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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 구가하는 높은 산, 깊은 골

호젓한오솔길 2012. 9. 8. 21:48

 

[비박 산행 |
 
가지산~운문산] 여름 구가하는 높은 산, 깊은 골
  • 글·한필석 부국장대우
  • 사진·정정현 국장 
 
 
영남알프스 명계곡 학심이골과 명능선 가지~운문산 능선잇기
▲ 심산유곡의 전형을 보여주는 학심이골. 자연미 넘치는 골짜기에 숲이 울창하게 우거져 더욱 깊고 신비감 넘친다.

 

영남알프스의 여름은 오묘했다. 아름답고 신비로웠다. 웅장했다. 폭우로 물이 넘친 골짜기는 큰 소리로 울어댔다. 반면 영남알프스 맹주 가지산(加智山·1,240m)은 며칠째 하늘을 뒤덮은 먹구름에 억눌려 숨 죽이고 있었다.


구름이 벗겨지고 파란 하늘이 드러나자 순간 모든 게 변했다. 햇살이 내리쬐자 가지산 산릉은 불쑥 일어섰다. 그리곤 꿈틀거리며 굵고 기운찬 산줄기를 사방으로 뻗쳤다. 한 갈래는 서쪽 운문산(雲門山·1,188m)으로 뻗어 내리며 남쪽 밀양과 북쪽 청도를 감싸안고, 또 한 갈래는 동쪽 상운산(上雲山·1,117m)과 남동쪽 석남고개로 뻗으면서 낙동정맥을 이어나갔다. 다른 능선들도 잠자코 있지 않았다. 능선들은 정상을 중심으로 부챗살처럼 뻗어내리고 그 사이사이 깊고 깊은 골짜기를 만들어놓았다. 거기서 맑은 기운이 솟아나고 있었다.

 

신비감과 웅장함 곁들인 학심이골
“벌써 한여름이네요. 저 사람들 좀 보세요.”


양산 산악인들과 함께 69번 지방도를 타고 운문령(640m)을 넘어 청도 땅으로 들어서는 순간 분위기가 확 달라졌다. 전날 밤 고속도로는 정상속도를 내기 어려울 만큼 폭우가 퍼부어댔는데도 도로변 물가에는 피서객들 모습이 심심찮게 눈에 띄고, 한갓지리라 예상했던 운문산자연휴양림은 놀라울 만큼 많은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다. 천문사 입구도 매한가지. 민박·펜션마다 사람들로 북적이고 캠핑장은 오색 텐트로 꽉 채워져 있다. 이제 7월 초인데 벌써 한여름 피서철 같은 분위기였다.


▲ 가지산 진입로

 

“숲 좋네요. 물도 콸콸 흘러내리고. 너무 감탄해하지 마세요. 이 배넘이골은 서곡에 불과해요. 학심이골이 진짜예요.”


사뭇 어수선하던 분위기는 천문사(天門寺)를 지나 배넘이골로 들어서는 순간 180도로 바뀌었다. 울창한 숲은 거센 물소리로 울리고 있었다. 고색창연한 빛깔의 바윗덩이가 뒤엉킨 골짜기를 타고 흘러내리는 물줄기는 마치 숲을 뚫고 나오는 듯 활기차고 맑은 기운이 느껴졌다. 그런 풍광에 감탄스런 표정을 짓자 이상배(양산등산교실 학감)씨는 배넘이재 너머 운문학심이골 풍광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라고 말한다.


물줄기를 벗어나 된비알을 10여 분 올려치자 배넘이재 고갯마루. 널찍한 고갯마루에는 ‘운문산 생태보전지역’ 안내판이 서 있다. 가지산~운문산 능선 북쪽은 운문산 군립공원으로서 생태경관보전지역이다. 이로 인해 환경 훼손을 일으키는 행위는 일절 금지돼 있고, 때문에 자연경관이 잘 살아 있다.


