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밤 나만의 전쟁
솔길 남현태
영일만의 얼간이 부족한 게 많은지라 교육이란 걸 받으러 서울의 서쪽 동네로 올라왔다. 별 볼일도 상관도 없는 교육이라 하지만 벌어먹기 위해서는 반드시 받아야 한다는데 그것이 또 다른 사람들이 벌어먹기 위해 만들어 놓고 법이라는 이름으로 포장을 한 함정이고 굴레란다. 그렇게 생각을 하면 얽히고설킨 인생사가 서글퍼진다.
사박오일 교육의 첫날밤 PC 방에서 자정이 넘도록 노닐다가 침실로 들어오니 이번 차수에 교육생이 적어서인지 침대 넷이 있는 방안에 설렁하게 둘이만 자라고 하는데 옆에 같이 올라온 아저씨는 저 지난주에 쓰라린 체험이 있었기에 미리 준비해온 긴 체육복에 두툼한 양말로 완전 무장을 하고 더운 날씨에 얼굴까지 뒤집어쓰고 잠을 자고 있다.
영문을 모르는 얼간이 반바지에 짧은 티셔츠를 입고 잠시 후에 벌어질 참상을 모른 체 사지를 몽땅 드러내고 용감하게 침대 위에 벌렁 드러누워 잠을 청해 보는데 낮 설은 잠자리에 업치락 뒤치락 시간만 흐르다가 언제 쯤 일까 잠시 한잠이나 잦을까 갑자기 온몸이 가려움에 곤한 잠을 깨운다.
졸린 눈으로 불을 켜고 시계를 보니 새벽 2시가 넘었다. 침대 주위에는 야음을 틈타 내 몸 위에 걸터앉아 혈관에 빨대를 꼽아놓고 만찬을 즐기던 빠알간 아랫배를 드러낸 빵빵한 모기들이 비실비실 곁눈질로 눈치를 살펴가며 흩어져서 위장을 하고는 다시 불을 끄기를 기다리고 있다.
빼앗긴 자의 분노가 폭발하는 순간 잠결에 일어나 손바닥이 허공을 가르며 한바탕 보복전이 벌어진다. 침대 주위에 벽에 붙은 놈들은 실컷 먹고 배가 무거워 날지 못하고 바둥 대다가 피를 토하면서 맞아 죽고 더러는 지은 죄가 없다고 끝까지 아둔하게 앉아서 버티다가 피는 맛도 못보고 어떨결에 맞아 죽어간 억울하고 불쌍한 놈들도 있다.
간단히 십여 마리를 황천으로 보내 놓고 다시 불을 끄고 잠자리에 들었는데 또 얼굴 위를 앵앵거리며 살아남은 놈들이 공중에서 정찰하는 통에 신경이 거슬린다. 다시 불켜고 2차 소탕전을 벌이며 대여섯 마리 더 잡아 뭉게고 자는데 또 앵앵 그 소리 이쯤 되면 오늘 밤은 스트레스만 쌓이고 단잠을 이루기는 틀린 것이다.
밤새 것 모기들과 피곤한 싸움은 이어지고 수십 마리의 모기를 잡아도 잡아도 끝이 없다. 사방이 울창한 숲으로 둘러싸인 교육원은 모기들의 은신처 인지 바깥에 붙어 있다가 불을 끄면 어두운 방충망 틈으로 살금살금 기어들어 오는 모양이다. 아마도 내일은 화생방전이라도 벌여야 할 것 같다.
명색이 만물의 영장이라고 자처하던 내가 이 밤중에 한낱 미물의 모기들을 앞에 놓고 객지에서 피 냄새를 맡아가며 용을 쓰는 한심한 싸움을 벌인다. 서해안의 모기들은 동해 영일만에서 올라온 신선한 피 맛을 알고 있는지 목숨을 걸고 저돌적으로 공격해 온다. 모기들은 내 피를 빨아 먹으려고 목숨을 걸었고 나는 피를 지키기 위하여 그들을 잔인하게 처형한다.
볼록한 배를 늘어뜨리고 벽에 붙은 놈들을 손바닥으로 후려치면 비명도 없이 벽지 위에 빨간 꽃 그림을 그리며 죽어 가는 그들의 껍질만 달라붙은 몰골을 보고 나는 희열과 쾌감을 느낀다. 피를 지키려고 내가 그들을 사정없이 마구 죽이는 것이 과잉 방어라고 원성을 들을지언정 나는 오늘 밤 전등불을 켜놓고 필사적으로 싸울 것이다.
이 지독한 싸움이 끝나면 지루한 밤이 지나고 어김없이 새벽은 온다. 초 저녁에 먹은 저녁밥은 운동장을 돌면서 이미 다 꺼지고 이제 금 모기를 잡으면서 이렇게 발악을 하는 통에 아뿔싸 뱃속에서는 어느덧 에너지가 부족하다고 꼬르륵꼬르륵 비상신호 소리가 들려온다. 밤잠을 설친 나는 희멀건 눈으로 모기들이 물러나는 밝은 새벽을 기다리며 일곱 시 사십 분의 아침밥 보급을 기다린다. (2008.08.05 호젓한오솔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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