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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무주 덕유산·진안 마이산 눈꽃여행

호젓한오솔길 2010. 12. 31. 21:44

 

<여행> 무주 덕유산·진안 마이산 눈꽃여행


"곤돌라 타고 오른 천상의 눈 나라, 난생처음이에요"
아무리 추워도 아이들은 신난다

- 눈이 보고 싶다는 어린이들과 '눈의 천국'으로 특별한 겨울 눈꽃여행 출발
- 무주리조트서 곤돌라 이용해 손쉽게 향적봉 올라
- 진안 마이산 탑사도 눈 올 때 가면 신비로움 더해

 
  전북 무주군 무주리조트에서 관광곤돌라를 이용, 설천봉까지 오르면 덕유산 정상인 향적봉까지는 산책하듯 걸어 20분 만에 갈 수 있다. 눈꽃 여행에 나선 어린이가 엄마와 함께 향적봉 아래에서 즐거워하고 있다.
겨울방학을 맞은 초등학교 2학년생 딸이 푸념한다. "아빠, 부산의 겨울은 정말로 시시해요. 서울에는 눈도 펑펑 많이 왔다는데 부산에서는 아직 눈도 한 번 못봤잖아요."

갑작스러운 딸의 이 말에 잠시 어안이 벙벙하다. "허 그래? 그래도 부산은 서울보다 따뜻하잖아"라고 둘러대 본다. 그러자 딸은 "그래도 싫어요. 겨울에는 서울에서 살고 싶어요."

그렇다. 성인들이야 겨울 첫눈을 맞을 때나 잠시 반가운 마음이 들 뿐이다. 눈이 많이 내리면 교통대란에다 눈 치울 일 등의 걱정이 앞서는 것이 통상적이건만 자라나는 아이에게는 다르다. 그들에게 어른과 같은 걱정이 있을 리 만무하다. 아무리 많이 내려도, 아무리 자주 봐도 지겹지 않은 것이 하얀 눈이다. 오죽하면 이제 갓 초등학교 저학년생인 딸 소원이 '동네에서 눈사람 한 번 만들어 봤으면 좋겠다'는 것으로 갑자기 바뀌었을까.

 
  설천봉의 상징인 상제루 주변에서 여행객들이 눈길을 걷고 있다.
부산 어린이는 사실 일부러 시간을 내 눈이 많이 내린 곳으로 가족여행이라도 떠나지 않으면 겨울 한 철이 다 가도록 눈 한 번 보지 못하고 지나기 일쑤다. 그래서 연말을 맞아 아이들 눈 구경이라도 실컷 할 수 있도록 해 줄 만한 곳이 없을까 생각을 해봤다. 그래 떠나자. 따뜻한 고장에 살면서 눈이 보고 싶으면 눈 많은 지역으로 여행을 떠나면 되지. 그리고 역시 눈 구경은 '무진장'이 최고 아닐까. 무주 진안 장수군의 앞글자를 따서 '무진장'이라고 일컬어지는 이 지역은 전북 내륙으로 무주의 덕유산 장수의 남덕유산과 서봉(장수 덕유산), 진안의 마이산 등에 겨울철 내내 눈이 쌓여 있는 곳이기도 하다. 그래서 "눈이 무진장 많이 온다"는 말이 생겨났을 정도다. 예전 같으면 교통이 불편해 선뜻 무진장 지역으로 길을 떠나기도 쉽지 않았지만, 요즘은 대전~통영 고속도로와 장수~익산 고속도로가 뚫려 있어 부산에서도 어려움 없이 접근할 수 있다. 당일 여행으로도 충분히 다녀올 수 있게 된 것이다. 이왕이면 할머니 할아버지와 함께라면 더 좋겠다.

■곤돌라로 오른 눈의 천국…덕유산 설천봉· 향적봉

 
  덕유산 설천봉에서 향적봉으로 오르는 길. 눈꽃 터널을 연상케 한다.
대전~통영 고속도로 덕유산IC에서 내려 무주리조트 방향으로 차를 몰고 달린다. 주변 하늘은 맑지만, 우측 멀리 보이는 덕유산 정상 향적봉(1614m)의 하늘은 짙은 회색의 눈구름으로 덮여 있다. 덕유산IC에서 20여 분 걸려 도착한 무주리조트. 연말을 맞아 스키를 즐기기 위해 찾아온 스키어들로 북적인다.