“운문사에서 위로 올라가는 건 막아도 하산하는 건 아무 소리 안 해요. 그래서 배넘이재를 넘어 학심이골이나 심심이골 혹은 북릉을 타고 가지산 정상에 오르거나 아니면 가지산~운문산 능선에서 운문사 쪽으로 내려서요.”


고갯마루를 넘어 20분쯤 내려섰을까, 우렁찬 물소리와 더불어 산새 울음소리가 들려오더니, 곧 물안개가 피어오르고 햇살이 부챗살처럼 내리쬔다. 해는 참으로 신비롭다. 우중충한 날씨에 침울해진 사람의 기분을 환하게 바꿔줄 뿐만 아니라 대자연을 움직인다. 빛은 생명력이다. 그 빛을 받은 학심이골은 힘이 넘치면서도 신비로운 분위기를 자아낸다. 커다란 바윗덩이마다 짙푸른빛을 띠며 원시적인 분위기를 자아내고, 그 바윗덩이 사이사이로 흘러내리는 계류는 보석처럼 반짝인다.


▲ 천문사 석불. 곳곳에 석불이 놓여 있는 사찰이다.

 

올해 봄 양산등산교실을 나온 ‘양산 아지매’들이 정성스럽게 싸가지고 온 밥과 반찬으로 배를 든든히 불린 뒤 개울을 가로질러 학심이골을 거슬러 오른다. 골짜기는 곧 좁아지고 가팔라지면서 원시적인 분위기에 세련미까지 더한다. 협곡 한쪽은 기암절벽이 장식하고 반대편은 울창한 숲이 우거진 가운데 거센 물줄기가 흘러내리고 있다.


커다란 바윗덩이 징검다리를 건너서자 산길이 한층 넓어지면서 가팔라진다. 골을 울리는 물소리에 골 안에 무슨 비경이 숨어 있는가 싶어 샛길 따라 협곡으로 내려서자 묘한 형상의 폭포가 반겨 준다. 숲속 샘에서 펑펑 솟아오른 듯한 물줄기는 커다란 바윗덩이 두 개를 끼고 흘러내린 뒤 오른쪽으로 휘어진 바위 골 타고 몸을 뒤틀었다가 절벽 위에서 점프를 시도한 다음 푸른 소로 잠겨 든다.


협곡을 빠져나와 다시 산길로 접어들자 뭉게구름이 피어나고 파아란 하늘이 펼쳐지고 그 아래 푸른 산릉이 빛나면서 산은 한층 아름답고 기운찬 풍광을 과시한다. 마치 1970년대 중반 시설물이 전혀 들어서지 않아 원시미를 자랑하던 설악산 십이선녀탕을 오르는 기분이다.


“여기서 오른쪽 계곡으로 내려서죠. 그래야 골짜기를 제대로 봐요.”


징검다리를 건넌 이후 두 번째 목책 직전 이상배씨는 널찍한 등산로에서 벗어나 오른쪽 샛길로 일행을 안내한다. 바윗돌에 빨간 페인트로 표시된 화살표를 따르자 곧 지계곡을 가로지른 뒤 협곡으로 내려선다. 악마의 이빨인들 저렇듯 험악스러울 수 있을까? 물줄기는 일행을 빨아들일 듯한 분위기로 하얀 포말을 일으키며 쏟아져 내리면서 일행의 몸을 싸늘하게 식힌다.


▲ 학심이골 초입의 계류를 가로지르는 양산 등산인들. 발이 시릴 정도로 차가운 물이 흘러내렸다.

 

그러다 잠시 차분한 분위기의 계곡이 나타나자 등산교실 동기생인 배수연씨와 여상순씨는 배낭에서 참외에 자두를 꺼내놓고 일행의 입을 즐겁게 해준다. 거기에 힘 받아 다시 짤막한 지능선을 넘어서자 허연 포말이 우리를 덮칠 듯 쏟아져 내린다. 학이 깃들어 살았다고 전하는 학소대(鶴巢臺) 제1폭포다. 수원이 보이지 않는 허연 물줄기는 바위협곡을 비집고 나와 그 아래 3단 폭포에서 완급을 거듭하며 쏟아져 내리다가 푸른 소에서 잠시 숨을 고른 뒤 두 줄기로 나뉘어  쏟아지면서 멋들어진 와폭을 만들고 있다.


