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산] <365> 영천 기룡산 |
걷다가 더우면 계곡에 풍덩… 바로 이 맛! |
박진국 기자 |
폭염이 계속되고 있다. 어지간히 산에 미치지 않고서야 이런 날씨에 산행에 나서기는 힘들다. 하지만, 계곡을 길게 끼고 산을 탈 수 있다면 다른 이야기가 된다. 가벼운 산행으로 몸을 달군 뒤, 차가운 계곡물을 땀을 씻는 쾌감은 경험해 본 사람만 알 수 있다. 한여름에도 산을 찾는 꾼들이 끊이지 않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산&산'이 세 번째로 소개하는 계곡을 낀 산행 코스는 경북 영천시의 기룡산(騎龍山·961m)이다.
기룡산은 경북 영천시 자양면과 화북면의 경계에 있다. 아직까지 많이 알려지지 않아 호젓하기 이를 데 없다. 산꾼들은 자양면 용화리 경로당에서 왼쪽 능선을 타고 정상과 꼬깔산(737m)을 거쳐 자양면 사무소로 내려오는 코스를 종종 이용한다. 그러나, 이 코스는 총 연장이 12.8㎞로 여름철 산행 구간으로 다소 부담스럽다. '산&산'은 기룡산 정상에서 묘각사를 거쳐 원점으로 바로 내려오는 코스를 잡았다. 이렇게 코스를 잡으면 묘각사에서부터 원점까지 줄곧 완만한 계곡을 타고 하산할 수 있어 여름 산행 구간으로 제격이다.
구체적인 경로는 용화리 경로당~금강교~반야교~운곡지 입구~경주 이씨 묘~전망바위~능선 마루~낙대봉~전망대~이정표~이정표~전망바위~이정표~정상~이정표~묘각사~원점 순이다. 모두 9.1㎞ 구간으로 4시간가량 걸렸다.
숲그늘 옆 완만한 계곡 끼고 산행
맑은 1급수 속엔 쏘가리 헤엄쳐
지세 뛰어나 묘지 유난히 많아
전망바위 오르면 영천댐 보여
산행의 시작은 기룡산 끝자락에 안긴 자양면 용화리 경로당이다. 경로당 왼쪽 묘각곡 옆으로 난 임도를 타고 마을을 가로지른다. 곧 금강교와 묘각교를 잇달아 건너 운곡지 방면으로 마을을 벗어난다.
계곡에는 다슬기 잡는 동네 아낙이 허리를 굽히고 부지런히 손을 놀리고 있다. 물속을 자세히 들여다보니 1급수에서만 산다는 쏘가리가 헤엄쳐 다닌다. 하긴 주위를 아무리 둘러봐도 오염원이 될 만한 것들을 찾을 수 없으니 물이 맑을 수밖에 없다.
이 마을 주변에는 유난히 용(龍)과 구름(雲), 묘각(妙覺)이라 이름 붙은 것들이 많다. 오늘 탈 산 이름도 기룡산이고, 이 산에 안긴 절은 묘각사다. 심지어 계곡 이름도 묘각곡, 다리 이름 역시 묘각교다.
이 마을 한 노인은 "아마도 묘각사에 얽힌 전설 때문에 그럴 것"이라고 한다. 이 노인에 따르면 기룡산과 그 7푼 능선에 위치한 묘각사는 뗄 수 없는 전설을 공유하고 있다. 신라시대 화엄의 진리를 깨달은 의상대사(625~702)가 이곳에 절을 연다는 소문을 들은 동해 용왕이 말을 타듯 달려와 산의 이름이 기룡산이 됐다고 한다. 또 의상대사의 설법을 들은 용왕이 홀연히 묘한 깨달음을 얻고 하늘로 승천하면서 오랜 가뭄을 해갈하는 단비를 뿌리자, 의상대사가 절의 이름을 묘각사로 지었다고 전한다. 이런 전설 때문인지 가뭄이 심해지면 묘각사에서 자주 기우제를 지내고 있다. 이 절은 임진왜란 때 소실됐다가 조선 영조 36년(1760년)에 중건됐다.
들머리에서 10분가량 시멘트 임도를 타고 올라가니 길이 두 갈래로 갈린다. 운곡지 갈림길이다. 왼쪽으로 저수지 둑이 보이고 오른쪽은 묘각사로 가는 길이다. 운곡지 방면으로 계곡을 건너 10m 전진하다가 오른쪽 깨밭을 가로질러 산자락에 붙는다. 깨밭 위에는 경주 이씨 무덤이 보인다. 능선으로 붙는 초입 찾기가 쉽지 않으니 산행 안내리본을 잘 보고 전진한다.
