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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대산 천년의 숲길을 따라 월정사에서 상원사까지

호젓한오솔길 2012. 10. 17. 23:06

 

오대산 천년의 숲길을 따라 월정사에서 상원사까지

 

 

 

2012년 10월 13일 토요일 오후 1시 4분
강원도 평창군 진부면 동산리에 위치한 오대산 월정사 일주문 앞에서 천년의 숲길 탐방을 시작한다.
통상 사찰 경내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일주문,금강문,사천왕문,불이문의 순으로 4개의 문을 거친다.
현판 글씨가 탄허스님의 친필로 알려진 월정사 일주문을 들어 선다.

일주문이란 문의 기둥이 한 줄로 늘어서 있는데서 유래한 명칭으로, 한 곳으로 마음을 모으는 일심(一心)을 뜻한다.
사찰의 입구에 일주문을 세운 것은 신성한 곳으로 들어가기 전에 먼저 세속의 번뇌를 깨끗이 씻어내고
마음을 하나로 모아 진리의 세계로 향(向)하라는 뜻에서이다.




일주문에서부터 월정사를 휘돌아 흐르는 오대천을 가로지르는 금강교와 사천왕문이 합류하는 지점까지
대략 800m 남짓한 전나무숲길은 이곳 월정사의 자랑거리 중 하나이다.
편백나무,삼나무 다음으로 사람에게 이로운 피톤치드를 많이 내뿜는 전나무를 '젓나무'라고도 하는데,
지난 2003년 84세를 일기로 타계하신 식물학자 고 이창복 교수께서
젓(우유)이 나오는 나무라하여 이름을 고쳐부른데서 비롯되었다한다.




이곳의 전나무는 약 1,700 여수로 알려져 있으며 평균 수령은 80여년
최고 수령은 300년이 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원래는 소나무가 울창하던 이곳이 전나무 숲이 된 데 따른 전설이 전해 내려 온다.
고려 말 무학대사의 스승인 나옹선사가 부처에게 공양을 하고 있는데 소나무에 쌓였던 눈이 그릇으로 떨어졌다.
그 때 어디선가 나타난 산신령이 공양을 망친 소나무를 꾸짖어 쫓아 보내고
대신 전나무 9그루에게 절을 지키게 했다는 것이다.
그 뒤부터 이곳은 전나무가 숲을 이루었고, 실제로 100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월정사를 지킨 셈이 되었다.
그래서 이곳 월정사 전나무 숲을 '천년의 숲'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지난 2006년 10월 태풍에 쓰러져 죽은 전나무 둥치 주위에 많은 탐방객들이 몰린다.
높이 40m가 넘었다는 몸체가 꺾이고 남은 나무 밑동은 성인 2명이 들어가도 남을 정도로 거대하다.
당시 수령 500년이 넘는 최고령 나무였다고 하니 쓰러진 뒤에도 풍기는 위용이 남다르다.




전나무숲길 좌측으로는 맑은 물이 흐른다.
해발고도 1,500m가 넘는 오대산 자락을 타고 흘러내리는 저 물줄기의 이름은 오대천이다.
해발고도 600m를 훌쩍 넘어 700m 가까운 이곳을 흐르는 물줄기는 깨끗하기 이를데 없다.




월정사 입구 주차장에서 월정사 사천왕문으로 이어지는 저 다리 이름은 금강교이다.
월정사를 찾는 많은 탐방객들 중  많은 사람들이 아름다운 전나무숲길을 걸어보지 못한 채
저 금강교를 건너 월정사 경내만 마파람에 게눈 감추듯 일별하고 돌아감이 아쉽다.
마치 그를 아쉬워하듯 금강교 아래를 숨죽이며 흐르는 오대천의 잔잔한 수면 위로
시원한 가을 바람이 수면 위에 추파(秋波)를 만드는가 하면, 몇 잎의 낙엽은 자그마한 파문을 일으킨다.




오후 1시22분
월정사 경내에서 잠시 걸음을 멈춘다.
643년(신라 선덕여왕 12년)에 당(唐)나라에서 돌아온 자장(慈藏)이 
오대산이 문수보살(文殊菩薩)이 머무는 성지라고 생각하여 지금의 절터에 초암(草庵)을 짓고 머물면서
문수보살의 진신(眞身)을 친견하고자 한데서 비롯되었다는 이곳 월정사는
매년 한두번씩 찾는 곳이지만 봄,여름,가을,겨울 사계절마다 색다른 느낌을 주는 곳이다.




