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동정맥 10구간(땜빵) (이리재~ 시티재~ 한무당재~ 아화고개)
솔길 남현태
요즘은 텔레비전을 켜면 최순실 게이트와 세월호 일곱 시간을 밝히라는 빈정거리는 소리만 들리고, 좌파 진보세력들의 촛불집회가 전국민의 민심인 냥 촛불 세력을 등에 엎고 기회를 잡아보려는 모사꾼들이 설쳐대는 이합 집단의 정치판은 더욱 꼴불견이다. 입만 모이면 재미 삼아 남의 흉이나 보고 있는 심산 한 한반도에도 정유년 새해 아침은 밝아온다.
새해가 되면 대부분의 산꾼들은 각자 자기가 즐겨 다니는 산악회의 시산제 산행을 동참하게 되는데, 올 한해는 다니던 정맥 길이나 차분하게 걸어 볼 요량으로 정유년 새해 첫 산행을 홀로 걷는 낙동정맥 길로 열어보기로 한다. 지난 3월에 네 사람이 팀산행으로 시작한 낙동정맥 산행 길이 이제 마지막 두 구간을 남겨두고 있어 이번 달 내에 무리 없이 마무리 될 예정이다.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지난 10월에 바쁜 회사일로 혼자 빠지게 된 포항시 기계면에서 경주시 산내면 메아리 농장까지 약 63Km의 세 구간이 중간에 남아 있어 늘 찜찜한 기분이 든다.
숙제로 남겨진 세 구간을 두 간으로 나누어 혼자 땜빵으로 마무리 하기로 하고, 별 산행계획이 없는 오늘 이릿재에서 아화고개까지 약 37Km의 거리를 진행하기로 한다. 이릿재에 주차하고 산행을 마친 후 택시로 차를 회수하러 가는 것 보다 차라리 아화에서 택시를 타고 포항 집으로 바로 돌아 오는 것이 가까울 것 같아 마눌에게 새벽에 이릿재까지 태워주면 저녁에는 택시를 타고 오겠다고 했더니, 택시비가 아까운지 아침에 태워주고 저녁에도 태우러 오겠다고 한다.
오늘 땜빵 산행하게 될 낙동정맥 10구간은 포항시 기계면과 영천시 자양면의 경계에 있는 이릿재에서 시작하여, 좌측 발에 떨어지는 물은 형산강으로 우측 발에 떨어지는 물은 낙동강으로 흘려 보내면서, 봉좌산삼거리, 배티재, 도덕산삼거리, 오룡고개, 삼성산삼거리, 시티재, 호국봉, 어림산, 마치재, 남사봉, 한무당재, 관산, 애기재, 만불산, 아화고개까지 이어지는 조금은 지루한 산행 길이 예상된다.
대부분 다녀본 길이기는 하지만, 산행 시간이 약 12시간 정도 소요될 것 같아 어둡기 전에 하산을 하기 위해 일찍 출발하기로 하고 새벽 4시에 일어나니 비가 온다고 한다. 일기 예보를 보니 오늘 동해안에는 오전에 비가 오지만 산행지인 기계면과 경주에는 비가 내리지 않는다고 하여, 마눌의 차를 타고 기계면으로 가는 길에 지역적으로 제법 많은 비가 내린다.
찜찜한 기분이 들어 그냥 집으로 돌아올까 하다가 이왕 나선 김에 가는데 까지 가보자고 하면서, 아침 5시 30분경에 사방이 깜깜한 이릿재에 도착하니, 다행이 비는 내리지 않고 고개를 넘나드는 바람이 약간 차갑기는 하여도 겨울날씨답지 않게 포근한 느낌이 든다. 걱정 어린 눈으로 바라보고 있는 마눌을 돌려보내고 흐린 날씨에 칠흑 같은 어둠 속으로 봉좌산을 오르면서 나 홀로 산행 길은 시작된다.
이릿재에서 봉좌산 오르는 길은 여러 번 다닌 길이지만 처음 출발하여 어두운 밤길을 걸으니 낯설어 보이고, 포근한 날씨에 몇 걸음 못 가서 바람막이를 벗고 걷다가 잠시 후에 다시 조끼까지 벗으니, 새벽에 얇은 기모 티 하나만 입고 걸어도 추위가 느껴지지 않는다. 어두운 밤길 느긋하게 걸은 걸음은 봉좌산 갈림길(601m) 봉우리에 올라서고 낙동정맥에서 벗어나 앉은 봉좌산은 자주 올라오는 곳이라 오늘 산행에서 제외하고 바로 우회전 하여, 리본이 달린 낙동길 따라 급경사로 내려선다.
