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큼 성큼 봄이 온다
구불구불 다랑이는 '봄의 영토'
남도봄마중 여행―광양·하동·남해
봄이 온다. 발걸음이 가볍다. 그래서 성큼성큼 나아갔다. 봄은 나아갈수록 확연했다. 봄의 표정은 수줍어도 봄의 발걸음은 거침이 없어서 남도 곳곳에 제 발자국을 남겼다. 광양에서 그 발자국은 알록달록했고 남해에선 온통 초록색이었다. 봄을 예비하는 남도 주민들의 품으로, 그렇게 봄은 걸어오고 있었다.
광양과 하동, 남해. 사실 이들이 유명한 이유는 따로 있다. 광양은 매화, 하동은 벚꽃, 남해는 해안가 풍경으로 사람들을 불러 모으는 곳이다. 그러나 조금만 다른 길 위에 서면 그 못지않은 풍경을 선보인다. 봄이 오는 풍경이다. 그래서 조금 일찍 길을 나섰다.
- ▲ 광양 다랑밭이 물들었다. 소나무·동백나무·광나무·치 자나무 묘목이다. 겨울에도 기온이 따뜻한 광양에선 묘 목 농사가 흔하다. 광양에서 봄을 맞는 색(色)이 이토 록 어여쁘다. ☞ 동영상 chosun.com
◆알록달록 다랑밭, 광양의 봄
본래 광양은 매화의 나라다. 3월 중순이면 섬진강변은 구름처럼 피어나는 매화 떼로 흥건하다. 자연히 광양을 찾는 시기도 매화의 개화(開花)와 맞물린다. 꽃이 절정일 때 광양은 소란스럽다. 강변 다압마을은 주차장 인근에서 틀어놓는 가요와 몰려드는 인파로 북적인다.
소란을 피해 일찍 광양을 찾았다. 광양은 매화의 나라이기에 앞서 남도(南都)다. 매화가 봄의 화신(化身)이라면 광양 곳곳에 봄의 전령이 당도했다. 봄의 전령은 매화보다 화려하지 않되 산뜻한 정취로 충만하다. 그 정취엔 기대감이 서려 있다.
옥룡사지 동백림(冬柏林)은 그 중 하나다. 옥룡사는 신라 말 풍수지리 대가로 알려진 도선국사가 35년간 머물다 입적했다는 곳이다. 당시 도선은 땅의 기운을 북돋기 위해 동백나무를 심었다 전해진다. 절은 1878년 화재로 사라졌으나 동백만은 1000년 넘게 대(代)를 이었다. 뿌리는 깊고 가지는 굵다. 그런 동백이 7000여 그루다.
다가올 봄을 예비하는 동백림은 빛으로 눈부시다. 동백은 꽃보다 잎으로 먼저 시선을 붙잡는다. 유독 검붉은 잎으로 동백은 봄빛을 받아내며 반짝인다. 가까이 다가서야 비로소 꽃이 보인다. 아직 동백은 피지 않았으나 꽃망울이 단단히 맺혔다. 그 망울마다 붉은 기운이 번져 있다. 봄이 오는 색깔이다.
옥룡사지 동백림에선 동백의 원경(遠景)과 근경(近景)을 모두 볼 수 있다. 양편으로 동백림을 거느린 오솔길에서 동백의 근경을 만난다면, 오솔길 지나 펼쳐지는 너른 빈터에선 동백의 원경을 만난다. 분지처럼 파인 공간의 사방을 동백이 둘렀다. 사방에서 잎이 반짝여 눈이 소란스러운데 정작 귀는 고요하다. 그 부조화가 낯설다.
보다 화려한 봄의 색을 맛보고 싶다면 중흥사에 올라야 한다. 절로 가는 길 위에 서면 건너편 구릉 아래로 다랑밭(계단식 밭)이 펼쳐진다.
- ▲ 남해의 해안과 육지의 풍광이 가장 행복하게 만나는 곳, 남해 가천 다랭이 마을
보리밭과 함께 소나무, 동백나무, 광나무, 치자나무 묘목들이 줄지어 섰다. 광양은 겨울에도 따스해 묘목 농사가 흔한 곳. 모두 색이 달라 꼭 꽃밭 같다.
