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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년만에 개방 홍천 미약골

호젓한오솔길 2012. 11. 1. 21:10

 

15년만에 개방 홍천 미약골

 

고이 숨겨뒀던,그래서 아직은 억센…

어떠한 인위(人爲)도 가해지지 않은 무위(無爲)한 자연 본래의 모습, 강원도 홍천 미약골에서 만났다. 자연휴식년제로 지난 15년 동안 인간의 출입이 금지됐던 덕분이다. 길은 사라지고 바위와 나무는 이끼로 두껍게 덮였다./유창우 영상미디어 기자 canyou@chosun.com

 

사람의 발길이 15년 동안 닿지 않은 계곡은 어떤 모습일까? 생태계와 산림 훼손을 막으려고 지난 1997년부터 강원도 홍천 미약골에 내려졌던 자연휴식년제가 지난 6월 해제됐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15년 동안이나 출입이 금지되었기 때문일까, 산에 자주 다닌다는 이들도 미약골을 알고 있는 경우가 드물었다. 홍천군 문화관광 웹사이트(www.great.go.kr)를 찾아봤다. 미약골은 홍천군에서 지정한 '홍천 9경(景)' 중 세 번째에 당당히 올라 있었다.

옛날의 한 풍수가가 우연히 계곡에 들어섰는데 학이 울더란다. 더 들어가니 촛대바위가 치솟았고, 선녀가 내려와 목욕했을 법한 물웅덩이 뒤로 기기묘묘한 바위와 폭포가 아름답게 어우러진 비경이 이어졌더란다. 신선의 세계처럼 신비롭고 아름다운 계곡의 풍광에 감탄한 풍수가는 '미암동' 또는 '미약골'이라고 이름 붙였다고 한다. 게다가 미약골은 북한강으로 유입되는 홍천강 발원지라는 설명이다.

읽고 나니 미약골이 어떤 곳일지 더욱 궁금해졌다. 서울춘천고속도로가 뚫리면서 홍천은 이제 서울에서 두 시간이면 닿을 수 있는 가까운 지역이 됐다. 내비게이션에 따르면 서울 한복판에서 미약골까지는 2시간30분. 미약골 입구는 56번 국도 옆으로 나있었다. 계곡 쪽 국도변을 따라 철조망이 쳐 있는데, 작은 아치 모양 입구 위로 '미약골 테마공원'이라는 푯말이 있다. 골짜기 입구와 푯말 글씨가 작고 눈에 잘 띄지 않아 한 번 지나쳤다가 차를 돌려 돌아와야 했다. 입구에는 차량 너댓 대가 주차돼 있었다. 입구 옆 안내판에는 웹사이트에 나온 내용과 같았으나 '계곡을 따라 1.8㎞를 올라가면 폭포가 있다'는 내용이 달랐다.

입구에 들어서 돌계단을 내려가니 짙은 초록빛 나무 그늘 사이에서 "콸콸콸" 시원한 물소리가 들려왔다. 캠핑이나 피크닉하기 알맞은 터가 정비돼 있었다. 너댓 가족 정도가 텐트를 치고서 캠핑을 즐기고 있었다. 계곡물에 담가둔 수박과 참외를 꺼내러 온 여성은 "아직 알려지지 않아서인지 한적한데다 텐트 칠 자리도 넉넉하고 돈도 받지 않는다"고 했다.

캠핑족들을 뒤로 하고 계곡을 따라 걸어 올라갔다. 캠핑장 바로 뒤 약간 높은 지대에 '홍천강 발원지'라는 글씨가 비석처럼 생긴 큰 화강암에 새겨져 있었다. 오솔길은 계곡을 따라 이어졌다. 떨어진 낙엽이 쌓여 썩고 다시 쌓이는 과정이 반복되면서 생긴 폭신한 쿠션감이 발바닥에 유쾌하게 전달됐다. 계곡 물소리가 귀를 시원하게 했다.

얕은 오르막을 올라가니 한낮에도 햇볕이 뚫고 들어오지 못할 정도로 숲이 짙어졌다. 산림청이 세운 '입산 금지' 푯말, 그리고 자연휴식년 기간 오솔길을 막는 철조망이 쳐 있었던 구조물 흔적이 남아 있었다. 오솔길을 걸어 내려오는 여성 둘을 만났다. "폭포를 보았느냐"고 묻자 "있긴 있다는데 조금 올라가면 길이 끓겨서 걸어 올라갈 엄두가 나지 않는다"고 했다.

