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국화 향기 속으로..
어느덧 거리에 낙엽이 뒹굴기 시작하는 쓸쓸한 가을날... 요즘 어딜가나 주위에 노오란 황국이 내어뿜는 향기가 그윽하여 눈과 코가 마냥 즐겁기만 합니다... 그간에 어설프게 담아온 국화 사진들을 몇장 골라서 홈피에 올려볼려고 국화에 대한 자료들를 찾아보니... 국화는 옛 부터 수천 년의 재배 역사를 가진 우리들에게 친근한 꽃으로... 군자의 덕망을 고루 갖춘 꽃이며... 불로장생약으로 사용되며... 사군자 중에서 가을을 상징하는 꽃으로... 시인묵객들의 작품 소재가 되었으며... 식용 또는 약용으로 널리쓰인 자원식물로서... 머리를 맑게 하는 옛 도가의 약차로도 쓰이고... 참으로 그 쓰임새가 다양하여 어느 한구석 이쁘지 않은 곳이 없는 국화를 진정한 이 가을의 팔방미인 이라고 불러야 겟습니다..
국화 [菊花]
쌍떡잎식물 초롱꽃목 국화과의 여러해살이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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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菊)·구화라고도 한다. 국화는 관상용으로 널리 재배하며, 많은 원예 품종이 있다. 높이 1m 정도로 줄기 밑부분이 목질화하며, 잎은 어긋나고 깃꼴로 갈라진다. 꽃은 두상화로 줄기 끝에 피는데 가운데는 관상화, 주변부는 설상화이다. 설상화는 암술만 가진 단성화이고 관상화는 암·수술을 모두 가진 양성화이다.
꽃은 노란색·흰색·빨간색·보라색 등 품종에 따라 다양하고 크기나 모양도 품종에 따라 다르다. 꽃의 지름에 따라 18cm 이상인 것을 대륜, 9cm 이상인 것을 중륜, 그 이하인 것을 소륜이라 하며 꽃잎의 형태에 따라 품종을 분류하기도 한다
* 군자의 덕망을 갖춘 꽃이며 불로장생약
국향이 싱그러운 계절이다. 인적이 뜸한 시골 산자락에서 풍기는 가을 향기가 있다면 바로 들국화 향기일 것이다. 우리가 들국화라고 하는 식물은 많다. 사람마다 자신이 알고 있는 가을꽃에 들국화라는 이름을 붙였기 때문이다. 연한 보라색으로 피는 꽃을 흔히 들국화라고 하는 이도 있지만 사실은 쑥부쟁이 종류이다. 키는 작으며 꽃이 흰색이고 조금 더 큰 것은 구절초 무리이다. 이러한 비슷한 식물을 모두 들국화라고 하지만 식물명에 들국화라는 꽃은 없다.
가을 산자락에 홀로, 또는 무리지어 피는 노란 꽃은 바로 산국이거나 감국이다. 감국과 산국의 치이는 뚜렷하지 않으나 남해 바닷가 마을에서 자라는 감국은 꽃의 지름 2.5㎝ 이상으로 산국에 비해 조금 더 큰 편이다.
국화의 성품에 대해 〈종회부(鍾會賦)〉에 이렇게 적혀 있다. “국화는 다섯 가지 아름다움이 있으니, 둥근 꽃송이가 위를 향해 피어 있으니 하늘(天)에 뜻을 두고, 순수한 밝은 황색은 땅(地)을 뜻하며, 일찍 싹이 돋아나 늦게 꽃을 피우는 것은 군자의 덕(君子之德)을 가졌음이며, 찬 서리 속에서도 꽃을 피우는 것은 고고한 기상(氣像)을 뜻하고, 술잔에 동동 떠 있으니 신선의 음식(仙食)이라.”
《이아(爾雅)》에는 “국화를 다른 말로 태장(苔薔)이라 하고 일정(日精)이라고 부른다. 또한 주영(周盈), 전연년(傳延年)이라고도 한다. 줄기가 붉고 맛이 감미로운 것을 골라 먹으면 능히 장수한다.”고 적었다.
