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렌 마음 추억이 된 백두대간 21구간 (피재~ 덕항산~ 댓재)
솔길 남현태
지난 5월 말 경기도 평택 성모병원에서 발생한 메르스가 진정되지 않고 서울 삼성병원을 거점으로 전국으로 확산되어가고 있는 추세다. 며칠 전 포항의 기계면에 있는 고등학교 교사가 메르스에 감염된 채 포항과 경주의 여러 병원 치료를 다닌 관계로 주위에도 점점 메르스 공포 분위기로 접어드는 기분이 든다. 전국적으로 사람이 많이 모이는 각종 행사는 취소 되고, 산악회에서도 산행을 취소하는 산악회가 점점 늘어나고 있다.
메르스 빼고는 할 이야기가 별로 없는 6월 둘째 주말 일요일은 백두대간 산행이 있고, 토요일은 친구 자녀 결혼식이 있어 예식장에 갔는데, 결혼식 손님이 예상 인원 보다 많이 줄어 난감해 하는 표정들이다. 결혼식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와 산행준비를 해놓고 나니 피곤함이 몰려와 낮잠을 한숨 자고 났더니, 정작 자야 할 밤에는 잠이 오지 않아 뒤척이다가 새벽 2시 50분에 맞추어 둔 핸드폰 알람 소리에 눈을 뜨니, 마눌은 벌써 일어나 도시락을 싸고 아침 준비를 하고 있다.
오늘 19차 백두대간은 강원 태백시와 삼척시의 경계를 가르는 코스로 피재(삼수령)에서 출발하여 환선굴이 있는 덕항산, 지각산을 거쳐 댓재로 이어지는 약 25Km의 북진 산행길이다. 삼척과 태백 지방의 일기 예보를 보니, 아침 9시까지 비가 오고 흐리다가 오후 6시에 다시 비가 온다고 되어 있어 배낭 안에 짐들을 모두 비닐 포장으로 우중 산행 준비를 하고, 갑자기 쏟아질지도 모르는 소나기를 대비하여 일회용 우의와 우산을 챙겨 넣는다.
아침을 먹고 멀미 약을 마신 후 새벽 4시에 포항종합운동장 출발하는 버스를 연하재에서 타기 위해 마눌의 차로 일찌감치 도착하여 차 안에서 잠시 기다리니, 낯익은 산님들이 하나 둘 모여든다. 마눌을 돌려 보내고 오랜만에 만난 산님들과 인사 나누며, 잠시 기다리다 도착하는 버스에 오르니 오늘 산행에 참여한 대원이 25명이라고 한다.
모자라는 잠을 졸음으로 보충하면서 동해안 7번 국도를 따라 올라 가는 도중에 작은 휴게소에 들려서 대간 팀에서 준비한 아침을 먹고, 7시 30분경에 피재(삼수령)에 도착하니, 소나기가 지나간 듯한 날씨가 활짝 개여 있고 산 중턱에 안개가 걸려 있다. 습기가 많은 후덥지근한 날씨에 고생께나 하겠구나 하면서 각자 산행준비를 하고 삼수령 표지석 앞에 모여서 기념사진을 찍은 후 댓재를 향하여 촉촉한 숲 길을 따라 걸음을 재촉한다.
삼수령(피재)은 높이 920m로, 백두대간과 낙동정맥의 분기점이며 삼강(한강, 낙동강, 오십천)의 발원지이다. 이 곳에 떨어지는 빗물이 북쪽으로 흘러 한강을 따라 황해로, 동쪽으로 흘러 오십천을 따라 동해로, 남쪽으로 흘러 낙동강을 따라 남해로 흐르는 분수령이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또 하나의 이름은 삼척 지방의 백성들이 난리를 피해 이상향으로 알려진 황지로 가기 위해 이 곳을 넘었기 때문에 '피해 오는 고개'라는 뜻으로 피재라고도 한다.
