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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로 마실길 한바퀴 변산의 변신이 한눈에

호젓한오솔길 2011. 3. 7. 08:40

 

자전거로 마실길 한바퀴 변산의 변신이 한눈에

 

 

변산 기행… 격포 석양 격정 풍경

 

잠깐, 두 눈을 비볐다. 멀리 시커먼 구름이 빠르게 다가왔다. 가까워질수록 구름의 면체(面體)는 점의 군집으로 허공을 까맣게 물들였다. 가창오리 떼였다. 날갯짓 소리가 환영(幻影)처럼 쏟아졌다. 한겨울 추위를 피해 남하했던 그들이 다시 북진(北進)하고 있었다.

산이 사방을 에워싸 골마다 꽝꽝 얼음이 얼어 있던 내륙의 한복판에선 드문드문 꽃이 피었다. 하얗고 가녀린 꽃, 변산 바람꽃이었다. 꽃과 철새의 날갯짓으로 봄이 변산반도를 지나고 있었다.

변산(邊山)은 오래된 관광지다. 채석강과 적벽강, 내소사는 변산의 대표 관광지다. 그러나 이들로만 상징되던 변산의 시대는 갔다. 최근 변산엔 놀거리가 많아졌다. 시작은 마실길이다. 2009년 10월 처음 생긴 이후로 입소문 따라 찾아온 많은 이들이 변산을 걸었다. 이 마실길 중 2구간이 최근 개장했다. 격포항과 모항해수욕장을 잇는 길이다. 이로써 새만금 전시관부터 모항까지 변산반도 대부분을 걸을 수 있게 됐다.

오랜 걷기에 지친다면 자전거로 달려도 좋겠다. 작년 해안도로 따라 자전거 전용도로가 개설됐다. 변산반도국립공원 사무소에서 자전거를 무료로 빌려주니 그저 몸만 가면 된다. 변산에 앞선 계화도 여정은 이번 기행의 덤이다.

땅 밑에서 밀려 올라오는 봄기운으로 변산의 마실길이 말랑말랑해졌다. 염전과 평야가 한없이 몸을 낮추는 곳에 소나무들이 홀로 갯바람을 맞고 있다. 변산은 봄으로 찬란하다.
변산 적벽강. 붉은 바위가 깔린 듯한 해안이 퇴적암 절벽과 어우러진다. 소동파가 시를 지었던 적벽강과 비슷하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변산의 입구, 계화면

가창오리 떼의 군무(群舞)를 본 건 부안 계화면 인근에서였다. 계화면은 부안의 최북단이다. 김제와 경계를 맞대고, 김제처럼 드넓은 평야를 품은 땅이다. 이 무렵 남도의 평야는 새싹의 여린 색으로 봄기운을 끌어올리는 중이다. 날아오른 오리 떼는 그 평야에 내려앉아 몸을 쉬었다. 본래 계화면은 계화도다. 다시 말해 섬이었다. 부안 백합의 원조가 여기다. 그러나 계화는 크게 두 번 바다를 덜어냈다. 1963년 동진강 하구 일대 대규모 간척공사로 바다를 버렸다. 최근 새만금 방조제를 막은 뒤엔 갯벌을 버렸다. 백합으로 유명했던 마을은 이제 계화 쌀로 이름을 낸다.

'도(島)'란 이름과 바다를 잃었으되, 계화는 여전히 어민과 농민의 삶이 공존하는 드문 마을이다. 염전과 평야가 똑같이 숨죽이고 낮게 펼쳐졌다. 그 수평의 풍경 속, 소나무가 군집이나 개별로서 수직을 지향한다.

여기선 어느 길을 택해도 좋다. 대체로 방조제를 잇고 달리는 도로 위 풍경이 뛰어나다. 논길 사이로 접어들면 후드득 산비둘기와 까치가 눈앞을 스친다. 곳곳의 저수지는 저마다 갈대숲을 끼고 주위 풍경을 반영하며 공간을 확장한다. 계화도에서 숨을 골랐다면 이젠 본격적으로 변산을 돌 차례다.

변산 해안가에서 바라다보이는 솔섬의 소나무가 지는 해를 배웅하고 있다. 해안가 까만 바위는 어느새 연초록 파래로 뒤덮였고, 이제는 육지로 연결된 계화에는 바다와 육지의 풍경이 절묘하게 공존하고 있다.(윗쪽부터)

 

늘 변하는 길, 변산 마실길

길을 걷다 온기 어린 바람에 외투를 벗을 때만 해도 그저 따뜻해졌다 생각했다. 갯바람이 얼굴을 간질일 때만 해도 그저 평온하다 생각했다. 그러다 까만 바위가 초록색으로 빛날 때 비로소 깨달았다. 지금 마실길은 봄으로 찬란한 길이다.

파래였다. 완강한 바위틈에 뿌리를 박았다. 파도가 들고 나설 때마다 제 몸을 흔들었다. 먼 파래는 실루엣으로 짙었고 가까운 파래는 연초록으로 빛났다. 수평으로 겹겹이 쌓인 바위가 모두 초록의 스펙트럼으로 눈부셨다.