적암(適菴) 조신(曹伸)은 중국의 연경(燕京)에서 자라는 국화 품종을 《적암집(適菴集)》에 기록했다. “국화에는 연경황(燕京黃)과 연경백(燕京白) 두 가지가 있다. 연경황은 꽃 색이 노랗고 줄기는 흰색이다. 그에 비해 연경백은 꽃이 흰색이고 줄기는 노랗다. 가장 늦게 피는 것은 학정홍(鶴頂紅)인데 희고 꽃 빛이 고르지 않은 것이 오래 지나면 꽃송이가 점점 커지고 붉은색으로 변한다. 일찍 피는 것에 규심홍(閨深紅)이 있는데 주황색이다. 이 세 가지 품종을 즐겨 심는다. 그 외에도 하연홍(下輦紅)은 처음에는 흰색이지만 나중에 옅은 홍색으로 변한다. 가지와 덩굴이 너무 길게 자라 하품에 속한다. 또 강성홍(江城紅)은 꽃색이 노랗고 맛이 좋아 감국이라 한다. 하연황(下輦黃)은 옅은 황색으로 피고 하연홍과 비슷하다. 이것 역시 하품에 속한다. 또 금은황(金銀紅)은 색이 엷고 일찍 핀다.” 당시에 널리 가꾸던 국화 품종을 특성까지 자세히 기록해 두었다.
인재(仁齋) 강희안(姜希顔)은 《양화소록(養花小錄)》에서 세종 때의 명장 최윤덕(崔潤德) 장군의 일화를 소개했다. “최공은 남으로 왜구를 토벌하고 북으로 오랑캐를 정벌하여 혁혁한 공을 세웠다. 집을 서울 남쪽 한가한 곳에 짓고 냇물을 끌어들여 연못을 만들고 연못 주변에 국화를 비롯한 온갖 기화요초(琪花瑤草)를 심었다. 내가 사람들과 꽃 기르는 고사를 말할 때마다 정열공(貞烈公)의 일화를 언급하곤 했다.” 불의와 타협하지 않고 무인이면서 온화한 선비의 마음으로 자연을 사랑하는 그의 성품을 높게 평가한 것이리라.
《양화소록(養花小錄)》에서는 국화 기르는 법을 자세히 적어 놓았다. “무릇 국화를 기를 때는 묵은 포기를 버리고 오월 경 비 올 때 구덩이를 반자 정도 파고 거름흙을 넣은 다음 사토를 덮는다. 그 다음 구덩이마다 새 촉을 하나씩 심는다. 약한 줄기는 갈대를 꽂아 붙잡아 매고 줄기가 크게 자라면 이대를 꽃아 끈으로 쓰러지지 않게 맨다. 가지가 홑지면 순을 잘라 곁가지가 많이 나오게 한다.” 인재의 국화 가꾸는 방법은 오늘날 원예가들이 하는 방법과 다르지 않다. 국화의 묵은 줄기를 심으면 성장이 늦고 큰 꽃을 기대하기 어렵다. 그래서 해마다 싹을 꺾꽂이 하여 가꾸는데 옛날에도 이 방법을 잘 알고 있었던 같다.
인재는 재배하는 꽃을 9등품으로 나누었는데 국화는 매화. 연꽃, 대나무와 함께 1품에 올려놓았다. 황색이 54품종, 백색 32, 홍색 41, 자색이 27품종으로 모두 154품종을 기록했다. 국화를 일우(逸友)라 하고 금원황(禁苑黃), 취양비(醉楊妃), 황백학령(黃白鶴翎)을 가장 우수한 품종이라고 했다.
* 사군자 중에서 가을을 상징하는 꽃
초(楚)의 굴원(屈原)은 국화를 정절의 꽃으로 찬양했다. 회왕(懷王)의 조정에서 쫓겨나 택반(澤畔)에서 노닐면서 《초사?이소경(楚辭?離騷經)》을 지었는데 그 글에서 “아침에는 목련꽃에 떨어진 이슬을 마시고 저녁에는 떨어진 국화 꽃잎을 먹는다.(朝飯木蘭之墜露兮 夕餐秋菊之落英)”고 궁핍한 생활을 읊었다. 먹을 것이 없어 봄이면 목련꽃에 맺힌 이슬로 목을 축이고 가을에는 국화꽃을 먹으며 연명했다는 것이다. 가난하지만 시류에 물들지 않고 국화처럼 고고한 삶을 살아가겠다는 굳은 의지를 엿볼 수 있다.
원산지 중국의 경우 장수(長壽)를 상징하는 꽃이 바로 국화이다. 음력 9월 9일 중구절(重九節)은 모든 사람들이 국화의 날이라 하여 기념하는 풍습이 있다. 숫자 구(九)는 중국어로 ‘주’로 발음하는데 목숨 수(壽)자와 음이 같다. 그 때문에 중구절이면 지난해에 담가 놓은 국화주를 마시며 무병장수를 기원한다.
