를 놓고 서로 자기가 살린 고기라고 주장하였다고 한 데서 '나 오(吾)'와 '고기 어(魚)'자를 써서 오어사(吾魚寺)로 바뀌었다고 한다. 그리고 고기를 놔준 곳이 지금 오어사 앞에 있는 오어지(吾魚池)이다. 이 이야기는 일연 스님이 지은 『삼국유사』에 나와 있다. 일연 스님은 1264년에 오어사에 머문 적이 있었으므로 당시까지 전해오는 이야기를 채록하였던 모양이다.


그러나 그 뒤의 연혁은 자세히 전하지 않는다. 1995년 오어지에서 발견된 동종이 명문을 통해 고려 말인 1216년(고종 3)에 조성하였음을 알 수 있으므로 이 기간에 이 같은 우수한 동종을 조성할 정도로 사세가 컸다는 것은 짐작되지만, 고려시대의 연혁에 관한 다른 문헌 기록은 남아있지 않다.


조선에서는 1736년(영조 12) 화재로 전 당우가 소실되었으나 1741년 치철(致哲) 스님 등이 대중의 힘을 모아 중건하였다. 특히 조선 후기에는 여러 계를 조직해 사찰의 중수 및 운영에 보탬이 되도록 한 것이 눈에 띤다. 1811년 산내암자인 의상암에서 출발한 등촉계(燈燭契)를 비롯해서 1823년(순조 23) 염불계(念佛契)를 조직해 사찰을 중수하였으며, 1864년(고종 1)에도 칠성계(七星契)를 만들어 사찰 중수에 힘을 모았다. 이 같은 계의 조직은 일제강점기인 1926년에도 이어져 이 해에 나한전을 중수할 때 계가 활용되었다.

최근에는 2000년부터 장주 주지 스님이 주석하고 있다.

 

 * 오어사 대웅전 : 경북 포항시 오천읍 항사리. 경북문화재자료 제88호. 정면 3칸, 측면 2칸의 팔작지붕 다포집으로 영조 17년(1741)에 중건하였다

 

 

 

 

 

 

* 오어사 동종 [吾魚寺銅鍾]

1998년 6월 29일 보물 제1280호로 지정되었다. 오어사에서 관리하고 있다.

고려 고종 3년(1216)에 주조된 신라종 형식의 전통이 엿보이는 동종이다. 1995년 11월 6일 오어지(吾魚池) 상류 준설작업 중 굴삭기 기사에 의해 발견되었다. 신라 범종의 형식을 그대로 따라 용뉴와 음관 및 상·하대를 고루 갖추고 있으며, 당좌와 비천상·종기(鐘記)의 위치도 정연하다.


신라종에 비해 수법은 도식화하여, 상대 위로 입화식(立花飾) 연판문이 돌려져 있고, 그 아래에 보상화문으로 장식된 구연대가 있다. 천판(天板)에는 용통(甬筒:음관)을 등지고 있는 용두가 갖추어져 있다. 상대에 붙은 유곽은 당초문으로 장식하였고, 유두(乳頭)는 연꽃무늬 위에 배치하였다. 유두는 3단 3열을 갖추었으나 3곳에 5개가 결실되었다, 종신(鐘身)의 비천상 자리에는 무릎 꿇은 합장보살 1구씩이 긴 천의(天衣)자락을 위로 휘날리며 꽃방석 모양의 대좌에 앉아 있다. 보살 사이로는 6자의 범자문(梵字文)이 들어간 위패(位牌)형 명문 장식 밑에 연꽃무늬 당좌(撞座)가 놓인 장식조(裝飾組)를 각각 배치되었다.

 

이와 같이 당좌 위에 범자문을 새기거나 용통 상부를 여의두문(如意頭文)으로 장식한 점, 비천상이 구름 위의 연화좌(蓮花座) 위에 앉아 있는 모습 등은 신라종에서 변화를 보인 고려시대 종의 특징을 잘 나타내는 것이다.

용뉴의 머리쪽에 해당하는 종신부분의 왼쪽 하부, 비천상과 당좌 사이에는 7행 82자의 종기가 음각되어 있다. 이를 통해 동화사(桐華寺) 순성(淳誠)대사를 도감으로 하여 사부대중의 힘을 모아 300근의 종을 대장(大匠) 순광(順光)이 만들어 오어사(吾魚寺)에 달았으며, 그 때가 정우 4년 병자(貞祐四年丙子), 즉 고려 고종 3년 5월 19일임을 알 수 있다.

 

신라 동종의 주양식을 계승하였을 뿐만 아니라 나름대로의 특징을 가지고 있고, 조성연대가 분명하며 보존상태가 아주 양호한 고려 동종으로서 고려시대의 공예 및 주조기술 그리고 동종 연구에 귀중한 자료가 되고 있다.돋을새김으로 주조된 각종 장식문양과 더불어 주성도 우수한 작품이다.

종 전체높이 96cm, 편대폭(扁帶幅) 4.5cm, 종신높이 71.5cm, 구연대 폭 6cm, 종구의 지름 56.5cm, 당좌의 지름 12cm, 각통의 높이 17cm이다.

 

 

 

 

 

 

 

 

 

 * 이슬비 속으로 암봉위의 자장암 모습이..

 

 * 자장암 아래 개울 가에는 봄빛이 푸르러 오고..

 

 

 

 

 

 

 

 

 

 

오늘은 아침 부터 봄을 재촉하는 비가 촉촉히 내린다.

하여 산행을 하지 못하고 오전 내내 방콕하고 있다가..포항 남구 쪽에 점심 약속으로 나간다.. 돌아오는 길에 오어사에 경내에 잠시 들러서.. 봄비 내리는 오어사 풍경들을 카메라에 담아왔으나 좋지않는 일기에 급하게 찍느라 졸작이 되고 말았다..

 

2007.03.17 호젓한오솔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