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이 물든 강원, 그곳서 즐기는 '유유자적' 여행
무서리가 대지를 뒤덮는다는 상강(霜降,24일)이 지났지만 서울 광화문 은행나무는 여전히 초록이다. 만산홍엽 고운 단풍이 그립다면 이즈음 추일서정(秋日抒情)을 물씬 느낄 수 있는 강원도로 떠나자.
지금 강원도에는 특별한 가을 여정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 ▲ 춘천 물레길을 찾은 연인이 억새풀 가득한 붕어섬 주변을 둘러보고 있다.
카누 타고 즐기는 '유유자적'…춘천 물레길
춘천(春川)은 이름에 봄을 품었으되 가을에 가장 아름다운 풍광을 빚는다. 이즈음 의암호에 비친 추음(秋陰)이 짙다. 그 짙고 또렷한 가을 풍경을 즐기는 방법 중 하나가 의암호 한가운데 서는 일이다.
최근 춘천에 물레길이 조성되면서 이 일이 가능해졌다. 물레길은 길의 형태가 없는 길이다. 갈 곳과 지난 곳을 가르쳐주지 않는 물레길에 발자국을 남길 수 없다. 물레길은 카누를 타고 의암호를 유랑하며 지나온 흔적을 물결에 묻히는 물 위의 길이다.
- ▲ 춘천 의암호 주변 나무들은 가을을 맞아 붉게 단풍이 들어있다.
물레길의 묘미는 느리고 여유롭다는 것. 패들링(노젓기)을 하면 카누는 고요히 물살을 가르며 앞으로 나아간다. 가다 힘들면 잠시 노를 놓고 물살에 카누를 맡기니 카누를 타는 일은 그 점에서 걷는 일과 다를 바 없다.
느릿느릿 가다보면 주위 풍경도 새롭게 다가오며 쉽게 자연과 동화될 수 있는 것 같다. 구름이 흘러가는 것도 보이고 노에 물살이 떨어지는 소리까지 들린다. 한결 여유롭게 주위 풍경을 즐길 수 있다는 것 그리고 마음 내키는 곳에 배를 세우고 자연을 느낄 수 있다는 것, 이것이 카누만의 매력이다.
물레길은 춘천 송암스포츠타운에서 시작한다. 물레길 체험은 체험객이 카누를 타고 직접 노를 저어 의암호와 중도, 고슴도치섬 등을 지나는 물길을 거슬러 올라가는 것이며, 그날 풍향 따라 의암댐이나 중도로 유랑한다.
- ▲ 선착장에서 의암댐, 붕어섬으로 이어지는 물레길 곳곳에 가을이 물들어 있다.
카누 타는 시간은 두 시간. 길의 형태가 없으니 대체로 안내자가 길을 안내하나, 카누는 안내자를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넉넉한 모양새로 그 길을 따른다. 힘들 땐 노를 놓고 물결에 카누를 맡긴다. 노 젓는 소리마저 버린 물 위의 고요에 햇살만 반짝인다.
인천에서 온 장성환(33), 박자숙(31)씨는 "도시에서는 빌딩이나 아파트에 둘러싸여 단풍구경하기 힘들잖아요."라며 "이곳에서 색다르게 카누를 타고 단풍구경을 하니 마음마저 탁 트이는 기분이에요."라고 말했다.
카누를 타면서 더불어 할 수 있는 것들도 많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카누에 짐을 싣고 가서 호반에 떠 있는 섬으로 가 캠핑을 즐기는 것이다. 카누가 없다면 섬에 꼼짝없이 갇혀 있을 것이지만 카누가 있다면 호수를 마당처럼 쓸 수 있어 캠핑의 낭만은 훨씬 더해진다.
또 다른 즐길거리는 카누 위에서 즐기는 낚시. 일반 낚싯대만 가지고 있으면 카누로 낚시 포인트를 찾아 옮겨 다니며 누구에게도 방해받지 않고 한가로이 낚시를 즐길 수 있다. 특히 의암호는 배스, 쏘가리 등 민물고기가 잘 잡히는 소문난 낚시 포인트라 카누가 더욱 빛을 발할 수 있다.
숲 맑은 기운 쐬면 마음까지 청정…홍천 산소길
동해안 가는 길목에서 한발자국 벗어나 있는 홍천 공작산. 공작새가 날개를 활짝 펼친 모습과 비슷하여 이름 지어진 이곳에 계곡을 따라 아름다운 숲길이 조성된 지 아는 사람은 드물다.