가장 늦은 철인 11월의 찬 서리를 이겨내고 꽃을 피우는 강인한 식물이다. 고난과 역경을 이겨내는 모습에서 인내와 단련을 배운 동양에서는 끝내 국화를 매화, 난초 대나무과 함께 사군자(四君子)라 하여 귀하게 여겨 왔다. 국화는 오래 살고 가장 늦은 때 홀로 고고한 꽃을 피워 영광을 노래한다. 그래서 어느새 사람들의 뇌리에 국화가 부활의 상징처럼 굳어지게 되었다. 가장 영광된 꽃의 자리를 차지한 때문인지 동서양이 모두 흰 국화를 죽은 이의 관을 장식하는 꽃으로 여기게 되었고, 무덤을 치장하는 꽃으로 심는다.
* 시인묵객들의 작품 소재가 된 국화
서리가 내려 대부분이 초목들이 깊은 잠에 빠져 있을 때 국화는 홀로 금빛으로 피어나 맑은 향기를 퍼뜨린다. 인내와 끈기를 가진 국화의 그 같은 성정이 군자의 덕목과 같다고 하여 길상의 상징으로 생각했다. 그래서 예로부터 시인묵객들의 작품 소재가 돼 왔다.
진(晉)의 연명(淵明) 도잠(陶潛)은 일찍이 팽택령(彭澤令) 벼슬을 그만 두고 향리로 돌아와 〈귀거래사(歸去來辭)〉를 지었다. 그는 “친구와 다니던 세 갈래 길 거칠어졌어도 소나무와 국화는 그대로 있구나.”라고 적었다. 나무의 대표 격인 소나무와 초본류 중에서 국화를 예로 들어 자연이 예와 다름없음을 노래했다. 도연명(陶淵明)이 얼마나 국화를 사랑했는지 송(宋)의 주돈이(周敦?)가 쓴 〈애련설(愛蓮設)〉에 따르면 “초목의 꽃 중에는 사랑스러운 것이 많다. 진(晉)의 도연명(陶淵明)은 유난히 국화를 사랑하였다.(草木之花 可愛者甚蕃 晉陶淵明獨愛菊)”고 적고 있다.
국화를 노래한 시로 도연명의 시를 들지 않을 수 없다. “동쪽 담 밑에서 국화를 꺾어 들고 쓸쓸히 남산을 바라보네.(採菊東籬下 悠然見南山)” 도연명이 국화를 가꾸면서 욕심 없이 사는 그 고절한 선비의 모습에서 일반인은 높은 절개를 보았고 차츰 길상의 꽃으로 인식하게 되었다.
삼국시대 이후 국화는 벽화나 도자기, 의복 등에 국화문이 들어가고 고려 이후에는 상감청자, 나전칠기 같은 공예품에 국화문이 다양하게 나타났다. 조선시대 민화에서 국화가 핀 뜰에 새떼가 날아든다면 집안에 기쁨과 행운이 넘치는 것으로 풀이할 수 있다.
* 수천 년의 재배역사를 간직한 꽃
재배 종 국화가 우리나라에 들어 온 때를 어떤 책에서는 고려의 충선왕이 원에서 돌아올 때 갖고 왔다고 했다. 그러나 송(宋)의 범성대(范成大)가 쓴 《국보(菊譜)》에 따르면 “신라와 고려에서는 국화를 널리 심는다.”고 했다. 그렇다면 충선왕이 가져온 국화는 우리나라 국화가 원에서 개량되어 다시 들어온 것이 되는 셈이다.
일본에 국화가 전해진 것은 백제 때 왕인(王仁) 박사가 청, 황, 적, 백, 흑(靑, 黃, 赤, 白, 黑) 다섯 가지 색깔의 국화를 전했다는 기록에 있다. 국화 중에 16장의 노란 꽃잎이 크고 넓은 품종 기꾸(きく 菊)는 일본 왕실 문장이 되면서 권위의 상징이 되었다. 16장의 꽃잎을 가진 황국은 왕실의 문장이므로 일반 백성은 함부로 심지 못하도록 했다. 이 땅의 국화가 일본 왕실을 대변하는 꽃의 자리에 앉아 그들의 정신세계를 지배하고 있는 것이다.
