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산] <313> 통영 비진도 선유봉 |
미녀들이 가득했던 비진도… 그녀 허리도 저처럼 잘록했을까 |
전대식 기자 |
천하의 산꾼이라도 무더위 앞에는 장사가 없다. '여름에도 산행하는지' 여부가 진짜 산꾼을 가리는 기준이라고 애써 항변해도, 더운 건 더운 거다. '계곡 산행', '섬 산행'이 이 시기에 절정을 이루는 건 인지상정이다. '산&산' 산행팀은 3주 연속으로 대운산 도통골, 지리산 구룡계곡, 팔각산 옥천계곡 등 계곡 산행지를 소개했다. 이번에는 갯내음과 에메랄드 빛 바다가 일품인 한려해상국립공원으로 갔다.
통영시 한산면 비진도는 예전에 미인도로 불렀다. 미인이 많이 살아서 붙은 이름이다. 임진왜란 때 충무공 이순신 장군이 미인도 앞바다에서 왜적을 물리치면서 '보배로 비견되는 섬' 비진도(比珍島)가 됐다. 안섬과 바깥섬이 사주(砂洲)로 연결돼 높은 데서 보면 손목이 짧은 '아령' 모양이다. 섬 서쪽 해안에는 백사장이 있고, 동쪽은 몽돌과 자갈 해안이다. 여름철 피서지로 인기가 많은 비진도해수욕장은 서쪽에 있다.
전체 면적 2.766㎢, 인구 300여 명이 사는 작은 섬이다. 천연기념물 제63호인 팔손이나무 자생지이며, 동백나무·모밀잣밤나무·후박나무가 군락을 이룬 수목의 보고이기도 하다.
안섬·바깥섬 사주로 연결
서쪽은 백사장 동쪽은 몽돌
동백·후박나무 군락지 통과
해안절경에 감탄사 저절로
비진도 선유봉(313m)은 해수욕장에 비해 덜 알려져 있다. 외항 선착장 뒤에서 해수욕장을 점잖게 응시하는 산이 선유봉이다. 산꾼들한테도 덜 알려진 산이다. 지난 5월 비진도 산호길이 열리면서 소문을 타고 등산객들이 조금씩 늘어나고 있다.
이번 산행은 둘레길이 3분의 1, 산행이 3분의 2가량 된다. 비진내항에서 내려 대동산(219m)의 3~4푼 능선을 따라 걷는다. 숲이 우거진 길이다. 안섬과 바깥섬을 잇는 사주를 지나 선유봉 1~2푼 허리를 시계 반대방향으로 돈다. 설핑이치, 안노루여 등 파도 침식 지형을 조망하고 나서 선유봉에 오른다. 제2, 제1 전망대를 거쳐 공원지킴터에 닿으면 산행이 끝난다. 산행거리 7㎞, 넉넉잡아 3시간쯤 걸린다.
오전 11시에 배를 탔다. 승객은 피서객이 대부분이었다. 산행팀은 비진내항에서 내렸다. 내항 마을회관에서 삼계탕 잔치가 벌어졌다. 서울의 한 교회 신도들이 마련했다. 마을회관 앰프에서 "서울 사람들이 닭을 대접한다네예. 고맙구로!"라는 멘트가 연방 나온다. 회관 앞에 위령탑이 있다. 한국전쟁과 월남전에서 전사한 마을 청년을 기리는 비석이다. 탑은 1981년 전국 풀베기 대회 때 받은 우승 상금으로 세웠다. 알록달록한 지붕이 정겹다. 마을 골목길을 따라 대동산 방향으로 간다.
한산초등학교 비진분교가 나온다. TV 드라마 '순수의 시대'를 촬영한 명소다. 교문에 오줌 누는 아이 동상이 서 있다. 운동장은 천연 잔디이다. 방송에서는 탤런트 고수와 김민희가 저 잔디에서 뛰어 노는 장면이 나왔다.
10분 정도 풀이 우거진 소로를 걷는다. 허리만큼 자란 잡풀 때문에 언제부턴지 바다가 안 보인다. 노란 플라스틱에 '등산로'라고 쓴 임시 이정표가 앙증맞다. 숲은 아까보다 더 넓은 그늘을 드리운다. 나무 사이로 다도해가 보였다 안 보였다 한다. 바다가 잘 보인다 싶으면 어김없이 무덤이 있다.
숲에서 벗어났다. 확 트인 곳이 나온다. 멀리 왼쪽으로 선유봉이 보인다. 마루금이 수평으로 둔하게 가다가 산정 부근에서 뾰족하게 각을 이뤘다. 풍수학에서 말하는 문필봉 모양새다.
