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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나물 따라간 고주산

호젓한오솔길 2017. 7. 8. 14:38

 

 

봄나물 따라간 고주산

 

 

                         솔길 남현태

 

 

만물이 소생하는 새봄 골목마다 꽃들이 다투어 피어 화사하게 수를 놓고 있는 이 계절이 너무 아름다워서 모두들 잔인한 4월이라고 한다. 그렇게 시작된 4월도 어느덧 둘째 주말로 접어들어 토요일 아침 출근길이 쌀쌀하게 느껴지던 날씨가 한낮에는 초여름처럼 확 풀어지더니, 기온이 27도까지 올라갔다고 한다.

 

퇴근을 하니 대구에 살고 있는 큰아들 가족이 다니러 와서 귀여운 손녀의 재롱을 보며 놀다가 보니, 애기 앞에서는 모두가 웃는 모습을 보기 위해 익살스러운 손짓 몸짓으로 어설픈 어릿광대가 된다. 이번 주에도 일요일에 단체 산행 계획이 없는 관계로 아침에 느긋하게 일어나니 날씨가 어제와는 달리 바람이 거세게 불어대며 쌀쌀하게 느껴진다.

 

아침을 먹은 후 손녀와 가까운 벚꽃나무 아래에서 기념사진이라도 찍어보려 하였지만, 바람이 불어대는 날씨가 심술을 부려 포기를 하고 아들이 오후에 돌아간다고 하여, 잠시 손녀의 재롱을 보며 놀다가 혼자 산행을 다녀오기 위해 배낭을 꾸려 12시경에 모두의 인사를 받으며 먼저 집을 나선다.

 

짧은 시간에 어디로 갈까 망설이며, 아직은 봄나물 산행을 하기에는 이른 계절이라 높은 산 보다는 봄이 일찍 찾아 드는 낮은 산의 따뜻한 깊을 골짜기를 찾아가기 위해 어제 저녁에 항공지도를 보며 염두에 둔 가까운 고주산으로 향한다. 고주산은 수년 전부터 이맘때쯤 마눌과 같이 두릅을 꺾으러 자주 가던 곳이다.

 

이명박 전 대통령의 고향 마을인 포항시 북구 흥해읍 덕성리 덕실마을 회관 앞에 도착하니, 늘 주차하던 주차장에 나무를 심어 정원을 만들어 놓아 주차할 곳이 마땅치가 않아 잠시 망설이다가, 그대로 차를 몰고 올라가니 덕성지 상류에는 월척의 꿈을 그리는 태공들이 둘러앉아 물속에 보이지 않는 붕어와 시름하고 있는 모습을 바라보며, 옛날 태공시절에 이 곳에서 낚시를 하던 내 모습을 떠올리며 입가에 씁쓰레한 웃음을 흘려본다.


덕성리 상류 고개에 주차하고 임도를 따라 걷다가 두릅을 살피며 들어 간 숲 속에는 한물간 진달래들이 점점 시들어가기 시작하고 가끔은 화사한 진달래들이 마지막 자태를 사르고 있다. 노랑제비꽃 무리 지어 피어 있는 곳 살며시 카메라 겨누어 보니, 어느새 피어난 연달래 꽃이 산등성이 위에 연분홍 수를 놓고 있다.


피어나는 연달래와 사그라지는 진달래 사진을 담아가며 두릅을 찾아 골짜기와 능선을 오르내리는 길, 산천에 숨어 살던 두릅은 초록이 움트는 향긋한 계절이 오면 여지없이 목이 잘려 나가는 서러운 신세가 되고 만다. 마지막 진달래 핏빛 토해내는 비탈 길 '화무는 심일홍'이라 지는 꽃은 내년이면 다시 화사하게 산천을 수놓겠지만, 한번 가버린 우리네 청춘은 다시 돌아올 길 없으니 옛부터 모두가 애달프다 노래한다.


이리저리 두릅을 살피며 걷다가 내려서는 호젓한 골짜기에는 맑은 물이 흐르고, 부드러운 향기를 풍기며 올라오는 실한 두릅을 만나 마지막 초상화를 남긴 향긋한 그녀들도 모진 손끝에 목이 부러지는 운명을 맞이하게 된다. 개울가에 무리 지은 산괴불주머니 노란 눈망울 부라리고, 만발한 복사꽃은 화사한 산골의 봄을 노래한다.