오솔길이 내리막으로 변하더니 곧 길이 뚝 끊겨 있었다. 진짜 포기해야 하는 것인지 고민하는데, 징검다리처럼 보이는 돌 몇 개가 보이고 그 뒤 계곡 반대편에 사람 혹은 짐승이 오간 흔적이 희미하게 보였다. 기왕 왔으니 폭포는 보고 가야 할 것 같아 징검다리를 건넜다. 낮은 언덕을 넘자 다시 계곡을 따라서 길이 나왔다.

폭포를 찾아 미약골을 거슬러 올라가는 길은 계속 가야 할지, 아니면 포기해야 할지 의문이 들 정도로 오지였다. 썩어서 부러진 나무가 나뒹굴고, 도저히 인간이 다닐 수 없을 듯한 길이 나타났다 사라지길 반복했다. 계곡 이쪽과 저쪽을 여러 차례 왔다갔다했다.

산에서는 해가 일찍 저문다. 오후 3시부터 두 시간여 올랐지만 폭포는 보이지 않고 날은 어두워지기 시작했다. 폭포 찾기를 포기하고 계곡을 내려왔다. 미약골 아래쪽에 있는 '별빛 흐르는 마을' 펜션에서 하룻밤을 묵기로 했다. 저녁 때 펜션 주인과 낮에 있었던 일을 얘기하자 휴대폰에 저장된 폭포 사진을 보여줬다. "조금만 더 가면 나오는데, 왜 포기하셨어요?"

다음날 일찍 계곡을 다시 올라갔다. 어제 다녀간 길인데도 낯설었다. 미끄러지고 물에 빠지기를 얼마나 했을까, 계곡 위쪽에서 세찬 물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힘을 내 올라가니 드디어 폭포가 모습을 드러냈다. 험악하달 정도로 크고 억센 바위가 3m쯤 쌓여 있고, 그 위에서 물이 세차게 떨어졌다. 물이 여기저기로 튀면서 허연 물안개를 일으키고, 그 속에서 햇볕이 반사되면서 작은 무지개가 여기저기 떴다. 사람 손을 타지 않은 원초적 자연. 그리고 그 안에 인간이라곤 오로지 나 혼자뿐이라는 사실이 묘하게 벅찼다.

이내 한기가 온몸으로 퍼져 후들후들 떨렸다. 수십 년 만에 찾아온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날씨라는 게 믿기 어려울 정도였다. 추위를 참지 못하고 이내 폭포에서 몸을 돌려 계곡을 따라 내려왔다.

_계곡 산행용품

홍천 미약골은 계곡을 따라 올라가는 방법이 가장 편하고 안전하다. 일종의 계곡 산행이다. 본격적 계곡 산행에는 헬멧과 로프, 안전벨트, 구명조끼, 장갑, 웨트수트(wetsuit) 등이 필요하다. 하지만 폭포까지 약 1.8㎞를 올라가는 미약골 계곡 산행은 그 정도까지는 필요 없을 듯하다. 신발이 가장 중요하다. 계곡용 샌들이 가장 알맞다. 물 빠짐이 좋고 가볍다. 발가락이 많이 드러나는 레저용 샌들보다는 단단한 소재로 발을 안전하게 감싸는 형태의 계곡화가 이상적이다. 등산화 중에는 물에 젖어도 부담 없는 약간 낡고 가벼운 릿지화 정도면 무난하다. 하지만 너무 오래되면 물이 들어갔을 때 신발창이 떨어지거나 중창이 망가질 수 있다.

물속에서 오래 맨발로 신발을 신으면 상처가 나기 쉽다. 네오프렌 소재 수중레포츠용 양말이 보온도 되고 이물질이 발에 상처를 입히는 것을 막을 수 있다. 젖어도 부담 없는 낡은 배낭과 비닐봉지를 이용하면 비싸지 않고 효율적이다. 비닐봉지를 배낭 안에 두 겹으로 넣고, 작은 비닐봉지나 지퍼백에 물건을 넣은 다음 고무줄로 각각의 비닐봉지 입구를 단단히 묶으면 계곡물에 빠져도 될 정도로 방수 기능이 뛰어나다. 한기를 막아줄 얇은 플리스 소재 상의에 신축성 좋은 하의를 입으면 좋다. 바위에 긁히거나 넘어져 피부가 다칠 수 있으니 반소매나 짧은 바지는 피해야 한다. 장갑도 착용한다. 네오프렌 소재가 좋지만 목장갑이라도 낀다.