그 길 끝에 자리한 중흥사는 건물보다 주변이 매력적이다. 고도가 높은 만큼 중흥사에선 봄의 발걸음이 더디다. 그럼에도 이곳을 찾는 이유는 편백나무 숲이 있어서다. 꾸밈없는 숲길 양편으론 하늘을 찌를 듯 높은 편백나무가 도열했다. 좋되 짧아 아쉽다.
광양의 마지막 봄 소식은 망덕포구에서 들을 수 있다. 망덕포구는 섬진강이 남해와 만나는 자리다. 그곳에 다른 데선 볼 수 없는 굴이 있다. 이름하여 벚굴. 벚굴은 바닷물과 민물이 교차하는 강 하구에 주로 서식한다. 보통 굴보다 채취 시기가 늦다. 1월부터 잡히기 시작해 벚꽃 지는 4월 즈음 채취가 끝난다.
벚굴은 모양새도 다르다. 무엇보다 크다. 어른 손바닥만 한 굴부터 어른 신발만 한 굴도 있다. 보통 굴보다 10배 이상 크다. 맛도 보통 굴보다 덜 비릿하고 덜 짜다. 망덕포구를 낀 해안도로 따라 횟집이 줄지어 서 있으니, 다음 여정으로 길을 잇기 전 벚굴을 맛볼 일이다.
◆청록색의 물결, 남해의 봄
광양에서 남해로 간다. 사이, 하동을 지난다. 광양이 매화의 나라라면, 하동은 4월이면 분분(紛紛)한 벚꽃으로 이름났다. 그 유명세에 가려 쉽게 까먹는 사실이 하나 있다. 하동 역시 바다를 품고 있다는 것.
하동이 낀 남해의 아름다움은 진교면 금오산에서 또렷하다. 바다와 가까운 점을 감안하면 금오산은 굉장히 높다. 해발고도 849m. 바다와 비슷한 수준에서 그 높이에 이를 때까지 꾸준히 치고 오른다. 다행히 차로 갈 수 있다. 800m를 오르는 데 7㎞를 달린다. 그만큼 길은 서서히 고도를 올린다. 금오산을 사방으로 휘감으며 나아가는 길 위에서, 주위 풍경은 서서히 낮아진다. 낮아지는 만큼 멀어지고, 멀어지는 만큼 한눈에 들어오는 풍경이 넓다. 금오산의 북쪽 사면에선 지리산 연봉이 물결 치고 남쪽 사면에선 낮게 엎드린 섬들이 물결 친다.
- ▲ 짙은 숲 향으로 사람을 맞는 광양 중흥사 인근 편백나 무 숲.
금오산 정상의 조망은 물결 치는 산과 섬이 자아내는 풍경의 절정이다. 맑은 날이면 오른편으로 광양과 여수가, 왼편으로 사천이, 정면으론 남해군이 내려다보인다. 가까이 산맥이 벌린 품 안으론 구획이 확연한 논밭이 안겨 있다. 대부분 황색이나 푸른 보리밭이 점점이 박혔다. 유려한 곡선으로 눕고 일어서는 섬들은 멀수록 운무(雲霧)로 세부 풍경을 지우고 수묵화로 남는다.
다시 고도를 낮춰 남해를 향한다. 남해대교를 건너자마자 남해는 완연한 봄의 기운을 내뿜는다. 광양이 겨울과 봄의 경계에 서 있다면, 남해는 이미 봄의 영토다.
하동과 광양에서 그러했던 것처럼, 남해에서도 익숙한 길을 버려야 한다. 남해의 명물은 해안선 따라 굽이치는 해안도로다. 북쪽에서 남진(南進)하는 77번 국도 위에서 남해는 굴곡마다 갯벌을 펼쳐보였다가 어느 순간 물비늘로 반짝이는 완연한 바다를 드러낸다. 남해 동남쪽 물건항과 미조항을 잇는 물미해안도로는 해안경관의 백미다.