삼수령 표지석 앞에서 기념 사진을 찍고 촉촉한 오솔길 따라 잠시 달려가니, 노루메기 시멘트 포장 임도와 포개져 잠시 걷는다. 새벽에 비를 뿌리고 지나간 듯한 날씨가 아침 기온이 상쾌하다. 잠시 시원한 아침 공기로 워밍업을 하듯 가벼운 발걸음은 초록 속으로 뚫린 임도를 따라 걷다가 우측으로 리본이 달린 오르막길 잠시 올라서니, 성철봉(945m)임을 알리는 작은 안내판이 소나무에 걸려있다.
성철봉에서 선두팀 기념 사진을 찍고, 아침 햇살이 스며드는 시원한 초록 오솔길을 따라 발걸음을 재촉한다. 오른쪽은 급경사 벼랑길이고 좌측은 평온한 산세로 이루어진 대간 마루금은 숲이 우거져 가끔 우측으로 트인 조망은 뿌연 안개가 햇살을 받아 보이는 것이 별로 없으니, 그냥 초록 속으로 신나게 걷는 기분 뿐이다. 신나게 걸어가다 돌아보니 무상님과 민트님이 따라 오고 있다.
펑퍼짐한 안부가 나오기에 건의령 인줄 알았는데, 건의령이 500 미터 남았음을 알리는 이정표가 세워져 있다. 길가에는 온통 빨간 산딸기가 먹음직스럽게 익어 따먹고 가라고 손짓하는 듯하여, 잠시 걸음을 멈추고 사진 몇 장 찍고는 딸기를 따 먹는데, 갈 길은 멀고 걸음이 많이 지체되는 듯하여 너무 알뜰이 따 먹지 말고 뒤에 오는 사람들도 골고루 맛을 볼 수 있도록 남겨 두고 가기로 한다.
우측으로 시멘트 도로가 보이는 건의령(한의령)에 도착하니, 건의령은 잡초 우거진 풀밭 가에 백두대간을 알리는 안내판이 새워져 있다. 피재에서 6Km 걸어 왔음을 알리는 건의령 이정표 앞에서 네비에서는 지금 시속 4.5 Km 의 속도로 걸어가고 있다고 한다. 무상님과 민트님 기념사진을 찍어 주고, 촉촉한 오솔길을 따라 흔들리는 카메라 셔터를 눌러가며, 그리 바쁜 일도 없는데, 산길에만 들어서면 왠지 달리고 싶은 충동이 느껴진다.
표대봉 삼거리에 도착하여 선두팀 기념 사진을 찍고, 나도 한 장 찍혀보고, 따라온 선두팀 기념 사진을 찍는데, 인원이 금방 늘어나는 것이 오늘 산행 속도가 빠르다는 느낌이 든다. 잠시 내려갔다가 이어지는 오르막 길에서 짙은 녹음 속에 잠시 가파른 숨 토해낸다.
잠시 가파른 길 올라가면 다시 내리막길 내려가라 하고, 일천 고지 아래서 출렁이다가 가끔 한 번씩 솟구치는 고만고만한 봉우리들이 이어지는 조금은 단조롭게 느껴지는 대간 길에 주렁주렁 리본이 달린 1,017m 봉우리, 이 곳이 아미산이라고 둘산악회에서 적어 놓았다.
잠시 초록 속으로 내려갔다가 다시 올라선 봉우리가 1,055m 봉이라 한다. 수 없이 오르락 내리락 하는 고만고만한 봉우리들 중에 도토리 키 재듯 하는 높이가 무슨 소용이 있으랴 싶다. 호젓한 오솔길 따라 잠시 내려서니, 커다란 돌무더기가 있고 쉬어가는 산님들 붐비는 구부시령에 도착한다. 구시부령에서 쉬고 있는 산님들 대부분이 이웃 경주에서 온 마루산악회 회원들이라고 한다.
구부시령은 백두대간 대기리에서 주막을 하는 여인이 인정이 많고 남심을 흔들어 머물고 가는 남정네와 부부의 연을 맺었으나 산세가 험난하여 고개를 채 넘기도 전에 지아비들이 실족, 요절하여 새 지아비 맞기를 아홉 번을 하였으니, 이에 아홉의 지아비를 모셨다 하여 이 대기리의 고개를 구부시령이라 하였단다.
