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대간, 9정맥 완주 ♥/백두대간수필

설렌 마음 추억이 된 백두대간 23구간 땜빵 (백복령~ 삽당령~ 닭목재)

호젓한오솔길 2017. 7. 21. 14:54

 

 

설렌 마음 추억이 된 백두대간 23구간 땜빵 (백복령~ 삽당령~ 닭목재)



                                                                                            솔길 남현태



오월은 가정의 달이라 하여 어린이날, 어버이날, 스승의 날, 가정의 날, 부부의 날 등이 들어있으니, 계절의 여왕이고 신록의 계절이라고 하는 좋은 말들은 다 가져다 붙여도 어색하지 않는 듯하다. 그 아름다운 오월의 넷째 주말의 월요일이 석가탄신일로 이어진 3일간의 황금 연휴이고 보니, 저마다 나름대로 연휴 계획들을 세운다.


토요일 출근하여 빡시게 근무를 하고, 일요일 새벽에 일찍 일어나 지난 번 손을 다친 상태로 우중 산행이 부담이 가서 빠지게 된 백두대간 16차 백복령에서 닭목재까지 31Km 구간의 밀린 숙제를 하나 해결하고 와야겠다는 생각으로 저녁 10시경에 잠자리에 들었지만, 매일 자정이 넘어서 잠을 자는 습관 때문인지 잠이 오지 않는다.


할 수 없이 자정이 넘어 슬금슬금 일어나 마눌이 잔뜩 챙겨놓은 도시락과 과일 등 먹거리에 2리터짜리 얼음주머니로 배낭을 꾸리니 묵직하다. 새벽 1시경에 산에 간다고 집을 나서니, 마눌은 걱정이 되는지 산행을 하다 힘이 들면 중간에 돌아오고 다음에 한번 더 가던지 하라며, 오다가 졸리면 졸음 운전 하지 말고 모텔에 들어가서 자고 다음날 오라고 한다.


평소에 잠자리에 들 시간에 운전대를 잡으니, 처음에는 정신이 어리둥절해진다. 네비에 '백복령'을 치니, '백봉령산마루'가 나오고 집에서 3시간 30분 정도 걸린다고 하여, 동해안 7번 국도를 따라 백복령에 도착하여 날이 새는 새벽 5시경에 산행을 시작한 계획이니 빨리 가도 소용이 없을 것 같아 과속을 하지 않고 잠이오면 창문을 열어가며 슬슬 달려간다.


새벽 4시가 조금 지난 시간에 네비에 '백봉령산마루'를 치고 왔는데 목적지라고 하여 차에서 내려보니, 지난 번에 왔던 백복령 대간 마루금이 아니고 어둠 속에 좌측으로 건물이 하나 보이는 산중턱인 듯하다. 이상하다는 생각을 하면서 계속 차를 몰아가니 오르막 길이 이어지다가 잠시 후에 눈에 익은 백두대간 백봉령에 도착한다. 


사방이 캄캄하게 어두워 고개 위에 딱 하나 설치된 가로등 아래 차를 세우고, 가지고 간 볶음밥과 숭늉으로 뱃속을 든든하게 채운다. 마눌이 챙겨준 먹거리들을 낮에 찜통 같은 차 안에 남겨두면 변할 것 같아 모두 챙겨 넣으니 장거리 산행으로는 배낭이 너무 묵직하다. 산행 준비를 하고 잠시 기다리니 날이 서서히 밝아오기 시작하여, 자동차를 쉼터 주차장으로 옮겨 놓은 후 백복령 정상석으로 가서 사진 한 장 담아 놓고 어둠이 채 가시지 않는 숲 속을 따라 홀로 대간길에 들어선다.


백복령은 강원도 강릉시 옥계면과 정선군 임계면 사이에 위치한 고개이지만, 고갯길은 동해시 삼화동의 신흥천에서 접근하여 정선군 임계면으로 통하게 되어있다. 고개 이름은 옛날 이 곳에 한약재로 쓰이는 복령 가운데 백복이 많이 나서 생겼다는 설이 있으나, 이 설은 여러 사료에 기재되어 있는 고개 이름의 다양한 한자의 뜻을 모두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


새벽 4시 50분경에 내 자동차 앞으로 난 어두 침침한 숲 길을 따라 들어가 잠시 걸으니 어둠은 서서히 초록으로 바뀌어가고, 오르막으로 시작된 걸음이 나무 계단이 있는 내리막으로 바뀌어가며, 초록 물결 속으로 오르락내리락 하니 등허리에 걸린 배낭의 묵직한 느낌이 무릎까지 전해오는 듯하다.


