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연산 낙엽 따라 가는 길
솔길 남현태
겨울 들어 벌써 타 지방에는 눈이 많이 내려 모두들 눈 산행을 즐기면서 인터넷 마다 새하얀 눈꽃 사진들이 치장을 해주니 보는 눈은 즐겁지만 눈 산행을 제대로 해보지 못한 속마음은 안달이 난다. 훌훌 털고 하얀 눈을 밟으러 떠나고 싶은 마음 간절하지만 근간에 신설이 내린 곳도 없고 마눌의 등산 훈련을 위해 매월 첫째, 셋째 일요일은 같이 산행을 하기로 약속을 한 터라 마눌의 수준에 맞는 적당한 산행지를 찾아 떠나야 한다.
오늘 산행은 시골 고향집에도 들릴 겸 상옥 월사동에서 향로봉을 오르는 솥전배기 등 코스로 하여 정상에서 내연산 수목원 쪽으로 가다가 꽃밭 등을 거처 칡대바꿈이 골짜기로 내려오는 호젓한 산행을 계획하고 아침 9시 경에 포항을 출발하여 상옥을 지나 월사동(넘절) 아랫목의 양봉 터 앞에 얌전히 주차를 하고 우측 임도로 따라 계곡으로 내려서니 사유지라고 철문으로 길을 막아 두었는데 우측으로 비집고 들어갈 통로가 있다. 오래 전부터 고향에 어느 분이 이곳 농토를 모두 매입하여 관광 유원지로 개발 하려다 그 뜻을 이루지 못하고 별세 하였고 지금은 소유주가 누구인지는 모르지만 암튼 보기에는 방초 욱어진 농토가 애물단지로 전락해 있다.
넘절 개울가에 도착하여 약간 하류로 내려가면 우측 비알로 올라가는 산행 들머리 길이 보인다. 산행은 잠시 미루고 개울 아래쪽에 절경이 숨어있는 중소 쪽으로 잠시 다가가면서 아름다운 자연이 만들어 개울 물가에 진열해둔 투명한 얼음 조각 작품들을 담아본다. 흐르는 개울물과 얼음 그 얼음 속에는 파란 이끼들이 봄을 기다리고 바위 위에는 하얗게 서리가 내려 얼마나 미끄러운지 마눌도 넘어지고 나도 엉덩방아를 찧는다. 개울 물소리가 청량하게 들리더니 중소와 주위의 아름다운 계곡 풍경들이 두 눈에 속 들어온다.
어릴 적엔 고향의 어린 아이가 여기 중소 주위에서 놀다 미끄러져 빠져 죽은 관계로 온 동네가 떠들썩했으며 그 이후 이 지역은 절대로 접근하지 말라는 마을 어른들의 완강한 훈시를 듣고 자란 관계로 늘 이곳을 멀리하다 이제 보니, 중소 하류 쪽 골짜기 바위 풍경이 과연 절경이다. 이런 아름다운 계곡 절경은 둔세동, 마두전, 배짐이, 옹녀남, 옥계를 거처 강구 오십천으로 이어진다. 개울에 미끄러지듯 흐르는 물은 얼음 속으로 폭포수가 되어 중소 안으로 떨어지니 따르던 낙엽들은 뱅뱅뱅 수면에 맴 돈다.
옛날 월사동엔 절이 있었다. 하여 이곳을 넘절(너무절) 이라고 부른다. 어느 날 이 절에 수도승(중) 셋이서 넘절이 잘 내려다보이는 서쪽산 중턱에 있는 바위에 올라 아늑한 골짜기를 내려다보며 뜀뛰기 시합을 했는데 첫 번째 뛰어내린 중은 바로 아래 개울에 바닥에 떨어지고, 두 번째 뛰어내린 중은 개울 건너 들판위에 안전하게 사뿐히 내려앉으니, 세 번째 중은 욕심이 좀 과하여 하늘 높이 솟구치다 바람에 떠밀려 이곳 깊은 물속에 빠져 죽었다고 한다. 그 이후 이곳을 "중소"라 하고, 중들이 뛰어 내린 바위를 "중바위"라 불렀다. 중바위는 중소에서 보이는 서쪽산 중턱에 있으며 직선거리로는 약 1킬로 정도 떨어진 곳이다.(고향 마을에서 입으로 전해온 이야기)
아름다운 중소 풍경에 잠시 취해보고는 조금 되돌아 올라와서 등산로를 따라
솥전배기 등을 오르는데 뒤에서 호각 소리가 자꾸 들린다. 산불 감시원의 호각소리인 듯 하였으나 누가 뭐래도 이제는 너무 멀리 올라와서 돌아 갈수도 없다. 그래도 그냥 올라가자니 뒤가 자꾸 땡긴다. 하여 고향에 산불 감시원 형님에게 전화를 한다. "저 아무개 댁에 아무개 인데요 넘절 목쟁이에 차를 대놓고 솥전배기로 향로봉 올라가고 있는데.. 양봉 터 앞에 있는 차가 내 차시데" 하니 "그래그래 알았다 걱정 말고 잘 댕겨 오느라" 카신다. 그래서 언재나 고향이 좋다. 알고 보니 그 호각소리는 멧되지 사냥꾼이 사냥개를 부르는 호각 소리였다.