일단 초입만 잡으면 길은 뚜렷하다. 경주 이씨 묘를 지나니 또 묘지가 나온다. 이 묘지를 지나자 곧 용화리 전체를 내려다볼 수 있는 전망바위가 나온다. 산 위에서 내려다본 용화리는 전형적인 '배산임수'형 지세다. 마을은 기룡산을 등지고 안온하게 앉았고, 운곡지와 묘각곡을 품고 있다. 골짜기 끝에는 작은 산이 버티고 있어 좋은 기운이 빠지지 못하게 가두는 형국이다. 명당으로 부르기에 손색이 없다. 가만히 되짚어 보니 오늘 산행 구간 중 유난히 묘지가 많은 이유도 이 때문이지 싶다.
전망바위를 지나 집채처럼 솟은 암릉을 길게 우회한다. 이 구간에서 전망을 볼 수 있는 포인트가 잇따른다. 전망이 계속 좋다는 것은 바위가 많고 숲이 성기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바위의 복사열 때문에 숨이 턱 막힐 지경이다.
첫 번째 전망바위에서 10분 더 오르니 능선 마루에 도착한다. 여기서 왼쪽 바위 사이로 올라 낙대봉으로 길을 잡는다. 능선 마루에서 넉넉잡아 5분 거리인 낙대봉(522.8m)은 삼각점과 표시 리본이 없었다면 그냥 지나칠 정도로 초라하다. 원형 탈모에 걸린 것처럼 삼각점 주위로 둥그렇게 땅이 드러나 있을 뿐이다.
낙대봉을 지나치면 또 전망바위를 만난다. 맑은 날씨에 멀리 영천댐까지 한눈에 조망할 수 있다. 이 전망바위에서 기룡산 정상까지 3개의 이정표를 만난다. 묘각사로 바로 내려갈 것인가, 아니면 정상으로 계속 갈 것인가를 묻고 있다. 정상에 오르기 위해 계속 직진한다. 길은 참나무 그늘 속으로 펼쳐지며 오르락내리락 한다. 길옆에는 말풀이 자라 초원을 만들었다. 한동안 햇살을 피해 그늘 길을 걷는다.
정상을 600m 정도 남겨둔 지점에서 용화리 반대편을 조망할 수 있는 바위 능선이 펼쳐진다. 영천시 화북면 들판은 물론 멀리 보현산 천문대, 그 옆의 면봉산 기상관측소까지 보일 정도로 사위가 탁 트였다.
정오의 바위 능선은 복사열로 뜨겁다. 햇빛 피할 그늘마저 없으니 괴롭다. 서둘러 바위 능선을 벗어나 보지만, 기룡산 정상까지 구간은 숲이 성기다. 산 사면을 타고 불어오는 산들바람이 그나마 위안이다.
15분가량 열심히 걸으니 송신탑처럼 생긴 산불 무인감시기가 보인다. 무인감시기 바로 옆에 기룡산 정상석이 보인다. 해발 961m의 정상에서는 사위가 시원하지만 햇살이 너무 뜨거워 조망을 즐길 여유가 없다. 서둘러 숲길을 따라 하산한다.
정상에서 1분 정도 직진하면 이정표가 나온다. 계속 직진하면 꼬깔봉인데, 3.4㎞ 남았다. 오른쪽으로 꺾어 내리막길을 타면 묘각사가 1㎞ 남짓 남았다. 내리막길을 40분 정도 걸으니 절이 나온다. 묘각사다. 경내에 들어서자 백구 한 마리가 더위에 지친 듯 축대에 늘어져 있다. 낯선 사람을 보고도 짖지도, 일어서지도 않는다. 절만 아니었으면 올해 복날을 넘기기 힘들지 않을까 싶다.
가람 정중앙에서 중심을 잡고 있는 극락전은 참 당당하다. 2009년에 새로 지었다고 하는데, 마치 그 자리에서 천 년을 견딘 듯 자연스럽다. 경내에는 극락전 말고도 지장전, 산신각, 요사채 2동이 들어서 있다. 특히 극락전 왼쪽의 요사채는 조선 중기 일반 가옥처럼 'ㄷ'자 형태로 만들어졌다.
묘각사 구경을 끝내고 묘각곡을 따라 원점까지 하산한다. 묘각곡은 기룡산 남쪽 사면에서 발원, 용화리를 거쳐 영천댐으로 흐른다. 묘각사 아래서부터 물길이 뚜렷해져 계곡의 형태를 갖춘다. 원점인 용화리 경로당을 스쳐 지나는 계곡은 시멘트 임도와 몇 번 엇갈리며 3㎞ 넘게 흐른다. 계곡이 조금이라도 거칠어진다 싶으면 임도로 올라오면 된다. 폭포 하나 없이 완만한 계곡이 숲 그늘 속으로 흐르니 더위를 피해 하산하기에 제격이다. 원점인 용화리 경로당까지는 40분 소요.
산행 문의: 라이프레저부 051-461-4164. 최찬락 답사대장 010-3740-9323.
글·사진=박진국 기자 gook72@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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