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렌 마음 추억이 된 백두대간 26구간 (한계령~ 조침령~ 왕승골삼거리)
솔길 남현태
지난 구월 셋째 주에 백두대간 산행을 다녀온 이후로 마지막 주말이 추석 연휴에 이어, 시월 첫째 일요일인 4일에는 주위의 많은 지인들의 축복 속에 장남의 결혼식을 올리느라 한동안 산행을 하지 못하였는데, 3주 만에 다시 찾아온 백두대간 산행길이 조금은 힘이 들어 보이는 코스다. 결혼식 손님 맞이로 집안 정리를 하느라 흩어져 있는 행장을 모아 배낭을 꾸리니, 어딘지 모르게 조금은 어색한 기분이 든다.
이제 두 번 남은 이번 주 백두대간 길은 강원도 인제군과 양양군 사이를 잇는 남설악의 한계령에서 남진을 하여, 출입금지 구역인 점봉산, 단목령을 지나 조침령에 도착하여 조침령 아래 터널 입구에서 대기중인 버스에 잠시 내려가서 점심을 먹고 다시 올라와 왕승골삼거리까지 대간길 산행을 하고, 지난 주와 같이 왕승골을 따라 양양군 서면 갈천리 마을로 탈출을 하는 약 40Km의 조금은 빡신 구간이다.
원래 출발 시간인 토요일 저녁 10시에서 한 시간을 앞당겨 9시에 출발을 한다는 연락을 받고 일찌감치 행장을 챙기는데, 저녁 뉴스에 설악산에 첫 눈이 왔다고 한다. 토요일 밤에도 전국에 비가 온다는 예보가 있으니, 영하로 떨어지는 날씨에 초행길이고 험하기로 소문이 나있는 점봉산 암벽 구간이 얼어붙어 빙판으로 변하지나 않을까 하는 염려가 된다.
요즘처럼 일교차가 심한 환절기에 무박 장거리 산행은 옷차림에 신경이 쓰인다. 강원도 산간 지방의 영하로 떨어지는 야간 산행을 위해 두꺼운 겨울 옷을 입고 갔다가는 한낮에 기온이 올라가면 진땀을 빼기 일수이기 때문이다. 바지는 얇은 옷으로 입고, 상의도 얇은 티셔스 2개와 쪼기, 바람막이 등 여러 벌로 준비를 한다.
마눌의 차를 타고 연하재에 도착하여 잠시 기다렸다가 도착하는 버스에 오르니, 오늘 산행에 참여한 대원이 23명이라고 한다. 평소 잠자리에 들기 전인 초저녁이라서 인지, 오지 않은 잠을 청하며 눈을 감은 채 동해안 7번 국도를 따라 올라가다가 잠시 휴게소에 들러 용변을 보고 들어와서 단체로 준비해온 김밥과 요쿠르트로 아침을 해결한다.
한계령을 오르면서 버스 기사에게 물어보니 바깥 기온이 영상 7도라고 하여, 얇은 티셔스를 두개 껴입고 쪼기와 바람막이는 배낭에 챙겨 넣은 후 가다가 조침령에서 버스까지 내려가서 점심을 먹고 다시 올라오는 것이 번거로울 것 같아서, 아예 배낭에 점심 도시락과 식수 7병을 단단히 챙겨 넣는다. 새벽 1시경에 어둠이 짙은 한계령에 도착하여 차에서 내리니, 경찰 차가 2대나 새워져 있고 어수선한 분위기에 차가운 안개 바람이 몰아친다.
행여 비가 올까 걱정을 했었는데, 초저녁에 비가 조금 내렸는지 아스팔트가 촉촉히 젖어있다. 각자 서둘러 산행준비를 하고, 출입금지 구역이라 철망이 처진 점봉산 방향으로 오르기 위해 다시 양양 쪽으로 한참을 걸어 내려와서, 철망을 우회하여 어둠이 짙은 점봉산 자락으로 오르면서 제27차 백두대간 길은 열린다.
한계령(1,004m)은 강원도 인제군 북면 한계리에서 양양군 서면 오색리로 가는 길에 위치한 고개로 일명 재내, 와천이라고도 한다. 고개의 동쪽은 태백산맥의 동해사면으로 경사가 급하고, 오색을 거쳐 양양을 지나 동해로 흘러 드는 남대천 계곡으로 이어지며, 서쪽은 북한강의 지류인 소양강 상류에서 동쪽으로 분기하는 북천의 계곡과 연결된다.