대동산 자락을 벗어날 무렵 '더씨 펜션'이 나온다. 바깥섬 쪽으로 간다. 공용 샤워장이 있다. 해수욕장은 평일이라 그런지 한산하다. 바나나보트를 탄 피서객들이 고함을 치며 놀고 있다.
안섬과 헤어지고 바깥섬으로 가는 시멘트 길을 걷는다. 원래 안섬, 바깥섬 사이의 사주는 높이가 지금보다 높았다고 한다. 하지만 세월이 흘러 바람과 파도에 모래가 쓸려 지금은 사람 발목 높이 정도다. 썰물이면 사주 주변 해변에서 미역, 바지락, 백합을 주울 수도 있다.
사주가 끝나면 공원지킴터가 나온다. 이곳을 지나자마자 갈림길을 만난다. 이정표가 있다. 왼쪽, 오른쪽 모두 '선유봉'으로 적었다. 왼쪽으로 가면 제1전망대로 간다. 우리는 오른쪽이다. 데크 울타리를 따라간다. 울타리 너머로 춘복도가 보인다. 해산물이 많아 주민들에게 '복(福)'을 준다는 섬이다.
시멘트 길을 버리고 숲으로 들어선다. 발밑에 토실토실한 열매가 차인다. 동백 열매다. 동백나무 군락지에 들어섰다. 울창한 동백잎들이 하늘을 가렸다. 때마침 바닷바람이 불어 서늘한 기분이다.
다시 바다가 나타났다 사라지기를 되풀이한다. 10분 남짓 평평한 길을 걷는다. 가옥 서너 채가 나온다. 비진암이다. 비구니가 기거하는 절인데, 수험생이나 요양하는 사람들이 주로 찾는다.
비진암에서 10분 정도 거리에 전망이 좋은 단애가 있다. 욕지도 천황봉과 연화도 연화봉이 아스라이 보인다. 섬은 수평선에 떠 있는 것 같다.
이제부터 해안 절경을 보며 산을 오른다. 설핑이치, 성주여, 안노루여 등 파도가 때리고 깎고 바람이 다듬은 기암절벽과 괴석들이다. 자연이 빚은 조각품에 '아' 하고 입이 저절로 벌어진다.
해풍이 등을 떠민다. 매미와 산새 소리가 해조음과 화음을 이룬다. 소나무 그늘에서 잠시 쉰다.
선유봉 이정표를 따라 산으로 붙는다. 또다시 숲으로 들어간다. 위성위치확인시스템(GPS)을 보니 해발이 겨우 40m. 이제부터 가파른 길을 당면해야 한다. 다행히 길이 지그재그로 나 있어 체감 경사도는 그리 사납지 않다. 40분쯤 오르막과 씨름하면 선유봉에 도착한다.
산봉우리 조망은 생각보다 막혀 있다. 비진도 동쪽에 '용이 누운 모양'이라는 용초도가 보인다. 그 뒤로 한산도와 추봉도, 두 섬을 연결한 추봉교가 뚜렷하다.
산정에서 내려와 제2전망대를 통과한다. 전망대에서 내려오면 흔들바위가 있다. 네모 난 바위 위에 공깃돌 모양의 바위가 위태롭게 앉았다.
3분쯤 더 밑으로 가면 제1전망대가 나온다. 조망으로 치면 이곳이 정상이나 제2전망대보다 낫다. 아령 모양의 비진도가 한눈에 들어온다. 안섬과 바깥섬 사주 주변은 해조류가 자라는지 거뭇거뭇하다. 바로 옆에 출렁이는 비취색 바다와 대조적이다. 멀리 통영 쪽을 본다. 통영 앞바다에 오곡도, 내·외부지도, 연대도, 학림도, 내·외거칠리도, 두미도가 오순도순 자리를 잡고 있다. 육지 산의 마루금이 웅장하고 훤칠하다면, 섬과 섬의 산이 만드는 하늘금은 정겹고, 아련하다.
제1전망대에서 오른쪽 능선으로 꺾는다. 갈림길에서 왼쪽으로 내려선다. 5분 정도 가면 올라올 때 만난 선유봉 이정표가 나온다. 공원지킴터에서 산행을 마감한다. 산행문의 : 라이프레저부 051-461-4164. 홍성혁 산행대장 010-2242-6608.
글·사진=전대식 기자 pro@busan.com
그래픽=노인호 기자 nogar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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