“원래 오늘 천화대 등반이 계획돼 있었는데 아쉬움이 전혀 없네요.”


등산학교를 다니면서 바위맛에 흠뻑 빠진 배수연씨와 여상순씨는 어제 오전에 만날 때부터 천화대 암릉 등반을 못 해 아쉬워하더니 학소대폭포를 보는 순간 그 아쉬움을 떨쳐내 버린다.


학소대 제1폭포 위쪽에서 물줄기 한 차례 건너고, 또 다시 물줄기를 건넌 다음 30분가량 계곡으로 이어지던 산길은 어느  순간 지능선으로 올라붙더니 물소리는 점점 작아지고, 머리끝부터 바짓가랑이까지 땀에 푹 젖어들 즈음 능선마루로 올라선다.

 

산이 높고 골이 깊으면서도
너른 들녘 끼고 있어 더욱 아름다운 산

오후 7시, 운문령에서 쌀바위까지 이어지는 임도 위에 올라서자 된비알 구간이 거의 다 끝났다는 생각에 잠시 마음이 편안해졌다가 급해진다. 계획대로 가지산 산정에서 일몰 사진을 촬영하려면 늦어도 40분 이내에 산정에 올라서야 한다.


▲ 학심이골 초입의 무명폭. 이름이 없다는 게 의아스러울 정도로 웅장하고 멋들어진 폭포다. 골짜기 초입의 ‘쌍폭 포인트’를 지나 물줄기를 한 차례 건넌 다음 언덕길을 오르다 오른쪽 샛길로 빠지면 모습을 드러낸다.

 

10분도 안 돼 쌀바위 아래에 도착했으나 순간 안개가 몰려오면서 시야가 꽉 막힌다. 잠시 망설이다가 고민할 게 뭐 있으랴 싶어진다. 오늘 이만한 비박지를 또 만나기 어려울 터인데. 널찍한 데크가 마련돼 있고, 바로 옆에 석간수 샘이 있고, 데크 바로 옆 바위지대는 새천년 해맞이 행사를 열었을 만큼 조망이 좋은 곳인 걸. 널찍한 플라이를 치고, 배낭을 정리한 다음 버너에 불을 붙이자 양산 아지매들 배낭에선 먹거리가 끝없이 쏟아져 나오고 그 음식에 일행의 입은 다물어질 줄 모른다.


서로 코고는 소리에 잠 못자겠다는 배병달씨와 황원선씨의 투덜거림에 새벽부터 잠이 달아났으나 짙은 안개를 핑계 삼아 침낭을 푹 뒤집어쓰고 있다가 6시 반이 넘어서야 침낭에서 빠져나온다. 안개는 엊저녁보다 더욱 두텁다. 맥이 빠지기는 하지만 오늘 걸을 거리가 만만찮다는 생각에 아침밥을 든든히 먹고, 그리도 안개가 벗겨지기를 기대하면서 데크 주변과 ‘새천년 가지산 해맞이’ 기념 빗돌 옆에서 서성이다가 결국은 포기하고 오전 7시45분 가지산 정상으로 향한다.


우리만 가지산의 조망을 기대한 것은 아니었다. 정상 직전 자그마한 데크에서도 일출을 기대하며 텐트를 쳐놓고 지낸 등산객 두 명이 있었다. 이들 역시 짙은 안개에 잠이나 실컷 자자고 마음먹었는지 9시가 다 돼 가는데 도 코고는 소리를 내며 깊은 잠에 빠져 있다.