애잔한 전설이 있는 구시부령을 뒤로하고 아늑한 능선 '새목이' 이정표를 지난다. 덕항산이 점점 가까워지고, 우측으로 뚫린 조망은 뿌연 운무에 흐릿하여 아쉬운 마음뿐이다. 이어지는 초록 능선 길은 우측으로는 벼랑처럼 경사가 급하여 군데군데 추락 방지를 위한 안전 로프가 설치되어 있다. 약간은 후덥지근한 느낌은 들지만 예상 보다 날씨가 선선하여 가끔 불어주는 바람 끝이 땀을 식혀주는 오솔길 따라 산님들 머무는 정상이 비좁아 조금 답답하게 느껴지는 덕항산에 도착한다.
덕항산(1,071m)은 강원 삼척시 신기면과 태백시 하장면 사이에 있는 태백산맥 줄기의 산으로 백두대간의 분수령을 이룬다. 경사가 급한 동쪽 사면으로는 오십천의 지류가 흐르고, 상대적으로 경사가 완만한 서쪽 사면으로는 골지천의 지류가 흐른다. 덕항산은 덕메기산으로도 불리며, 북쪽 사면에는 천연기념물 제178호인 삼척대이리 동굴지대가 있어 연중 관광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덕항산 정상에서 선두팀 기념사진 찍어주고 추사님과 자리 바꿔 찍혀보고, 주위에 산님들 붐비는 덕항산을 내려선다. 밀리는 산님들 뒤를 따라 느릿느릿 덕항산을 내려서니 사거리 쉼터에서 점심을 먹고 가자고 하여 점심 시간이 이른 것 같아 내친 김에 그냥 걷고 싶은 마음을 누르고 둘러 앉아 배낭을 풀고 도시락과 과일로 빵빵하게 배를 채운다.
지각산으로 향하는 길에 바라본 골짜기에는 아직 안개가 자욱하여 조망이 없으니, 그냥 앞만 보고 초록 속으로 걷는 걸음은 산님들 쉬고 있는 지각산(환선봉)에 도착한다. 환선봉 정상석은 옛날에 본 그 모습이 아닌 것 같다. 나홀로 한 장 찍혀보고 낯선 산님에게 부탁하여 선두팀 기념사진을 찍혀본다.
환선봉에서 이어지던 발걸음은 환선굴로 내려가는 삼거리가 있는 '자암재'에 내려선다. 여유로운 느낌이 드는 자암재를 뒤로하고, 큰재를 향하여 걸음을 재촉한다. 초록 그늘 오솔길로 이어지던 대간길이 갑자기 앞이 확 트이는 광동댐 이주단지를 지나게 된다.
광동댐 수몰지구 사람들이 이주하여 터전을 이루고 살아가는 이 곳은 골짜기에 마을이 있고 주위에는 산비탈을 개간한 자갈 밭이다. 가뭄 탓인지 비탈 밭은 대부분 파종이 되지 않은 듯 하다. 대간 길은 시멘트 포장된 농로로 내려서고, 햇볕이 따가운 시멘트 포장길을 따라 걷다가 고냉지 채소밭 주변을 따라 도는 오솔길을 걷는 머리 위에 내리쬐는 유월의 햇살이 따갑게 느껴진다.
평소에 점심 먹고 낮잠을 자는 시간에 따가운 햇볕 아래 걸음을 걸으니 졸음이 몰려오고 갑자기 컨디션이 뚝 떨어지기 시작한다. 시멘트 포장 도로를 걷다가 선두팀 네 명이 그늘에 앉아 과일과 물을 마시며 잠시 쉬면서 따라 오는 대원들과 합류하여 함께 걷는다.
시멘트 바닥에 앉아 쉬고 일어나는데, 갑자기 허벅지에 경련이 일어나는 것이 낌새가 쥐가 나려는 초기 증상인 듯하여 근육을 달래가며 살살 걸어 올라간다. 가뭄에 물이 고인 임도를 따라 가는 길에서 돌아보니 발걸음은 햇살 아래 정겹다. 임도를 가로 막은 차단기를 지나서 큰재를 알리는 이정표에는 오늘의 종점 댓재가 5Km 남았음을 알린다.