복사꽃 피어난 호젓한 골짜기에도 탐스럽게 고개를 내밀고 있는 보드라운 두릅들은 산꾼과 만난 얄궂은 운명 속에 목이 불어지는 마지막 최후를 맞이한다. 골짜기의 물이 흘러가면서 패인 자리에는 돌과 진흙이 다져진 거친 토성처럼 보이고 때로는 높은 개울 측면이 정성스럽게 쌓아 올린 시골집 돌 담장 같은 아늑한 느낌이 든다.


개울 바닥 낙엽 위에 뒹굴며 흩어져 있는 파란 잎들은 자세히 보니 봄철 입맛을 돋운다고 하는 머구나물(머위나물)이라 예정에 없던 먹우나물을 채취하느라 손놀림이 바빠지게 된다. 머구 밭에 이상한 꽃이 있어 사진을 찍었는데 머구 꽃이라고 한다. 화사한 복사꽃 흐드러진 골짜기에 걸음 멈추니, 고 최무룡씨의 "외나무다리" 라는 노래가 절로 나온다.


"1. 복사꽃 능금꽃이 피는 내 고향/ 만나면 즐거웁던 외나무다리

그리운 내 사랑아 지금은 어디/ 새파란 가슴 속에 간직한 꿈을

못 잊을 세월 속에 날려 보내리

2. 어여쁜 눈썹달이 뜨는 내 고향/ 둘이서 속삭이던 외나무다리

헤어진 그 날 밤아 추억은 어디/ 싸늘한 별빛 속에 숨은 그 님을

괴로운 세월 속에 어이 잊으리"


복사꽃 피어 있는 넓은 골짜기에는 사람의 흔적 보다 고라니 등 산짐승들의 삶에 터전인 듯하다. 애기복숭이 열릴 쯤에 다시올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칭칭 감아 오른 넝쿨과 얽히고 설킨 복숭아 나무들은 갑갑한 심경을 핏빛으로 토해낸다. 이런들 어떠하리 저런들 어떠하리 복사꽃에 다래넝쿨 뒤엉킨들 어떠하리 자연은 있는 그대로 내버려 두면 아름다운 조화를 이루어 간다.


낙엽 위에 흩어진 머구나물과 물가에 뿌려 놓은 듯한 머구 잎들을 주워 모으며 오르는 골짜기 군락지에서는 배낭을 풀고 빠른 손놀림으로 배낭을 채워간다. 참한 두릅을 만나면 쾌재를 부르며, 그래도 영정사진 한 장씩 남겨 두고 목이 떨어진 두릅은 산꾼의 손아귀에서 마지막 숨을 할딱인다.


둘러진 돌 담장으로 미루어 사연 많은 사람들이 들어와 살았던 곳으로 보이는 깊은 골짜기를 따라 오르다가 어느새 배낭이 무거워져 더 이상 골짜기 탐색을 중단하고, 진달래 시들어가는 소나무 비탈을 타고 오른다. 푸르러 오르는 임도를 따라 오후 4시가 가까워지는 시간에 자동차가 기다리는 곳으로 돌아오면서, 오늘 고주산의 봄 나물 산행 길은 종료된다.


서둘러 집으로 돌아오니, 아파트 입구에 어느덧 라일락 꽃이 피어 있고 연산홍도 화사하게 꽃을 피우는데, 이제 막 꽃망울을 터트리기 시작하는 붉은 연산홍이 눈시리게 곱다. 오늘 사지가 뜯긴 머구나물과 목이 잘린 두릅나물을 보니, 잔인한 사월이라고 하던 말이 실감나게 한다.

 

서둘러 집으로 돌아오니 아들 가족은 대구로 돌아가고, 나갈 때 홀쭉하던 배낭이 빵빵 해진 모습을 보고 마눌은 의미 있는 웃음을 흘리다가 배낭에서 봉지 봉지 뜯어 넣은 나물을 꺼내니 감탄을 한다 나물을 뜯느라 가지고 간 간식도 다 못 먹고 온 터라 뱃속이 출출하여 서둘러 두릅과 머구나물 삶아서 삼겹살 구워 소주 한 잔 마시니, 세상만사 부러울 것 하나 없더라. 무르익은 봄바람 거세게 불어대던 4월 둘째 주 일요일 산나물 따라 어울렁더울렁 걸어 본 고주산 미니 산행 길 하나 갈무리해본다.

(2017.04.09 호젓한오솔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