봄은 생명이 오는 계절이다. 그래서 마실길은 생명으로 충만하다. 파래는 물론 갯것들이 길 위에서 자근자근 움직였다. 따개비와 왜홍합이 바위마다 달라붙었고, 바위게와 소라게가 바위 사이 물웅덩이 속을 지난다. 갯벌의 생명력으로 자꾸만 발걸음이 멈칫한다. 저 갯벌 위에 한 아버지가 모래를 손으로 밀치고 소금을 뿌렸다. 불쑥 맛조개가 고개를 내밀었다. 대나무 같은 껍질을 잡아 빼내자 아들이 환호성을 질렀다. 아버지가 웃는다.

봄으로 찬란하고 생명으로 충만한 마실길은 늘 변한다. 마실길은 갯벌과 해안 절벽을 종횡무진 한다. 썰물이면 물 빠진 펄이 길이고, 밀물이면 해안 절벽 위 오솔길을 걷는다. 그때그때 다른 마실길을 걷는 걸음은 그래서 지루할 틈이 없다. 바다를 면한 길은 펄이거나 바위여서 촉촉하거나 단단하다. 바다에서 먼 길은 보리밭과 마늘밭 혹은 솔숲을 동반한다. 걸어서 풍경의 속도는 더디고 변산 마실길이어서 속도는 느려도 풍경의 변화가 확연하다. 

얼굴을 간질이는 갯바람보다 시원한 봄바람을 맞고 싶다면 격포로 가자. 국립공원 격포분소에서 자전거를 무료로 빌릴 수 있다. 자전거도로도 격포에서 반월마을까지 2.3㎞ 구간이 정비돼 있다. 이 구간은 변산의 절정이다. 얇은 지층이 켜켜이 쌓인 채석강에서 시작, 사자바위를 품은 적벽강과 여해신(女海神)을 모시는 수성당(水城堂)을 지난다.

변산의 마지막 즐거움은 최근 정비를 끝낸 2구간이다. 격포에서 모항까지 나아간다. 해질 무렵 이 길을 걷는 게 좋다. 길의 중간 즈음 바다에 오도카니 서 있는 솔섬 앞이 일몰 명소로 이름났다. 이맘때 다섯 시만 돼도 이미 해변은 일몰을 사진에 담으려는 이들로 빼곡하다. 솔섬의 소나무가 실루엣으로만 남아 제 유려한 곡선을 뽐낼 때 해가 그 사이로 몸을 낮추며 하루의 일정을 마감한다.

 

무질서한 파격미, 내변산

외변산에서 내변산을 향하는 736번 지방도를 타다 깜짝 놀랐다. 멀리서 변산은 출렁이되 평면적이다. 안으로 들어서면 그 평면이 입체로 펼쳐지며 주변을 겹겹이 둘러싼다. 순간 원근감이 확장된다. 드넓은 공간에 기묘한 모양의 암봉들이 들어섰다.

산들로 둘러싸여 내변산은 아직 겨울 같다. 골 사이를 가로지르는 강은 얼어 흐르지 않는다. 그래도 봄은 온다. 내변산에서 봄은 꽃의 형태로 온다. 양지 바른 곳엔 변산 바람꽃과 복수초가 피었다. 두 꽃은 노루귀와 더불어 봄꽃 3총사라 불린다. 복수초는 탐스럽고 변산 바람꽃은 가녀리다. 탐스럽고 가녀린 모습으로 변산의 봄이 온다.

내변산의 절정은 내소사(來蘇寺)다. 내소사는 나무를 빼놓고 말할 수 없는 절이다. 절 앞 전나무 숲길이 그중 하나다. '아름다운 숲'과 '한국의 아름다운 길'에 선정된 바 있다. 다른 하나는 대웅보전이다. 대웅보전엔 사시사철 지지 않는 꽃이 핀다. 정면 8짝 문살에 꽃문양이 새겨져 있다. 연꽃, 국화, 모란 등이 색을 잃고 정갈하다.

 

여행수첩

서해안고속도로 부안나들목→변산·부안 방면으로 30번 국도 합류→봉황교차로에서 우측 방향→서림교차로에서 계화 방면으로 우회전. 표지판을 따르면 계화면이다. 길 따라 직진하면 계화조류지를 지나 705번 지방도에 합류한다. 계화 제2방조제를 옆에 낀 도로다. 해안 따라 내려와 30번 국도를 탄다. 마실길의 시작인 새만금 전시관이 길 위에 있다. 내소사·곰소항도 30번 국도에서 가깝다. 내변산으로 가려면 736번 지방도를 타면 된다.

부안읍내 오페라모텔(063-581-6581)과 격포항 인근 피아노 펜션(063-584-5847), 모항 인근 '소나무에 걸린 노을' 펜션(063-584-7544) 등이 깔끔하다. 격포항 앞엔 대명리조트 변산(063-580-8000)이 있다.

부안관광안내소 (063)580-4434
변산반도 국립공원 격포분소 (063)583-2064
부안군 문화관광과 (063)580-42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