국보 제48호인 팔각구층석탑과 보물 제139호인 석조보살좌상을 바라보며 자리잡은
이 적광전은 월정사의 주불전이다.
통상 적광전,비로전의 이름을 붙인 불전의 주불은 비로자나불임에도
이곳 월정사 적광전의 주불은 특이하게도 통상 대웅전에 주불로 모시는 석가모니불이다.




오후 1시27분
월정사 경내를 벗어나 상원사까지 이어지는 오대산 옛길로 접어들기 전
잠시 월정사에서 상원사로 이어지는 도로를 따라 북쪽으로 향한다.
도시의 가로수들은 이제 겨우 색깔이 변하기 시작했지만
해발고도 700m 에 가까운 이곳 오대산 자락은 이미 단풍이 절정으로 치닫고 있다.




오후 1시30분
남대지장암 입구를 지난다. 시간 여유가 있다면 들리고 싶지만 다음 기회로 미룬다.
이곳 오대산(五臺山)은 가운데 있는 중대(사자암)를 중심으로 하여 북대(미륵암)ㆍ동대(관음암)ㆍ
남대(지장암)ㆍ서대(수정암)가 오목하게 원을 그리고 있는 산세가 다섯 개의 연꽃잎에 싸인 것 같다고 하여 불리는 이름이라고 한다.
또한 정상인 비로봉(1,563m)을 중심으로 호령봉, 상왕봉, 두로봉, 동대산 등
다섯 봉우리가 솟구쳐 오대산이라고 일컫는다는 설도 있다.




오후 1시33분
이번에는 도로 우측으로 동대관음암 입구를 지난다.
일만관음상을 그려 봉안한 관음암 뒷산의 이름이 만월산(滿月山)인데,
달 뜨는 모습이 천하제일이라 한다. 그러나 관음암까지 거리가 2km이니...
아쉬운 마음을 머금으며 지나칠 수밖에 없음이다.




월정사부도군 (月精寺浮屠群) 앞을 지난다.
부도는 승려의 무덤을 상징하여 그 유골이나 사리를 모셔두는 곳으로
운공성관(雲空性觀)·금성당(金聖堂) 등의 호를 가진 승려들의 사리를 모시고 있는 이 부도들은 모두 22기에 이르는데,
크기는 1∼2m 내외로 그리 높지않으며 조선시대 중기 이후에 세웠을 것으로 추측되고 있다.




오후 1시40분
지난 1994년 10월에 준공된 길이 75m, 폭8m 의 반야교를 지나며 도로를 벗어나
'회사거리'라 이름 붙은 곳에 도착하며 본격적인 숲길로 들어서게 된다.
이제부터는 오대천 계곡을 따라 이어지는 아름다운 천년의 숲길이다. 가슴이 설레인다.

현재는 월정사가 불사에 쓸 목재를 대기 위해 운영하는 제재소가 있는 곳.
일제 강점기에는 일본인이 운영하는 목재회사가 있던 곳이라 지금도 이곳을 '회사거리'라고 부른다.




회사거리를 벗어나 오대천을 가로지르는 징검다리를 건너며 상류쪽인 북쪽을 바라 본다.
파란 하늘 아래 원색의 옷으로 갈아 입은 울창한 숲이 한 폭의 수채화를 걸어 놓은듯 여겨진다.




징검다리를 이루는 큰 돌 위에서 잠시 멈추고 주위 경치를 둘러 본다.
하류쪽인 남쪽으로 붉게 물든 나무숲을 헤치고 오대천의 물은 흘러 내린다.
시원한 물을 손바닥에 가득 담아 얼굴에 흐른 땀을 씻어 낸다.




오후 2시 11분
붉게 물든 단풍나무 사이로 징검다리가 내려다보이는 나무그늘 아래에서
동행한 십여명의 일행들과 점심식사와 휴식을 취한 후 8km 떨어진 상원사까지 이어지는
이른바 오대산 천년의 숲길 탐방을 본격적으로 시작한다.
월정사에서 이곳까지 거리가 대략 1.6km 남짓이니 전나무숲길 800m를 포함
현재까지 걸은 거리는 2.4km이고 상원사에 들렀다 주차장으로 돌아올 거리를 감안하면
오늘 걸어야할 총 거리는 11km 정도로 예상된다.




