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동정맥 9구간 (성법령~ 한티재~ 운주산~ 이리재)
솔길 남현태
만물이 성장하는 여름철에는 비가 오지 않아 가뭄에 애를 태우다가 처서가 지나고부터 자주 내리기 시작한 가을비가 가뭄을 해갈하여 주는가 싶더니, 백로가 지난 지금까지도 이제는 아무런 쓰잘데기 없는 비를 주책없이 자꾸만 내리고 있다. 햇살이 필요한 오곡이 영글어가는 시기에 비가 내려 농심이 멍들고 추석을 앞두고 조상님 산소에 벌초를 하러 가는 사람들을 성실겁게 하고 있다.
세상은 지금 북한의 5차 핵실험으로 떠들썩하다. 히로시마 원폭에 버금가는 강력한 핵실험을 성공하고 핵무기를 경량화 하며, 미국 본토까지 공격 할 수 있는 장거리 미사일을 잠수함과 터널 속에서 기습적으로 쏘아대는 연습을 하고 있지만, 태평스러운 남한은 아직도 미사일 방어체계인 꼴란 사드 배치 하나를 놓고 정치권에서 지역 갈등을 부추기며 왈가불가 하고 있는 실정이니, 과거에 한 나라가 망할 때 일어나는 전조 현상과 흡사하다는 생각에 짜증이 난다.
이러다가 핵무장을 완전히 끝낸 북한이 남한을 향하여 핵미사일을 겨누고 으름장을 놓으면, 사드 반대를 부르짖던 양반들은 어린 김정은 앞에 꿇어 앉아 형님 같은 편이니 목숨만 살려달라고 싹싹 빌다가 박격포에 맞아 죽을 것이고, 사드 배치가 당연한 줄 알면서도 표심을 살피느라 헛소리하며 밍그적거리던 양반들은 그 잘난 마빡으로 장렬하게 핵미사일을 막아내지 않을까 싶다.
지난 주에는 토요일과 일요일에 결혼식이 있어, 일요일엔 서울을 다녀오는 등 산행을 하지 못하고 지나가니 일주일이 찌부퉁하고 지겹게 지나가는 듯하다. 이번 주에도 별 산행 계획이 없는 주말에 잠시 비가 내린다고 하여 짬을 내어 근교 산행이나 한번 다녀올까 했는데, 일기 예보와는 달리 토요일에는 동해안 지방에 많은 비가 내리더니, 일요일에도 잠시 비가 온다고 한다.
토요일 아침에 느지막이 아침을 먹고 슬슬 배낭을 꾸리는데, 갑자기 쏟아지기 시작하는 비가 그칠 줄을 모르고 종일 왔다 갔다 하면서 그대로 방안에 주저앉힌다. 저녁 때 산이좋아님이 전화가 와서 내일 시간이 어떠냐고 하면서 카톡을 확인하라고 한다. 이번 주에 산행 계획이 없던 낙동정맥 팀에서 모두 시간이 된다고 하면서 내일 낙동정맥 한 구간 하자고 하여, 포항 근교까지 내려온 정맥 길이라 별 부담 없이 오케이 하고 산행 준비를 하게 된다.
이번 주에 산행 하게 될 낙동정맥 9구간은 고향인 상옥의 남쪽 관문인 성법령에서 시작하여 사관령, 배실재, 침곡산, 태화산, 한티재, 블랫재, 운주산을 거처 기계면의 이리재까지 포항 땅을 가로 지르는 코스로 그 동안 수 없이 오르내리면서 눈에 익은 산봉우리와 능선 마다 아름다운 추억을 만들어 놓은 곳이고, 근교 장거리 산님들이 즐겨 찾는 비침운봉의 일부분 이라고 해야겠다.
새벽 5시에 출발을 한다고 하여, 약속 장소로 나가서 잠시 기다리다가 도착하는 산이좋아님 차로 산행 날머리인 이리재에 도착하니, 당산님과 민트님이 기다리고 있다. 당산님 차는 이리재에 세워 두고 산이좋아님 차로 아침 안개 스멀스멀 넘나드는 성법령에 도착하여, 잠시 산행 준비를 하고 아침 6시 54분경에 어제 내린 비로 이슬 촉촉한 길을 따라 산행을 시작한다.
