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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곡산의 봄, 청노루귀 할미꽃을 찾아서

호젓한오솔길 2017. 7. 8. 14:37

 

 

침곡산의 봄, 청노루귀 할미꽃을 찾아서



                                         솔길 남현태



때 아닌 대선 열풍 속에 민심이 술렁이는 반도에도 계절은 어김없이 봄을 몰고 와 주위에는 온통 개나리와 목련이 피어나 골목길을 수놓더니, 어느덧 거리의 가로수 벚꽃이 꽃망울을 터트리기 시작하는 사월로 접어든다. 경남 진해에는 벚꽃 군항제가 열리고 서울 여의도에도 1일부터 동시에 벚꽃 축제가 열린다고 하니 밀려오는 봄을 실감케 한다.


3년 전에 일어난 세월호 침몰 사건이 최순실 국정 농단 게이트로 이어져 대통령 탄핵을 촉구하는 촛불 집회와 탄핵을 반대하는 태극기 집회로 양분된 민심 속에 결국 대통령이 탄핵되고, 진보와 보수로 갈라진 대선 정국의 진보 야당은 이미 대권을 잡은 듯이 대세론을 외치며 여유만만하게 5월 9일 장미 대선을 기다리고 있다.


몰락한 보수를 바라보며 침묵 속에 갈 곳을 잃어버린 숨죽인 표들은 주인을 찾고 있지만, 맥없이 찌그러진 보수 정당은 양분화되어 서로 아웅다웅 하는 꼴이 한심스럽기만 한데, 대통령 탄핵에 동조하며 분당하더니 대장 도토리가 되었다고 주둥아리만 나불락 거리는 야마리까진 족제비 같은 후보가 오늘 따라 미까리스럽게 보인다.


팀산행으로 진행 중인 호남정맥 길이 4월은 일요일에 약속이 있는 대원들이 많아 산행을 쉬게 되는 이번 주에는 오랫만에 마눌과 같이 가볍게 근교 산행을 다녀오기로 한다. 모처럼 같이 산행을 하게 되는 마눌의 수준에 맞는 갈만한 곳을 찾다가 보니, 나물 산행은 아직 이르고 하여, 봄 야생화를 찾아 떠난 곳이 가까운 포항시 북구 기북면에 위치한 침곡산이다.


침곡산은 오래 전에 고사리 나물 산행을 위해 매년 4월 중순이면 찾아가던 곳인데, 몇 년 전부터 장뇌삼을 재배한다고 골짜기 입구를 철문으로 막아놓고 출입을 통제한 이후로 한동안 찾지 않았던 곳이다. 능선과 골짜기에 숨어 있는 봄 야생화 청색 노루귀와 할미꽃을 쉽게 볼 수 있는 곳이라 호젓한 산행길이 심심하지 않는 곳이기도 하다.


토요일 아침부터 찔끔거리며 내리던 비가 일요일 오전까지 온다고 하여, 원거리 정맥 길을 떠나던 여느 산행과는 달리 느긋하게 일어나 아침을 먹은 후 산행 준비를 하여 오전 10시가 가까워지는 시간에 집을 나서니, 다행이 밤에 내리던 비가 그친 화창한 날씨가 조금 살살하게 느껴진다.


아파트 단지에 화사하게 피어 아침 햇살에 반짝이는 벚꽃 사진을 담아보고, 기북면으로 가는 도중 시멘트 담장 위에 노란 개나리꽃을 보여 잠시 차를 세우고 다가가 사진 몇 장 담아본다. 기북면 용기리 마을 좁은 골목길을 지나 침곡산 골짜기 어귀에 위치한 용전 저수지 옆에 주차하고, 서당골재로 가기 위해 용전저수지 무너미를 건너려고 하였으나 저수지는 만수가 되어 물이 철철 넘치고 있어 건너기가 불가능하여, 하는 수 없이 저수지 아래쪽으로 돌아서 가기로 한다.