이처럼 붉은 단풍은 잎 속의 엽록소가 분해되고, 새로 안토시안이 생성되기 때문에 일어난다.
또한 식물의 종류가 달라도 안토시안은 크리산테민 1종뿐이다.
식물의 종류마다 단풍 빛깔이 다른 것은 이 홍색소와 공존하고 있는
엽록소나 황색·갈색의 색소 성분이 양적으로 다르기 때문이다.




오후 2시27분
'평창시니어클럽'이라는 안내 간판이 붙은 자그마한 밭을 끼고 길은 이어진다.
이 밭은 노인 일자리 전담기관인 평창시니어클럽의 지역 어르신들이 경작하는 밭이라 한다.
또한 경작을 통해 발생되는 수익금은 노인 일자리 창출과 노인 복지에 사용된다니
다른 구간보다 발걸음이 더 조심스러워 진다.




온통 울긋불긋한 단풍으로 물든 천년의숲길은 이처럼 오대천을 가로지르는 징검다리를
심심찮게 넘나들며 이어지는 완만한 오르막 경사길인지라 산행 경험이 없는
노약자들도 그리 힘들지 않게 걸을 수 있다는 점이 좋은 점이다.




오후 2시 35분
큰 돌로 만들어 놓은 징검다리만을 계속 건너왔으나 이번에는 나무다리를 건너는 구간이다.
최종 목적지인 상원사까지 7.3km가 남은 이 지점에는 '보메기'라는 이정표가 붙어 있다.
예전에 오대산에서 벌목한 나무들을 모아두던 곳인데 보를 쌓고 오대천 계곡물을 가둬뒀다가
보를 한꺼번에 터뜨리면서 목재를 하류로 흘려보낸 데서 보메기라는 이름이 생겼다고 한다.




보메기를 지난 천년의숲길은 이내 물가를 벗어나 숲길로 들어선다.
지난 해 또 그 전 해에 떨어진 낙엽들까지 켜켜이 쌓인 숲길은
마치 페르시아산 양탄자를 밟듯 푹신한 느낌으로 다가온다.
내 집 거실에 깔아 놓고 퇴근 후 몸을 맡기곤하는 샤기카펫을 이 낙엽으로 바꿔놓고 싶어진다.




지난 해 가을에도 해발 1,493m 상왕봉을 거쳐 오대산 최고봉인 해발 1,563m 비로봉에 오른 후
적멸보궁을 거쳐 상원사로 하산하는 단풍산행을 했었지만
아름다운 단풍을 만끽하는데는 그 때의 산행구간보다는
지금 걷는 이 천년의숲길이 한 수 위인 것으로 여겨진다.




더구나 이처럼 숲길과 계곡가를 따라 걷는 물길이 번갈아 이어지는 점이 특히 마음에 든다.
아무리 아름다운 단풍길이라도 숲길만 이어지다보면 자칫 지루해질 수 있는 법.
숲길과 물길이 번갈아 나타나는 환상적인 길이다.




오후 2시52분
이제 상원사까지 남은 거리는 6.5km. 해발고도 또한 700m를 넘어선다.

흔히들 붉은색 단풍과 노란색 단풍의 다른 색깔에 대해 무심코 넘기지만
은행잎으로 대표되는 노란색 단풍은 붉은색 단풍과 그 생성 기전이 완전히 다르다.
붉은색은 화학작용에 의해 붉은 색이 생성되지만
노란 잎은 카로티노이드 색소에 속하는 크산토필류 중 주로 제아크산틴·비올라크산틴 등에 의한 것인데,
이들은 이미 초봄 새싹 때 잎에서 만들어지고 여름에는 엽록소의 녹색에 가렸다가
늦가을이 되어 엽록소의 분해로 다시 표면에 나타나는 것이다.




이처럼 온통 붉게 물든 단풍나무 숲을 지날 때는 이곳을 벗어나기가 싫어진다.
치열한 생존경쟁이 난무하는 살벌한 문명사회를 떠나 이곳에서 그냥 머물고 싶어진다.
환상적인 동화나라를 머릿속에 그려보는 데는 나이와 성별은 상관 없으리라.




