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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봉에서 소금강까지

호젓한오솔길 2009. 10. 7. 21:52

 

 

노인봉에서 소금강까지

 

 

                                        솔길 남현태

 

 

회사 한마음 산악회의 10월 정기 산행을 따라 오대산 노인봉으로 단풍산행을 가기 위해 아침 05시 30분에 포항 종합 운동장 호돌이 상 앞에 집결하기로 되어 있어, 마눌은 새벽 4시부터 일어나 잠을 설쳐가며 도시락과 아침 준비를 하고 있다. 가다가 김밥을 싸서 갈 테니 그냥 두고 잠이나 자라고 해도 기어이 도시락 싸주겠다고 하니, 늘 혼자 산에 가면서 새벽부터 고생을 시켜 미안한 생각이 든다.

 

오늘은 포항 시민 체육대회가 열리는 날이라 포항 종합운동장에 차량을 주차할 곳이 마땅치 않을 것으로 예상하여, 아예 마눌에게 서비스하는 김에 운동장까지 태워 달라고 하여 4시 50분에 집을 나와 약속 시간 10여 분 전에 운동장에 도착하니 역시 예상대로 종합운동장엔 차량 출입이 통제되고 있다 관광버스는 정문 앞 큰 길가에서 대기 중이고 모두 타고온 차를 주차하느라 예정시간보다 10분 늦은 05시 40분에 오대산을 향해 출발한다.

 

시원한 가을 새벽 공기를 가르며 관광버스는 동해안 7번 국도를 따라 잘도 달린다. 잠시 단잠을 자고 있는데 차가 멈춘다. 망향 휴게소에 정차하여 용변을 보고 아침 식사를 못하고 나온 사람들이 식사하기 위해 약 20분간 쉬어간단다. 휴게소 뒤 해변 언덕에 서서 동해를 바라보니 태양이 많이 떠올라서 일출 사진은 찍지를 못하고 파도가 술렁이는 바닷가 아침 풍경들을 몇 장 카메라에 담아본다.

 

예정 시간보다 30분 정도 늦은 10시 30분경에 오대산 진고개에 도착하니 전국에서 단풍산행을 온 차량이 많이도 모였다. 진고개 도로변에 정차하고 각자 산행 준비를 서둘러 우측 언덕으로 올라 매표소 앞에서 정렬하여 입장료를 내기 위한 카운트를 하고 산행을 시작한다. 돌아보니 진고개 주차장에는 자동차 들로 빼곡히 들어차 있다. 대부분 이곳 진고개가 산행 들머리라 관광버스들은 도로변에서 등산객을 내려주고 날 머리에서 대기하기 위해 소금강 쪽으로 바로 떠난다.

 

앞쪽엔 노인봉 능선이 우람하게 날아갈 듯 버티고 서 있다. 우측 계곡에는 단풍이 누렇게 변하여 벌써 늦은 가을빛이 바래가고 있다. 산능성이는 아직도 울긋불긋 들머리에 오르는 산행길은 설렘으로 가득하다. 한참 올라가다가 뒤돌아보니 길은 온통 등산객들로 메운다. 능선의 단풍은 이미 다 떨어져 낙엽을 밟는 겨울 산행하는 기분이 들고 나란히 줄을 서서 앞사람의 뒷모습만 보고 올라가는 그런 지루한 산행이 시작된다. 능선에 올라서니 나무 사이로 멀리 황병산 정상이 보이고 뒤 따라오는 산행 행렬과 멀리 안갯속에 봉우리들이 아름답다.

 

노인봉 정상은 바위 봉우리인데, 정상에는 사람들로 몹시 붐빈다. 정상에 올라가는 사람과 내려오는 사람들로 제각기 분주한 흥분 속에서 매우 위험한 모습들이다. 사진촬영 모델 쟁탈전이 너무나 치열하여, 노인봉 정상석은 곤욕을 치르고 있다. 마치 커다란 고깃덩어리를 향해 달려드는 까마귀 떼 처럼 "노인봉" 이름 석 자를 온전히 카메라에 담는 데만도 한참이 걸린다. 정상을 향해 열심히 올라오는 모습들 넘어지면 크게 다칠 것 같아 위태롭기만 하다. 마치 피난민 행렬 같다.