우거진 초록 사이로 빼꼼히 솟아 오른 아침 해를 맞이하고, 올려다 본 하늘은 넘실대는 초록이 아침 햇살에 춤을 춘다. 작은 봉우리 마다 펄럭이는 오색 리본들이 낯선 산꾼에게 친절하게 대간길을 안내하니, 아침 바람 시원한 초록 길이 상쾌하기만 하다. 펑퍼짐한 고갯마루 생계령에 도착하니, 백복령을 출발한지 한 시간 남짓한 시간에 5.4Km 걸었음을 알려준다.


생계령을 지난 오름 길에서 처음으로 트인 조망 사이로 돌아보니, 걸어온 초록 능선이 아침 햇살에 반짝인다. 간간히 우측으로 트인 초록 사이의 조망은 굴곡이 있는 산줄기가 수려해 보인다. 조망이 좋은 덩그런 바위 봉우리에 올라서니, 멀리 지난 4월에 걸었던 선자령 대관령 풍차들이 보이고 오늘 걸어 가야 할 초록 능선들이 한 줄로 시원스럽게 늘어서 있다.


우측 동쪽으로는 굴곡이 아름다운 산줄기들이 겹겹이 펼쳐져 초록이 넘실거리고, 좌측 서쪽으로는 부드러운 산봉우리들의 엎드린 모습이 평온하기만 하다. 오늘 걸어가는 대간 마루금은 좌측 서쪽으로는 산세가 부드럽고 완만하여 그저 그렇고, 우측 동쪽으로는 발 아래 낭떠러지와 험한 계곡의 초록이 햇살을 받아 생동감 있게 펼쳐진다.


삼각점 봉우리를 지나면서 바라본 우측으로 트인 아련한 조망이 햇살 아래 아름답고, 이어지는 초록길 아침 바람 시원하다. 초록 사이로 햇살이 파고드는 숲 속에는 야생화들이 많이 피어있지만, 시원한 능선 바람에 흔들리는 모습을 접사 할 엄두를 못 내고 그냥 지난다.


어설픈 이정표가 새워진 이 곳이 '고뱅이재'라고 어느 산님이 적어놓았고, 백두대간과 석병산을 알리는 안내판이 새워져 있기에 석병산이 가까이 있는 줄 알았는데, 실제로는 석병산이 너무 멀리 떨어져 있는 듯하다. 야생화 피어 있는 초록 능선 잠시 오르막길 걸어 허름한 헬기장 봉우리에 올라서니, 거리 표시는 없고, 일월봉까지 1시간 15분 걸린다는 시간만 표기된 어설픈 이정표가 새워져 있다.


우측 뚫린 조망으로 초록 옷을 입고 앉은 아름다운 암봉들을 살펴가며 걷는 길, 따갑게 느껴지는 오월의 아침 햇살에 초록이 싱그럽다. 잠시 숨가쁘게 나무 계단길 올라서면, 느긋하게 숨을 고를 수 있는 초록 길이 이어지고, 우측으로 절골과 옥계면 산계리 풍경이 아련하게 펼쳐진다.


상황지미골 삼거리의 이정표를 지나 시원한 그늘 속으로 가끔 해맑은 햇살이 파고드는 초록 오솔길을 따라 두리봉 삼거리에 도착하여, 5분 거리에 있다는 일월봉(석병산)으로 향한다. 바위 전망대에 올라서니 건너 석병산 바위 봉우리가 덩그렇게 보인다.


바위 봉우리 아름다운 석병산으로 건너 가는 바위 사이로 바라본 풍경 시원하고, 석병산 옆 바위에 뚫려있는 바위 동굴은 뒤쪽까지 관통되어 있다. 한 때는 석병산의 아름다운 바위와 함께 어울려 독야청청 부귀와 영화를 누렸을 법한 우람한 고사목의 손짓을 받으며, 바위 봉우리 석병산에 올라 선다.