잠시 후 사냥개 다섯 마리가 씩씩대며 올라오더니 이어 사냥꾼 두 명이 뒤 따라 올라와 인사를 나누고 우리를 앞질러 간다. 잠시 따라 올라가니 사냥꾼들이 쉬고 있는데 마눌이 " 아저씨 여기서 담배 피우면 어야는기요" 하길레 처다 보니 포수가 낙엽 위에서 담배를 피우고 있다가 마눌한테 들키어 구싸리를 먹고는 조금 민망해 한다. 나는 처다 보면서 그냥 빙그레 웃기만 하는데.. "이렇게 끄면 불이 날 염려가 없니더" 하며 피우던 담배 불을 손으로 비벼서 끈다. 아직도 산불에 대한 심각성을 잘 인식하지 못한 사람들 같아 보였다. 올라가면서 물어보니 청송군 부남면 에서 왔다면서 이번 겨울에 벌써 향로봉 멧돼지를 20 여 마리 잡았다고 한다.
노송들이 즐비한 능선에 올라서니 발 아래로 조금 전에 올라온 넘절과 멀리 고향마을 통점재로 이어지는 낙동정맥 능선이 펼쳐지고 그 너머로 청송군도 보인다. 하늘 향해 꼬아 올린 어느 우화한 노송의 기막힌 용트림을 바라보며 과연 이것이 얼마짜리 쯤 될까 시내에 이런 것이 있다면 아마도 부르는 게 값이겟지..묵묵히 말없이 비틀며 서있는 노송들을 가격을 메겨보는 속성을 들어내며 돌아보는 안무 속으로 고향 마을이 아늑하다.
노송 숲을 지나니 빼곡한 참나무 숲길이 이어지고 잘 생긴 아름 들이 참나무 들이 하늘을 향해 두 다리 쭉쭉 펴고 아무런 근심 걱정도 없는 듯 유유자적 살아들 가고 있다. 철갑을 두른 듯 두툼한 참나무의 피부를 살펴보니 완전 방수 천연 코르크다. 참나무 숲 사이를 따라서 바스락거리는 낙엽을 밟으며 오르는 비알길이 미끄러워서 올라가다 미끄러지고는 너무 힘들다고 마눌은 벌써부터 계속 투덜대며 따라온다.
향로봉으로 이어지는 능선부에 오르니 아직 잔설이 남아 있고 늠늠한 괴목들이 즐비하게 반기는 능선 길을 걸으며 얼마 안 남았다 이제 다와 간다는 거짓말을 여러 번 하고서야 어렵게 향로봉에 도착하니 자주 대면하여 안면이 많아 친근감이 있는 둥그스레한 향로봉 정상석이 비스듬히 서 있다가 바라보고는 너무 자주 올라온다고 이제는 그만 오라는 눈치를 보낸다.
향로봉 정상을 조금 지나서 내연산 수목원 가는 길로 가다가 양지쪽을 찾아 낙엽 위에서 점심을 먹고 꽃밭등 가는길 전망 바위에서 바라본 깊고 적막한 청하골엔 뿌연 안무가 자욱하다. 낙엽이 아름답고 풍부한 내연산 중에서도 낙엽길은 이곳 참나무 숲 길이 단연 최고다. 바스락바스락 거리는 소리와 함께 뒤를 돌아보니 딴에는 열심히 따라온다.
고래 등에 송곳을 세워놓은 듯 산등성이에 꼿꼿하게 서서 하늘을 치 밭고 있는 참나무들이 어우러진 꽃밭등 직전에서 리본만 몇 개 달려 있을 뿐 길이 없는 우측 계곡으로 내려서서 나무들 사이로 헤집고 한참 내려가니 낙엽이 어수선한 계곡 바닥으로 떨어진다. 그냥 계속 골짜기 하류를 따라서 내려 가다가 커다란 동물 머리 모양의 괴목을 바라보고 이것이 말이다, 사슴이다, 기린이다 하면서 사진 몇 장 담아본다. 길도 아닌 낙엽 덮인 이런 험한 돌너덜 골짜기로 계속 걸어가면 내 무릎이 작살난다고 마눌은 따라오며 울먹이듯 또 엄살을 부린다.
