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량산을 걸으며
솔길 남현태
거친 암봉의 웅장함이
하늘을 받치고
수천 년 아득한 세월 회상하며
고요한 청량 정사 지킨다
크고 작은 암봉들 병풍처럼 솟아
낙목한풍 가려주니
아늑한 청량사 경내
부처님 자비 가득 넘친다
연적봉 탁필봉 나란히
능선 위 거닐고
김생 굴 바위 아래 총명 수 마시며
십 년 수련하여
천하 명필 되었다 하네
바위 봉우리 자소봉
꼭대기 우아한 노송 뿌리 내려
파란 저고리 얼굴 가리고
수줍은 듯
살며시 고개 들어 반긴다
피사의 사탑 같은 탁필봉
연적봉 나란히 등 맞대고 앉아
오를 수 없는
봉우리 아래 명패 세웠네
의상봉 바라보는 벼랑 끝
발길 머무니
자란봉 앞 낭떠러지 협곡
건너갈 길 가마득하다
맞은편 축융봉 흰 이불 덮고
겨울잠 자건만
뒷산 암봉들 저마다
위용 자랑하는
청량사 뜰 안 향내 그윽하다
뿌연 운무 속 태양은
보름달처럼 분장하고
나뭇가지 걸려 가던 걸음 멈추니
은은한
청량사 달밤이런가
저녁 공양 짓는 뽀얀 연기
모락모락 피어오르니
얼굴 시장기 도는 연화봉
여유롭기만 한데
우람한 암봉들 시샘하듯
그림자 드리우며
고요한 청량사 밤 재촉한다
고달픈 인간 역사 속
상처투성이 노송
수줍은 듯
양다리 배배꼬며 하늘 향해
아린 몸뚱어리 비틀어 활개 짓 한다.
(2006.02.2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