영남알프스 맹주이자 영남 최고봉 가지산 산정은 아쉽게도 안개에 싸여 보여주는 게 아무 것도 없다. 쌀바위대피소 주인이 그랬듯이 이른 아침 운문령에서 올라온 아이스크림 장사꾼들 역시 장마철인 7월 한 달은 가지산 일원은 구름안개에 휩싸여 눈에 보이는 게 아무 것도 없다고 단언한다.


▲ 가지산 개념도

 

그래도 하는 마음에 산정에서 아이스크림으로 열을 식히면서 앉아 있는 사이 구름이 살짝 벗겨지더니 정상 너머 헬기장을 꽃단장해 준 텐트 넉 동이 내려다보인다. 가지산 정상대피소 명물 ‘눈썹 진돗개(일부러 그려놓은 듯 눈 위에 한일자 눈썹이 있는 개)’와 놀며 안개가 더 많이 걷히기를 기다리던 일행은 구름이 더 이상 벗겨지지 않자 헬기장으로 내려선다.


우리와 마찬가지로 배넘이재를 넘고 가지산 북릉을 타고 이곳에 와서 머물고 있다는 울산 산꾼들이 쳐놓은 초경량 텐트를 구경하고, 또 “1년 365일 어느 날 찾아도 좋은 산”이라는 가지산 자랑을 듣는 사이 구름이 걷히면서 산릉이 모습을 드러낸다.


같은 영남알프스의 산봉이지만 가지산릉은 신불산이나 천황산과 달랐다. 두 산이 부드러운 산악미의 극치를 보여준다면 가지산릉은 기운찬 산세의 전형이다. 기암괴벽이 솟구치고, 푸른 숲을 뒤덮은 산릉은 기운차고 힘이 넘쳤다. 그 아래 깊고 넓은 골짜기가 깃들어 있어 산은 한층 신비로웠다.


이런 풍광 덕분일까, 바람소리만 들리던 산봉은 구름안개가 벗겨지면서 산새가 곳곳에서 울어대고, 숲속에서 숨어 있던 잠자리들은 떼를 지어 날아다니며 군무를 추어댔다. 이제야 영남알프스의 맹주, 영남 최고봉 가지산에 올라 있다는 사실이 실감났다.

 

영남알프스 명계곡 학심이골과 명능선 가지~운문산 능선잇기
▲ 일행 모두 깊은 잠에 빠져 있는 사이 쌀바위는 안개를 헤치며 모습을 드러냈다. 쌀바위 데크에서 비박 중인 취재팀.

 

산은 곳곳에 조망대를 갖추고 있어 눈을 즐겁게 해주고 가슴을 벅차게 해준다. 그러다 숲이 나타나 조망이 사라지면 노란 나리꽃이 반겨주고, 숲을 벗어나면 또다시 잠자리가 군무로 환영해준다.


산꾼들은 참으로 극성스럽다. 금요일 저녁 영남알프스 일원에 밤새 비가 내렸다는 소식을 분명 들었을 터인데도 멀리 수원에서 온 등산인들도 가지산릉을 따르고 있다. 무명봉에서 조망을 즐기던 이들은 운문산과 가지산뿐만 아니라 오늘 능동산(983m)과 천황산을 거쳐 재약산까지 뽑겠다니 그 열정이 대단타 싶다.


제일농원 갈림목(제일농원 2.61km, 가지산 2.6km, 운문산 2.2km)을 지나자 조망이 전혀 달라진다. 그 전까지 웅장하고 기운찬 산만 보였다면 이제 풍요로우면서도 평화로운 풍광의 밀양 들녘이 한눈에 내려다보인다. 그 뒤로 능동산에서 천황산으로 뻗은 산줄기뿐만 아니라 신불산에서 영축산으로 뻗은 산릉도 눈에 들어온다. 영남알프스가 아름다운 것은 산릉 산봉만 솟아오른 게 아니라 이렇게 사람이 깃들여 살기 좋은 들녘도 있기 때문이리라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급경사 내리막을 30분쯤 내려서자 아랫재 네갈래 갈림목 안부에 닿는다. 널찍한 초원에 환경감시초소가 서 있는 안부에서 왼쪽 길을 따르면 남명초등학교(2.9km)로 내려서고, 오른쪽 길은 심심이골(심심계곡)을 따라 학심이골 합수지점으로 이어진다. 심심이골은 오늘 아침 먼저 하산한 이상배씨가 학심이골 못지않게 자연미 넘치는 골짜기라 극찬했던 계곡 길이다.