이곳에서 미니 케이블카처럼 생긴 관광곤돌라를 타고 해발 1520m인 설천봉까지 쉽게 오를 수 있다. 주말이나 휴일에는 곤돌라 이용객이 많아 10분 정도 줄을 서서 기다려야 할 정도로 인파가 붐빈다. 1편당 최대 8명이 탑승할 수 있는 곤돌라는 총 길이가 2659m에 달하고, 초속 5m의 속도로 눈 덮인 덕유산 정상부로 오르는 시설이다.

성인 1만2000원, 어린이 9000원인 왕복 이용권을 산 후 줄을 서서 10여 분 기다린 끝에 곤돌라에 올랐다. 창문 밖으로 내려다보면 스키어들이 베이스캠프를 향해 질주하며 내려가는 모습이 눈에 들어와 직접 스키를 타지 않는 이들에게도 짜릿한 쾌감을 준다. 난생처음 곤돌라를 타 보는 아이들이 자신들의 발밑에서 내달리는 스키어들을 보면서 "이야, 신난다"는 말은 연방 내뱉으며 흥분을 감추지 못한다. 사실 일평생 살아오면서 곤돌라를 처음 타 본다는 할머니는 "금강공원 케이블카와 비슷한 것 같기는 한데 엄청나게 길기는 기네"라며 흐뭇한 미소를 짓는다.

10여 분 동안 덕유산의 절경을 감상하다 보면 설천봉 곤돌라 승강장에 도착한다. 곤돌라에서 내리자마자 싸늘한 공기가 피부를 할퀴는 듯하다. 가져간 간이 온도계에서는 한낮인데도 영하 13도를 가리키고 있다. 바람까지 세차게 불어 체감온도는 그보다 더 낮을 터. 설천봉의 명물인 상제루 누각이 하얀 옷으로 갈아입은 채 손님을 맞는다.

 
  덕유산 향적봉대피소 부근 고사목.뒤쪽 봉우리가 향적봉이다.
설천봉 레스토랑 대형 장작 난로 가에서 잠시 몸을 녹이며 앞으로 20분 정도 걸어서 올라야 할 향적봉까지 갈 준비를 한다. 아이들이라고 예외는 없다. 비록 추운 날씨지만 의지만 있다면 엄마 아빠와 함께 충분히 오를 수 있다고 설득하며 신발에 아이젠을 착용시킨다. 누구라도 겨울철 덕유산에 오르기 위해서는 아이젠 착용은 필수다. 가능하다면 스패츠까지 갖추는 편이 더 좋다.

설천봉에서 향적봉까지 오르는 길은 수년 전보다 많이 수월해졌다. 산책로와 마찬가지로 길이 잘 정비됐고, 나무 덱과 안전을 위한 난간이 많아 어린이나 노약자도 별 어려움 없이 오를 수 있게 된 것이다. 나뭇가지에 핀 눈꽃이 터널을 만들어 그 속을 걷는 사람들은 마치 눈의 천국으로 들어가는 듯한 착각을 일으키게 한다.

천천히 20분쯤 걸었을까. 갑자기 사방이 확 트인 봉우리다. 향적봉. 넉넉한 품을 지닌 덕유산의 최고봉이다. 인근 적상산은 물론 가야산 지리산 등 주변의 큰 산들과 남쪽으로 삿갓봉 남덕유산 서봉 등이 흰 눈에 덮인 채 모습을 드러낸다. 조망이 천하일품이다.

