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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가위 추억

호젓한오솔길 2009. 10. 7. 21:56

 

 

한가위 추억

 

 

                    솔길 남현태

 

 

오늘부터 추석 연휴가 시작되어서 고향에 갈 준비를 하다가 지난 추석에 담아다 홈피에 올려놓은 사진들을 들여다보니 매년 추석 명절에는 똑같은 일이 반복되는 듯하다. 아버님이 돌아가시고 처음 맞이한 2006년 추석 풍경에 잠시 마음이 머물러 본다.

 

추석 하루 전날(10/5일) 아침 일찍 시골 고향집에 도착하니 맨 먼저 반겨주는 것은 골목 길과 담장 밑 여기저기에 어머님이 가꾸어 놓은 가을의 꽃 황국화 향기가 물씬 가을 내음을 풍기며 반겨준다. 국화향기가 가득 풍기는 장독대 아래에는 봉숭아도 아직 몇 포기 남아 있고, 맨드라미는 딱 한 포기만 남아있다. 홍초도 이제는 마지막 꽃을 피우며 아래쪽에는 열매가 맺어 있고, 담 밑에 보드라운 가을 상추가 입안에 침을  가득 고이게 한다.

 

춘천에 살고있는 동생 가족은 아직 도착하지 않았다. 핸드폰으로 연락해보니 오는 도중 안동시 길안면에서 뒤차가 들이받아 가벼운 교통사고를 당하여 처리 중이란 말에 어머님은 벌써 다치지나 않았는지 하시며 안절부절 걱정이 대단하시다. 지루한 기다림과 걱정 끝에 낮 12시경 동생 가족들이 도착하여 점심을 먹고 할아버지, 할머니 산소와 아버님 산소에 석묘를 다녀오면서 금년 추석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들국화가 흐드러지게 핀 아버님 산소에서 휴가 나온 큰아들 경욱이와 래균이 모습 4촌 간에 정겹다.

 

추석날(10/6일) 아침에 일찍 일어나 뒷동산 언덕배기(통점재)에 신작로를 따라 올라본다. 향로봉 위에는 태양이 떠오르고, 구름과 엉켜서 경관을 연출한다. 억새와 야생화 사이를 노닐다 보니 시간이 너무 흘러버렸다. 발걸음을 재촉하여 내려오니 재종 형님들은 벌써 차례를 지내러 우리 집에 와 계셨으며 동생이 차례 준비하고 있었다.

 

옛 날에 어릴 적에는 시골에 친척집들이 많아서 명절 차례를 여러 집 지내다 보니 오전 내내 차례를 지내야 했으므로 명절날은 아침 일찍부터 차례 준비를 서둘렀다. 그러나 지금은 모두들 포항과 대구 등지로 떠나가고 이제는 시골에는 우리 집과 재종 형님네 집 두 집밖에 없어 그렇게 새벽부터 서둘 이유가 없다. 먼저 우리 집에서(할아버지, 할머니, 아버님) 차례를 지내고, 재종 형님네 집에 가서(당숙부, 당숙모) 차례를 지내면 끝이다.

 

차례를 지내고 나면 우리 집안에 또 하나의 이벤트가 있다.  증조부 부터~ 8대조까지 산소에 벌초 겸 석묘가는 일이다. 옛날에는 묘답이 있어 관리를 맡겼으나 세월이 흘러 묘답을 붙이려는 사람들이 없어,  한동안 추석 전에 자손인 친척들이 모여서 벌초를 해 왔었으나 그것도 각지에 흩어져 사는 친척들이 한꺼번에 모이기가 어려워 얼마 전부터 추석날 차례를 지내고 오후에 집집마다 대표로 1명 이상 산소에 모여서 벌초와 석묘를 하기로 중지를 모은 것이 지금을 잘 지켜지고 있으며, 일 년에 한 번씩 친척들이 모여서 조상을 기리는 만남의 장이 되어가는 보람있는 집안 행사이다. 

 

경북 청송군 현동면 월매리의 제법 높은 산 중턱에 있는 보텀산소 라고 불리는 8대종와 6대조 산소의 석묘를 마치고 청송군 현동면 눌인 3리에(콩밭골) 산 중턱에 있는 7대조 산소로 향한다.

 

산소 뒤아 박힌 바윗돌에 호박이 있어 호박 산소 라고 도 불린다. 7대조 산소의 석묘를 마치고 다시 처음 8대조 산소의 근처인 능남에 있는 5대조 산소로 향한다. 거기에는 고조부와 증조부 산소도 함께 있다 원래는 높은 산 능성이 곳곳에 흩어져 있던 산소들을 몇 년 전에 모두 이장하여 한곳에 모셔다 놓았다.

 

가는 길가에 과수원의 사과가 하도 탐스러워서 그냥 지날 수가 없어, 청송 사과의 빨간 때깔을 카메라에 담는 데 달콤한 냄새가 솔솔 나는 것이 그냥 꿀물이 쫄쫄 흐른다.

 

 

오늘은 차를 두고 재종질의 차를 함께 타고 간 덕에 간간이 복주로 마신 막걸리 몇 잔으로 어느덧 술기운도 살살 오르고  석묘가 끝나고 모두들 모여서 음복을 하면서 서로 정겨운 이야기들로 산소 주위가 분주하다.

 

친척이지만 처음 오는 사람들도 많아 서로의 가족들을  소개하며 인사를 나누는 시간을 가지고, 오늘은 아쉬운 작별을 하고 내년에 여기서 또 만나기로 약속을 하며, 석묘를 마치고 시골집에 돌아오니 날이 저물어 추석날의 바쁜 오늘 일과를 마무리한다. 어느덧 동쪽 내연산 향로봉 위에 한가위 보름달이 두둥실 떠오르고 아들과 조카들의 불꽃놀이 즐기는 모습 바라보면서, 한가위 아래 고향의 밤은 점점 깊어만 간다.

 

휘영청 밝은 고향의 보름달을 뒤로하고, 시골에는 동생 가족과 어머님을 남겨두고 밤이 깊어서 우리는 포항집으로 향한다. 하지만, 돌아오는 길에 차가 밀리어 월포리에서부터 해안가 도로로 돌아서 오는데, 거센 파도가 몰아치는 밤 바다에 비치는 한가위 달빛이 너무나 아름답다. 오는 도중 파도 치는 칠포리 해안가에서 물에 비치는 달빛의 황홀함을 바라보다가 차에서 내려 밤 바다를 향해 카메라를 겨누어 본다.

 

그렇게 재바르게 갔다가 돌아온 고향에서의 맞은 추석이다. 좀 더 편안하고 느긋하게 머물 수도 있었으련만  사는 게 뭐가 그리도 바쁜지 아니면 불편한지 고향에서 오래 머물지 못하고 그렇게 조급한 마음으로 갔다가 돌아오고만 고향이었다. 고 3이라 시골에 함께 가지 못한 둘째는 학교에서 밥 먹을 곳이 없어 사발면으로 추석을 때웠단다. (2006.1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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