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북의 피어린 항일투쟁에서 녀성들도 남성들과 마찬가지로 일제와 영용히 싸웠다.
화룡현 약수동부녀구국회 주임이였던 김순희(金順姬)는 1932년 11월에 적들의 《토벌》에서 체포된후 조직의 비밀을 수호하기 위하여 자기의 혀를 깨물어 끊고 마지막까지 강의한 의지로 적들과 싸웠다. 적들은 김순희 등을 빈집에 밀어넣고 불을 단후 기관총소사를 들이댔다. 김순희는 이렇게 22세의 꽃나이에 장렬하게 최후를 마쳤다.
중공동만특위 부녀위원이였던 김영신(金英信)은 일찍 중공왕청현위원회 초대 부녀위원을 맡았었다. 1932년 겨울 그는 화룡 평강구에 가서 사업하던중 적들에게 체포되였다. 그는 자신의 절개를 굽히지 않고 적들과 싸우다가 영용히 희생되였다.
본명이 김금주이며 유명한 조선족혁명가 양림의 부인이였던 리추악(李秋岳)은 일찍 1925년 광주혁명근거지의 동정선전대에 참가한 유일한 조선족녀성으로서 같은 해에 남편과 함께 중국공산당에 가입하여 첫 조선족녀당원으로 되였다. 그는 1927년에 남편과 함께 쏘련에 가서 학습하고 1930년에 동북에 와서 동북의 혁명투쟁에 참가하였다. 그는 중공만주성위원회 녀성부에서 사업하다가 중공주하중심현위원회 녀성위원직을 맡고 사업하였다. 그후 그는 방정, 통하 지구의 당책임자로 가서 유격구를 개척하다가 1936년 8월에 적들에게 체포되여 영용히 희생되였다.
항일련군 제6군 피복공장의 공장장이였던 배성춘(裴成春)은 일찍 중공탕원중심현위원회 위원으로 있으면서 《항일화장강련대》에 가입하여 항일선전사업을 하였으며 후에는 탕원유격대에 참가하여 줄곧 옷공장에서 사업하였다. 매사에서 전사들을 살뜰히 보살펴주는 그를 항일전사들은 《큰누나》라고 불렀다. 1938년 11월 23일에 그는 보청현 장가요에서 후방병원일군들과 함께 적의 포위를 돌파하다가 영용히 희생되였다.
항일련군 제1로군에서 《녀장군》으로 불리운 허성숙(許成淑)은 제2군 제4사의 녀기관총사수였다. 그는 선후로 간삼봉, 서북차, 대사하 등 전투에서 영웅적기개를 떨쳤다. 1939년 8월 23일 대사하전투때 그는 통양촌에서 적의 증원병들을 혼자서 저격하다가 영용히 희생되였다.
유명한 반일의사 황병길의 둘째딸인 황정신(黃貞信)은 훈춘현 연통랍자남구 당지부 녀성위윈이였다. 1933년 5월 현당위원회 서기 서광 등과 함께 훈춘 삼도구에서 가서 구국군쟁취사업을 하던중 적들의 포위에 들어 싸우다가 부상을 입고 쓰러진후 구사일생으로 살아나 계속 항일사업에 발벗고 나섰다. 1934년 정월 초하루날 그는 김인순, 안세지(만족) 두 자매와 함께 적들의 《토벌대》의 추격을 당하다가 장렬히 희생되였다.
원 중공화룡현위원회 서기 김일환의 부인이였던 리계순(李桂荀)은 남편과 함께 차창자항일유격근거지를 개척하는 사업에 참가하였으며 후에 항일련군에 참가하여 제2군 6사에서 후원사업을 하였다. 1937년 12월 그는 장백현 곰골밀영에서 적들에게 체포된후 놈들의 갖은 혹형과 유인에 굴복하지 않고 싸우다가 1938년 1월에 영용히 최후를 마쳤다.
남만항일투쟁의 지도자의 한사람인 리동광의 부인이였던 김로숙은 일찍 남만에서의 유일한 녀성무장단체인 부녀대를 조직하여 적과 싸웠다. 항일련군에 입대한후 그는 홍석랍자, 금천하리 항일유격근거지에서 부대의 후원사업을 하였다. 1936년 10월 그는 제1군 군수부장 엄필순과 함께 후원부대를 거느리고 물자구입을 하던중 집안현 대청구에서 일본군 수비대와 맞다들어 싸우다가 영용히 희생되였다.
일찍 훈춘현 동포대촌 당지부 녀성위원, 연통랍자 후루베서골 녀성구국회 주임으로 있었던 안순화(安順花)는 항일유격근거지건설사업에 적극 뛰여들었다. 후에 항일유격대의 재봉대에서 사업하다가 동북인민혁명군에 입대하여 후원사업을 하였다. 1937년 3월, 놈들의 《토벌》에서 부상을 입고 체포된 그는 적들이 나무꼬챙이를 몸에 박는 등 갖은 혹형에도 굴하지 않고 굳은 절개로 끝까지 싸우다가 장렬히 희생되였다.
목단강지류인 우쓰훈강에 영용히 몸을 던진 항일련군 여덟 녀투사가운데의 한사람인 안순복(安順福)은 일찍 항일련군 제4군 피복공장의 책임자로 있으면서 부대의 후원사업을 하였다. 후에 제5군 1사에 전근되어 서란방면으로 진군하다가 보청일대로 되돌아오던중 1938년 10월 우쓰훈강변에서 적들과 싸우게 되였다. 마지막 총알 한알까지 적들에게 명중탄을 안긴 그들 여덟 자매는 영용히 강에 몸을 던져 장렬하게 희생되였다.
안순복과 같이 우쓰훈강에 몸을 던져 최후를 마친 리봉선(李鳳善)도 항일련군의 우수한 조선족녀투사였다.
항일련군 제2군 제6사에서 재봉대 책임자로 있던 최희숙(崔姬淑)은 부대의 군복짓기를 위해 재봉기를 등에 지고 다니며 맡은바 사업에 힘썼다. 1941년 2월 행군도중에 연길현 용신구에서 적에게 체포된 그는 룡정에 압송되여 놈들의 갖은 혹형에도 굴하지 않고 싸우다가 장렬히 희생되였다.
이밖에도 홍혜순, 문두찬 등 수백명을 헤아리는 녀성투사들이 동북의 항일투쟁에서 자신의 귀중한 생명을 바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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