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공산 가팔환초
솔길 남현태
산행은 산 아래서부터 시작하는 줄로만 알았는데 한밤중에 도심 지하철 역에서부터 이마에 벌건 불을 달고 잠자는 동네 개들을 다 깨워 가면서 분산하게 걸어가는 팔공산 종주 가팔환초 백십리길 스믈 여덟 봉우리 종주 산행의 서막은 그렇게 올랐다.
정해년 현충일 새벽 2시가 조금 지난 시간에 대구광역시 반야월 역 앞 캄캄한 어둠 속으로 다섯의 산꾼(자황, 청하골, 영강, 허수아비, 호젓한오솔길)이 분주히 걸어간다. 지난번 청하골님의 지리산 태극 무박종주 기념 모임에서 회원님들의 활발한 장거리 산행에 대한 이야기를 주고받던 중 "가팔환초" 종주를 위해 자황님이 사전답사 중인 것을 알고 함께 동참한 것이 이번 산행의 계기가 되었다.
그간 10시간 이내의 단거리 산행을 주로 해온 나로서는 처음 도전하는 무박 장거리 산행에 대한 호기심도 있었지만, 무엇보다 잠을 설치고 20시간 가까이 백여리길(약45Km)을 산행할 수 있는 체력이 염려 되었다. 더구나 약 한 달 전에 꼬불친 왼쪽 발목 부상도 있고 하여 행여 다른 산님들에게 피해나 주지 않을까 하는 초조한 마음으로 출발을 기다려왔다.
6월 5일 밤 12시 30분에 자황님과 만나기로 한 장소에 10분 전에 나가서 기다린다. 곧이어 약속 시간도 되기 전에 자황님이 차를 몰고 왔어 나루 끝에서 허수아비님을 태우고 포항공대 주차장에서 청하골님의 차로 모두 옮겨타고 가는 도중 영강님이 동승하면서 5명이 밤 공기를 가르며 팔공종주의 길에 오른다.
산행 후 지하철을 이용하여 자동차까지 회귀하기 위해 산행 들머리 근처인 반야월 안심 지하철역 주위에 적당한 공터를 찾아 주차를 하고, 새벽 2시 20분에 어두운 밤거리로 초래봉을 향하여 마을 여러 곳을 지나는 동안 온 동네 개들이 짖어대는 시끄러운 소리에 마을 사람들의 밤잠을 깨워가며 마을 농로 길을 따라 걸어가니 어둠 속에서 초례봉을 알리는 이정표의 반가운 안내를 받으며 초래봉 기슭으로 오르는데 예상과 달리 바람 한점 없이 고요하게 푹푹 찌는 초여름 밤 날씨에 모두 들 초반부터 비지땀을 흘리며 어려운 산행을 예감하고도 묵묵히 걸어간다.
드디어 오늘의 첫 번째 봉우리인 초례봉 정상에서 시원한 바람을 맞이한다. 정상에서 잠시 둘러앉아 가지고 온 족발을 안주 삼아 술잔 없이 돌아가며 나팔 부는 정상주도 나누고 고구마, 떡, 오이, 과일 등으로 에너지 충전하고 본격적인 가팔환초의 행군 길에 오른다.
어느덧 아침 해는 짙은 안개속으로 소리없이 덩그러니 솟아올라 있고 저 멀리 걸어온 초례봉과 능선모습이 어렴풋이 보인다. 저기 초례봉 어느 능선 끝 자락 아래는 어제밤에 이상한 산꾼들로 말미암아 동네 개 짓는 소리에 잠을 설친 마을 사람들이 이재금 부시시 눈을 비비며 일어나 중얼중얼 구시렁 거릴 시간이다.
발아래 폭 꺼진 능성고개의 마을이 안갯속에 어렴풋이 보이고 우측으로 저만치 아래에는 대구 포항 간 고속도로와 와촌휴게소가 보인다. 저기 까마득한 마을까지 내려가서 아침을 먹고 다시 아련한 건너편 팔공산 자락으로 올라야 한다. 에고 힘들다 하면서 모두 하산길을 서둘러 산행 출발 5시간 만에 능성고개에 도착하여 깨끗한 능성동 마을이 어귀로 들어서니 밭에서 식전 일을 하고 있는 마을 사람들이 이른 시간에 산에서 우르르 내려오는 우리 일행을 보고 밤에 산을 넘어오는 길이냐고 물어오기에 그렇다고 하니 참 이상 하다는 듯이 물끄러미 쳐다본다.
