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솔길 사랑방 ♥/건강 이야기

냉면 이야기

호젓한오솔길 2012. 6. 29. 21:25

 

냉면 이야기

 

 

줄 서서 기다려가며 음식을 먹는 것이 우리나라 사람에게는 그다지 유쾌하거나 익숙한 일이 아니다.

그런데 냉면만은 다르다. 한여름 더위 속에서 한 시간 이상 줄을 서더라도 시원한 냉면 한 그릇을 찾는 이유는 그 소박한 요깃거리 속에 대한민국 사람들의 삶과 문화가 담겨 있기 때문이다.

여름이면 가장 많이 먹는 음식, 두 말할 필요 없이 냉면이다. 서울 오장동의 한 유명 냉면집에서 여름철 하루 평균 팔리는 냉면은 8백 그릇 정도라고 한다. 한 끼 식사로 손색이 없고 간편하게 후루룩 먹을 수 있어 좋다. 시원한 국물이 먹고 싶을 때는 평양식으로, 매콤하게 입맛을 돋우고 싶을 때는 함흥식으로, 보양식 대용으로 먹을 때는 초계면으로 다양하게 즐길 수도 있다. 취향에 따라 고명을 선택할 수 있고, 식초, 설탕, 고춧가루 등을 이용해 마음대로 맛을 만들어 먹기도 한다. 우리가 냉면을 사랑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예부터 우리 조상들은 한겨울 뜨끈한 온돌방에서 살얼음이 살짝 언 냉면을 음미하는 것을 별미 중 하나로 쳤다. 냉면 육수로 사용하던 동치미가 가장 맛있게 익는 계절이었기 때문이다. 항아리 가득 담긴 동치미에 살얼음이 살짝 얼면 국자로 톡톡 쳐서 면이 담긴 대접에 담고 맛이 든 무를 얇게 썰어 고명으로 올리면 가슴까지 시원한 동치미 냉면이 완성됐다.

냉면의 본고장인 평양과 함흥 지방에서도 ‘이냉치냉(以冷治冷)’으로 한겨울에 냉면을 즐겼다. 평안도식 냉면의 면 재료가 메밀인 것은 그곳의 기후 조건 때문에 밀이 귀한 대신 메밀이 유독 많이 났기 때문이다. 그러다가 6·25 전쟁을 전후로 북쪽 사람들이 대거 월남하면서 냉면은 남쪽 입맛에 맞게 재탄생되었다. 육수는 여전히 동치미가 기본이었지만, 재력이 있는 사람들은 닭고기나 꿩고기로 육수를 내기도 했다. 냉면은 편육과 궁합이 잘 맞아 편육 삶은 물을 가끔 동치미에 섞어 만들기도 했는데, 맛이 의외로 잘 어울려 오늘날 ‘냉면’ 하면 동치미와 고기 육수를 동시에 떠올리게 되었다.

그렇다면 냉면이 여름 별식이 된 것은 언제부터일까? 파리 만국박람회에 냉장고가 등장하면서부터다. 동치미 국물을 얼렸다가 언제든 시원하게 먹을 수 있고 얼음도 마음껏 공수할 수 있게 되자, 더위에 지친 사람들이 겨울 계절식이던 냉면을 여름 별미로 즐기기 시작했다. 그 인기가 얼마나 대단했던지, 일제강점기에는 냉면에 대한 에세이나 소설이 유난히 많다.

지방색을 담은 다양한 종류의 냉면

《식객》의 저자 허영만 화백은 냉면을 책의 마지막 소재로 삼았다. 이에 대해 그는 “열이면 열 사람 모두 냉면에 대해 다르게 얘기한다. 사람마다 호불호가 극명하게 나뉘고 평양, 진주 등 지방마다 요리 형태가 다양해서 냉면을 소재로 다뤄보고 싶었다”고 말했다. 우리나라는 국토가 그리 넓지 않지만 지방마다 기후가 달라 잘 자라는 농작물도 다르고 즐겨 먹는 식재료도 각각 다르다. 그런 가운데 냉면은 각 지방의 특징이 그대로 반영된 대표 음식이다.