신라김씨 대종원의 기록에 마의태자 일행이 서울을 떠난 것은 935년이고 지금의 한계리에 도착했을 때는 살을 애이는 듯한 추위와 눈보라가 심한 겨울이었다. 따라서 한계령은 이들 마의태자 일행이 몹시 추웠던 것을 되새겨 이름을 붙였을 가능성이 높다고 한다.
철망이 끝나는 지점에서 어둠 속에 조금은 위험해 보이는 펜스를 넘어 비탈길 오르다 보면 잠시 후 거친 너덜겅 길 이어지고, 우측으로는 간간히 높이를 알 수 없는 바위 벼랑이 어둠 속에 섬찟하게 느껴진다. 이어 가느다란 로프가 매달린 수직 암벽이 연이어 기다리고 있다. 출입이 금지된 비 탐방 구역이라 국립공원에서 설치한 것이 아닌, 산님들이 매달아 놓은 가늘고 낡은 로프에 남은 생을 맡기기에는 어딘가 모르게 불안감을 느끼게 한다.
가느다란 로프에 의지하여 한발한발 기어 오르는 어두운 바위 벼랑길, 옅은 안개와 거친 바람이 온 몸을 오싹하게 만들고, 연이어 올라갔다 내려갔다 하는 바위 벼랑길에 선두팀은 알바를 몇 번 하면서 어렵게 길을 찾아 통과한다. 좁은 바위 문을 비집고 통과하여 바위 봉우리를 내려서고, 잠시 바위 능선 길 오르락 내리락 하다가 이내 평온한 대나무 숲길 따라 내려서니, 등산로 우측에 하늘에서 떨어진 UFO 바위를 지난다.
이어지는 비에 젖은 대나무 숲 길은 이슬이 아랫도리를 축축하게 적시니 성실겁기는 해도 지나온 바위길 보다는 한결 편안한 느낌이 든다. 평온한 산죽 오솔길은 차츰차츰 고도를 높이면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안개 자욱한 바위봉우리 망대암산을 지나고, 잠시 고도를 낮추었다가 사방이 어둠과 안개로 발 밑이 잘 보이지 않는 길을 따라 다시 고도를 높여가는 느낌이 분명 꿈에 그리던 점봉산인 듯한데, 난생 처음 오르는 점봉산 풍경이 궁금하여 셔터를 눌러보지만 하얀 안개만 불빛에 반사되어 찍힐 뿐이다.
점봉산의 등산로가 바위 길이 거칠고 험하여 위험하다고 하여 잔뜩 겁을 먹고 왔었는데, 한계령에서 올라오다가 초반에 잠시 위험한 암벽 구간이 있었을 뿐 이후로는 여느 산과 같이 편온한 산길이 이어진다. 짙은 어둠과 안개 속에 하얀 안내판이 보이는 이 곳이 점봉산 정상에서 곰배령으로 가는 분기점인 듯 한데 주위에 정상석이 보이지 않는다.
정상석을 찾아서 몇 발자국 더 옮기니, 점잖은 점봉산 정상석이 안개 속에 우두커니 앉아있다. 점봉산 정상석 앞에서 무상님 기념사진을 찍었는데, 너무나 짙은 안개 때문에 사진이 찍히지 않는다. 벼르고 별러서 처음 올라온 점봉산은 야박하게도 깜깜한 그믐밤에 짙은 안개로 단 몇 미터 앞도 보여주지 않고, 차가운 안개바람만 몰아쳐 온몸을 꽁꽁 얼려놓는다.
점봉산(1,424m)은 강원 인제군 기린면과 양양군 서면에 걸쳐있는 산으로 한계령을 사이에 두고 설악산 대청봉과 마주보며 점붕산이라고도 한다. 태백산맥의 세 줄기 가운데 하나인 해안산맥에 속하는 산이며, 흔히 이 근처를 설악산맥 혹은 설악산군봉이라 칭한다. 설악산 국립공원 중 남설악의 중심이 되는 산으로, 산의 동쪽 비탈 면을 흘러내리는 물은 주전골을 이루어 오색 약수를 지나 백암천에 합류한 뒤 양양의 남대천으로 흐른다.
야생화의 천국이라는 곰배령을 알리는 점봉산의 이정표는 안개속에 희미하고, 차가운 안개바람에 온 몸에 한기가 몰려들어 잠시도 머물 수 없을 것 같은 야박한 점봉산을 뒤로하고 서둘러 하산을 서두른다. 대간 길의 마지막 이벤트로 잔뜩 기대를 하고 찾아왔던 점봉산에는 때 이른 차가운 바람과 안개뿐 아무것도 본 것이 없으니, 잠시 허황한 꿈을 꾸고 돌아가는 느낌이다.