자도봉어 종주 길에 가끔 쉬어가던 쉼터가 있는 곳에 내려서고, 낙동정맥 트레일로드 안내판을 지나 멧돼지가 가끔 나타난다는 낙엽 쌓인 오솔길 따라 버스럭거리며 걸으니, 랜턴 불빛에 눈발이 슬슬 날리기 시작하니 어설픈 기분이 든다. 임도 가에 대피소가 있는 배티재를 건너서 도덕산을 향하여 오르기 시작한다.
잠시 가파른 길 올라 천장산 삼거리 봉우리 지나고, 어둠 속으로 이어지는 오솔길은 여명이 서서히 밝아오는 시간에 도덕산 갈림길(656m)에 도착하여, 우측으로 방향을 틀어 가파른 비탈 길을 내려선다. 날이 훤하게 밝은 시간에 선잠 깬 듯 어설픈 몰골을 한 오룡고개를 건너고, 난잡한 절개지 언덕배기 올라서니, 길을 찾기 어려울 정도로 우거진 방초 널브러져 있다.
오룡고개 건너서 돌아본 도덕산과 내려온 능선 길은 멀어져 가고, 멀리 자옥산 풍경 당당하게 보인다. 작은 산봉우리 하나 넘어 오룡리에서 삼포리로 넘나드는 옛 고개에 내려서고, 빼곡한 소나무 숲을 지나 삼성산 오르는 길에서 한 무리의 단체 산님들을 추월하게 되는데, 서울에서 온 낙동정맥 팀이라고 한다. 나와 같은 이릿재에서 출발하여 마치재까지 산행을 하는데, 나 보다 2시간이나 이른 새벽 3시 30분에 출발을 하였다고 한다.
이슬비 부슬부슬 내리기 시작하는 삼성산 삼거리를 지나 시티재로 향하는 내리막 길에서 서울 산님들을 모두 추월한다. 잠시 오르내리던 낙엽 길은 경주시 안강읍 시티재 휴게소에 내려서고, '남북 평화통일 념원비' 앞을 들렀다가 휴게소 앞 넓은 주차장을 지난다. 휴게소에서 영천 방향으로 잠시 가다가 시티재 6차선 도로를 횡단하여, 절개지 철망이 끝나는 지점에 리본이 달린 언덕으로 올라간다.
빼곡한 참나무 숲에 낙엽 쌓인 능선에 올라서고 철탑 아래 관리실이 있는 곳을 지나 로프로 가이드 라인을 설치한 길 따라 호국봉에 올라서니, 산정에는 낙동정맥 트레일 안내판이 설치되어 있고, 동쪽으로 트인 조망은 경주시 안강읍 하곡지 모습이 나타난다. 작은 돌무더기 있는 낙엽 봉우리에는 호국봉(385m)임을 알리는 작은 안내판이 달려 있고, 사방으로 수목이 가리어 여름철 조망은 별로 시원치가 않을 것 같아 보인다.
무덤 하나 엎드린 이어지는 낙엽 능선 길 좌측으로 하곡지와 멀리 안강읍 모습이 촉촉한 이슬비 속에 은은하게 펼쳐진다. 옛날 태공 시절에 뻔질나게 낚시를 다니던 하곡지 모습을 살짝 당겨보고 잠시 걸으니 우측 수목 사이로 옛날 월척의 꿈을 낚던 고경지 모습이 드러난다.
낙엽 쌓인 작은 봉우리들 오르락 내리락 하는 마루금은 좌측 형산강과 우측은 낙동강의 지류인 금오강으로 흐르는 물길을 확실하게 가르면서 이어진다. 앞에 가는 산님들 무리 낙동정맥을 하는 산꾼들인 줄 알았는데, 작은 봉우리에 올라서더니 모두 낙엽 위에 주저앉는다.
우측에 낡은 철조망을 따라 내려선 목쟁이에는 오색 리본이 주렁주렁 달려 있고, 청정리와 논실리를 알리는 낙동정맥 트레일 이정표가 세워져 있다. 가파른 통나무 계단길 따라 올라 낙엽 따라 출렁이는 능선 길, 이슬비 속으로 오르락 내리락 하던 걸음은 잘록한 고개에 내려서고, 황수탕 갈림길을 알리는 이정표를 지난다.
가랑비에 옷 젖는다고 하였던가 삼성산을 지나 오면서부터 부슬부슬 내리던 이슬비가 시간이 지날수록 몸 속으로 축축하게 스며들어 한기를 느끼게 하더니, 안개 자욱한 어림산 오르는 길에서 갑자기 전신에 힘이 빠지며 발걸음이 무겁게만 느껴진다. 이제 겨우 절반쯤 걸은 산행 길이고 보면 아직 갈 길은 먼데, 갑자기 컨디션 난조로 무디어진 발걸음이 힘들어, 다음 마치재에서 산행을 포기하고 싶은 마음이 생긴다.