이름부터 범상치 않은 '산소길'. 청정 삼림자원을 간직한 강원도가 조성하는 산소길은 올레길이나, 지리산 둘레길 못지않다. 공작산 수타사계곡 산소길은 강원도 공인 산소길 1호다. 산소길 1호가 모습을 드런낸 때는 2009년 여름. 그때부터 바지런한 도보 여행객들이 하나둘 찾기 시작했다.
- ▲ 수타사에서 생태숲을 지나면 산소길 푯말과 입구가 나타난다.
산소길은 수타사 옆 생태숲에서 시작됐다. 2009년 6월 문을 연 생태숲은 163ha의 넓은 산림에 역사문화 생태숲, 교육체험 생태숲, 유전자보전의 숲 등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다양한 수목들이 꽉 들어차 있다.
산소길에 다다르자 한 두 사람이 다닐 만큼 좁은 길이 나타났다. 산소길은 말 그대로 오솔길이다. 길에는 활엽수가 많아서인지 길엔 낙엽이 수북했고, 색도 형형색색이다.
숲길은 계곡을 끼고 이어졌다. 반듯하게 펴진 길은 하나도 없었다. 그러나 높고 낮음의 편차없이 눈에 거의 띄지 않을 정도로 서서히 조금씩 각도가 높아졌다. 남녀노소 누구나 걸을 수 있을 정도로 가파르지 않았으며 팍팍하게 오르는 가풀막도 없었다.
- ▲ 낙엽이 수북한 산소길은 길이 좁은 오솔길이기에 운치를 더한다.
길 옆으로 수타계곡을 내려다보며 40~50분쯤 걷다보면 계곡으로 건너가게끔 자그마한 돌 이정표가 있다. 신봉 마을까지 가지 않고 중간에 다시 돌아갈 수 있는 귕소반환점이다. 여기서 돌아가면 수타사~귕소반환점~수타사 구간은 3.2㎞로 1시간30분 정도 걸린다.
이름이 독특한 궝소반환점의 유래가 재밌다. 예부터 아름드리 통나무를 파서 만든 소나 말의 여물통인 '궝'이라하며 암으로 이루어진 협곡이 궝과 같이 생겼다하여 '궝소'라 부른다. 이는 황해도, 강원도의 사투리다.
숲해설사 강형원씨는 "원래 수타사 아래 사하촌 사람들이 논에 물을 대던 수로를 지하에 묻은 뒤 길을 만들었다."며 "작년 10만여명이 찾았고, 올해는 명품 산소길로 인정받은 만큼 20만명 정도 찾을 것으로 예상한다."고 말했다.
- ▲ 산소길을 거닐다 보면 옆 수타계곡에서 '궝소'를 볼 수 있다.
산과 계곡을 길벗 삼아 걷는 울창한 숲길은 말 그대로 산소를 듬뿍 내뿜는다. 자연이 연주하는 청아한 생음악, 낭랑한 물소리와 산새 우짖는 소리가 절로 귀를 맑게 해주고 마음도 깃털처럼 가벼워진다. 거기에 곱게 물든 단풍 숲까지 반짝이니 참 행복한 가을 산책길이다.
2천 그루의 '비밀의 숲'…홍천 은행나무숲
지난해 강원도 홍천 산골짜기에서 1985년부터 25년 동안 단 한 번도 일반 개방을 하지 않았던 비밀의 숲이 빗장 열었다. 2주일 동안 평일에는 3000명, 주말에는 5000명 정도가 이곳을 찾았다. 5만 명이 이 숲을 찾아왔다는 이야기다.
말 그대로 난리가 난 이곳은 홍천 내면 광원리 은행나무 숲이다. 이 숲에는 다른 수종(樹種)은 단 한 그루도 없이 5m 간격으로 완벽하게 오와 열을 맞춘 은행나무 2000그루가 중국 진시황제의 토용(土俑)처럼 도열해 있다.
- ▲ 강원도 홍천 깊은 산골짜기에서 은행나무숲이 황금빛 물결을 자랑하고 있다.
연두와 노랑이 이 황홀한 선분의 양쪽 두 끝점이라면, 그 사이 어느 지점에는 분명히 자기 자리를 갖고 있을 2000가지 색의 파노라마. 그 속에는 숲의 주인 유기춘(68)씨가 있다.