미리 예약해둔 길가의 "우정식당"에서 아침을 먹고 주문한 점심 도시락과, 오이, 식수를 배낭 가득히 챙겨 메고 모두 하직인사를 하고 돌아서니 친절하신 "우정식당" 여 사장님은 꼬옥 다시 찾아오라며 아침에 급히 나오느라 모자를 잊고 온 영강님께는 햇빛에 얼굴이 탄다고 모자까지 하나 건네주신다.
부른 배를 두드리며 식당 옆 골목을 쭉 따라 가다 우측으로 산행 들머리를 찾아 마을 뒷산 장군봉으로 오르는데 포식으로 배가 부른 몸은 자국이 잘 떨어지지 않고 자꾸 그 자리에 주저앉고 싶어한다. 산 중턱 길옆에 샘 물도 있었지만, 식수가 충분하여 그냥 지나친다. 여기도 골짜기에 들어서니 바람기 하나 없는 후덥지근한 아침 날씨에 모두를 한바탕 진땀을 빼낸다. 드디어 시원한 아침 바람이 불어주는 명마산 장군봉 정상에 올라 뒤돌아 보는 능성고개와 식전에 걸어온 환성산 모습이 어느덧 아련한 옛 추억으로 보인다.
장군바위 근처의 시원한 능선에서 잠시 휴식을 취하는데 누군가가 장군바위 주위에서 남녀가 사랑을 나누면 장군을 낳는다고 하여 요즘도 종종 남녀들이 올라와 장군바위 아래서 남몰래 사랑을 나눈다고 하여 한바탕 웃으며 피로를 씻는다. 보기에 따라서는 하늘 향해 불끈 솟아있는 장군바위는 남성의 우람한 성기처럼 보인다.
용주암을 뒤로 하고 관봉을 처다보며 바쁜 발걸음을 옮긴다. 관봉 아래 노점에서 산딸기를 파는데 종이컵으로 한 컵에 이천 원이다. 좀 비싸긴 하지만 단체로 한컵씩 영양 보충을 한다. 영험하기로 소문난 팔공산 갓바위(관봉석조여래좌상)에 올라 갓바위 자비롭고 준엄한 모습을 구석구석 카메라에 담아보고는 오늘도 어김없이 많이들 올라와서 갓바위에 소원을 빌면서 수없이 절을 하고 있는 저 여인네들은 무슨 사연이 그리도 많은지 표정들이 애절하게만 보인다.
예정보다 시간이 자꾸 지체되어 산행 출발한지 벌써 7시간이나 소요되었다. 잠시 아래로 내려가다가 우측으로 능선을 오르는 길이 있고 갓바위 뒤 인봉 모습이 보인다. 계단을 내려가다가 다시 올라가고 가야 할 팔공 능선은 안개속에 까마득 하기만 하다.
능선 좌측 아래에는 깔끔한 골프장이 내려다보인다. "아이고 죽겟다 돈 없는 우리는 이렇게 새빠지게 산에나 걸어다니고 돈 있는 사람들은 저런 곳에서 골프나 치며 즐기고 "누군가가 힘이 들어 큰 소리로 탄식하는 소리에 모두 한바탕 웃음 바다가 된다. 뒤 돌아본 팔공 능선의 초록들이 하늘거리며 손짓을 해 대지만 느긋하게 즐기며 감상해줄 여유가 없다. 그냥 행군 또 행군이다.
뒤돌아 보니 걸어온 능선길 가마득하고 가야 할 능선 아득하다. 원래 동봉에서 점심을 먹기로 예정되어 있었는데 산행이 예정보다 많이 지연되어 동봉까지 가질 못하고 시원한 그늘을 찾아 점심을 먹는다. 동봉 직전의 아름다운 팔공 능선의 암릉들을 감상할 시간도 없이 그냥 정신없이 걸어만 간다.
