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넘실대는 억새바다, 가을이 파도친다

호젓한오솔길 2012. 10. 31. 22:25

 

넘실대는 억새바다, 가을이 파도친다

  • 정선=박정원 월간 山 기자

 

정선 민둥산

강원도 정선 민둥산 능선에 오르면 억새 평원이 펼쳐진다. 등산객들이 황금빛과 은빛으로 반짝이는 억새밭을 걷고 있다. / 이신영 영상미디어 기자

 

10·11월은 단풍 계절일까, 아니면 억새 계절일까? 단풍이 가을의 채색이라면 억새는 가을의 판타지다. 단풍이 드넓은 산에 수채화를 뿌려놓은 듯 울긋불긋한 빛깔을 자랑한다면, 억새는 은색의 향연이 시간의 흐름에 따라 바람결에 흩날리며 황금빛으로 변하는 '흔들림의 미학'이다. 가을의 상징인 그 황금빛 흔들림의 미학을 찾아 산행을 떠나보자.

억새로 한 계절을 풍미하는 강원도 정선 민둥산(1118m)으로 길을 나선다. 민둥산은 한국의 대표적 억새 군락지다. 영남알프스 산군의 울산 신불산, 홍성 오서산, 포천 명성산, 장흥 천관산·제암산, 창녕 화왕산, 대구 비슬산 등과 함께 7대 억새 군락지로 꼽힌다.

◇황금빛 흔들림의 미학

산행 출발지는 정선군 증산초등학교 앞이다. 학교 바로 앞 도로 건너 민둥산으로 올라가는 이정표가 있다. 동네 옆으로 별로 등산로 같아 보이진 않지만 등산객들이 분주히 오르내린다. 같이 휩쓸려 올라간다. 마침 억새축제기간이라 좁은 등산로에 긴 등산객 행렬이 이어진다. 등산로는 급경사와 완만한 코스 두 개가 있다. 오를 땐 급경사로 올랐다.

소나무와 참나무가 우거진 혼합림이 나온다. 한국 어디서나 볼 수 있는 나무와 숲이다. 전혀 억새군락이 나올 것 같지 않은 분위기다. 산 이름(민둥산)과 어울리지 않게 나무는 많다. 하지만 산세가 감동을 줄 만큼 수려하거나 명산반열에 오른 건 아니다.

그런데 이 산이 왜 민둥산이 됐는지 궁금했다. 인터넷과 지명유래집, 고서적을 열심히 뒤졌다. '세종지리지'나 '신증동국여지승람' '대동지지' 어디에도 민둥산이란 기록을 찾을 수가 없다. 오히려 인근 민둔산(974m)이란 지명은 간혹 나온다. 민둥산에 대해 전해지는 얘기는 옛날 하늘에서 내려온 말 한 마리가 주인을 찾아 보름 동안 산을 헤매면서 나무와 풀을 샅샅이 파헤쳤다고 한다. 그 이후 민둥산엔 나무는 자라지 않고 억새만 났다고 한다.

산행에 동행한 정선 토박이인 이광덕 정선군 남면 무릉리 이장도 유래에 대해선 잘 몰랐다. 그는 "애초 억새군락은 규모가 작았는데, 계속 (산에) 불을 놓아 억새가 굵고 커졌고, 면적도 넓어졌다"고 했다. 이듬해 억새를 잘 자라도록 하려면 불을 놓는 방법이 제일 좋다고 설명했다. 이듬해까지 남아 있는 억새는 정월 대보름 억새 태우기를 하면서 새해 소원을 비는 전통이 있다. 그것도 장관이다. 활활 타오르는 억새를 보며 소원을 비는 전통은 사실 그해 더 좋은 억새를 원하는 소박한 민심의 발로였는지 모른다.

민둥산 정상으로 오르는 등산로는 거의 외길 수준이다. 샛길도 간혹 보였지만 조금 지나면 다 하나로 합류된다. 이윽고 전망대가 나온다. 남서쪽에 철쭉으로 유명한 두위봉, 동남쪽에 하이원리조트, 하이원리조트 뒤쪽으로 함백산 중계탑 등이 보인다. 아름다운 능선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해발 1000m 고지 억새밭

전망대를 GPS로 확인하니 해발 1024m다. 여기서부터 억새가 본격적으로 눈에 띄기 시작한다. 바람에 일렁이는 억새가 은빛을 발하며 파란 하늘과 조화를 이루고 있다. 정상을 향해 발길을 옮기자 눈을 의심할 정도의 장관이 펼쳐졌다. 1000m 이상 고지에 어떻게 이렇게 넓은 평원이 생겼으며, 그 평원을 가을의 전설로 수놓고 있는 억새가 어떻게 이렇게 많을 수 있는지. 여기저기서 등산객들의 감탄이 들린다.

확 트인 능선, 사방 어디를 둘러봐도 단풍 대신 손사래같이 휘젓는 무성한 억새들이 출렁거린다. 파란 하늘과 맞닿은 억새바다의 물결, 늦가을 정취를 만끽할 수 있는 절정기로 치닫는 느낌이다.

민둥산 바람조차 능선 가득히 은빛 물결로 출렁이는 억새의 품에 머물러 있는 듯하다. 바람이 떠나기 싫어한다. 억새도 좋아하는 바람이다. 바람과 억새가 깊어가는 가을의 정취를 한껏 북돋운다. 바람은 억새에 머물고 싶다고 하고, 억새도 바람이 있어야 제멋이라고 장단을 맞춘다. 그게 '흔들림의 미학'이다. 그 억새와 바람이 정선 민둥산에서 행복하게 어우러지고 있다.

이강덕 이장은 "억새는 초가을 파릇파릇하게 시작해 분홍 보라색, 은빛 솜방망이, 황금빛 순으로 절정을 이룬 뒤, 한겨울에는 줄기 끝에 눈꽃을 피우는 모습이 장관"이라고 했다. 하산길은 완경사로 이어진다. 다음에는 완만한 등산로로 겨울 억새눈꽃 산행을 해봐야겠다.

 

여행 수첩

민둥산 정상 주변 억새군락은 무려 66만여㎡ 정도 된다. 억새축제기간을 포함해 매년 40여만명의 등산객이 다녀간다고 한다. 억새를 감상하기 위해 민둥산 올라가는 코스는 3개다. 1코스는 증산초교 앞에서 출발한다. 민둥산 정상까지 완만한 코스로 올라가면 3.2㎞에 2시간, 급경사 코스는 2.6㎞에 1시간30분 정도 걸린다. 2코스는 421번 지방도를 따라 능천 주차장까지 간다. 주차는 무료다. 거기서 밭구덕을 거쳐 정상까지 2.7㎞에 1시간 30분 남짓 걸린다. 임도를 따라 올라가다 살짝 가파른 길을 오르다 억새군락지에 도달한다. 3코스는 북서쪽에서 올라 방향이 조금 다르다. 삼내약수의 삼거리 갈림길에서 정상으로 가는 등산로다. 4.9㎞에 2시간 30분 정도 걸린다.

고속버스는 서울 동서울터미널에서 정선까지 하루 10회 왕복 운행하며, 고한·사북까지 하루 23회 운행한다. 소요시간은 각각 3시간30분과 3시간 내외. 동서울터미널 (02)453-8641, 정선버스터미널 (033)563-9265, 고한·사북공영터미널 (033)591-2860. 정선버스터미널에서 내려 등산로 입구가 있는 증산초교까지 30분마다 한 대꼴로 운행하는 시내버스가 있다. 요금은 1300원. 고한·사북에서는 택시로 2만원 정도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