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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한산성과 행궁 - 궁궐 시리즈 # 6

호젓한오솔길 2009. 2. 2. 20:48

 

# 6 편에서는 서문부터 남쪽 성벽을 따라 동문까지 수록합니다.

 

남한산성은 신라 문무왕 12년(672)에 당나라와의 전쟁에 대비하여 성으로 축성하고 주장성(晝長城)

또는 일장성(日長城)이라 하였다. 조선조 광해군 13년(1621)에 처음으로 경도보장지(京都保障地)로 정하고

후금의 침입을 막고자 인조 2년(1624) 수어사 이서에게 명하여 수축케 하였으며 2년만인 인조 4년(1626)에

준공되었다. 그 후 외성을 축조하는 등 성의 시설물이나 조영(造營)은 조선말 순조 때가지 계속되었다. 

성의 구성은 본성과 외성, 옹성으로 되어 있으며, 둘레는 11.76km이고 성곽의 높이는 3~7.5m 이며,

4개의 장대(서장대만 보존), 4문, 4 옹성, 16암문, 2 돈대가 있고, 성내에는 군포(초소) 125, 못 45,

우물 80, 물레방아 9개소가 있었고 행궁을 비롯하여 종묘, 사직, 관아, 재옥, 객사, 종각 등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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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행궁 조감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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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재까지 복원된 행궁 건물은  일곱채이다.

 

- 좌전(종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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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른편에 건국시조와 왕의 선친부터 고조까지 4대를 합친 5명의 왕과 왕비의 신주를 모시는

'좌전 정전(正殿)'과 왼편에는 왕의 5대 이상의 조상을 모시는 '영녕전(永寧殿)'이 배치되어있다.

영녕전이란 조상과 자손이 함께 영원토록 평안하고자 하는 뜻을 가지고 있다.

 

- 종묘에서 보이는 행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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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좌승당(坐勝堂)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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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궐 내행전(內行殿)북쪽에 세워진 광주유수의 집무용 건물로 순조17년(1817) 광주유수 심상규가

건립하였다. 좌승당이란 이길만한 계책을 가지고 있으면 앉아서도 적을 물리칠 수 있다는 의미다.

 

 - 내행전(內行殿)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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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행전은 임금님의 침전으로 사용되는 건물이다. 내행전은 일반 민가와 달리 부엌과 부뚜막이 없고

벽장 등과 같은 물품 수납공간이 없으며 단청을 하는것이 특징이다.

 

 - 남행각(南行閣)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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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내행전 남쪽에 세워진 행각으로 왕의 행차시 수행원이 기거하던 건물이다.

내행전 북쪽에 남행각과 같은 규모의 북행각이있다.

 

 - 재덕당(在德堂)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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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숙종 14년(1688) 유수 이세백이 건립하였다. 왕의 수신공간 혹은 제사용 건물로 추정된다.

 

 - 내행전 후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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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침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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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행궁 입구에 있는 현재의 건물은 영조 27년(1751)에 유수 이기진이 중수하고 침괘정이라 명명하였다.

 무기제작소의 사무를 관장하던 곳으로 추정된다.

  

- 숭열전(崇烈殿)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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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행궁과 서문 중간에 백제의 시조 온조왕의 위패를 모신 사당 숭열전이 있다.

인조 17년(639)에 건립하였고 정조 19년(1795)에 숭열이라 사액하였다.

 

- 국청사(國淸寺)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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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문 인근에 세워진 국청사는 인조 3년(1625) 각성대사에 의해 창건되었다.

 

 - 서 문(우익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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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울의 송파지역 등산객들의 주된 출입문이다.

 

- 서문 문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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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문에서 수어장대로 가는 성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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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어장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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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인조 2년(1624) 단층으로 축조한 것을 영조 27년(1751) 2층 누각으로 증축하고 외부편액을 수어장대

내부편액을 무망루라 이름하였다. 영장이 진을치고 휘하 장졸을 지휘하던 곳이다.

1636년 병자호란 때 인조는 이곳에서 45일간 병사를 지휘하며 항전하던 곳이다.

 

 - 무망루(無忘樓) 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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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어장대 왼편에 조그마한 빈 전각이 있고 그 오른편에는 "리승만 대통령 방문 기념비"가 서있다.

전각속에는 전각의 내력을 적은 작은 표지석과 편액만이 걸려있다.

 

- 전각 속에 걸린 편액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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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무망루는 병자호란 때 인조가 겪은 시련과 8년간 청나라 심양에 볼모로 잡혀갔다가 귀국 후

북벌(北伐)을 꾀하다 승하한 효종의 원한을 잊지 말자는 뜻에서 영조가 이름지은 것이다.

편액은 원래 수어장대 2층 내전에 걸려 있던 것을 전각을 새로 지어 건 것이다.

무망루 라는 글자 한자한자가 이를 악물고 붓을 잡은듯하고 한 획도 흐트러짐이 없이 힘차게 보인다.

 

 - 암 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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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남문으로 이어지는 성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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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남 문(至和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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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조 3년에 성곽을 개축시 지화문이라 칭하였고 4대문 중에 유일하게 편액이 남아있다.

 

- 성문 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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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2 옹성 암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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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2 옹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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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2 옹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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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1, 제3 남옹성은 보수작업 중이다.

 

- 남장대터(南將臺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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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한산성이 준공된 후 수어청을 두었으며 수어청에는 전,후, 중, 좌, 우, 5영이 소속되어 있었는데

이 곳은 후영장이 배치되어 휘하 장졸을 지휘하던 남장대가 있던 곳으로 제2 옹성 뒷편에 자리잡고있다.

대 위에는 타운루(唾雲樓)가 있었다. 

 

 - 보수를 마친 남쪽 성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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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훼손이 심한 남쪽 성벽은 보수공사가 진행되고 있고 복원이 완료되고 먹자판인 성내가 정리가 되면

세계문화 유산으로도 손색이 없을 듯하다.

 

- 퇴락한 여장(女墻 : 성벽위의 담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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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너진 옛성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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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원사(開元寺)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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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문쪽 기슭에 있는 이 절은 인조 2년 남한산성 수축과 함께 세워졌으며 전국에서 산성수축을 위하여

 동원된 승도들은 물론, 전국승도들을 총괄하던 지휘소 였으며 현재의 건물은 1976년 재건축한 것이다.

 

- 승장조사전(僧將祖사殿)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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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승군의 총 본산답게 다른 절과는 다르게 승장을 기리는 사당이 있다. 

 

 - 시구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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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홍예문 오른편 검은 표지석엔 다음과 같이 쓰여있다.

"아곳은 신유(1801), 기해(1839), 병인(1866) 박해를 통하여 순교자 300여명의 시신이 버려진 곳이다."

동문 맞은편 계곡 건너에 위치하고 있다.

 

- 동 문(좌익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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