절개지 철망을 둘러가기 위해 고향 상옥 쪽으로 잠시 내려간다. 상옥 참느리 마을을 알리는 안내판을 지나 산행 들머리에서 성법령을 돌아보고, 잠시 이슬 촉촉한 능선 길 걸어 내연지맥, 비학지맥의 분기점인 709봉에 올라 낙동정맥 마루금을 이어간다. 709봉 헬기장을 출발한 숲 속 낙엽 쌓인 길에는 최근 비가 자주 내려서인지 버섯들이 즐비하게 돋아 나고 있다.
낙엽 비탈에 띠를 이루며 돋아난 하얀 버섯들 갓버섯, 단풍취꽃, 갓버섯 몽우리, 지난 주에 산행을 거르고 오랜만에 다시 찾은 숲 속은 계절의 변화를 물씬 느끼게 한다. 계절의 흐름을 알려주는 여러 가지 풍경들을 사진에 담아가며 걷는 발걸음이 상쾌한 것이 역시 산꾼은 산속에 들어와야 힘이 나는 모양이다.
잠시 오르락 내리락 하던 걸음이 근방에서 제일 높은 헬기장 봉우리 사관령(789m)에 올라서니, 아무런 표식이 없고 산님들의 오색 리본만 펄럭인다. 호젓한 사관령을 뒤로하고 벼슬재를 향하여 고도를 낮추며 오르락 내리락 이어지는 능선 길은 우측 죽장면 쪽으로 하얀 운해가 아름답게 펼쳐진다.
죽장면과 청송군 쪽으로 이어지는 골짜기들을 가득 메운 하얀 운해와 솔솔 불어오는 촉촉한 아침 바람이 폐부 깊숙이 시원하게 파고든다. 벌목을 하여 시원하게 트인 낙동정맥 능선과 기북면 건너 멀리 비학산과 비학지맥 마루금이 운무 속에 아련하게 펼쳐진다. 우측으로 펼쳐지는 멋진 운해를 바라보며, 이어지는 걸음은 노란 마타리꽃, 하얀 참취꽃, 길가에 피어 있는 가을 야생화들을 담으며 여유롭게 이어진다.
근교 산행에서는 좀처럼 보기 어려운 아름다운 운해에 발걸음은 자주 멈추어지고 모두 사진을 찍으면서 감탄사를 흘린다. 이어지는 낙동정맥 마루금에는 하얀 안개 살며시 넘나들고 좌측으로 날씨가 포근한 기북면과 비학산은 운무에 은은한데, 우측으로 기온이 차가운 죽장면과 청송군 쪽으로는 골짜기 마다 하얀 안개가 잠기니, 자연은 기온 변화에 따른 확연한 차이를 보여준다.
하얀 운해를 바라보며 걷는 발 아래 붉은 민며느리꽃 속에 하얀 민며느리꽃이 피어 있어 몇 장 접사를 해본다. 길가에 여기저기 피어 있는 하얀 버섯이 마치 종이 양산을 펼친 것처럼 신기한 모습이 하도 연하여 살짝 건들면 그냥 뭉개진다. 낙동정맥의 중간 지점이라고 하는 벼슬재(배실재)에 내려서니, 걸어온 길 227.3 Km 이고 걸어갈 길 223.7 Km 남았다고 한다.
낙동정맥 길 이제 절반을 걸어 왔다는 벼슬재에서 기념사진 찍혀보고, 침곡산을 향하여 서서히 고도를 높인 걸음은 낯익은 침곡산 능선에 올라선다. 낙엽 속에 고개를 숙인 하얀 풀도 아니고 버섯도 아닌 것이 신기하여 천마가 아닌가 하고 사진에 담아 왔는데, 뽀얀 그녀들의 이름은 '수정난풀' 이라고 한다. 무덤가에 이슬 맺힌 산비장이 모습 사진에 담으며, 침곡산 정상에 올라 선다.