“저길 어떻게 올라가? 표고차가 400m도 훨씬 더 나는데…,”


▲ 쌀바위대피소 앞에서 기념촬영. 맨우측은 관리인.

 

아랫재 부근 나무그늘 아래서 간식을 먹는 사이 노년의 등산객이 일행에게 “나는 남명초등학교 쪽으로 내려갈 테니 다른 사람들이나 정상에 올랐다 내려오라” 한다. 그 소리에 배병달씨는 고개를 치켜들어야 보이는 운문산 정상을 오를 것을 생각하니 한심한지 심심이골로 내려가 ‘알탕’이나 하는 게 어떻겠냐고 꼬드긴다.


운문산 정상 길은 된비알의 연속이다. 그래도 시종 숲이 우거지고 간간이 쉴 만한 터에는 운문산을 넘어온 등산인들이 모여 앉아 점심식사를 하면서 성하에 접어드는 운문산의 여름을 즐기고 있다. 된비알을 한 시간 가까이 올려치자니 다리가 점점 무거워진다. 그러나 엄살 부리던 배병달씨와 양산 아지매들은 아랫재 출발 이후 쭉 빼더니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


데크 계단을 거쳐 올라선 운문산 정상은 일요일을 맞아 산은 찾은 등산객들로 북새통을 이루고 있다. 그런데도 잠자리들은 이런 어수선함을 아랑곳하지 않고 파란하늘 뭉게구름을 무대삼아 군무를 추어댔다. 이제 가지산 북릉과 운문령 너머 고헌산까지 빤히 바라보이고, 그 오른쪽으로 능동산~천황산, 간월산~신불산~영축산이 겹을 이룬 채 하늘을 떠받칠 듯 기운차게 솟아 있다. 그 조망과 맑은 햇살이 반가운지 산정에 오른 이들은 땀에 푹 젖어 있음에도 즐거운 표정이다.


“빨랑 내려가서 ‘알탕’ 해요.”


이제 양산 아지매들이 알탕을 더 외쳐댄다. 어제 학심이골을 오를 때 흘린 땀도 만만찮았고, 그런 몸으로 하룻밤 비박한 뒤 또 오늘 아침부터 오후 2시까지 걸었으니 모두들 몸이 땀에 푹 젖고 쪄들어 찝찝할 수밖에 없다. 억산 방향으로 능선길을 따르다 첫 번째 갈림목(석골사 4km, 상운암 0.5km, 억산 3.6km)에서 왼쪽 길을 따라 10여 분 내려서자 등산로 왼쪽 테라스 위에 상운암이 자리잡고 있다.


▲ 가지산 서릉 상의 바위지대에서 양산 아지매들과 변희석씨가 각자 다른 조망을 즐기며 미소 짓고 있다.

 

돌병풍 속의 좁은 협곡 타고 석골사로 하산
슬레이트 지붕 얹은 법당에 요사채 한 채가 모두인 허술한 산사지만 물맛과 인심은 대찰·고찰보다 낫다 싶은 암자다. 게다가 텃밭 앞은 밀양 얼음골 일원이 한눈에 들어올 만큼 조망이 뛰어나다. 스님은 등산객들이 우르르 몰려들면 귀찮을 텐데 “좋은 물이니 많이 마시고 많이 떠가라”고 하더니 한술 더 떠 텃밭에서 상추도 뜯어가라 권한다.