잠시 낙엽과 바위가 미끄러운 점봉산 비탈길을 내려서니, 안개가 걷히고 오색사거리 이정표가 선명하게 보이는 것이 눈 앞이 맑아진다. 이제는 오르락 내리락 하면서 서서히 고도를 낮추어가는 평온한 오솔길을 따라 단목령으로 향하는 발걸음이 가볍다. 단숨에 단목령에 도착하니 꼭두새벽 이 시간에는 지키는 사람이 없다.
단목령(855m)은 강원도 인제군 기린면 진동리 방면의 설악산국립공원 남설악 지구의 점봉산 동쪽에 있는 고개로, 단목령이라는 명칭은 박달나무가 많은 데서 유래하였고, 박달재 또는 박달령이라고도 부른다.
출입금지를 알리는 안내판과 현수막, 국립공원 특별보호구역 안내판이 새워져 있는 단목령에서 물을 마시며 잠시 한숨을 돌리니, 이어 2진들이 내려오고 선두팀은 또 발걸음을 재촉한다. 쓰러진 고목이 길을 막은 곳은 돌아가고, 새벽에 몰려오는 졸음을 쫓아가며 무심코 달려가는 어두운 숲 길에서는 쓰러진 나무에 머리를 들이받고 비명을 지르는 일이 자주 일어난다.
음력 8월 29일 아주 아주 작은 그믐달도 사라지고 어둠이 서서히 걷혀가는 시간에 해발고도 940m 북암령을 지난다. 찬바람이 을씨년스럽게 불어대는 길 따라 오르락 내리락 무명 봉우리들을 타고 넘어 조침령으로 향하는 발걸음은 단풍 사이로 비쳐오는 일출을 맞이한다. 햇살이 비치는 단풍 길은 찬바람이 시원하게 느껴지고 발걸음이 한층 더 가볍다.
양수발전소 댐 상류를 알리는 이정표를 지나 아침 햇살에 단풍이 익어가는 오솔길을 달려가는 길에 쳐다본 창공엔 오색 단풍이 물들어가는 작은 봉우리들은 고개를 낮추며 조침령으로 안내한다. 익어가는 오색 단풍이 바람에 날리는 비탈길 내려서서 나무로 만든 아담한 전망대에 올라서니, 산자락 겹겹이 물들어가는 오색 가을은 골짜기를 향해 흘러내린다.
군데군데 반공호가 만들어진 길 따라 발에 걸리는 전선줄을 피해가면서 걸은 걸음은 임도 옆에 커다란 표지석이 설치되어 있는 조침령에 내려선다.
조침령은 강원도 양양군의 서부에 위치한 고개로, 서면 서림리와 인제군 기린면 진동리와 경계를 이룬다. 조침은 "높고 험하여 새가 하루에 넘지 못하고 잠을 자고 넘었다,"고 하여 유래된 지명이라고 전해진다.
입산통제를 알리는 안내판과 백두대간 안내판이 새워져 있는 조침령에서 임도를 따라 가는 길 좌측에 군부대에서 도로 개설 시 새운 표지석이 새워져 있다. 까실숙부쟁이 흐드러지게 피어 있는 임도를 따라 잠시 걷다가 좌측으로 능선을 따라 다시 등산로에 접어들어 바람이 없는 조용한 양지쪽을 찾아 선두팀 4사람이 아침 겸 점심을 먹으며 잠시 쉬어간다.
날씨가 추운 관계로 배낭에는 식수가 아직 5병이나 남아서 모자라는 사람에게 1병 주고, 남은 거리를 감안하여 험한 길 23Km나 지고온 물 한 병을 버리며 배낭 무게를 줄인다. 조침령을 지나 아침을 먹고 나니 배가 불러서인지 길가에 무르익은 단풍이 더욱 곱게만 보이는 길 지칠줄 모르고 불어대는 찬바람 속으로 아침을 먹으면서 식어버린 체온을 끌어 올리기 위해 부지런히 걸음을 옮긴다.
간밤에 춥고 어두운 암흑 속으로 떨면서 걷다가 이렇게 화사하고 부드러운 비단길을 걸으니, 마치 지옥을 빠져 나와 천국의 어느 산길을 걷고 있는 기분이 든다. 새벽녘에 몰려오던 졸음도 이제는 달아나고 오색 단풍 속에 가벼운 발걸음은 오늘 일찍 내려가도 후미가 하산을 해야 식당에서 하산주를 할 수 있다고 하여 느긋하게 걷기로 한다.