국화는 재배 역사가 긴 관상식물이다. 시대를 달리하면서 은군자(隱君子), 은일화(隱逸花), 옹초(翁草), 천대견초(千代見草) 등으로 불린다. 외국에서 들어온 거의 모든 식물에 우리 이름이 따로 있는데 국화만은 순수한 우리말이 아니고 한자어를 그대로 쓰고 있는 것도 특이한 일이다.
옛 기록을 보면 염제(炎帝) 신농씨(神農氏)가 국화를 장생불사약(長生不死藥)으로 하면서 널리 재배했었다는 설이 있다. 지금도 장생불로하는 신비한 것으로 보는 사람이 많다. 《예기(禮記)》 월령(月令) 편에는 “가을의 끝 달인 9월은 국화가 피는 때(季秋之月 鞠有黃華)”라고 했다. 여기서 황화(黃華)는 누런 꽃이니 바로 국화를 말한다. 국(鞠)은 국(菊)과 같은 옛 글자이다. 오색 중에서 황색은 중앙을 뜻하는 말이니 계절 가운데 오곡백과(五穀百果)를 수확하는 가장 고귀한 달이라는 뜻이다.
위문제(魏文帝)가 종요(鍾搖)에게 보낸 편지이다. “건곤(乾坤)이 순화하는 이때(음력 9월 9일 전후) 국화의 아름다운 숙기(淑氣)는 연중 어느 때와도 비교할 수 없다. 몸을 보하고 수명을 연장하는 것으로 국화만한 것이 없다. 여기 국화 한 다발을 보내니 팽조(彭祖) 신선처럼 도를 이루는데 도움이 되기를 바라네.” 라는 글이다. 왕이 늙은 신하를 아끼는 마음이 절절이 녹아 있다. 국화 한 다발이 뭐 그리 보약이 될까 마는 군왕의 어진 마음을 느낄 수 있어 천세에 길이 남을만한 명문장으로 꼽는다.
국화의 원종은 신국이나 감국이나 산국처럼 황색이지만 당대(唐代)에 이미 여러 가지 색깔의 국화가 만들어졌다. 백거이(白居易)의 시 중에도 흰 국화(白菊)가 보이고, 이상은(李商隱)은 그의 시에서 보라색 국화(紫菊)를 노래했다. 또 두보(杜甫)는 그의 시에서 당시 많은 국화 품종을 가꾸었다고 전한다.
송대(宋代)에는 실외의 노지재배뿐만 아니라 화분에 심어 가꾸는 원예기술이 상당히 발전했다. 따라서 국화의 신품종 육종에 힘을 쏟은 결과 수많은 원예 품종이 만들어졌다. 유몽전(劉蒙筌)은 1175년에 펴낸 《국보(菊譜)》에서 황색 17품종, 백색 15품종, 자색과 붉은색 4품종을 합해 모두 36종을 기재했다. 이 책에서 “신라국화는 옥매 또는 육국이라 한다.(新羅菊 一名玉梅 一名陸菊)”고 적었다. 당시 신라에서 재배하던 국화 품종이 중국에 전해졌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 보다 10여년 늦은 1186년 범성대(范成大)는 《범촌국보(范村菊譜) 신농씨에서 진귀한 국화 58품종을 기재했다. 그리고 원대(元代)의 양유정(楊維貞)은 《황화전(黃華傳)》에서 당시에 이미 국화가 136품종이나 된다고 적었다.
명대(明代)는 본초학의 발달로 국화를 재배하는 원예기술도 급속한 발전을 가져왔다. 황성증(黃省曾)은 그의 《국보(菊譜)》에서 270품종을 기재했는데 5월에 피는 것(五月菊), 7월국(七月菊), 5월부터 7월까지 피는 것(五七菊) 등 개화별로 품종을 나누었다.
옛날에는 검은색 국화도 있었던 것 같다. 중국 섬서성 서안(西安) 근교의 종남산(終南山) 오로동비(五老洞碑)에 “영수(永壽)는 한 나라 때의 좋은 먹인데 그 지방에 묵국(墨菊)이 있어 먹빛처럼 검다. 옛날에는 즙으로 글씨를 썼다.”고 적고 있다.
* 식용 또는 약용으로 쓰인 자원식물
도교에서는 국화를 장생불사약으로 생각했다. 주요자(朱儒子)는 국화를 즐겨 먹고 몸이 새털처럼 가벼워져 끝내 흰 구름을 타고 승천했다고 한다. 또 유생(劉生)은 “단법(丹法)을 펼칠 때마다 국화즙을 짜 화단증지(和丹蒸之) 하여 1년을 먹으면 능히 백 살을 산다.”고 했다. 《포박자(抱朴子)》에도 “국화는 신선들이 즐겨 먹었던 선식”이라 했다. 그 전통이 남아 지금도 산사에서 수도하는 스님들이 머리를 맑게 식히기 위해 국화차를 즐겨 마신다.