천천히 작은 소리를 내며 흐르는 오대천 맑은 물에 비친 단풍나무는 실제의 그것보다 한층 붉어 보인다.
크고 작은 돌을 헤집고 흐르는 물이 수정처럼 맑다.
저 물의 주인은 버들치, 금강모치, 열목어 같은 1급수 물고기들이다.
또한 이곳 오대천에는 수달도 서식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오후 3시
오대천을 가로지르는 섶다리 앞을 지난다. 이제 상원사까지 남은 거리는 6km이다.
섶다리 너머로 보이는 도로는 월정사에서 상원사로 이어지는 차량이 다니는 도로이다.
요즈음은 좀체로 섶다리를 만나기가 쉽지 않다.
매년 늦여름에 들리는 봉평 메밀밭 부근에도 관광객들을 위한 섶다리가 만들어져 있어 추억남기기의 명소로 꼽힌다.




이곳 천년의숲길이 좋은 점은 걷다기 힘들면 쉬어갈 곳이 많음이다.
단풍나무 그늘 아래 마련된 공터에는 십여명이 쉬기에 알맞은 나무의자도 마련되어 있다.
이마에 흐른 땀을 훔치고 동행한 지인들과 행복한 담소도 나누는 쉼터의 모습이다.




오후 3시21분
거울처럼 잔잔한 수면 위. 그 위를 절반 가까이 뒤덮은 원색의 낙엽들.
이 한폭의 풍경화 앞에서는 누구나 잠시 걸음을 멈추게 된다.
그러나 얼굴이 잘 생긴 이들은 너무 오래 머물지 말기를 바란다.
연못에 비친 잘생긴 자신의 얼굴에 취해 그를 바라보다 목숨을 잃은 후
수선화꽃으로 변한 그리스 신화의 '나르키소스'의 전철을 밟을까 염려스럽다.
'나르키소스'는 지나치게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일을 뜻하는 영어 단어 '나르시시즘(narcissism)'의 어원이다.




오후 3시36분
상원사까지 5km 정도 남긴 지점에서 계곡가를 따라 이와같은 목재 데크 길이 잠시 이어진다.
지리산 뱀사골, 설악산 주전골,흘림골 등에서 쉽게 접하는 이와같은 인공 구조물이
일반 관광객들에게는 도움이될지 모르지만 자연환경 보전 측면에서는 바람직하지 않은듯 싶다.




이제 해발고도가 730m 정도 된다.
고도가 높아질수록 그에 비례해 단풍의 색깔도 점점 짙어진다.
우리가 가장 좋아하는 계절인 가을이 너무 짭게 지남이 아쉽다.
서양 사람들도 변덕스런 봄 날씨, 너무 짧은 가을이라며 아쉬워함은 우리네와 마찬가지이다.




오후 3시50분
상원사까지 4km를 남겨둔 지점에서 해발고도는 750m를 넘어선다.
잠깐 동안 오색 단풍으로 물든 숲길을 벗어나 이처럼 시원하게 이어지는 전나무숲길을 잠시 지난다.
저만치 앞서 가는 이들을 바라보니 불현듯 머릿속으로 프루스트의 '가지 않은 길'의 싯귀가 떠오른다.
"단풍 든 숲속에 두 갈래 길이 있었습니다.--
--낮은 수풀로 꺽여 내려가는 한쪽 길을
멀리 끝까지 바라다 보았습니다.----"




짧은 전나무숲길이 끝나자 천년의숲길은 이내 본연의 모습을 드러 낸다.
원색으로 물든 단풍숲을 통해 바라보는 징검다리의 아름다움을 다시 연출한다.
이와같은 징검다리를 건너는 즐거움도 이제 머지 않아 끝난다는 생각에 절로 발길이 더디어진다.




오후 4시1분
천년의숲길은 동피골주차장에서 차량이 다니는 2차선 도로를 건너 자리한 오대산장을 지나며
다시 깊은 숲길로 들어선다.
원두커피와 간단한 식사를 할 수 있는 자그마한 카페인 이곳 오대산장에서부터 상원사까지는 대략 3.5km.




오대산장을 지나 상원사로 이어지는 천년의숲길은 지금까지 온 길보다 더 한적하고 아늑한 느낌으로 다가온다.
아마도 2시간 이상 숲길을 걷느라 피곤한 이들은 편안한 도로를 따르거나
지친 다리를 못이겨 차량을 이용하는 경우가 있는듯 하다.




