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산] <314> 양산 · 울주 정족산 |
천성산보다 못하다고요? 계곡만 돌아봐도 그런 말 못할걸요 |
전대식 기자 |
영남알프스의 간월산 신불산 영축산을 지난 낙동정맥은 지경고개에서 잠깐 쉰다. 정맥은 정족산(鼎足山·748.1m)에서 다시 힘을 받아 남으로 치달아 천성산 금정산으로 이어진다.
낙동정맥의 한 자리를 차지하는 정족산은 그동안 천성산(922m)에 비해 주목을 받지 못했다. 높이가 낮은 데다, 산줄기가 부챗살처럼 펼쳐진 천성산에 비해 산행이 밋밋하다. 그러다 보니 산꾼들도 정족산을 천성산 산행의 경유지 정도로만 대접했다. 하지만 사계절 마르지 않는다는 상리천, 북대골, 대성골의 맑은 물과 정상의 확 트인 조망미는 결코 어느 산 못지 않은 빼어난 매력이 있다. 봄 진달래, 여름 계곡, 가을 단풍 등 어느 하나 손색이 없다. 부산·울산·경남에서 가까워 접근하기 수월하고, 계곡만 돌아봐도 본전은 뽑을 수 있다. 가족산행지로도 제격이다.
낙동정맥과 금정산 잇는 산
세 줄기 능선이 솥발처럼 보여
상리천 대성골 계곡도 일품
확 트인 정상 조망미 뛰어나
정족산은 양산시 하북면 백록리와 울산시 울주군 웅촌면 고련리, 울주군 삼동면 조일리 경계에 산줄기가 물려 있다. 능선이 세 발 달린 밥솥처럼 뻗어나갔다 해서 솥발산이다. 이 때문에 풍수가들은 정족산을 화산(火山)으로 본다. 암 환자가 정족산을 맨발로 오르면 낫는다는 속설도 여기서 나왔다. 몸속에 똘똘 뭉친 암의 기운이 펄펄 끓는 솥에서 녹는다고 풀이한다.
산행은 내원사 매표소에서 출발한다. 상리천 계곡길을 따라가다 노전암을 지나 대성골로 붙는다. 대성암을 통과해 정상을 밟고 임도를 따르다 북대골에서 본격 하산해 노전암을 다시 만난다.
여름 산행이라 산행 초입과 말미에 계곡을 끼도록 꾸몄다. 매표소~노전암 사이 약 2㎞ 구간이 겹친다. 대성골과 대성암~정상 구간이 조금 까다로운 편이다. 산행거리 14㎞, 넉넉잡아 6시간 정도 걸린다. 가족산행을 해도 무리가 없겠다.
내원사 매표소 입구에 등산 안내도가 있다. 천성산 등산 안내도다. 천성산을 중심에 놓다 보니 정족산의 위치가 왼쪽으로 치우쳤다. 그마저도 LCD 안내 모니터가 부착돼 아예 사라졌다. 관광안내소에서 물었더니 "안내도 제작상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말했다.
매표소 주차장에서 나와 무명교를 건넜다. 다리 아래에 피서 나온 가족들이 앉아 있다. 아침 햇살이 계곡물에 따갑게 내리쬔다. 30도. 계곡 덕분인지 체감온도는 그리 높지 않다.
계곡 길을 따라간다. 이럴 때 보폭은 유속과 비슷하다. 느릿느릿. 어슬렁어슬렁. 지형과 지도 등고선을 가늠하면서 발걸음을 옮긴다. 기둥에 성불암으로 쓰인 첫 번째 이정표가 나온다. 노전암 방향으로 간다. 5분 정도 지나 두 번째 이정표가 보인다.
이제 계곡은 오른쪽에 있다. 공룡능선의 그늘이 길을 덮었다. 첨봉이 연속인 능선이다. 날카로운 멧부리가 아득하다.
계곡길을 돌아섰더니 멀리 정족산 허리춤에 툭 하고 불거진 암봉이 한눈에 들어온다. 계곡의 폭은 아까보다 좁아졌지만, 유속은 더 빠른 것 같다.
잠시 뒤 공룡능선과 노전암의 갈림길에 서 있는 이정표를 만났다. 주변에 산행 안내리본이 어지럽게 달려 있다. 바스락거리는 자갈길과 물소리가 어울려 절묘한 리듬을 낸다.
길가 채소밭이 녹음만큼 푸르다. 깻잎 향이 바람에 실려 이리저리 날린다. 애호박이 탐스럽게 열렸다. 돌담을 정성스럽게 쌓은 집 한 채를 지나니 비로소 정족산 등산 안내도가 나타난다. 페인트가 벗겨지고, 낡아서 안내도의 기능은 못하지 싶다.