당대(唐代)의 시인 육구몽(陸?夢)은 집 앞뒤로 구기자와 국화를 심고 늘 즐겨 먹었다. 그 사실을 〈기국부(杞菊賦)〉를 지어 남겼다. 후에 소동파도 육구몽(陸?夢)을 흠모하여 구기자와 국화를 심고 가꾸면서 〈후구기부(後杞菊賦)를 지었다. 이처럼 국화는 옛 선비들이 정신을 맑고 깨끗하게 하기 위해 늘 곁에 두고 마셨으나 지금은 서양의 커피향에 밀려 우리 곁을 떠난지 오래다.
국화는 버릴 것이 하나도 없는 자원식물이다. 이용부위만 해도 봄에는 싹을 나물로 하고, 여름에는 잎을 먹는다. 가을에는 꽃을, 겨울이면 땅속의 근경을 이용한다. 이른 봄에 돋아나는 어린 싹을 따 끓는 물에 소금을 약간 넣고 데쳐낸다. 찬 물에 담가 식혔다가 비닐 랩에 한 주먹씩 싸서 냉장고에 보관하고 나물로 한다. 오래 보관하려면 냉동실에 얼려 두면 된다. 주먹 조금씩 소포장을 해여 한번에 먹을 수 있도록 하는 것도 요령이다. 여름에 잎이 세면 질겨서 먹을 수 없다. 잎을 따 데친 다음 다시 기름에 볶으면 먹을 만하다. 튀김을 하면 향이 좋고 바삭바삭하는 씹는 맛이 일품이다.
식용국화가 어떤 것이냐는 질문을 받을 때가 있다. 일반적으로 자생하는 산국이나 감국만 식용 또는 약으로 쓰는 것으로 알고 있는 분들이 많다. 그렇지 않다. 재배하는 원예종 국화도 모두 먹을 수 있고, 또한 약으로 쓸 수 있다.
꽃이 피었을 때 줄기 전체를 베어 쓰는 것이 일반적이다. 활짝 핀 산국이나 감국 또는 뜰에 재배하는 국화를 아래 부위에서 베어 10여 줄기씩 묶고 그늘진 벽에 거꾸로 매달아 둔다. 잘 말린 국화 줄기는 3㎝ 정도로 썰어 종이봉투에 넣어 보관한다. 필요할 때마다 조금씩 덜어내 쓰면 된다. 국화는 꽃이나 잎, 줄기 , 뿌리 어느 부위나 쓸 수 있겠으나 약으로 쓸 때에는 모두 섞어 쓰는 것도 좋다.
* 머리를 맑게 하는 옛 도가의 약차
국화차 또한 줄기 전체를 쓴다. 꽃이 달린 채 말린 국화 줄기는 미리 썰어 놓아야 한다. 곱돌이나 유리, 질그릇에 국화 줄기를 진하게 끓여 그 물을 체로 받쳐 찌꺼기를 걸러낸다. 차를 잔에 따르기 전 미리 끓여 놓은 뜨거운 물을 부어 묽게 해서 마시는 것이 국화차이다. 노란 꽃을 말려 끓는 물에 우려내 마시기도 하지만 그 보다는 전체를 끓여 마시는 것이 약효면에서 효과적이다.
다만 엷은 차색으로 우러난 찻물에 국화꽃 한 송이를 띄우는 것은 잊지 말아야 한다. 시각적 운치와 함께 살아있는 꽃의 향을 맡을 수 있으니 이보다 더 고결한 차가 있겠는가.
국화차는 겨울에는 따뜻하게 해서 마시고 여름에는 식힌 찻물에 얼음을 띄워 마셔도 좋다. 식성에 따라 오미자 물을 타서 색을 내거나 레몬즙을 한두 방울 떨어뜨려 상큼한 맛을 낼 수도 있다. 또 술을 약간 타서 향기를 높일 수도 있고 우유를 섞어 마셔도 좋다.