냉면집에 가면 가장 궁금한 것이 평양식 냉면과 함흥식 냉면의 차이점이다. 평양식은 깔끔한 물냉면이고, 함흥식은 맵게 양념한 비빔면이다. 평양식 면은 메밀을 재료로 조금 굵게 뽑고, 함흥식 면은 전분으로 가늘고 질기게 뽑는다. 면의 식감은 평양식이 훨씬 부드럽고 잘 끊긴다. 평양냉면은 차가운 양지머리 국물과 동치미 국물에 차가운 면을 말아 먹는다. 메밀가루와 녹말가루를 섞어 만든 면을 삶아 건진 다음, 찬물에 헹궈 사리를 만들고 찬 육수에 말아 김치와 돼지고기 편육을 얹는다. 기호에 따라 식초, 설탕, 겨자, 삶은 달걀, 무, 배를 첨가하면 더 개운한 맛을 즐길 수 있다.

함흥냉면은 매콤한 맛이 일품이다. 함흥의 특산물인 감자를 사용하는데, 100% 감자전분을 넣어 반죽해 면의 식감이 쫄깃하다. 그런데 요즘은 맛의 차이는 크게 없으면서 가격이 싸다는 이유로 고구마전분을 쓰는 곳이 많다. 함흥냉면은 누른 고기나 회무침을 고명으로 얹어 얼큰하게 비벼 먹는다. 함흥냉면의 특징 중 하나는 면수가 없다는 것이다. 평양냉면집이 메밀면 삶은 물을 주는 것과 달리, 함흥냉면집은 고기 육수를 준다. 면수를 주지 않는 건 전분 때문이다. 전분 함량이 높은 면을 삶은 물은 맛이 없다.

초계는 식초의 ‘초(醋)’와 겨자의 평안도 사투리인 ‘계’를 합친 이름이다. 주로 평안도 사람들이 무더운 여름철에 많이 먹어온 여름 보양식으로, 원래는 궁중요리 가운데 하나였다. 초계탕은 삶은 닭고기, 해삼, 청포묵 등에 새콤달콤한 닭 육수를 붓고 식초와 겨자를 쳐서 차게 먹는 음식이다. 닭 대신 메밀 면을 말아 먹기도 하는데, 그게 바로 초계면이다. 닭의 단백질과 메밀의 탄수화물을 동시에 섭취할 수 있는 영양만점 메뉴다.

한때 사라질 위기에 처했던 냉면도 있다. 진주냉면이다. 교방문화가 발달했던 진주에서는 교방 상차림 끝에 냉면을 냈다. 진주냉면은 그 어떤 냉면보다 고명이 화려하고 만드는 과정도 까다롭다. 고기 육수나 동치미 대신 사골국물에 각종 해산물을 넣어 육수를 만드는데, 재료마다 넣는 시간이 달라 육수를 끓이는 데만 3일이 걸린다. 끓인 육수는 불순물을 걷어가면서 15일간 항아리에서 숙성시켜야 제맛을 낸다. 고명으로는 전복, 해삼, 석이버섯, 육전, 묵은지 등 아홉 가지 오방색 고명이 올라간다. 고명을 올린 진주냉면은 한 폭의 그림 같다.


조선호텔 원셰프의 '냉면 맛있게 만드는 비법'



/ 여성조선 (http://woman.chosun.com/ )
  취재 강부연 기자 | 사진 강현욱 | 요리 및 도움말 윤숙자(한국전통음식연구소 소장), 원승식(조선호텔 메인주방 한식부 셰프) | 참고도서 《한국인의 밥상》(시드페이퍼), 《대한민구 누들로드》(브레인스토어), 《아름다운 한국음식 100선》(한림출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