사방이 수목으로 막혀 조금은 답답하게 느껴지는 침곡산 정상에서 배낭을 풀고 간식을 먹으면서 잠시 호흡을 가다듬은 후 기념사진 찍어주고 찍혀보고, 낯익은 마루금을 따라 이어지는 걸음은 산불감시 전망대가 있는 태화산에 도착하여 기념사진 찍혀보고 한티재를 향하여 걸음을 재촉한다.
우측으로 벌목을 한 능선 길은 조망은 시원하게 트이지만 잡풀이 무성하게 자라 걷기가 불편하다. 발 아래 가안 2리 마을과 한티재로 올라 오는 꼬부라진 31번 도로(새마을로) 모습이 정겹게 보여 가을빛 사이로 살짝 당겨본다. 멀리 운주산으로 이어지는 가야 할 능선 길을 바라보며 고도를 팍 낮춘 걸음은 오막한 먹재에 내려선다.
낙동정맥 '먹재'를 알리는 안내판이 걸려 있는 먹재에서 잠시 물 한 모금 마시고, 만만치 않는 오르막 길 다시 올라서 발 아래 자동차들 쌩쌩 달리는 한티재 터널 위를 지나 한티재 구 도로 위에 내려선다. 이곳 한티재에서 점심을 먹고 가기로 했지만, 밥을 먹고 나면 배가 불러 오르막을 올라가기가 버거울 것 같아 그냥 대우산 갈림봉까지 올라가서 점심을 먹을까 하는데, 따라 오면서 배가 고프다고 아구다리 트는 대원이 있어, 예정대로 한티재에서 점심을 먹고 가기로 한다.
한티재 그늘에 앉아 느긋하게 점심을 먹은 후 대우산 갈림봉을 향하여 올라가는 길가에 빨간 물봉선화가 탐스럽게 피어 살며시 카메라를 겨누어 본다. 대우산 오르면서 돌아본 길 건너 태화산과 걸어온 능선이 아련한 추억으로 변해가고, 여러 번 와본 길이지만, 주위에 벌목을 많이 하여 낯선 길처럼 느껴지고 옛날에 다문다문 보이던 영지버섯도 지금은 자취를 감춘 듯하다.
시경계와 만나는 대우산 삼거리봉에 올라서니, 누군가가 함석에 매직으로 쓴 문수봉(544.9m)이라는 표지판을 달아놓았다. 전국에 문수봉이라는 이름을 가진 봉우리가 얼마나 많은데, 바로 옆에 대우산이 있는 이곳에 문수봉이라는 이름을 또 붙이고 있는지 이해가 안 된다.
대우산 삼거리봉에서 휴식을 취하고 잠시 오르락 내리락 하던 걸음은 절개지 양쪽에 나무계단이 설치된 블랫재에 내려선다. 여름 산행으로 즐겨 찾던 낯익은 블랫재에서 배낭을 풀고 과일을 먹으며 잠시 쉬어가기로 하는데, 고개를 넘나드는 바람이 얼마나 시원한지 모두 일어나기가 싫어진단다.
느긋하게 휴식을 취한 걸음은 나무 계단을 밟으며 운주산으로 향하는 능선에 올라서니, 우측 도일리 마을 풍경과 멀리 기룡산, 보현산, 면봉산, 수석봉 모습이 좌에서 우로 이어진다. 울창한 초록 사이로 불어주는 시원한 바람이 좋아 무더운 여름철이면 즐겨 찾는 운주산의 낙동정맥 길은 나의 홈 그라운드나 마찬가지라고 해야겠다.
운주산의 명물인 멋진 노송은 언제나 그 자리에서 늠름한 모습으로 산님들을 기다리니, 길게 가지를 늘어뜨린 노송이 바위와 멋지게 조화를 이룬 모습은 그 값어치를 환산 할 수 없는 산님들만의 산상 정원이다. 이어진 발걸음은 또 하나의 운주산 명물인 조망이 시원한 왕바위에 올라선다.
왕바위에서 바라본 은천지와 기북면 뒤에는 구름을 이고 있는 비학산과 아침에 출발한 성법령 마루금이 하늘에 닿아있고, 오늘 걸어온 낙동 마루금이 한 눈에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아직 미답으로 남아 있는 발 아래 골짜기, 살짝 당겨본 구지리 마을과 은천지 모습과 월척을 낚으러 다니던 젊은 날 강태공 시절 내 모습이 아련히 떠오른다.