인적이 거의 없는 한적한 숲길에서는 자연의 냄새가 더욱 진해진다.
지금까지 인파의 소음에 묻혀 잘 들리지 않던 물소리도 더 정겹게 귓전을 울린다.
자그맣게 들리는 물소리와 나 자신이 밟는 낙엽이 사그락거리는 소리만이 은은하게 울려 퍼질 뿐이다.




오후 4시33분
이제 상원사까지 남은 길은 대략 1.7km 남짓.
해발고도가 800m를 훌쩍 넘은 이 부근 골짜기의 이름은 신선골이다.
잔라도,경상도,경기도 등 우리나라 전역에는 신선골이라는 이름의 골짜기가 무수히 많다.
아마도 대부분 이처럼 깊은 산골짜기에 붙인 이름일게다.
제발 그 모든 신선골이 이름에 걸맞게 마음씨 고운 신선들만 찾는 신선골이 되었으면 좋겠다.




오후 4시57분
해발고도 840m에 위치한 상원사 입구 주차장에서 잠시 걸음을 멈춘다.
이제 상원사까지 남은 거리는 400m. 평지에서 400m거리는 아주 짧은 거리이지만
급경사 오르막 길 400m는 4시간 가까이 걸음을 걸은 이들에게는 조금 힘든 거리이다.
그러나, 힘들다는 이유로 최종 목적지인 상원사를 코 앞에 두고 방문을 포기하는 이들을 보면
그 마음 가짐이 너무나 아쉽다는 생각이 든다.




상원사로 향하는 오르막길이 시작되는 초입의 작은 석조 구조물이 눈길을 끈다.
"관대(冠帶)걸이"라는 안내판이 그 옆에 세워져 있다.
 조카 단종을 죽이고 왕위에 오른 조선 7대왕 세조는 피부병을 치료하기 위해 전국의 명산대찰을 찾아 다녔다.
어느 날 오대산을 찾은 세조는 상원사 아래 오대천에서 우연히 몸을 씻고 피부병이 나았다고 한다.
돌로 만든 관대걸이는 당시 세조가 의관을 걸어두었던 곳이라 전해 진다.




상원사로 향하는 오르막길을 한참 오른 후 다시 만나는 마지막 돌계단 길.
돌계단이 시작되는 지점에 세워진 작은 표지판의 글씨는 "번뇌가 사라지는길"이다.
짧은 가을 해가 서쪽으로 기울어지고, 조금씩 어두워지며 싸늘하게 식어가는 날씨지만
오르막길을 오르다보니 다시 이마에 땀이 솟아나기 시작한다.




"번뇌가 사라지는길"이라는 표지판과 연관이 있는지는 모르겠으나
계단의 숫자가 거의 108개에 가까운듯 하다. 108가지 중생의 번뇌를 생각하며 걷는다.
그러고보니 내가 가장 좋아하는 프로야구를 볼 때 투수가 혼신의 힘을 다해 던지는
야구공의 실밥도 108개라는 점이 생각난다.




오후 5시11분
상원사 경내에 도착해 붉게 물든 주위를 둘러 본다.
해발고도 900m에 위치한 1,300년 고찰의 위엄이 서린 곳.
온 산을 원색으로 물들인 가을 단풍도 불심을 잔뜩 머금은듯 엄숙한 느낌이 든다.




상원사는 705년(신라 성덕왕 4년)에 보천과 효명이 진여원이라는 이름으로 창건한 고찰로 전해진다.
그러나 1946년 실화로 건물이 전소된 아픔을 겪은 후 다시 지어졌다.
상원사는 월정사 소속의 말사임에도 목조문수동자좌상(국보 제221호),중창권선문(국보 292호)을 비롯해
3점의 국보를 보유하고 있는 사찰이다.
이 사진의 범종각에는 또 다른 하나의 국보인  상원사동종(국보 제36호)이 보관되어 있다.




오후 5시 14분
상원사 주불전인 문수전 앞에서 단풍에 취해 행복하게 보낸 주말 하루 일정을 마감한다.
지난 1947년 당시 월정사 주지 지암 스님이 금강산 마하연의 건물을 본 떠 지었다는
문수전 안에는 국보 제221호인 목조문수동자좌상과 문수보살상이 봉안되어 있다.




위 지도상에 붉은색으로 표시된 구간이 이날 탐방 구간이며
총 거리는 약 11km 정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