그러나 이맘때는 해안도로가 아니어도 좋다. 길이 남해의 안쪽을 향할수록 파릇파릇한 마늘밭이 넓어진다. 유독 추웠던 겨울의 끝에서 만난 마늘밭은 그 자체로 탄성을 자아낸다. 작년 10월 말 심은 마늘은 이미 어른 손 한 뼘만큼 자라났다. 그 마늘의 청록색과 함께 남해의 봄 풍광을 이루는 건 일찌감치 갈아엎은 밭두렁이다. 봄볕으로 붉어 깊다. 청록색과 붉은색의 교차는 경사 심한 남해의 안쪽 도로에서 확연하다.
남해의 해안과 육지의 풍광이 가장 행복하게 만나는 지점은 가천 다랭이 마을이다. 이번 봄 마중 여행의 종착지도, 당연히 이 마을이다. 이름처럼 산비탈 등고선을 따라 100여 층의 다랑논이 계단식으로 조성됐다. 여기선 길도, 집도, 논도 구불거린다. 그 곡선이 멀어지며 잦아지는 끝에 남도의 바다가 푸른색으로 물결친다.
다랭이 마을을 감싸고 도는 바람은 따뜻하다. 차에서 내려 잠깐만 걸어도 자연히 겨울 외투를 벗게 된다. 마을에 발을 들이면 염소 우는 소리가 가장 먼저 반기고 저 멀리, 해안에 부서지는 파도소리가 메아리치듯 넘실댄다. 최근 정비된 길을 따라 걸을 수도 있겠으나 구불구불 고샅길을 따라 헤매도 좋겠다. 자연스레, 들뜬 마음이 가라앉고 고요한 평온이 찾아온다. 봄의 평온이다.
여행수첩
옥룡사지→중흥사→망덕포구→금오산→가천 다랭이 마을 순.
①옥룡사지와 중흥사: 남해고속도로 광양나들목→우시장 사거리에서 우회전→옥룡입구 삼거리에서 옥룡면 방면으로 우회전→8㎞쯤 직진하다 우회전해 직진하면 옥룡사지다. 다시 길을 돌아 나와 옥룡면사무소에서 우회전하면 중흥사다.
②망덕포구: 중흥사에서 돌아 나와 첫 삼거리에서 우회전→석평삼거리에서 좌회전→광양나들목에서 남해고속도로 합류→진월나들목→광양 방면으로 우측 방향→직진하면 망덕포구다.
③금오산: 다시 남해고속도로 합류→진교나들목→상평사거리에서 좌회전→1.5㎞쯤 가면 오른편으로 금오산 표지판이 있다. 약 8.4㎞ 가면 된다.
④가천 다랭이 마을: 돌아 나와 첫 삼거리에서 우회전→1002번 지방도를 타고 직진→남해대교 삼거리에서 좌회전→19번 국도를 타고 14㎞쯤 직진하다 신전삼거리에서 우회전→계속 직진하면 가천 다랭이 마을이다.
광양은 불고기로 이름난 곳. 일반 불고기와 달리 국물 없이 양념 바른 쇠고기를 석쇠에 구워 먹는다. 광양역 인근에 광양 불고기 특화 거리가 있다. 1인분 1만8000원 선. 광양 망덕포구엔 해안도로 따라 벚굴을 취급하는 횟집이 늘어서 있다. 기본 3만5000원 선. 남해군은 멸치 잡는 죽방렴으로 유명하다. 우리식당이 멸치를 36년째 요리해 왔다. 매콤새콤한 멸치회무침 소(小) 2만원(3~4인). (055)867-0074
아침 일찍 출발했다면 저녁 무렵이면 남해군에 도착할 터. 남해의 숙소 중에선 힐튼 남해 골프&스파 리조트가 최고로 꼽히지만 가격이 만만치 않다. 다음 달 1일부터 판매되는 가족을 위한 '체리 블러썸 패키지'(33만7000원)를 이용해 볼 만하다. (055)860-0100, www.hiltonnamhae.com 그 외 해안 따라 펜션이 즐비하다.
광양시 문화홍보담당관실 (061)797-2731
하동군 문화관광과 (055)880-2380
남해군 문화관광과 (055)860-8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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