덕유산 정상에서는 풍경 감상을 하고 그냥 되돌아 내려와도 되지만, 이왕이면 주능선을 타고 10분쯤 더 진행해 향적봉 대피소까지 가보는 것이 좋다. 큰 산의 높은 곳에 있는 대피소 주변 풍경과 분위기를 흠뻑 느낄 수 있을 뿐 아니라 실제로 눈 덮인 산의 느낌도 향적봉 정상보다 더 깊이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대피소로 향하는 길에 처연하게 서 있는 고사목들도 만날 수 있다. 내심 걱정을 했지만, 추위에도 아랑곳없이 씩씩하게 잘도 걷는 아이들이 대견하게 느껴진다.

■신비의 마이산 탑사와 솜옷 입은 '하얀 돌탑'

 
  전북 진안 마이산 탑사에 눈이 내려 신비감을 더한다.
천상의 설국(雪國), 덕유산 향적봉과 설천봉을 뒤로하고 진안 마이산으로 향했다. 대전~통영 고속도로 덕유산IC로 진입해 진주 방향으로 가다가 장수분기점에서 장수~익산 간 고속도로로 갈아타고 10여 분 달리면 진안IC다. 이곳 요금소를 빠져나오면 눈앞에 말의 귀를 닮은 암봉인 마이산이 성큼 다가선다. IC를 빠져나오자마자 왼쪽으로 꺾어 10분쯤 가면 우측으로 마이산 도립공원 표지판이 있다. 미국 셰도나 국립공원과 맞먹는 땅의 기운을 가진 곳으로 유명한 마이산은 웬만한 성인이라면 한두 차례 다녀 갔을 곳이지만, 아이들 눈에는 생소하고 특이한 곳으로 비칠 것이다.

마이산 입구 주차장으로 들어설 때 마침 하늘에서는 흰 눈이 펑펑 쏟아진다. 커다란 눈송이가 순식간에 세상을 하얗게 물들인다. 아이들이 노래를 부른다. "퍼~얼 펄 눈이 옵니다. 하늘에서 눈이 옵니다. 하늘나라 선녀님들이 송이송이 하얀 솜을, 자꾸자꾸 뿌려줍니다."

얼마 만에 들어보는 동요인가. 40대 초반에 들어선 아빠도 어렸을 적 이 노래를 간간이 부르곤 했다는 말을 하면서 함께 마이산 탑사를 향해 걷는다. 주차장 인근의 금당사를 지나 탑사로 가는 1㎞ 남짓한 길은 훤히 뚫린 넓은 도로다. 아이들이 달려가더니 길가에 쌓인 눈을 뭉쳐 순식간에 눈사람을 만들며 신 나게 논다.

 
  돌을 쌓아 만든 마이산 탑사의 돌탑에 함박눈이 쌓였다.
탑의 그림자가 비쳐 탑영재라고 불리는 저수지를 지나 '한국의 불가사의' 중 하나로 일컬어지는 탑사에 닿으니 눈발이 더욱 거세다. 19세기 말과 20세기 초에 걸쳐 이갑룡 처사가 30여 년에 걸쳐 온 정열을 쏟아 만들었다는 탑사의 80여 개 돌탑이 암·수마이봉을 배경으로 새하얀 솜옷으로 갈아입었다. 수박 크기의 굵직한 돌에서부터 동전만 한 크기의 작은 돌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돌이 겹쳐지고 포개져 만들어진 탑사의 돌탑들 앞에서 아이들은 벌어진 입을 다물 줄 모른다.

이갑룡 처사가 팔진도법과 음양이치법에 따라 축조를 하고 상단 부분은 기공법(氣功琺)까지 이용해 쌓았다는 80여 개의 '하얀 돌탑' 사이로 아이들이 토끼처럼 이리 뛰고 저리 뛰며 한바탕 술래잡기 놀이를 한다. 할머니는 "너무 뛰어다니면 못 써. 여기는 그래도 부처님 계시는 절집이야"라며 아이들을 달래 보지만 영 들을 태세가 아니다. 보다 못 한 아이들 엄마가 나서서 겨우 진정시킨다.

마이산과 탑사의 특성과 내력에 대해 이야기하며 아이들에게 물었다. "어때, 원 없이 눈 구경 하고 실컷 눈밭에서 뒹굴었으니 소원 풀렸어?" "아뇨. 다음 주에 또 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