석병산(1,055m)은 강원 정선군 임계면과 강릉시 옥계면의 경계가 되는 분수게 중의 한 봉우리로 비경의 천연 동굴과 석회암이 용해되어 형성되는 카르스트 지형이며 일월문, 비선굴, 가셋골굴, 영밀굴 등 기암괴석이 병풍처럼 둘러 진기한 아름다움을 자아낸다. 석병산을 위시한 가까운 두리봉에 이르기까지 산 전체가 암석으로 덮여 있고 석각의 모습은 병풍을 두른 것처럼 보여 석병산이라 한다.


석병산에서 바라본 가야 할 초록 능선은 울렁거리고, 멀리 두리봉이 봉긋이 솟아 있는 그 너머 오늘 걸을 화란봉으로 이어지는 능선이 아련하다. 가야 할 능선 멀리 지난 4월에 걸은 대관령 선자령으로 이어지는 풍차 능선이 펼쳐지고, 좌측으로 온화한 산봉우리들이 오월 햇살 아래 다사롭다.


절벽이 아찔한 석병산 아래 풍경과 우측으로 펼쳐지는 눈 시리게 시원한 초록 능선 풍경을 뒤로하고, 돌아서는 석병산에는 산조팝나무 하얀 꽃을 피웠다. 석병산 바위 사이를 지나 오는 길에 빨간 찔레꽃이 피어 있어 카메라를 겨누어 보지만, 그녀는 이미 입을 다물고 피곤한 기색이다.


산조팝나무꽃 흐드러지게 핀 길을 따라 산님들 리본이 주렁주렁 열린 두리봉 삼거리로 돌아와 능선을 따라 걷는 길, 초록 사이로 돌아본 석병산 모습이 한 폭의 그림 같이 아름답게 비친다. 다시 초록 사이로 이어진 길은 낡은 이정표를 지나 나무 계단 길을 걸어 벤치가 여러 개 놓여진 시원한 두리봉 정상에 올라선다.


백두대간 두리봉을 알리는 작은 안내판이 산님들 리본과 함께 걸려 있는 시원한 벤치에서 사과와 떡을 먹으면서 잠시 쉬고 있는데, 오늘 산행 길에 처음으로 삽당령에서 올라온다는 부부 산꾼을 만나 잠시 몇 마디 나누고 헤어진다. 다시 싱그러운 초록 오솔길 따라 삽답령이 2.2Km 남았음을 알리는 이정표를 지나고, 오르락 내리락 작은 봉우리 넘어 시원한 산죽길 따라 이정표가 가리키는 삽당령으로 내려갔는데, 뚝 떨어지던 계단 길이 넓은 임도에 내려선다.


잠시 임도를 따라 내려오다가 이정표가 있는 등산로를 만나고, 길 건너 커다란 표지석이 두 개나 새워진 햇살 따가운 삽당령에 내려선다. 삽당령에서 강릉시 쪽 풍경과 정선군 쪽 풍경을 바라보며 넓은 도로를 건너 두 개의 삽당령 표지석을 지난다.


삽당령(721m)은 강원 강릉시 왕산면 송현리와 목계리를 잇는 고개로 정상에 오르면 집고 왔던 지팡이를 버리고 갔다 하여 '꽂을삽'자를 썼다는 지명의 유래와 또 다른 유래는 정상에서 북으로는 대기로 가는 길과 서쪽으로는 고단 가는 길로 세 갈래로 갈라지는 삼지창 같다고 하여 붙여진 지명이라고 한다.


삽당령 건너 산행 들머리에 설치된 안내판에는 닭목령까지 14.5Km 라고 적혀 있다. 삼당령을 건너 잠시 오르막길 오르니, 좌측으로 임도를 끼고 걷는 작은 오르막과 내리막 길 이어지다가 앞이 막힌 임도를 건너 좌측으로 석두봉을 알리는 오르막 길이 이어진다.


이어지는 오르막 길에서 숨이 차오르면 쉬어가라고 시원한 쉼터가 설치되어 있는 백두대간길 치고는 너무 잘 단장된 등산로에 산꾼의 발이 호강을 하는 듯하다. 봉우리 내려서는 바닥에 고무가 깔린 폭신한 나무계단 길 가파르고, 내려갔던 길 다시 살짝 올라서면, 마루금 좌측으로 나무들을 베어버린 조망 시원한 초지가 나타난다.