드디어 동봉 정상에 도착하니 벌써 산행시작 12시간이나 소요되었지만 이제 오늘 산행길의 약 60% 정도를 온듯하다. 맞은편 정상에 솟아 있는 통신시설 철탑에 파란 하늘 위를 동동 떠다니던 하얀 뭉게구름이 옹기종기 걸려서 잠시 쉬고 있는 모습을 바라보면서 우리도 잠시 휴식을 취한다.
더운 날씨에 산행 시간이 길어질수록 점점 산행 속도가 느려 저 산행이 예정시간보다 약 2시간 정도 지연되어 간다. 늦어진 산행시간 단축을 위에 동봉 정상에서 시원한 아이스크림 하나씩 입에 물고 모여서 작전 회의를 한 결과 산행을 계속 할 공격조와 하산하여 차량을 회수하여 날 머리인 다비암에서 대기할 지원조로 나누어 진행하기로 의견을 모아 2명은 동봉에서 하산하고 3명은 산행속도를 높여 속보로 진행한다.
동봉을 지나서 공격조 3명이 진행하는 산행길은 청하골님이 선두에서며 산행속도를 높인다. 오후 3시쯤 파계봉을 오르는 시점에서 갑자기 체력이 떨어지는 기분이 들며 가슴이 답답한 것이 첫 번째 고비가 오는듯하여 눈치를 살펴보니 모두를 피로한 기색이다. 잠시 휴식을 취하며 물, 소금, 오이, 과일을 먹으며 에너지를 보충 하고 나니 갑자기 몸이 확 풀리는 듯 다시 힘이 나면서 그때부터는 사정없이 무한 질주가 시작된다.
멀리 보이던 한티재가 금세 눈앞에 나타난다. 한티재 휴게소에 들러서 잠시 세수를 하고 국수와 파전으로 저녁 식사를 한 후 오후 5시가 지나서 저무는 날에 이상한 폼으로 다시 산속으로 들어서는 모습에 모두 이상한 눈으로 힐긋힐긋 처다 본다.
휴게소 뒤편 들머리를 지나 능선에 올라서니 멀리 운무 속에 마지막 봉우리인 가산이 가마득히 보이는 곳에서 잠시 쉬면서 고추에 바람이나 좀 넣고 가자고 하며 모두 땀에 절인 바지를 훌러덩 내린다. 삼각팬티를 입은 사람은 괜찮은데 사각 트렁크 면 펜티를 입고 온 사람은 땀이 젖었다 말랐다 하여 팬티가 소금에 절어 빳빳해지면서 걸을 때 사타구니가 스치어 벌것게 까지고 물집이 생겨서 걸어가는데 엉거주춤 고생이 심하다. 여름철 장거리 산행엔 스포츠용 삼각팬티가 좋다는 것이 증명되는 순간이다.
치키봉에 설치된 이정표를 지나 할아버지 할머니 바위를 지나니 주위가 어두워진다. 드디어 그 옛날 병사들의 처절한 함성이 들리는듯한 가산산성 성벽 길을 따라서 칠곡군 가산 정상에 도착하면서 기나긴 가팔환초 종주산행 성공이다. 종주기념 촬영을 하고 가산산성 중문을 지나 학명리 다비암으로 가는 이정표를 따라 다시 랜턴 불을 켜고 어두운 밤길을 더듬어가며 다비암에 도착하니 일행 두 명이 차를 대기해놓고 기다리고 있다.
새벽 2시 20분에 반야월 안심 역을 출발하여 저녁 20시 20분에 다비암에 도착 하면서 무더운 날씨에 장장 18시간이나 심장의 요동소리를 내며 걸어온 팔공산 종주 산행길은 나로서는 처음 해본 장거리 산행에서 자황님의 사전 답사와 치밀한 계획하에 알바 하나 없이 무난히 완주할 수 있었어 정말 즐거운 산행이 되었다. 사전 준비에 수고하신 자황님과 어려운 산행길을 함께한 청하골님, 영강님, 허수아비님께 감사한 마음을 전하면서 팔공산 가팔환초 종주 산행을 마무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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