고찰인 노전암(주지 능인 스님)에 들렀다. 절에서 키우는 개들이 컹컹 짖는다. 노전암은 신라의 원효대사가 세운 89암자의 하나. 요즘엔 비구니 10명이 기거한다. 대웅전은 정면 3칸, 측면 2칸의 맞배지붕이다. 경남문화재 제202호다. 대웅전보다 유명한 게 노전암 절밥(본보 2월 10일자 32면 보도)이다. 산나물, 텃밭 채소로 만든 찬과 정성으로 만든 밥이다. 산꾼들과 사찰 방문객에게 '밥맛'이 알려지면서 아예 밥을 먹으려고 절을 찾는 사람이 많은 정도라고. 점심이 이른 시간이라 산행팀은 밥 구경을 하지 못했다.
수통에 물을 채우고 일주문을 빠져나왔다. 절 입구에 나무다리가 있다. 이 다리는 북대골을 건너는데, 하산할 때 이 골을 내려와 이 다리 앞으로 떨어진다.
나무 데크를 여러 개 지난다. 낮이지만 숲이 울창해 햇볕이 맥을 못 추고 사그라진다. 어둑한 산길을 따라간다. 인적이 드물어 물소리가 오히려 시끄러울 정도다. 길의 굽이를 돌 때마다 갖은 모양의 소와 키 낮은 폭포들이 등장한다. 여기가 참 좋다 싶었는데, 조금 더 가니 "여기가 더 낫네!"라는 탄성이 나온다.
약 20분간 이런 길이 이어진다. 대성골과 상리천 합수지점에 다리가 놓여 있다. 앞으로 가면 주남고개 안적암 쪽이다. 보통 주남고개를 지나 임도를 타고 정족산에 오른다. 이 길은 뚜렷하지만, 임도를 걷다 보니 산행 재미가 반감된다. 산행팀은 대성골로 오르기로 하고 왼쪽으로 꺾었다. 안내리본을 잘 살펴야 한다. 대성골은 북대골이나 상리천에 비해 사람의 발길이 덜 묻은 곳이다. 해서 묵은 길이 많다. 계곡을 따라 난 외길이라 다행스럽다. 계곡을 이리저리 넘는다. 옛 암자 터와 다랑논 흔적이 여기저기 있다. 길은 조금씩 된비알 기미를 보이다가 대성암에 가까워지면서 숨이 죽는다. 다리에서 대성암까지 30분 정도.
대성암 입구에 '불두'를 올려놓은 바위가 여럿 있다. 스님이 머무는 요사채가 아래에 있고, 그 뒤 언덕에 관세음보살을 모신 원통전이 있다. 원통전은 직사각형 모양이다. 외벽을 특이하게 자연석으로 쌓았다. 이 정도 전각을 만들려면 꽤 큰 공을 들였겠다. 잿빛 바윗덩어리 속에서 천수관음의 금빛이 원통전 바깥으로 나온다. 대성암에 기거하는 보살이 요사채와 원통전 사이에 난 대밭 길을 일러준다.
비탈은 가파르지 않고 둔하다. 부담스럽지 않은 길이다. 20여 분 정도 휘적휘적 산길과 마주한다. 임도로 이어지는 갈림길에서 왼쪽으로 튼다. 여기서부터 가풀막이다. 5분만 힘을 내면 정상이다. 육산은 어느새 바위 봉우리로 바뀌었다. 바윗덩이가 계통 없이 곧추섰다. 기이한 모양새만큼 설 자리도 좁다. 발조심 하자.
전설에 따르면 아주 먼 옛날 하늘과 땅이 열릴 때 물난리가 났는데, 정족산 정상만 빼고 모두가 물에 잠겨버렸다고 한다. 그 꼭대기에서 바라본 세상은 푸른 빛이다. 사위는 온통 산 물결이다. 북쪽을 보니 영남알프스 준봉들의 산세가 어엿하다. 남쪽으로는 천성산의 야무진 산줄기들이 주름 치고 있다. 동쪽에서는 대운산, 삼각산이 동해 쪽으로 달려간다. 250여 종의 희귀동식물이 사는 고산습지인 무제치늪도 풍경에 한몫한다.
하산길은 진달래 군락지 사이로 나 있다. 임도를 따라 15분쯤 가다 갈림길에서 임도를 버리고 왼쪽 길로 진행한다. 전망대와 감시카메라를 스치면 헬기장이 나온다. 헬기장에서 5분 정도 가다 오른쪽으로 꺾으면 두 번째 헬기장에 닿는다. 여기서 송전탑까지 7분 남짓. 임도를 만나는 지점에서 갈림길이 나오면 왼쪽을 택해 북대골로 접어든다. 희미하던 물소리가 점점 요란스러워진다. 노전암까지 40분가량 계곡 옆길을 밟는다. 노전암 입구에서 아까 올라왔던 길을 만났다. 노전암에서 2㎞쯤 내려가면 매표소 주차장이 나온다. 산행문의 : 라이프레저부 051-461-4164. 최찬락 산행대장 010-3740-9323. 글·사진=전대식 기자 pro@busan.com
그래픽=노인호 기자 nogar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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