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산] <285> 무주 덕유산 투구봉 |
산꾼도 드문가 보다 … 산 높고, 골 깊은, 눈 덮인 백두대간 |
이재희 기자 |
덕유산은 산이 높고 골이 깊어 그 끝을 알지 못하겠다. 남쪽에서 지리산을 출발해 올라온 백두대간이 또 한 번 위용을 자랑하니 남덕유에서 북덕유까지 이어지는 20㎞의 장쾌한 능선이다. 대간은 중봉 못 가 백암봉에서 방향을 틀어 빼재로 향한다. 그 산줄기 또한 늠름하고 수려하여 산꾼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경남 거창군과 전북 무주군 경계에 솟아 한반도의 굵은 뼈대를 형성하는 백두대간을 다녀왔다. 해발 1,200m의 산봉우리를 몇 개나 넘었는지 모른다. 그저 이곳에서는 이 정도 높이는 그냥 평지(?)일 따름이다. 덕이 많고 너그러운 어머니산이라 불리는 덕유산. 그 넉넉한 자락에 안긴 무주 투구봉(1,276m) 눈밭을 찾아 한바탕 뒹굴었다.
무주 투구봉을 찾아가는 길은 그 어머니산인 덕유산을 가는 길이었다. 백두대간 빼재(신풍령)에서 산행을 시작하여 대간 능선을 따라 1039봉(빼봉)~갈미봉~대봉 갈림길~투구봉 능선~투구봉(삼공리 갈림길)~상오정 능선~소나무 밭~무덤~상오정가든 9.5㎞를 5시간 동안 걸었다.
거창 고제면에서 빼재 고갯마루까지는 차로 한참을 꼬불꼬불 올라갔다. 고갯길에는 터널공사가 한창이었다. 거창과 무주를 관통하는 터널이었다. 눈이 조금이라도 오면 차량이 통제되는 가파른 고개이고 보니, 터널은 늦은 감이 있다. 이 길이 뚫리면, 빼재 옛길은 문경의 이화령처럼 고즈넉한 길로 남아 대간꾼들의 안부만 물을 것이다.
빼재는 이름이 많다. 신풍령이라고도 하고, 수령(秀嶺)이라 새긴 커다란 돌도 세워 놓았다. 백두대간길을 걷는 열풍이 일자 그저 거창에서 무주로 가는 고개로만 여겼던 이곳에 산꾼들의 발길이 잦아지기 시작했다. 이런 여론을 반영하는지 덕유산국립공원에서는 산불조심 기간이 아니면 산길을 열어두고 있다.
산림청에서 세운 백두대간비를 뒤로 하고, 임도처럼 난 길을 따라 오르니 이동통신탑이 여러 개 세워져 있다. 여기서부터 실질적인 백두대간 능선이 시작된다. 통신탑 뒤로는 방금 지나온 도로가 함정처럼 움푹 파여 있다. '진작 터널을 뚫었으면 대간을 이렇게 파헤치지 않았어도 될 텐데….'
눈이 내린 지 일 주일 정도 지났는데도 능선에는 잔설이 여전하다. 눈이 녹다가 얼어 그리 오르막이 심하지 않은 데도 만만찮다. 자연히 걸음이 느려진다. 빼재를 출발한 지 35분 만에 빼봉이라 부르는 1039봉에 도착했다. 덕유산 주능선이 눈앞에 펼쳐지더니 이내 뿌연 연무에 가려 사라진다.
내리막길에는 눈이 한결 많이 남아 있다. 산행대장이 미끄럼을 탄다. 비료포대라도 하나 있다면 멋진 눈썰매장이 되겠다. 10분을 더 걸어 헬기장을 지난다. 산세가 조금 뚜렷해진다. 길은 오르내림을 반복한다. 일부 구간은 너무 미끄러워 조심스럽다. 아이젠을 착용한다. 한결 낫다.
헬기장을 지나 20분 정도를 올랐을까. 작은 봉우리에 잘 생긴 반송 한 그루가 대간을 지키며 서 있다. 소나무 아래엔 유독 솔방울이 많다. 이렇게 바람이 세찬 계절에 솔방울을 쏟아내 멀리 자손을 번성시키려는 생명의 의지인 것인가.