 

밑에서는 복잡하여 올라올 수가 없으니, 정상을 향해 쳐다보며 "빨리빨리 방 빼세요." 라고 고함을 치며 아우성이다. 오래 머물러 있기가 미안하여 사방을 둘러보며 대충대충 셔터를 마구 눌러댄다. 뿌연 안갯속에서도 동해 바닷가의 시원한 조망이 보인다. 입추의 여지가 없는 정상에서 사람을 피해서는 사진을 찍을 수가 없다.

 

노인봉에서 북동쪽 방향 거기에도 올망졸망 산줄기들이 고개를 숙이고 있다. 노인봉에서 바라본 동남쪽 황병산 정상과 능선이 금방이라도 살아 꿈틀거릴 듯한데, 올라오던 길옆 헬기장과 멀리 안갯속에 봉우리들이 정겹기만 하다. 소금강 쪽 맞은편 능선들의 율동으로 몸짓하고, 북쪽 능선은 가을 지난 갈색 속에 녹색이 총총 박혀있다.

 

노인봉 정상 부근에서 적당한 곳을 골라 점심을 먹고, 회원들보다 먼저 출발하여 하산길인 소금강 계곡 쪽으로 내려오는 정상부 능선에는 이미 지난 가을이고 소금강 계곡의 중층에는 이제 단풍이 한창 물들어가고, 계곡 입구에는 아직도 녹색을 간직한 체 오색 옷을 갈아입을 차례를 기다리고 있다. 

 

하산길에도 호젓한 사진을 찍기가 곤란할 정도로 등산객들로 붐빈다. 사진을 찍고 나면 몇 명이 지나가고 하여, 길이 조금 넓고 한가한 곳이 나오면 사정없이 달려 내려와 촬영 시간을 벌어야 한다. 우리 일행을 만날 수 가 없고 계속 교체되는 낯선 사람들과 함께하는 산행길이다. 정상부에도  간혹 때깔 고운 단풍들이 미련을 간직한 체 남아있다. 뒤돌아 보니 나무 사이로 지나온 노인봉의 정상이 보인다.

 

올라오는 사람들로 붐비어 한참을 기다려야 어쩌다 사람이 없는 호젓한 풍경을 찍을 수가 있다. 이제 계곡의 단풍이 한창 불타는 중간층을 지나는데, 통나무를 세워서 만든 계단길이 이색적이다. 조화를 이룬 연붉은 때깔에 매료되어 있다. 많은 꾼에게 아픈 상처를 드러내놓고 길가에 서 있는 고목의 썩어들어가는 늙은 몸뚱어리 안쓰러운데 가지 끝에는 울긋불긋 고운 자태를 흘린다.

 

나무 계단 길 빨리 뛰어 내려와 찍으려 하니, 어느새 낯선 사람들이 우르르 또 내려온다. 불타는 소금강 단풍 그 붉은 빛깔에 눈이 아린다. 골짜기 단풍 속에는 온통 등산객들이 빼곡히 앉아서 점심을 먹고있는 여기가 낙영 폭포인듯 하다. 날씨가 하도 가물어 폭포에 물이 별로 없다. 물기가 있는 곳엔 빨간 단풍이 더욱 고와 가을 햇살이 비치니 두 눈이 현란하다. 단풍 아래 계곡물 소리가 가을을 울린다.