말린꽃을 쓸 때는 설탕에 재운 뒤 저장해야 한다. 꽃을 그냥 말리면 벌레가 생기기 쉬고 보관하기도 쉽지 않다. 깨끗이 씻은 꽃은 발에 널어 물기를 뺀다. 입이 넓은 유리 항아리에 담고 그 위에 설탕을 뿌린다. 국화 한 켜 설탕 한 켜씩 재워 두었다 쓸 때는 뜨거운 물에 타서 마신다. 다만 꽃에서 나온 찌꺼기가 함께 섞여 있으므로 채로 걸러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다. 물론 찌꺼기도 먹을 수 있는 꽃이므로 따로 버릴 필요는 없다.
국화차는 향기가 너무 강하고 쓴맛이 나므로 너무 진하게 끓이면 마시기 거북하다. 연한 차색이 보일 듯 말 듯 하게 묽게 해서 마시는 것이 좋다.
국화는 가공하는 방법에 따라 여러 가지 질병치료에 쓸 수 있다. 가지를 그늘에 걸어두고 꽃차례(花序)만 땅 것을 백국(白菊)이라 한다. 저국(?菊)은 꽃차례를 유황에 쏘여 말리는데 6할 정도 말랐을 때 체로 친 것을 다시 공 모양으로 뭉친 것이다. 공국(貢菊)은 꽃차례를 불에 쬐어 말린 것이다. 항국(杭菊)은 두 종류가 있는데 쪄서 볕에 말리면 항백국(杭白菊)이 되고, 숯불에 말리면 항황국(杭黃菊)이 된다.
《본초강목(本草綱目)》에서는 “국화는 풍열을 제거하고 간에 이로우며 음기를 보충한다.”고 말했다. 《신농본초경(神農本草經)》에서는 “국화는 풍습을 제거하고 충혈된 눈을 시원하게 해 준다.” 고 적었다.
말린 국화 줄기를 끓여 그 물을 욕조에 풀어 목욕수로 쓰면 신경통, 피부병에 좋다. 머리 감을 때 묽은 국화수를 미지근하게 식혀 쓰면 탈모증을 예방하고 만성 두통이 치료된다. 민간요법으로 국화 줄기를 진하게 삶은 물에 발을 담그면 무좀이 치료된다.
말린 국화 줄기를 한지에 싸서 옷장에 넣어두거나 책갈피에 끼워두면 좀이 슬지 않는다. 우리 선조들은 창호지에 국화잎을 붙여 운치를 더했으며 줄기를 썰어 베개 속을 채우면 머리카락이 새지 않고 두통을 치료한다.
* 국화의 재배 방법
국화는 절화용과 화분용으로 가꾸는데 화분용은 다시 포트멈(potmum)과 관상국으로 구분한다. 절화용은 한국의 여러 화초 중에서 생산량이 가장 많으며, 노지재배뿐만 아니라, 온실과 하우스의 촉성재배, 개화기를 촉진시키는 차광재배, 개화기를 늦추는 전조(電照) 억제재배 등 많은 재배 방법이 있다.
차광재배는 추국의 일조시간을 9∼11시간으로 단축시켜 여름부터 꽃이 피게 하는 방법이며, 촉성재배는 추국이나 하국을 12월 하순에서 1월 상순에 비닐하우스에 심고 4∼5월에 꽃이 피게 하는 방법이다.
전조억제재배에서는 꽃눈이 분화하기 전에 전등을 켜 일조시간을 13시간 이상으로 하면 꽃눈분화가 억제되는데 일정 시간에 이르러 조명을 중지하면 꽃눈이 분화하여 개화한다. 전등은 100W 전등을 4m 간격으로 식물 위 1m 높이에서 조명한다.
관상국 재배는 입국작·현애작·분재작 등으로 구분해서 가꾼다. 입국작은 대국이나 중국을 화분에 심고 순집기를 하여 꽃대를 3, 5, 7, 9 등 홀수로 만들고 받침대를 세워 사방으로 유인하여 기르는 방법이고, 현애작은 소국의 원줄기를 길게 길러 곁가지를 많이 치게 한 다음 여러 모양으로 만들어 꽃이 피게 하는 것이다. 분재작은 소국을 나무(목부작)나 돌(석부작)에 심는 등의 방법으로 자연미를 살려 재배한다.
포트멈은 중국 ·시베리아 ·한국 원산의 품종을 미국에서 원예용으로 개량한 개량종으로 점등 조명과 차광작업을 병행하여 연중 꽃피게 하며, 아주심기에서 출하까지 75일 정도 걸린다.
2007.11.07 호젓한오솔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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