장갑을 두 개나 꼈는데도 손끝이 시리다. 방한 기능이 뛰어난 장갑을 갖추기가 쉽지 않다. 어떤 산꾼은 아예 부엌용 비닐장갑을 갖고 다닌다고 한다. 비닐인 만큼 방수·방풍 기능이 최고다. 속 장갑과 겉 장갑 사이에 끼면 웬만한 추위는 다 견뎌낸다. 물론 땀이 차는 걸 피할 수는 없다.
반송과 헤어진 지 25분 만에 갈미봉에 도착했다. 거창군에서 작은 정상석 하나를 올려 놓았다. 산이야 고장의 경계에 있지만, 어느 곳의 산이 되는가는 그 산 아래 사는 사람들의 관심에 달려 있다. 사는 곳에서 잘 보이는 산은 그 고장의 산이 되기 쉽다. 갈미봉도 무주와 거창의 경계에 있지만, 무주 쪽에서는 산이 깊어 바로 보이지 않는다. 반면, 거창 사람들은 잘 올려다볼 수 있다.
갈미봉을 지나자 다소 가파른 산길이 이어진다. 손과 발을 총동원하여 빙판을 오른다. 30분 만에 대봉에 다다랐다. 대봉에서 백두대간은 멀리 덕유산 백암봉을 향해 이어지지만, 오늘은 무주 땅으로 한발 깊숙이 들어가 투구봉으로 가기로 한다.
투구봉 능선에 들어서자마자 눈처마가 1m 이상 쌓여 스틱이 쑥쑥 들어간다. 길은 묻혀 버렸고, 사람들의 왕래가 없어 살짝 두렵기도 하다. 그나마 눈처마 구간을 50m쯤 우회하자 능선으로 산길 흔적이 있다.
백두대간 주능선과는 달리 투구봉을 찾는 산꾼들은 드문가 보다. 덕유산이 늠름한 산세를 한 번쯤 보여줄 만도 한데 날씨는 점점 흐려진다. 급기야 살짝 싸락눈이 뿌린다. 인적은 찾아볼 수 없고, 끊어질 듯 이어지는 투구봉 능선길을 타박타박 걷는다.
1시간 10분 만에 투구봉에 도착했다. 나뭇가지에 플라스틱 명패 하나가 이곳이 투구봉임을 알려주고 있다. 사람의 왕래가 많지 않은 산길을 가다가 가장 반가운 것은 산악회에서 달아놓은 리본이다. 또 길인지 아닌지 자꾸 의심이 들기 시작할 때는 버려놓은 음료 캔이나, 막걸리통도 위안이 된다.
투구봉에서 무주 삼공리로 가는 길이 있지만, 능선이 길어 상오정마을로 가는 길을 택했다. 산은 점점 깊어지고, 간간이 눈발이 날린다. 보온통의 국마저 식어 밥을 먹었으나 몸을 한껏 데워주지는 못했다. 몸이 자꾸 오그라드니 걸음이 서툴다. 급기야 내리막 빙판에서 '트위스트'를 추고 말았다. 끝내 넘어지지는 않았지만, 배낭 옆구리의 물통이 50m 정도 먼저 하산을 해버렸다.
한바탕 홍역을 치르고 나니 의기소침해진다. 1시간 30분을 걸었는데 길이 희미해진다. 상오정으로 가는 능선은 매우 약해 단번에 찾지 못했다. 내려갔던 길을 10분쯤 되돌아오니 힘이 빠진다. 능선에서부터 리본을 촘촘히 단다. 세 갈래 굵은 가지를 가진 잣나무가 서 있는 무덤이 그리 반가울 수 없다.
25분을 더 내려서자 산죽밭이다. 자신감 있게 하산을 한다. 산죽밭의 끝은 잘 다듬어진 무덤이다. 무덤을 지나니 간벌을 해놓은 비탈 아래로 임도를 만난다. 능선을 따라 곧장 가는 길이 있지만, 임도를 따르는 편이 좋다. 7분을 더 내려서면 상오정가든 마당을 지나 도로와 만난다. 문뜩 뒤돌아보니 지나온 산이 웃는다. 산행 문의: 라이프레저부 051-461-4164. 박영태 산행대장 011-9595-8469. 글·사진=이재희 기자 jaehee@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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