스님의 인심에 덩달아 넉넉해진 마음으로 상운암골을 내려선다. 골짜기는 듣던 대로 급경사 협곡이다. 좁디좁은 골짜기는 밑으로 내려설수록 점점 넓어지고 물소리도 커진다. 뒤에서 내려오는 이들이 우리 뒤를 바짝 따라붙으면 “먼저 가세요” 하며 멈칫했다가 속도를 늦춘다. 어서 내려가서 ‘알탕’ 하자더니 속도를 점점 늦추는 건 또 무슨 심사인지.


물줄기를 여러 차례 좌우로 건너면서 된비알을 내려서는 사이 간간이 계류에 발 담그고 더위를 식히는 등산객들이 눈에 띄고 그때마다 풍덩 뛰어들고픈 유혹을 느끼지만 차 돌리기 위해 쏜살같이 내려선 두 사람이 벌써 석골사 주차장으로 돌아오지 않았을까 싶어 멈추지 못하고 내려선다.


발가락이 욱신거릴 만큼 가파르던 산길은 딱밭재 갈림목(딱밭재 1.5km, 운문산 3.1km, 석골사 1.4km) 이후 유순해진다. 편안해진 발걸음에 여유를 되찾고 뒤돌아보는 순간 거대한 험악한 산이 뒤에 버티고 서 있다. 우리는 험하고 신비감 넘치는 돌병풍 속의 좁은 협곡을 타고 내려섰던 것이다.


점점 널찍해지는 산길을 따라 내려서노라니 어느 순간 석골사 뒤란으로 들어서고, 주차장에 내려서자 배수연씨와 변희석씨는 젖은 머리카락을 흔들어대며 반긴다.


“얼른 물에 몸 담그세요. 땀이 쑥 들어가면서 힘이 날 거예요. ”


두 사람의 말에 “그래도 되냐?” 묻더니 모두 계곡 물로 풍덩 뛰어들었다.

 
 

산행길잡이


쌀바위 데크, 정상 부근 데크와 헬기장이 비박장소로 적절


▲ 가지산 서릉. 가지산 정상과 북릉이 기운차게 솟구쳐 있다.

 

학심이골은 울산산악인들이 영남알프스에서 가장 아름답고 자연미 넘치는 골짜기로 꼽는 계곡이다. 그러나 아쉽게도 정상적인 산행 기점이 운문사이지만 사찰 측에서 위쪽에서 내려오는 등산객은 막지 않지만 위쪽으로 오르는 산행을 허용하지 않아 배넘이재를 넘어 들어서야 한다.


배넘이재는 청도군 운문면 신원리 천문사를 거쳐 들어선다. 천문사 입구는 청도와 언양을 잇는 69번 지방도 상의 운문사 입구에서 남쪽 운문령 방향으로 약 5km, 운문령에서 북쪽으로 약 6km 지점에 있다.


천문사 입구를 들어서면 화강암 일주문을 50m쯤 앞두고 오른쪽 길로 들어섰다가 개울 앞에서 왼쪽 으로 방향을 틀어 계속 나아가면 가슬갑사를 거쳐 천문사 뒷문을 지나 계곡으로 들어선다. 산길은 배넘이재까지 잘 나 있다.


배넘이재를 넘어 산길을 따르면 오른쪽 사면을 따르는 길이 나오는데 이 길은 무시하고 계속 지계곡을 따르면 널찍한 학심이골 초입으로 내려선다. 초입에서 일단 폭이 넓은 계류를 건너야 한다. 산길은 ‘쌍폭 포인트’를 지나 물줄기를 한 차례 건넌 다음 언덕길로 접어든다. 도중에 오른쪽 샛길로 빠지면 멋진 무명폭을 감상할 수 있다.


다시 정상적인 산길을 따르노라면 추락방지용 목책이 나타난다. 학심이골을 대표하는 학소대폭포를 보려면 두 번째 목책 직전 오른쪽 계곡으로 내려서야 한다. 안내판 대신 바위에 빨간 페인트로 표시된 화살표 방향을 따르면 물가로 내려서고 물줄기를 건너선 다음 학소대 제1폭포 앞에 선다.