건너 가서 바라본 맑은 물이 찰랑거리는 용전저수지는 옛날에 향어 가두우리가 있었던 곳으로 향어 낚시를 몇 번 왔던 곳이다. 산괴불주머니 노랗게 꽃 피운 숲 속에서 깜짝 놀라게 하는 놈은 간밤 내린 봄비에 젖은 몸을 말리고 있는 구렁이 한 마리 카메라를 겨누어도 겨울 잠에 지친 몸이 피곤한지 도망갈 생각은 하지 않고 빤히 쳐다보고 눈치만 살피고 있다.


서당골재로 향하는 골짜기 어귀에는 겨울잠에서 깨어나 알을 낳는지 경쟁하듯 울어대는 분산한 개구리 소리가 골짜기를 울리고, 길가에 화사하게 흩어진 꼬투리 오진 진달래 무리들 앞에서 저절로 걸음이 멈추어진다. 오랜만에 만난 진달래 밤새 내린 비에 깨끗이 씻겨진 연분홍 진달래 앞에서 요리조리 카메라 겨누어 보니, 쾌청한 봄날 파란 창공을 나들이 하는 하얀 조각 구름 정겹다.


진달래꽃 길 따라 들어선 골짜기에는 간밤에 제법 많은 비가 내렸는지 옥구슬 굴리는 작은 폭포수들 해맑은 노래 소리 들린다. 계곡 물소리 지나 작은 능선 따라 오르는 길 진달래 화사한데, 돌아보니 따라 오는 마눌의 발걸음은 무거워만 보인다. 앙상한 가지 사이로 봄볕 스며드는 오르막 길 낙엽 위에 흩어져 햇볕 쪼이는 가녀린 청노루귀를 만난다.


노루귀는 흰색과, 분홍색, 청색이 있는데, 그 중에 청노루귀가 귀하여 눈에 잘 띄지 않는 편이다. 허리를 숙이고 찬바람을 피하고 있는 청노루귀 옛 날에는 이 곳에 청노루귀가 많이 보였는데, 오늘은 개체수가 줄어든 것 같아 아쉬운 마음으로 어느 봄날 그녀들의 초상화를 그려본다.


덤으로 만난 현호색 마지막 초상화 찍어가며 꽃인지 풀인지 이름 없는 야생화 가족사진 담아보고, 기북면과 죽장면을 넘나드는 낙동정맥길 서당골재(530m)에 도착하여 마눌이 올라오는 동안 반대편 봉우리에 다녀오기로 한다. 노루귀를 찾아 반대편 봉우리까지 올라 왔지만, 흔하던 노루귀는 보이지 않아 다시 서당골재로 돌아내려와 잠시 휴식을 취한 후 침곡산으로 오르는 도중에 조망 시원한 전망바위에서 도시락을 펼치고 점심을 먹고 가기로 한다. 


멀리 용전저수지와 올라온 골짜기 풍경이 한 눈에 바라보이는 전망바위에서 살짝 당겨본 평화로운 기북면 용기리 마을 풍경 아지랑이 속에 파릇파릇 봄이 푸르러 오르는 느낌이다. 낙동정맥 능선 따라 침곡산 정상으로 향하는 길, 코딱지 만한 노랑제비꽃에 카메라 겨누어 보고 작은 정상석이 있는 호젓한 헬기장 봉우리 침곡산(725.4m) 정상에 올라 선다.


침곡산을 내려서는 길 소나무 고사목 아래 옛 날에는 이 곳에도 하얀 노루귀가 많이 있었는데, 오늘은 하나도 보이지 않는다. 참나무 숲으로 오르내리는 능선 길 골짜기에는 한 물이 지났던 생강나무 꽃이 곱게 피어 있는 곳에서 걸음을 멈추고 몇 장 담아본다. 낙동정맥 능선 길가에 있는 무덤가에서 할미꽃을 무리를 만나 납작 엎드려 카메라 겨누어본다. 무덤가에서 할미꽃 사진 담으며 잠시 머물던 걸음은 용전지가 보이는 삼거리 목쟁이에서 낙동적맥과 헤어져 우측 골짜기로 내려선다. 