사실, 유씨가 이곳에 은행나무를 심은 계기는 극히 개인적이었다. 25년 전, 만성 소화불량에 시달리던 아내는 백약이 무효였고 아내를 지극히 사랑했던 남편은 오대산 자락 광물을 품은 광천수인 삼봉약수의 효험을 들었다.
장기복용의 결과는 성공적. 게다가 덤도 있었다. 아내는 식욕을 되찾았고, 남편은 강원도 내린천 자락의 풍광이 얼마나 아름다운지를 알게 된 것. 마흔두 살이던 1985년, 서울내기 중년 사내는 1만3000평의 강원도 땅을 사들였고 은행나무 묘목을 하나하나 심었다.
- ▲ 일정한 간격으로 서있는 은행나무들이 황금빛 터널을 만들어내고 있다.
시간이 흘러 은행나무숲이 황금빛을 발하자 유씨는 "이 황홀한 색을 혼자 즐긴다는 게 왠지 미안했다"며 지난해부터 특별한 조건도 없이 자신이 25년간 키운 자식들을 무료 개방하겠다고 밝혔다.
지금 숲에는 꽃비가 내려와 노란 융단이 숲에 깔렸다. 늦가을 쓸쓸함이 그 위를 감싸고 있다. 이번 주말을 끝으로 비밀의 정원은 다시 문을 닫는다고 하니 주말 가을여행을 준비한다면 바로 지금밖에 기회가 없다.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은행나무숲을 찾은 이정열(30․사진작가)씨는 "작년부터 소문을 듣고 왔어요."라며 "올해는 일찍 낙엽이 져 아쉽지만 이또한 자연의 느낌이 남아있는 부분이 좋은 것 같아요."라고 말했다.
- ▲ 은행나무숲 실개천(좌)과 숲의 주인인 유기춘씨(우).
프랑스 철학자 미셸 세르는 현대문명을 "너무 많은 소음, 너무 적은 리듬, 전혀 없는 멜로디"라는 구절로 요약한 적이 있다. 홍천의 은행나무숲을 한 시간 동안 걸으며, 이 숲은 우리가 망각해버린 리듬과 멜로디를 상기시키는 아름다운 음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주말을 이용해 어디론가 가을여행을 떠나고 싶다면 이곳 강원도에서 부는 선선한 가을바람과 함께 자연이 들려주는 아름다운 음악을 즐겨보시는 건 어떨까?
■ 춘천 의암호 물레길
주소 : 강원도 춘천시 송암동 644-23
전화 : 070-4150-9463
홈페이지 : www.mullegil.org
※ 먹거리 : 춘천닭갈비
'춘천'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음식이 바로 춘천닭갈비다. 춘천에는 어느 곳에서나 닭갈비 식당을 찾을 수 있다. 그중에서도 명동의 춘천닭갈비 골목은 관광코스로 소개될 만큼 유명하다. 식당마다 나름대로의 양념비법이 있어 조금씩 맛이 다르지만 공통점은 어딜 가나 맛있다는 것이다.
■ 홍천 공작산 생태숲&산소길
주소 : 강원도 홍천군 동면 덕치리 21-1번지
전화 : 033-436-1585
홈페이지 : www.ecogongjaksan.kr/
※ 먹거리 : 칡사랑메밀사랑(033-436-0125)
수타사 입구의 이곳은 담백한 막국수가 여행자를 유혹한다. 동치미 국물에 메밀로 만든 면을 말아 후루룩 빨아들여 치아로 끊어먹는 막국수의 시원한 맛은 날이 더워질수록 그 진가를 더한다.
■ 홍천 은행나무숲
주소 : 강원도 홍천군 내면 광원리 686-4
※ 먹거리 : 오대산내고향(033-435-7787)
이곳의 촌두부구이(6000원)를 추천한다. 직접 키운 콩으로 만든 두부가 일품이다. 두부전골(7000원·2인 이상)을 시키면 나오는 반찬 중에서는 곰취 장아찌를 꼭 맛볼 것. 봄에 뜯은 곰취를 간장에 절인 뒤 이 집만의 양념으로 버무린 장아찌가 곰삭은 맛을 자랑한다. 민박도 한다. 주중 3만~4만원, 주말 5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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