이후 널찍한 산길을 따르다 다시 물가로 내려서면 절벽 아래 설치된 목교가 눈에 띈다. 여기서 목교를 건너지 말고 물줄기 오른쪽 희미한 산길을 따르면 곧 계곡 건너편으로 리본이 보인다. 여기서 도강하면 이후 지능선에 올라붙기까지 한 차례만 물줄기를 건너고, 지능선에 올라붙은 이후 30분 정도 오르면 운문령에서 쌀바위까지 이어지는 임도(약 3.5km)에 올라선다.


‘학심이골’이라 글씨가 써 있는 119 조난 표지판이 유일한 학심이골 갈림목 표시다. 임도 갈림목에서 쌀바위까지는 10분 이내 거리로 경사를 느끼지 못할 만큼 편안한 길이다.


쌀바위에서 가지산 정상까지는 약 30분 거리로 길이 잘 나 있다. 임도는 쌀바위에서 끝나고 이후 산길을 따라야 한다. 가지산 정상까지는 30~40분 거리이며, 가지산 정상에서 운문산 정상까지는 3시간 안팎 걸린다.


▲ 운문산 정상으로 오르는 사이 밀양 얼음골 들녘이 한눈에 들어온다.

 

운문산 정상에서 석골사로 내려서려면 정상에서 억산 방향(서쪽)으로 가다가 첫 번째 갈림목(운문산 0.5km, 상운암 0.5km, 석골사 4km, 떡밭재 1.6km, 억산 3.6km)에서 왼쪽 길로 내려서야 한다. 상운암은 한여름에도 차가운 샘물이 콸콸 솟구치고 널찍한 테라스를 이룬 암자 아래로 조망이 좋아 운문산 마니아들에게 인기 있는 곳이다.


상운암에서 석골사까지는 3.5km 거리로 협곡 물줄기를 헤아리기 어려울 만큼 여러 차례 건너면서 내려간다. 도중에 딱밭재 갈림목(딱밭재 1.5km, 석골사 1.4km), 범봉 갈림목(범봉 1.36km, 석골사 1.2km), 억산 갈림목(억산 3.1km, 상운암 3.6km, 운문산 4.2km)을 지나친다. 약 1시간30분 소요.


웅장한 석골폭포가 들머리를 장식한 석골사에서 밀양~언양 간 노선버스가 다니는 24번국도까지는 약 2km 거리다.


능선 상의 비박장소로는 쌀바위와 가지산 정상 부근이 적당하다. 쌀바위 아래에는 널찍한 데크가 조성돼 있고, 석간수 샘도 있는가 하면 대피소라는 현판을 걸어놓은 간이매점이 있다. 여기에 2000년 1월 1일 새천년 해맞이 행사가 열렸을 만큼 조망이 좋은 곳이다. 이런 여러 조건 덕분에 한여름이면 임도 일원까지 비박 등산인들로 들어찰 만큼 인기 있는 비박지다.


가지산 정상은 평평한 곳이 없고 비가 내리면 피할 만한 곳이 없어 비박지로는 적합지 않다. 쌀바위 쪽에서 오르노라면 정상 직전 좁은 데크가 하나 있는데 3~4인용 텐트 한 동이면 꽉 찰 만큼 좁은 공간이다. 정상 너머 헬기장은 공간이 널찍한 데다 남동쪽과 북쪽이 트여 있어 조망이 매우 좋다. 그러나 비바람을 막을 만한 숲이 전혀 없다는 게 단점이다. 비박 중 비가 퍼부을 조짐이 보이면 정상 쪽에 위치한 대피소로 피해야 한다. 또한 정상 부근에서 비박할 때에는 밑에서 짊어지고 오거나 쌀바위 샘에서 물을 구해야한다. 가지산정상대피소에서는 900mml 생수 한 통에 2,000원씩 판매하고 있다. 라면(4,000원)과 음료수(사이다, 콜라, 게토레이), 주류 판매도 한다.