대간 길이라기 보다 마치 단풍놀이를 나온 기분으로 정담을 나누어가며 걷는 길 백두대간 기간 중에 오늘이 최고의 단풍길을 걷는 기분이 들고, 바람이 없는 곳에서는 화사한 단풍 사진도 담아가며, 선두팀 뒤에서 걸으며 사진 한 장 찍고는 부지런히 따라 가기를 반복한다.
'바람불어' 삼거리 이정표 누군가 '쇠나드리'라고 표시를 한 이 곳이 옛 조침령인 듯하다. 통나무 벤치가 여러 개 놓여진 작은 봉우리를 지나고, 이어지는 단풍 길 불어오는 바람 빛도 곱기만 하다. 산비탈에 불이 붙은 듯 훨훨 타오르는 단풍 앞에서는 저절로 걸음이 멈추어지고, 일행과 자꾸 멀어지니 똑딱이 손놀림이 바쁘기만 하다.
삼거리의 이정표에는 갈전곡봉이 점점 가까워지고, 주황색 단풍과 연둣빛 녹음이 함께 어우러져 연출하는 은은한 풍경에 산꾼은 매료될 수 박에 없다. 단풍 사진 몇 장 찍고 눈이 부신 길 따라 열심히 달려가면 앞서가는 우리 일행은 오색 단풍 속으로 스멀스멀 스며드는 느낌이다.
자세를 낮춘 고개를 지나고 산님들 정성이 주렁주렁 달린 넓은 봉우리에서 물 한 모금 마시며 잠시 쉬어간다. 평소에는 조망도 없고 별로 볼거리가 없어 조금은 지루해 보이는 길이지 만, 오늘은 한껏 농익은 단풍들이 열병을 하고 있으니, 사방으로 돌아가는 눈길 바쁘고 똑딱이 셔터를 누르는 손길이 바쁜데, 셔터 몇 번 누르고 따라 가는 발걸음도 바쁘다. 고운 단풍 아래서 괭이갈메기님과 사진 한 장 찍어주고 찍혀본다.
대간길에서 덤으로 만난 단풍이지 만 올해 이 보다 더 고운 단풍을 다시 만날 수 있을까 싶다. 찬찬히 들여다 보며 농익은 자태를 모두 사진에 담고 싶지만, 늘 그렇듯이 백두대간은 갈 길이 너무 멀어 모두 바삐 움직인다. 잠시 잠시 걸음을 멈추고 셔터를 눌러가며, 앞서간 선두팀을 따라 바삐 걸음을 옮긴다.
무명 봉우리 955 봉에서 잠시 휴식을 하고 평소에 선두팀은 멈추는 시간이 별로 없는 편인데, 오늘은 자주 쉬어가면서 여유롭게 걷는다. 잘 다듬어진 미인처럼 눈이 부시도록 아름다운 빨간 단풍 앞에서 연방 셔터를 눌러보고, 산죽과 단풍이 어우러져 바람에 흔들리는 길 따라 서서히 고도를 높여가는 길, 내뿜는 거친 숨소리는 찬란한 단풍 물결 속으로 녹아 든다.
잠시 가파른 숨소리 흘린 정겨운 발걸음은 어릴적에 부러져 죽은 줄로만 알았던 끈질긴 가지 하나가 땅 위에 누운 채로 튼튼한 가지를 두 개나 뻗어 올려 일가를 이루고 주위에 성한 나무들과 당당하게 어깨를 겨루고 있는 해발 1,059m 봉우리를 지난다. 산죽길 옆에 낮잠을 자던 운 나쁜 고라니 한 마리 놀라 달아나는 길 따라 연가리골 갈림길 안부를 지난다.
다와 간다 다와 간다 하면서 이어지는 발걸음은 자연이 그려 놓은 현란한 수채화를 구경하면서 때로는 그림 속의 주인공이 되기도 한다. 앞서가는 괭이갈매기님 잠시 기다리라 하고 붉은 단풍 아래서 어설프게 포즈 한 번 잡아본다. 오늘 산행길에서 많이 보이는 일엽초는 남부지방의 숲 속 바위나 늙은 나무 껍질에 붙어서 자라는 늘푸른 여러해살이 풀이란다.
대간길 여느 때 보다 여유롭고 감칠 맛 나게 걸은 걸음은 어느덧 오늘의 마지막 봉우리 968 봉에 도착하여 선두팀 기념사진 찍어주고, 커피향기님 덕분에 나도 한 장 찍혀본다. 이어지는 발걸음은 고운 단풍 아래서는 느긋하게 포즈도 취해가면서 산죽과 단풍이 어우러진 볼거리 풍요로운 길 따라 오늘의 대간길 종점 '왕승골 삼거리'에 도착한다.