모두 감탄사를 흘린 시원한 왕바위 위에서 신발을 벗어놓고 남은 간식 떨어 먹으면서 느긋하게 즐기다가 아쉬운 발걸음을 옮긴다. 왕바위 내려서는 벼랑 길은 보기에는 무척 까다롭게 보여도 막상 붙어 보면 잡고 디딜 곳이 많아 부드럽다. 좌측으로 안국사에서 올라오는 길과 만나는 삼거리 이정표에는 운주산 정상이 0.7Km 남았음을 알리더니, 잠시 오르막길 올라 운주산 낙동정맥 봉우리에 올라선다.
운주산 낙동정맥 봉우리(797m) 안내판이 달린 낙동정맥 봉우리에 올라서니, 갑자기 구름이 짙어지면서 종일 참았던 비라도 금방 쏟아 내릴 분위기로 변해간다. 낙동정맥에서 영천 쪽으로 조금 벗어나 있는 운주산 정상은 자주 와본 곳이고, 저물어가는 날씨가 금방이라도 비가 내릴 것 같은 분위기를 만들어 오늘은 외면하기로 한다. 기념사진 찍어주고 찍혀보고, 이리재를 향하여 오르락 내리락 걸음을 재촉한다.
이리재로 가는 도중에 배낭에서 산행 거리를 알리는 GPS 소리가 한참 동안 들리지 않아 이상하다 싶어, 배낭을 내리고 확인을 하니 왕바위에서부터 트랙이 꺼져버렸다. 조금 허탈한 기분으로 트랭글을 다시 연결하여 배낭에 넣고 이어간다. 운주산을 내려서면서 전망 바위에서 바라본 기계면 풍경은 이리재 아래로 통과하는 고속도로가 점점 가까워진다.
전망 바위에서 바라본 운주산에는 작은 바위 군락이 있는데, 자세히 보면, 모자와 안경을 쓴 크고 작은 사람들이 모여 있는 모습이라, 옛날부터 나는 이 바위를 가족들이 한자리에 모여 있는 자연스러운 모습 같아서 혼자 가족바위 라고 부르며 늘 사진을 찍어왔다.
기계면 풍경 살짝 당겨보고 이리재로 향하는 이어지는 능선 길은 우측 영천 쪽으로 벌목을 많이 하여 무더운 여름철에 햇살이 파고들면 시원한 운주산의 옛 정취를 평생 다시 즐기기는 어려울 것 같아 아쉬운 마음이 든다. 돌탑이 세워진 봉우리에 올라서니, 전에 올 때는 아래쪽에 돌이 몇 개 쌓여있었는데, 어느덧 완전한 돌탑이 되어있다. 시원한 바람이 쉼 없이 불어주는 능선 길, 발걸음을 재촉하여 날이 어두워지기 시작하는 오후 6시경에 이리재에 도착을 한다.
예정에 없던 산행을 번개로 한 구간 마무리 했다는 뿌듯한 기분으로 자동차에 돌아와 행장을 내려놓으니, 아침 6시 54분경에 성법령에서 산행을 시작하여, 약 27.7Km 거리에 11시간 정도 소요된 조금은 지루한 산행을 마치고, 비가 올 듯 말듯 잔뜩 찌푸리고 있는 흐린 날씨에 숲 속에 어둠이 서서히 내려앉기 시작하는 저녁 6시경에 이리재에 도착하면서 오늘 산행길은 종료된다.
모두 당산님의 차를 타고 성법령으로 이동하여 산이좋아님의 자동차를 회수하여 포항으로 돌아와 이동에 있는 참육우 식당에 들러 미국산 쇠고기를 구워 저녁을 먹으면서 소맥으로 하산주를 나눈다. 느긋하게 저녁을 먹은 후 음주를 하지 않은 민트님이 운전하는 당산님의 차를 타고 집으로 돌아오면서 낙동정맥 9구간 산행길을 갈무리 해본다.
(2016.09.11 호젓한오솔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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