취재팀이 답사한 반대 방향으로 산행한다면 운문사를 산행 종점으로 잡을 수 있다. 이 경우 식수를 구할 수 있는 상운암에서 약 20분 거리인 운문상 정상이 비박지로 적당하다. 정상 남서쪽 평지가 적당하며 비바람이 칠 조짐이 보이면 정상에서 상운암 방향 숲 지대가 바람직하다.


산행시간은 천문사~학심이골 입구 1시간10분, 학심이골~쌀바위 3시간, 쌀바위~가지산 40분, 가지산~운문산 3시간, 운문산~석골사 4시간 정도 걸린다. 


동대구역에서 버스나 택시로 남부정류장 20분 정도 소요. 운문사 6,700원, 통정 7,000원, 8,200원.


▲ 상운암골짜기 초입에 자리잡은 석골사.

 

 

교통
■운문사 천문사 입구행 노선버스는 대구남부시외버스터미널(053-741-2234)을 출발해 청도군 금천면 동곡공용버스정류소(054-372-3881)를 경유한다.


■대구→천문사 입구 남부시외버스터미널에서 06:20, 07:25, 10:00, 13:10, 16:00 출발. 약 1시간30분 소요, 요금 7,300원. 운문산자연휴양림(삼계리) 7,500원. 천문사 입구에서 남대구행은 09:30, 11:00, 13:30, 16:10, 19:20 경유. 청도시외버스터미널(054-372-1565)에서 운문사행 노선버스는 1일 16회(06:20~20:00) 운행한다. 6,700원. 운문사 입구에서 천문사 입구까지는 약 5km.


■언양→천문사 입구 시외버스터미널(1666-1006)에서 09:00, 10:30, 13:00 15:40, 18:50 출발. 30분, 2,100원. 천문사 입구에서 언양행은 07:50, 08:50, 11:30, 14:40, 17:30 경유. 약 40분 소요, 요금 2,300원.
대구남부시외버스터미널(053-741-2234)은 동대구역이나 대구고속버스터미널에서 버스나 택시로 20분 거리에 있다.


■석골사 입구 버스정류장에서 밀양이나 석남사행 노선버스를 탈 수 있다. 밀양행은 약 40분, 석남사행은 50분 간격으로 운행한다. 언양 방면으로 갈 경우 석남사 주차장에서 언양이나 울진행 시내버스를 이용한다.

 

드라이브코스
■중앙고속도로 청도 나들목 → 20번국도 → 매전 → 금천 → 운문 → 69번지방도 →
운문사 입구 → 약 5km → 금천사 입구


■경부고속도로 경산 나들목 → 69번지방도 → 남산 → 금천 → 20번국도 → 운문 → 69번지방도 → 운문사 입구 → 약 5km → 금천사 입구


■경부고속도로 양산 나들목 → 24번국도 → 가지산탄산온천지구 → 69번지방도 → 운문령 → 약 6km → 천문사 입구


숙식
천문사 입구에서 운문령 방향으로 약 3km 떨어진 운문산자연휴양림은 영남지역에서 매우 인기 있는 휴양림으로 다양한 규격의 숙소와 야영장을 갖추고 있다.


예약은 사용일 6주일 전부터 국립자연휴양림 홈페이지(www.huyang.go.kr)를 통해 받으나, 숙소의 경우 8월 25일까지 성수기 예약이 이미 끝난 상황이다. 문의 054-373-1327.


천문사 입구 주변에는 물레방아집(010- 8566-0453), 쌍두봉가든(054-371-3440), 청도별장(054-372-1217) 등 캠핑장을 갖춘 식당과 별찌(010-7747-7481)와 같은 펜션이 여러 집 있다.


석골사 입구에 식당과 숙박업소가 몇 집 있다. 대경가든(352-6539)은 흑염소와 닭요리, 해오름식당펜션(353-5325)은 흑염소와 오리백숙이 전문이며, 청림산장(352-0409)은 오리와 닭백숙을 내놓으면서 민박도 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