 

빨간 단풍 때깔에 매료된다. 곧 찬바람이 불면 저 아름다운 잎새를 어이할꼬 맑고 고운 계곡은 평화롭기 만 하다. 주위의 풍광으로 보아 무슨 이름이 있을듯한데 모르겠다. 알아서 무엇하랴. 어차피 대자연 앞에서 인간들이 작은 눈으로 보고 느낀 대로 붙여놓은 하찮은 이름인 것을.

 

요~기가 바로 만물상이로구나, 약 20여 년 전 여름에 소금강 골짜기로 올라와 본 기억이 어렴풋이 난다. 만물상 주변에 단풍이 적당히 익었다. 자꾸만 발길을 붙잡는 만물상 풍경에 꾼들은 넋을 잃고 멍하니 쳐다보고만 있다. 바위 절벽에 붙어 가을 바람에 묘기를 부리는 단풍은 더욱 눈길을 끈다.

 

얼굴이 훤히 드려다 보이는 맑은 물 위에 오색 단풍이 수를 놓은 곳 저녁 햇살이 비치는 풍경 황홀하게 아름답기만 한데, 커다란 카메라를 여기저기 설치하고 전문 사진사들이 한 작품 찍겠다고 진을 치는 이곳이 바로 구곡담인가 보다. 구룡폭포가 주위 단풍과 잘 어우러진다. 상부 폭포와 하부 폭포 두 개의 폭포가 이어지는 구룡폭포 역시 인기가 좋아 주위에 인파들로 붐빈다. 

 

조기~ 아래가 식당 암이란다. 식당암 바위에 한문으로 새겨진 글씨체 참 아름답다. 한 시절 잠시 명산대천을 찾아 풍류를 즐기다가 지금은 바람처럼 가고 없는 옛 선비들의 이름만 바위에 깊이 새겨져 긴 세월 이어간다. 평평한 바위들이 조화를 이룬  식당암의 전경 정말 밥맛 나겠다.

 

금강사 대웅전 앞  전경 아늑하다. 염불 소리 들리는 금강사의 아늑한 전경 아름다운데, 대웅전 추녀 끝에 가을 석양이 걸린다. 여기가 "십자소"인 듯한데, 물가에 쌍쌍이 앉아 노니는 연인들 모습 정겹기만 하다. 골짜기 출구에 소금강임을 알리는 표지석에는 "꽃은 평화의 상징, 나무는 희망의 징표"라는 의미 있는 글귀가 새겨져 있다.

 

소금강 주차장에 도착하여 세워진 모든 버스를 둘러보았으나 타고온 관광버스가 없어서 주위 가계에 물어보니, 저기~ 아래로 한참 내려가면 또 주차장이 있다고 하여 1.2 Km를 더 걸어 내려와 버스에 도착하니 16시 정각이다. 산행시간 5시간 30분 소요되어 자동차에 돌아오니 노인봉 산행을 하지 않고 소금강 계곡 관광만 한 B조 6명이 기다리고 있다. 오늘 산행도 내가 1등이다.

 

오늘같이 국립공원 등 인파가 북 적 되어 밀리는 산행길, 발길이 많이 닿아 반들반들 한 등산로는 호젓한 오솔길의 취향에 전혀 맞지 않는 산행인 샘이다. 잠시 후 푸짐한 생선회 안주에 하산 주를 시작하여 회원 전원이 하산을 완료한 17시 30분까지 기다리는 동안에 어느덧 은근히 취해 있다.

 

나중에 하산한 회원들이 하산 주 나누고 18시가 조금 넘어서 사방이 어두워질 무렵에야 포항을 향해 출발하여, 예정시간보다 2시간 정도 늦은 밤 11시경 포항에 도착하면서 노인봉 산행의 기나긴 여정을 마무리해 본다. 하산 주로 얼큰이 취한 그 기운으로 피곤함을 잊은 체 다음 날 새벽 3시까지 기를 쓰고 산행기를 정리하는 오솔길도 이제는 서서히 산을 즐길 줄 아는 그런 산꾼으로 변모해 가고 있는가 보다. (2006.1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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