평안한 조망이 햇살 아래 펼쳐지는 능선, 아침에는 그리도 시원하더니 갑자기 바람기 없는 날씨가 더위를 느끼게 하고, 달리고 싶은 초록 능선에서 나른한 햇살 아래 발걸음은 자꾸만 무거워지며 쉴 곳을 찾다가 저기 삐딱한 소나무 그늘에서 이른 점심을 먹으면서 잠시 쉬어가기로 한다.


오늘의 목적지 닭목령이 11.2Km 남았다는 이정표가 있는 삐딱한 이 소나무는 두 나무가 엉켜 붙은 사랑나무라고 한다. 사랑나무 그늘에 앉아 도시락을 펼치고 밥을 먹는데, 갑자기 날씨가 더워서 인지 왠지 밥알이 목구멍으로 잘 넘어가지 않으려고 하여, 꾸역꾸역 반쯤은 먹고 버릴까 하다가 그대로 배낭에 챙겨 넣고 시원한 미숫가루와 과일로 배를 채운다.


점심을 먹고 걸어도 무겁게 늘어지는 발걸음은 쉼터의 유혹을 뿌리치며 걷는데, 벌목 구간을 지나고 다시 숲 속으로 들어서니 조금은 시원한 느낌이 든다. 시원한 그늘에 두 개의 나무 침대 같이 생긴 편안한 의자가 설치된 이 곳이 '독바우봉'(978.7m)이라고 한다. 시원한 그늘 침대에서 늘어지게 한숨 자고 가고 싶은 생각은 꿀떡같이만 갈 길이 먼 산 나그네는 무거운 발걸음을 재촉한다.


초록 그늘 길이 이어지다가 앞을 막은 가파른 나무계단 길을 한발한발 오르는 발걸음이 오늘 따라 무겁다. 바위돌과 흙으로 이루어진 봉우리 위에 새로 설치한 듯한 미끈한 정상석이 기다리고 있는 석두봉(982m) 정상에 올라선다. 사진을 좀 찍어 달라는 두 여성 산님들의 사진을 찍어주고 내 사진을 찍어주겠다며, 카메라를 달라는 선심을 사양하고 걸음을 재촉한다.


석두봉에서 바라본 가야 할 능선은 평온하기만 하다. 잠시 계단길 걸어 석두봉을 내려선 발걸음은 초록 능선 오솔길 따라 가는 오르막 끝에는 고만고만한 봉우리들이 지키고 있다가 올라가면 다시 내려가라 하여 오르락 내리락 조금 지루한 발걸음이 이어진다.


창공을 바라보니, 오늘은 처음부터 끝까지 초록을 빼고는 별로 할 말이 없을 것 같다. 독야청청 노송도 오월의 초록 앞에서는 그 빛을 잃었다. 가도가도 그렇고 그런 초록 오솔길, 왔던 길로 다시 되돌아 걷는 느낌이다. 자연이 제멋대로 어우러진 곳 산새들 노래 소리 정겹게 들려오고, 나그네 걷는 길은 그 길이 그 길인데, 이정표에 닭목령을 알리는 거리만 조금씩 짧아질 따름이다.


마지막 고개를 치켜들고 있는 화란봉 정수리까지 치고 올라가는 계단 길의 발걸음은 천근 만근이다. 가슴이 벌렁벌렁 거리고 숨이 목구멍까지 차오르는 어려운 상황에서 내가 왜 이러는지 내 자신을 되씹어 본다. 집에 가만히 앉아서 산행 지도를 보며 상상으로 달려본 발걸음은 참 가볍고 날렵했는데, 막상 더위 속에 걸어보니, 무한한 대자연의 품 속에서 꼼지락 대는 하찮은 내 자신을 바라보며, 평소 오만한 마음으로 너무 과신하고 있었던 것 같아 부끄러운 생각이 든다.


드디어 오늘의 마지막 봉우리 화란봉을 알리는 삼거리에 도착하여, 화란봉 쪽으로 지친 걸음을 옮겨간다. 화란봉 정상에는 바위 무리가 모여 있고, 자연적으로 생긴 바위 구덩이라기 에는 신기해 보인다. 오늘 산행의 최고봉인 헬기장이 있는 화란봉에 올라선다. 화란봉(1,069m)은 이름 그대로 부챗살처럼 펼쳐진 화관이 정상을 중심으로 겹겹이 에워싼 형국이 마치 꽃잎 같다고 해서 붙여진 지명이란다.