_가볼 만한곳

강원도 홍천‘미약골 테마파크’입구 부근에서 미약골은 온순한 계곡처럼 보이지만 조금만 올라가면 야수처럼 변한다. 계곡을 따라 올라가려면 채비를 단단히 해야 한다./유창우 영상미디어 기자 canyou@chosun.com

미약골: 계곡을 올라갈 땐 조심 또 조심해야 한다. 안내판이나 표지가 없고, 나무가 쓰러져 길을 막거나 희미하게 길 흔적만 남아 있는 구간이 대부분이다. 계곡을 따라 올라가는 게 가장 쉽다. 서석면사무소(033-433-4032)에 현지 상황을 문의하면 가장 안전하다. 캠핑장은 아직 공간이 넉넉한 편이지만, 화장실 외에는 별다른 편의시설이 없다. 미약골 입구 아래 있는 펜션 ‘별빛 흐르는 마을’이 깔끔하다. 8월 말까지 주중 1박 12만원, 주말 14만원. www. starlightvillage.kr, (033)436-3579

살둔마을: 6·25전쟁이 터진 줄도 몰랐다는 오지 중 오지마을. 홍천군 내면 율전2리에 있다. 강원도 전통 건축방식인 귀틀집에 일제 강점기 한옥처럼 2층 누각을 올린 ‘살둔산장’으로 알려지기 시작했고, 폐교에서 오토캠핑장으로 변신한 ‘생둔분교’도 인기다. saldun.invil.org, (033)434-3798

용소계곡: 최근 인기 트레킹 코스로 자리 잡았다. 내촌면 광암리에서 시작해 두촌면 괘석리를 거쳐 천현리에 이르는 10㎞ 구간이다. 너래바위와 폭포, 물웅덩이가 어울린 빼어난 풍광이다. 물놀이하기도 좋다.
수타사: 철원·고성에서 시작해 화천·홍천까지 이어지는 ‘강원도 산소길’의 마지막 코스인 ‘홍천 산소길’이 동면 덕치리 수타사에서 시작한다. 이곳에서 공작산 생태숲을 지나 수타사 계곡 길을 돌아 걷는 한 시간 반짜리 코스다. 주차장부터 봉황문까지는 거리가 500m에 불과하지만 울창한 소나무숲과 덕치천이 어우러지는 아름다운 산책길이다.

삼봉약수: 삼봉휴양림 안에 있다. ‘한국의 명수 100선’에도 들었다. 제일철·탄산·중탄산이온이 주성분인 탄산약수로 위장병에 특효가 있고 신경쇠약·피부병·신장병·신경통 등에도 효과가 있다고 한다. 삼봉자연휴양림 www.huyang.go.kr, (033)435-8535

하이트맥주 공장 견학: 물 좋은 고장은 술 맛도 좋은 걸까. 하이트 강원공장이 홍천에 있다. 맥주 제조 과정과 1970~80년대 광고 포스터, 맥주병 등도 구경할 수 있다. 갓 만든 맥주 시음도 가능하다. 40인 이상 단체면 견학 당일 버스를 무료 대절해준다. 예약 필수. www.hitejinro.com, (033)430~8250~2

▨문의: 홍천군 경제관광과 (033)430-2350, 문화관광포털
www.great.go.kr

_먹거리

홍천군이 내세우는 대표 별미는 화로구이와 막국수, 닭갈비, 찰옥수수 등이다. 홍천읍 하오안리를 관통하는 44번 국도 변에 화로구이집들이 몰려 있다. 돼지삼겹살을 고추장과 벌꿀, 된장 등의 양념에 버무려 하룻밤쯤 재웠다가 숯불에 굽는다. 예전엔 숯을 화로에 담아 내왔다지만 요즘은 일반 갈비집에서 볼 수 있는 석쇠를 많이 쓴다. 어디가 더 낫달 것 없이 맛의 수준이 비슷하다. 원조로 꼽히는 ‘양지말화로구이’(033-435-7533)에서는 1인분(200g) 1만2000원. 막국수는 먹을 만한 식당이 많다. 대개 동치미 또는 백김치 국물을 사용하며 고추양념(다대기)을 얹어 내지만 참기름·고추양념·설탕 등을 따로 내서 입맛대로 ‘조제’해 먹을 수 있도록 배려했다. ‘가리산막국수’(033-435-2704) ‘삼양식당’(033-434-2592) ‘장원막국수’(033-435-5855) ‘친절막국수’(033-435-5435) 등이 이름났다. 대개 한 그릇에 6000원 받는다. ‘강희네’(033-434-7352)는 옥수수로 만드는 올챙이국수로 유명하다. 닭갈비는 춘천보다 홍천이 원조라는데, 이름난 집이 드물다. 팁 하나. 홍천은 면적이 서울의 3배로 전국 지자체 중 가장 넓다. 위 맛집들은 대개 미약골에서 꽤 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