숨은 개울에서 눈에 익은 빙 폭이 나오고 여름내 숲 속에 숨어있던 아름다운 풍경들이 옷을 벗은 겨울나무 사이로 드러나고 경사면 옛길은 낙엽이 쌓여서 찾기도 어려운데 헤집고 지나와 돌아보면 금방 낙엽이 흘러내려 길이 없어진다. 한발 잘못 디디면 계곡 아래로 미끄러질 듯 하여 살금살금 엉금엉금 두려운 낙엽의 강을 건너가면서 내려오니 그 옛날 숯가마 터가 머무는 곳엔 아직도 주위가 온통 까만 숯가루로 흩어져 있다.
이제는 낙엽이 무섭단다. 낙엽은 이제 그만 처음에는 아름답던 낙엽도 이제는 징그러운 낙엽 길로 이어지고, 영롱한 얼음 폭포 그 속으로는 맑은 물이 흐르고 주위에는 수정 같은 고드름이 주렁주렁 메달려 있는데, 숨어서 내려다보고 있는 아름다운 골짜기마다 모두 하얀 얼음 얼굴을 내민다. 떨어지는 물소리도 청아하게 얼음 속으로 낙엽 속으로 그렇게 졸졸졸 여운을 남긴 체 하염없이 지칠 줄 모르고 흐른다. 끝없는 낙엽길 오늘 너무 많이 걸었다고 또 원망이 나온다.
이제 상옥에서 내려오는 계곡물과 합수되는 곳 우측 바위 풍경이 만만치 않고 내려오다 돌아본 풍경 자연이 만들어놓은 예술 작품이다. 굽이굽이 뉘라서 그릴소냐 이 섬세함을 맑은 물에 산 그림자 드리운 모습을 개울의 얼음은 얼었다 녹았다 반복하면서 아름다운 예술 조각품들을 만들어 낸다.
여기저기 바위 풍경은 한 폭의 동양화를 보는듯한 이 곳은 어릴 적 물고기 잡으러 멀리 왔어 놀던 곳인데 이렇게 아름다울 줄이야 서슬 퍼런 얼음들을 지나니 마당소가 반긴다. 얼어 있는 마당소 가장자리에는 녹은 물위로 산영들이 비치고 아름다운 계곡은 이어진다. 다 와간다 거짓말을 또 몇 번 하고나니 이제 진짜로 다 왔는가 봅니다.
앞쪽 언덕배기 위에 주차 한 곳이 보이고 우측으로 아침에 올라간 솥전배기 능선이 보이는 이곳 옛날에 손가락 아프게 모심기 하던 넘절의 자갈논들이 지금은 방초와 잡목들로 우거져 이렇게 이뿐 오솔길도 생겨있다. 넘절재를 올라오다 뒤돌아보니 아련한 지난날에 모내기 하던 도가리들 누런 황금물결 아름답던 들녘을 연상하고 격세지감을 느껴본다.
가까운 곳에 있으면서도 어릴 적 향수가 묻어있는 아름다운 풍경들을 모른 체 수십 년을 살아오다가 작년 2월 달에 이어 두 번째로 찾아온 산행길이다. 지난 번 다녀 갈 때 "어디 간들 별산 있나 꽃피고 새가 울면 내 다시 찾으리라" 했건만 산행하기 좋은 계절은 타지로 덜렁대며 돌아다니다 결국은 산불 경방기간에 다른 산길이 막히고 갈 곳이 별로 없어진 추운 겨울철에나 이렇게 따뜻한 고향의 품속으로 들어와 마음껏 즐기고 가는 바람둥이 같은 산행으로 오늘 내연산의 아름다운 낙엽 따라 가는 길 산행을 갈무리해본다. (2008.01.05 호젓한오솔길)
'♥ 오솔길 문학방 ♥ > 솔길 구시렁글' 카테고리의 다른 글
기축년 새해 일출 (0) | 2009.01.19 |
---|---|
첫눈 내리는 날 (0) | 2009.01.04 |
팔공산 가팔환초 (0) | 2008.09.06 |
여름밤 나만의 전쟁 (0) | 2008.08.15 |
설악산 용아장성능 (0) | 2008.06.1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