잠시 오르막길 따라 초록 속으로 들어서니 시원한 느낌이 들고, 올라선 봉우리가 1,062 m 봉인 듯하다. 잠시 자세를 잡아보고 초록 속으로 오르락 내리락 이어진 걸음은 황장산 향하는 길에 다시 허벅지에 경련이 오는 듯하여 배낭에서 아스피린 한 알을 소금과 함께 입에 넣고 물을 마시고 거사님의 물파스를 허벅지에 뿌린 후 잠시 주무르고 나서 조심조심 걸음을 옮긴다.
지난 4월 1일 자전거 사고로 오른손이 골절 된 이후로 지금까지 운동을 하지 않고 주말에 산에 한 번 가는 것으로 만족했으니, 나도 모르는 사이에 개을러진 몸이 슬슬 녹슬어 가고 있었던 모양이다. 이럴 때 무리하게 한 발 잘못 옮기면 다리가 오그라들어 고생을 하게 된다.
조심조심 걷는 발걸음은 드디어 오늘의 마지막 봉우리 황장산에 도착한다. 마지막 봉우리 황장산에서 민트님과 기념사진을 찍어주고 찍혀보고, 따라 온 선두팀 기념 사진을 찍는다. 실크로드님 덕분에 나도 같이 찍혀보고, 내리막으로 이어지는 걸음은 댓재로 향해 달린다.
오후 2시 20분경에 버스가 기다리고 있는 댓재에 도착하니 알파인님과 커피향기님이 먼저 도착해 있고, 뿌연 안개가 슬슬 몰려들기 시작한다. 지난 산행에서도 댓재에는 짙은 안개와 이슬비가 내리는 추위에 덜덜 떨면서 비닐 우의를 입고 하산주를 했는데, 오늘도 오후로 접어들면서 안개가 점점 짙어지기 시작하는 모양새다.
댓재(810m)는 강원 삼척시 미로면 상사전리에 위치한 고개로 두타산으로 부터 10Km쯤 남쪽의 산줄기에 있으며, 조선지도, 해동여지도, 대동여지도에는 죽령으로 표기되어 있다. 아흔아홉 구비를 돌아 서쪽의 하장면으로 통한다는 이 고개는 예로부터 영동과 영서를 있는 보행로로 이용해 왔으며, 지금은 도로가 개통되어 버스가 다닌다.
아침 7시 32분경에 피재(삼수령)를 출발하여 초록 능선길 달려 오후 2시 20분경에 댓재에 도착하였으니, 산행 시간이 약 6시간 50분 정도 소요된 샘이다. 댓재 주차장 옆에 지하수로 수도 시설이 되어있어, 수돗가에서 옷을 벗고 전신에 물을 뒤집어쓰니, 지하수가 얼마나 차가운지 용쓰고 걸어온 허벅지에 경련이 일어날 지경이다.
내려오는 대원들이 차례로 수돗가로 가서 등목을 하니, 건너 식당에서 물을 관리하는지 누군가가 물을 잠그어 버렸어 후미 대원들은 안타깝게도 시원한 등목의 즐거움을 느끼지 못한다. 식수 용으로 개발을 한 물을 이 가뭄에 등목을 하고 있으니 꼴불견스러워서 그렇게 한 듯하다. 대간팀에서 준비한 생선회와 족발 안주로 푸짐한 하산주를 나누고 고등어 매운탕으로 저녁까지 해결한다.
후미 회원들이 모두 내려와서 하산주를 마치고, 오후 5시경에 안개 자욱한 댓재를 뒤로하고 포항으로 돌아오는 길에 휴게소를 몇 번 들려가며, 영덕 강구를 지나오면서 마눌에게 전화를 하고, 8시 20분경에 아침에 출발한 연하재에 내려서 마중 나온 마눌의 차를 타고 집으로 돌아오면서 제 19차 백두대간 길을 성공리에 갈무리 해본다.
(2015.06.14 호젓한오솔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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