가파른 낙엽 비탈을 지그재그로 내려서는 길 노란 생강나무 꽃이 누리에 피어 있어 잠시 걸음을 멈추게 한다. 능선에 비석이 있는 커다란 무덤은 후손들의 관리가 잘 안 되는지 어린 소나무가 뿌리내려 자라기 시작하고, 허물어진 무덤 앞에는 후손들이 성묘를 다녀간 소주병이 소복이 쌓여간다.


물소리 들리는 골짜기에 내려서니, 옛날 집터에는 외로운 삶의 잔해들이 널브러져 있고 석양에 걸린 진달래 한 맺힌 애련한 핏빛을 토해낸다. 바위의 홈을 따라 맑은 물이 흐르는 오막한 선녀탕에 내려서니, 몇 년 전부터 장뇌삼을 재배한다며 골짜기를 개발하여 주위에 숲이 없어져 지금은 알탕도 할 수 없는 휑한 노천탕이 되어버렸다.


맑은 물소리 들으며 내려서는 호젓한 골짜기 연분홍 진달래 기우는 봄볕에 한가롭고, 몇 년 전에 이곳 시멘트 보 위에서 세수를 하며 쉬고 있으니, 차를 타고 올라온 주인이 장뇌삼을 재배하는 출입 통제구역이라고 나무라며 눈치를 주던 곳인데, 지금은 길이 우거져 있고 자동차가 다닌 흔적이 없어 보여 의아한 기분이 든다.


우거져가는 길을 따라 내려오니 당시에 설치했던 철문은 그대로 남아 있고, 녹쓴 자물쇠가 채워져 있다. 한 때는 장뇌삼 재배를 한다고 골짜기에 길을 내고 철문으로 잠그어 산님들의 발걸음을 끊어놓더니, 아마도 사업에 실패를 하고 부도가 난듯한 어수선한 분위기가 느껴진다.


회춘을 한 듯 무덤 위에서 꼬부라진 허리를 펴고 포효하는 할미꽃 붉은 입술에 미소가 흐른다. 제비새끼처럼 입을 벌리고 있는 털복숭이 어린 할미꽃 삼형제, 기지개 켜는 할미꽃, 부부 싸움을 한 듯 돌아앉아 토라진 할미꽃, 무덤가에 홀로 외로운 할미꽃, 정겹게 소곤대는 할미꽃 사진들을 담으며 침곡산 골짜기를 빠져 나온다. 


자동차로 오면서 돌아본 침곡산 골짜기에는 석양에 호젓한 적막감이 흐른다. 용전지 상류에는 옛 날에 없던 농가 몇 채 들어서 있고, 한적한 시멘트 도로를 따라 자동차로 돌아오는 길가 농장에 심어놓은 가지가 노란 황금 빛인 나무가 궁금하여 밭에서 일하는 아저씨에게 물어보니 회나무라고 한다.


매실나무 심어진 단장된 묘지 앞을 지나 석양 넘실대는 용전저수지 바라보며 자동차로 돌아오면서 오늘 산행길은 종료된다. 걸어온 길 돌아보며 여장을 풀고 집으로 돌아오니, 아파트에 단지 내에 벚꽃이 제일 곱게만 보인다. 아파트 10층에서 내려다본 벚꽃들이, 부풀어 오른 꽃망울 정신 없이 터트리고 있으니, 내려다 보는 봄이 아름답다.


봄 야생화들이 꿈틀거리며 피어나는 호젓한 오솔길 따라 어울렁 더울렁 걸은 약 9Km 거리에 6시간이나 소요된 미니 산행을 마치고, 여기저기 벚꽃들이 다투어 꽃망울을 터트리고 있는 길을 달려 집으로 돌아와, 방풍 잎 봄나물에 돼지고기 구워놓고 마눌과 소주 한 잔 나누니, 4월 여린 봄날의 하루가 또 그렇게 지나간다.

(2017.04.02 호젓한오솔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