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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일만 일출 /사진

호젓한오솔길 2008. 1. 12. 01:25


  


영일만 일출

 

                        솔길 남현태

   丁亥年 해맞이는 날씨가 흐려서 일출을 보지 못했는데 戊子年 첫날인 오늘은 다행히 날씨가 맑다. 일출구경 가자고 약속해놓고 어젯밤 늦게까지 컴퓨터 앞에서 꼼지락거리다가 새벽 늦잠이 든 터라 일어나기 싫어서 뒤척거리다가 일출 시각이 임박해서야 일어나 분주하게 설쳐댄다. 바깥 날씨가 이번 겨울 들어 제일 춥다고 하여 주섬주섬 옷을 두툼하게 주워 입고 고깔모자에 등산용 얼굴 가리개로 복면까지 하고 나니 영락없는 도둑놈 복장이다. "이래서 나가면 아무도 모르겠지." 하면서 나서다가 서로 쳐다보니 웃음이 나온다. 마누라의 복장도 두루뭉술 펑퍼짐하니 그리 만만치가 않다.

   대학에 다니는 작은아들은 간밤에 친구들과 밤새껏 놀다가 조금전에 들어와 자기방에서 곯아떨어져 잠잠하다. 새해 첫 아침해가 7시 33분경에 뜬다고 하여 서둘러 집에서 7시에 마누라하고 근처 포항 영일만 해안가로 향해 걸어간다. 아파트를 내려서니 골목마다 얼굴을 알아보기 어려울 정도로 모두 두툼한 방한복 차림을 한 많은 사람이 웅크린 자태로 해안가 쪽으로 스멀스멀 행렬을 이룬다.

   해안가 도로는 이미 외지에서 몰려온 자동차들로 거의 주차장이 되어 있고, 움직이는 차들은 저마다 갈 곳을 잃은 체 제자리에서 붕붕거리며 용을 쓰는 모습들을 바라보며 두 발로 걸어가는 행복감에 빠져본다. 해수욕장 도로변에 주차된 자동차들은 언제 도착했는지 가족들끼리 민생고를 해결하는 사람들이나 자동차 안에서 일출을 보려고 해안가 방향으로 인도에 걸친 얌체 주차를 하여 오가는 행인들의 눈총을 받는 사람들이나 모두 추위에 떨면서 아침해가 뜨기를 기다리는 초조한 모습은 즐거운 여행에서 오는 행복함이라기보다는 한순간의 아름다운 추억을 만들고자 고생을 즐기려는 그런 모습들이다.

   인파가 모여드는 북부 해수욕장을 지나서 해안 도로를 따라 환호해맞이 공원 쪽으로 가는 길가에도 해맞이 객들로 분주하다. 개중에는 허술한 옷차림으로 불어오는 새벽 바닷바람과 맞서려고 폴짝폴짝 뛰면서 방정을 떠는 사람들도 있고, 해안 모래사장에 모닥불을 피워 놓고 둘러서서 불을 쬐며 오가는 정담 속에 잠시 법을 살짝 어기는 사람들도 보인다. 더러는 연인들끼리 사랑의 맹세를 하고자 꼭 껴안고 오돌오돌 떨면서 일출을 기다리는 행복에 겨운 사람들이나, 홀로 해안가를 바라보며 우두커니 서서 열심히 기도하는 자세로 중얼거리며 뜨는 해를 손꼽아 기다리는 외로운 사람들이나, 한 작품 찍겠다고 곳곳에 커다란 대포 같은 카메라를 설치하고 행여나 오가는 사람들의 발길에 체여 카메라가 넘어지지나 않을까 노심초사하며 기다리는 사진작가들 저마다 각양각색의 모습들을 하고 무자년 새해 일출을 기다리는 아름다운 풍경들을 연출하고 있다.

   방파제 주변에서 모닥불 피워 놓고 일출을 기다리는 무리를 뒤로하고 이미 주차장으로 변해버린 해안가 도로를 따라서 환호해맞이공원 정문을 지나 사람들 속으로 어깨를 부딪치며 걸어가다 좌측으로 쳐다보니 환호해맞이공원 언덕배기에도 많은 사람이 옹기종기 모여서 동녘 하늘을 바라보며 발을 동동 구르는 초조한 모습들이 보인다.

   영일만 가운데 위치한 건너편 포항 종합제철소 굴뚝에서는 새해 아침에도 쉴 새 없이 하얀 연기를 뿜어내고 불그스레한 영일만 어귀에도 대형 선박들이 무리로 들어와 정박하고 있고, 오늘따라 너울 파도가 신나게 출렁대며 신년 해맞이 즐거움의 흥을 돕는 듯하다.

   잠시 후 주위의 환희에 찬 탄성 소리와 함께 붉으오는 동녘 하늘에다 카메라를 들이대고 줌으로 당겨보니 어느덧 눈썹 모양의 빨간 해가 빠끔히 잡히기 시작하더니 곧이어 수줍은 듯 살며시 고개를 들고 호랑이 꼬리 위로 힘차게 솟아오르며 점점 그 아름다운 동그란 자태를 드러낸다. 붉게 물들어가는 영일만 수면에 무역선 한 척이 지나가면서 공허함을 메워주니 완전한 풍경을 연출한다. 동해의 바닷물도 기다리다 신이 낫는지 해안가 데트라포트(삼발이)에 머리를 들이박고 하늘을 향해 퉁겨 오르며 붉은 해를 반긴다. 해안에 부딪히는 하얀 파도에 마음 깊숙한 곳에 겹겹이 쌓인 해 먹은 스트레스 먼지들이 올마다 깨끗이 씻기어 붉은 영일만을 따라 먼바다로 한없이 흘려보내며 무자년 새해 고요한 아침 풍경에 잠시 빠져들어 본다.

   커다란 무역선의 그림자가 지나고 나니 앞이 좀 허함이 느껴져 수중 갯바위가 있는 곳으로 얼른 이동해 보니 동해의 야성이 조금 더 살아나는 듯하더니 밤새 외롭던 갈매기 한 마리가 붉게 물든 바다 위를 힘껏 날아올라 창공을 빙빙 돌아 축하 비행을 하면서 무자년 새해 일출을 힘차게 열어 준다.

   돌아오는 길은 깊은 미련이 남아서 몇 발짝 옮기다 영일만 어귀를 돌아보고 그 찬란한 붉은빛이 아쉬워 몇 장 더 담아 보고 또 오다가 되돌아 보기를 반복하면서 때로는 퉁겨 오르는 하얀 파도가 좋아서 연방 셔터를 눌러댄다. 새색시 볼처럼 볼 그리하게 올라오던 빨간 소망도 어느덧 그 표정이 뜨겁게 변하여 차디찬 겨울 바다를 녹여버릴 기세로 몸이 점점 벌겋게 달아오른다. 이제 희망찬 행운의 한해가 영일만에서 시작되는가 보다.

   붉게 물든 영일만을 뒤로하고 종종걸음으로 돌아오는 길 바라보이는 과메기 축제가 한창 열리는 포항 북부 해수욕장 주변에도 우리들의 보금자리가 있는 아파트 단지에도 다사로운 무자년의 아침 햇살이 아름답게 비추고 있다. 어제 같은 정해년 해맞이에 이어 오늘 이렇게 한 시간 여분 동안의 짧은 무자년 일출 구경을 마치고 또 잠시 후면 부푼 꿈을 안고 기축년 새해 일출을 기다릴 것이다. 산다는 것이 다 이렇게 반복되는 주기의 연속임을 느껴보는 그런 새해 아침이다. 늘 오늘처럼 새로 시작하는 그런 마음으로 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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