오늘의 선두팀 커피향기님, 알파인님, 괭이갈매기님, 나도 한 장 찍혀보고, 왕승골 삼거리에 잠시 머물다가 왕승골로 내려서는 길에 트인 조망은 발아래 왕승골 끝에 가야 할 갈천리 마을과 건너 지난 산행에 걸어온 약수산과 능선 마루금이 한 눈에 펼쳐진다. 비탈길을 따라 왕승골로 내려선 발걸음은 시멘트 포장된 길을 따라 구룡령 오르는 큰길 가에 도착하여 잠시 우측으로 걸어서 코스모스 반겨주는 갈천리 마을 식당 앞에 도착한다.
새벽 1시 10분경에 캄캄한 한계령에서 산행을 시작하여 약 12시간 20여분 동안 땀을 별로 흘리지 않은 38.2Km의 산행을 마치고, 오후 1시 30분경에 양양군 서면 갈천리 마을 식당 앞에 기다리고 있는 버스에 돌아오면서 한편의 가을 드라마 같은 오늘 산행길은 막을 내린다.
오늘은 날씨가 추워서 땀을 별로 흘리지 않은 터라 식당 안에 있는 화장실에서 간단하게 머리만 감고 나와 돼지고기 수육 안주에 산채 비빔밥을 먹으면서, 후미가 다 내려올 때까지 느긋하게 하산주를 나누는데, 밖에는 차가운 가을비가 제법 내리기 시작하고, 여성회원 한 사람이 다리가 아파 걸음을 못 걷는다고 하여 식당집 무소 승용차가 왕산골 골짜기 안쪽까지 마중을 나간다. 오후 3시가 지나서 하산주를 마치고, 포항으로 돌아오는 길은 간밤에 뜬 눈으로 산행을 한 탓인지 졸음이 몰아친다.
이제 다음 주에 마지막으로 간단한 졸업산행만 남은 지금, 각 산악회에서 모인 용병들로 구성된 백두대간 팀이 막바지에 이를 수록 마음이 결속되지 않고 틈이 갈라는 기분이 든다. 남은 예산으로 집행부에서 제주도 한라산 산행을 계획 하다가 반대 인원이 많아 취소되고, 완주 증 이야기로 되도 않은 구설수로 공개 석상에서 사람을 모함하여 옥신각신 하는 등 점점 중구난방이 되어가고 있는 듯하여 씁쓸한 기분이 든다.
완주증이란 대간길을 한 구간도 빠짐없이 끝까지 완주한 사람에게만 주어지는 것이 완주증일 것인데, 대간팀에 참가비 내고 산행에 몇 번 참가하였다고 백두대간 완주증을 준다는 것은 무의미하다는 생각이 든다. 하여 몇 번을 빠진 사람까지 완주로 인정하고 완주증을 줄 것인지 말썽의 소지가 있는 완주증이나 완주폐 제작을 반대하는 마음에서 완주폐와 해단식을 하지 말고 남은 예산으로 제주도 한라산 산행을 가자고 하여 찬성을 했는데, 완주폐을 달라고 보채는 사람들이 더 많은 모양이다.
포항으로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다음 주에 마지막 산행을 마친고 나면 모두 뿔뿔이 흩어지게 되므로 지속적인 모임 결성을 하자고 하는 요지의 집행부 한 사람의 발언이 이상한 쪽으로 흘러 빙빙 돌다가 갑자기 종주증 이야기로 바뀌더니, 화살이 가만히 자고 있는 엉뚱한 사람에게로 꽂혀 차 안의 좋던 분위기를 한 순간에 흐트려 놓는다.
백두대간 종주가 무엇이고 완주증이 그렇게 대단한 것이라고, 자기 자신이 빠짐없이 완주를 했으면 자기 만족으로 되는 것이지 남의 이름을 팔아서까지 목을 매는지는 몰라도 하여간 떨떠름한 기분은 감출 수가 없다. 잠시 깊은 잠 속으로 빠져들었다가 울진군 덕신휴게소에 들러서 마눌에게 전화를 하고, 저녁 8시경에 연하재 주차장에 도착하여, 마중 나온 마눌의 차를 타고 집으로 돌아오면서 제 27차 백두대간 길을 갈무리해본다.
(2015.10.11 호젓한오솔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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