바위와 숲이 우거진 화란봉 정상을 뒤로하고 삼거리 쪽으로 걸음을 돌린다. 부채살처럼 가지를 펼친 우람한 신갈나무들이 다투어 영역을 넓여가는 화란봉의 울창한 초록 사이를 지나 갑자기 뚝 떨어지는 급한 나무계단 길 따라 로프가 매어진 급경사 길 걸어 노송 우거진 오솔길은 닭목령으로 향한다.


잠시 오르락 내리락 촐랑대는 길에 늘어진 발걸음은 오늘 산행의 종점인 닭목령이 눈에 들어오고, 오후 2시 40분경에 닭목령 표지석과 재회하여, 기념 사진을 찍으면서 홀로 걸은 백두대간 땜빵 산행길은 종료된다.

닭목재는 강원 강릉시 왕산면 대기2리 닭목이에 있는 고개로 고개의 생김새가 닭의 목처럼 길게 생겨서 붙여진 이름이다. 백두대간이 지나가는 줄기로 닭목이와 왕산골 사이를 잇기 위해 닦은 길이다.


새벽 4시 50분경에 산행을 시작하여 오후 2시 40분경에 닭목령에 도착하였으니, 겨우 약 9시간 50분 산행에 오늘은 이상하게도 완전 녹초가 되어버린 듯하다. 입력해간 '임계콜택시'에 전화를 했더니, 닭목령에서 백복령까지 택시 요금이 6만원이라며, 산꾼들에게 알려진 공식가격이라고 한다.


시원한 닭목재 그늘에 앉아 콜택시를 기다리는 동안 슬슬 눈이 감기며 졸음도 오고 너무 무료하여 오랜만에 예전에 즐겨 하던 셀카 놀이를 해보니, 파김치 위에 걸친 검은 옷이 소금으로 하얗게 절여놓은 듯하다.


무료한 시간 달래가며 한참을 기다려 도착하는 택시를 타고 백복령으로 달리는 차창 가에는 졸린 눈 속에 이제 이곳에는 한물인 듯한 하얀 아카시아 향기가 무리로 스쳐간다. 택시기사 아저씨의 능숙한 솜씨로 꼬부랑길 오금이 저리도록 달린 택시가 백복령에 도착하니, 시간은 벌써 오후 4시가 다 되어 간다.


차 안에서 식수 한 병 꺼내서 겨우 땀에 저린 머리만 행구고 손수건으로 닦은 후 둘러보니, 쉼터에는 사람들이 붐비고 있어 어디 옷을 갈아 입을 곳도 마땅치 않고 하여 그냥 시동을 걸고 출발하려는데, 아침에 두리봉에서 마주한 부부 산꾼이 이제 하산을 한다. 인사를 했더니, 오늘 닭목재까지 가신다고 하여 늦을 줄 알았는데 벌써 하산했느냐 기에 오후 2시 40분에 하산하여 6만 원짜리 택시 타고 여기까지 왔다고 하니 깜짝 놀란다.


등산 양말에 슬리퍼를 신고 운전하는 발가락이 시러울 정도로 에어컨을 빵빵하게 틀어서 졸음을 쫓아가며 논스톱으로 동해안 7번 국도를 달려 내려오는데, 강구 까지는 신나게 잘 달렸지만, 여름철 주말이면 늘 그렇듯이 보경사 앞 신호등에서부터 밀리기 시작하던 도로가 청하 월포 사거리와 흥해 마산 사거리까지 지루하게 밀린다.


틈만 나면 몰려드는 졸음을 달래려고 하루 종일 배낭에 넣고 다니던 오이와 포도를 꺼내 먹는데, 배낭 안에 2리터짜리 얼음 덩어리가 아직 남아 있어서인지 과일이 시원하게 히야시 되어있다. 7시 30분경에 무사히 집에 도착하여, 마눌에게 다른 것은 다 필요 없고 얼큰하게 라면이나 끓이라고 하여 한 그릇 먹고는 샤워하고 깊은 잠 속으로 빠져들면서, 지난 달에 손 부상으로 빠지게 된 근심덩어리 숙제 하나 조금 비싼 대가를 치르면서 깔끔하게 갈무리해본다.

(2015.05.24 호젓한오솔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