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방곡곡 서민식당 발굴기]
서울 양재동 <행복식당>
여름에는 그래도 밥심이다!
지난주는 폭염의 연속이었다. 날씨가 워낙 더워 밀면, 코다리냉면, 막국수, 함흥냉면 등 바야흐로 냉국수를 시리즈로 먹었다. 이열치열이라고 하지만 사실 차가운 음식이 더 입에 당긴다. 평양냉면이 겨울철 시식(時食)이라고 하지만 동절기에 냉면을 먹는 사람은 드물다. 막국수도 마찬가지로 겨울철이 되면 수요가 급속하게 떨어진다. 요즘은 차가운 면식을 한창 먹을 때다. 이렇게 매일 냉국수를 먹지만 그래도 원초적으로 더 생각이 나는 것은 밥이다. 면은 매력이 있지만 필자 같은 덩치 큰 남자에게는 한계가 있다. 입맛에는 맞지만 면을 먹으면 왠지 기운이 떨어진다. 체력이 떨어지는 하절기에는 밥심이 필요하다.
아내와 함께 퇴근을 하는데 아내가 지나가는 말로 점심에 먹은 콩나물비빔밥이 맛있었다고 한다. 그 콩나물밥 파는 곳은 회사 바로 앞 아주 소박한 식당이다. <행복식당>이라고 20㎡(6평) 정도의 작은 규모다. 더욱이 식당 주인아주머니는 몇 달 전 식당을 처음 개업했다. 음식 맛이 탁월하지는 않지만 우리 사무실 중년 직원들이 집밥 같다고 가끔 가는 곳이다. 이 식당의 주 메뉴는 카레라이스지만 필자는 대개 갈치조림을 먹었다.
메뉴판에 콩나물비빔밥이 있었지만 가격이 4,000원으로 저렴해서 지금까지 주문을 한 적이 없었다. 참고로 이 식당은 5,000원짜리가 가장 비싼 메뉴다. 원래 콩나물 식재료를 좋아하는 필자는 아내 말에 입맛이 당겼다. 아내는 콩나물비빔밥 간장소스가 맛있다고 했다. 식당 안에 들어서니 건물 경비원 아저씨 혼자서 밥을 먹고 있었다. 바쁜 점심때는 취업 공부를 하는 주인아주머니 아들이 식당일을 도와주고 있다.
- 콩나물밥
간장양념이 맛있는 콩나물비빔밥
주인아주머니는 고향이 경남 마산이라고 한다. 몇 달 전 처음 식당을 열었을 때는 아마추어 티가 역력했다. 모든 것이 서툴렀다. 사실 금방 문을 닫을 것 같은 느낌마저 들었다. 이제는 나름 능숙하게 음식을 제공한다. 그래도 음식을 제공하는 속도가 아직은 느리다. 주인아주머니가 일본 음식 영화 ‘카모메식당’에서 나오는 배우랑 얼굴이 비슷하다. 그다지 친절하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불친절한 것은 절대 아니다. 작은 식당이라서 왠지 부담 없고 좋다. 이 건물 지하에는 작은 규모의 식당이 3곳이 있는데 그 중 가장 작다. 아마도 소박한 분위기와 맛 때문에 우리 회사 몇몇 중년 직원이 자주 가는 것 같다.
우리 부부는 콩나물비빔밥 2인분을 주문했다. 콩나물비빔밥은 4,000원이다. 그렇지 않아도 저렴한 음식 가운데 가장 헐하다. 1,000원 차이지만 참 싸다는 생각이 들었다. 콩나물비빔밥은 간편하다. 밥 위에 미리 데친 콩나물을 올려서 간장 소스를 뿌린다. 주인아주머니가 집에서는 콩나물과 밥, 그리고 고기를 넣고 찐다고 한다. 사실 그것이 제대로 된 콩나물밥이다. 그러나 거의 혼자 하는 식당이다 보니 그런 조리는 불가능하다고 한다. 이왕이면 그렇게 먹으면 참 좋은데 아쉽다.
- 각종 반찬과 메뉴들
콩나물비빔밥 위에 달걀프라이와 소고기가 얹혀있다. 4,000원짜리 치고 풍성하다. 필자는 아주머니에게 콩나물을 더 달라고 해서 밥에다 추가했다. 양념간장을 넣어서 쓱쓱 비벼 먹었다. 소탈한 음식이다. 어렸을 때 콩나물국과 콩나물밥을 모두 좋아했다. 원래 콩을 무척 좋아했다고 하는데 콩밥을 먹고 한 번 크게 체한 후 콩밥을 안 먹는다. 워낙 어린 시절이라 기억이 안 난다. 그 대신 두부와 콩나물을 무척 좋아한다. 혹자는 콩나물을 ‘천연우황청심환’이라고 하지만 그런 효능에 앞서 우선 아삭아삭한 식감이 입에 잘 맞는다. 식이섬유가 풍부한 콩나물을 많이 먹으면 속이 편해서 좋다. 그래서 일부러 많이 먹는다.
아내가 말한 대로 간장양념이 맛있었다. 간장 특유의 감칠맛이 입맛을 돋운다. 간장은 밥과 아주 잘 어울린다. 뜨거운 밥에 장조림 간장을 넣고 버터를 비벼서 먹으면 정말 맛있는데 아내가 맞벌이를 하는 처지라 장조림을 만들 시간이 없다. 직업적인 호기심으로 양념 레시피를 물어보니 간장은 주인아주머니 고향인 마산에 소재하는 회사의 간장을 사용하고 특히 청양고추를 많이 넣는다고 한다. 중요한 포인트는 청양고추다. 그냥 집에서 먹던 대로 만든 양념이라고 한다. 칼칼한 간장소스와 뜨거운 밥과 콩나물 특유의 식감이 잘 어우러진다.
약간의 소고기와 달걀프라이가 나름 풍성한 맛을 더한다. 4000원짜리 음식의 미덕이다. 반찬도 깔끔하다. 주인장 고향이 경상도지만 반찬이 짜지 않아서 좋다. 콩나물밥을 다 먹고 나니 속이 든든하다. 한국인은 밥이다. 퇴근해서 집으로 오니 금방 소화가 되었다. 콩나물은 역시 좋은 식재료다.
지출 (2인 기준) 콩나물밥 4000원 x 2인 = 8000원
<행복식당> 서울 서초구 양재동 275-3 트윈타워 A동 지하 (02)572-4243
글·사진 김현수 외식콘셉트 기획자(NAVER 블로그 ‘식당밥일기’)
외식 관련 문화 사업과 콘텐츠 개발에 다년간 몸담고 있는 외식콘셉트 기획자다. ‘방방곡곡 서민식당 발굴기’는 저렴하면서 인심 훈훈한 서민음식점을 사전 취재 없이 일상적인 형식으로 소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