한발한발 무거운 걸음은 과거에 한 번 다녀간 적이 있는 낙동정맥 어림산(510m)을 알리는 산정에 올라선다. 안개 속에 이슬비 촉촉히 내리는 어림산을 뒤로하고 이어지는 오르락 내리락 능선은 벌목을 하여, 산딸기 나무들이 자란 가시나무 길인데, 나뭇가지에 맺힌 이슬이 아랫도리를 차갑게 적셔온다.
잠시 바위와 낙엽이 뒤엉킨 어설픈 길을 지나니. 다시 벌목 구간으로 접어 들고 마른 잡초와 가시나무에 맺힌 이슬이 차갑다. 새벽에 아침을 먹고 나온 터라 출출해진 뱃속을 달래기 위해 어디 앉아 점심을 먹을 곳을 찾아보지만, 내리는 이슬비 속에 축축히 젖은 낙엽뿐이다.
마치재로 내려오는 빼곡한 소나무 숲 길에 접어드니, 군데군데 마른 낙엽이 보이고, 커다란 소나무 아래 마른 곳을 골라 비를 피해 쭈그리고 앉아 처량하게 점심을 먹은 후 으실으실 한기를 느끼며, 젖은 옷 위에 바람막이를 껴입고 마치재를 향하여 내려선다.
이슬비 속에 촉촉히 젖은 마치재 도로를 건너니, 아침에 삼성산에서 만난 서울 산꾼들은 이 곳 마치재가 종점이라고 하였는데, 버스 주차할 곳이 없어서 인지 주위에 버스는 보이지 않는다. 마치재를 건너, 오후로 접어들면서 다행이 내리던 이슬비도 멈추고, 날씨가 개여 구름 속에 은은한 햇볕이 보일락 말락 하니, 식었던 체온도 올라가는 듯 차츰 몸이 가벼워지는 것을 느끼며, 한발한발 낙엽 비탈길 정성껏 밟아 능선에 올라선다.
황금빛 낙엽 능선에서 다시 바람막이를 벗어 배낭에 넣고 가벼운 차림으로 낙엽 길을 걸으니, 올해는 아직 눈이 내리지 않아 비 맞은 촉촉한 낙엽 길이 곱기만 하다. 하지만 비가 오는 것을 생각을 하지 못하고 낡은 등산화를 신고 왔어, 이슬비에 축축한 낙엽 길을 장시간 걸으니, 양말에 물기가 스며들어 걷는 기분이 영 개운치는 못하다.
황금빛 낙엽 길은 임도에 내려서서 잠시 걷다가 다시 가파른 낙엽 길 밟아 오르니, 리본들이 펄럭이는 남사봉(468m)에 올라선다. 이 곳 남사봉도 과거에 몇 번 올라왔던 곳이지만, 정맥 마루금을 잇는 발걸음이라 기분이 새롭게 느껴진다. 남사봉을 지나 안개 가린 어래산 쪽으로 잠시 가다가 우측으로 휘어지는 길을 따라 가파르게 내려서고, 예비군 훈련 연병장으로 올라오는 도로에 내려선다.
진흙이 신발에 달라붙는 예비군 훈련장 옆을 따라 가니, 조금 전 남사봉으로 올라가던 임도와 능선이 훈련장 건너에 보인다. 등산로를 접어드니 인내산에서 내려오는 길과 만나고, 소나무 숲 속으로 멋진 산책길이 이어진다. 우측으로 조금 전에 걸어온 어림산이 안개 속에 숨어 있고, 오색 리본이 달린 오솔길 따라 진달래 나무가 많은 능선 길, 따뜻한 봄날의 추억을 더듬으며 걷는다.
절개지 양쪽에 잘 단장된 무덤들이 지키고 있는 한무당재에 도착하여, 가파른 절개지를 건넌다. 도로 건너편에도 정성스럽게 잘 단장된 무덤들이 늘어져 있는 것으로 보아 한무당재는 명당자리가 분명한 듯하다. 솔향기 풍기는 능선 길, 낙엽 쌓인 참나무 능선 길 오르락 내리락 황금 비단이 깔린 낙동길은 이어진다. 오색 리본 드리워진 낙엽 융단 길, 다시 활기를 찾은 발걸음은 무료하지 않다.
관산이 점점 가까워지는 것 같더니, 우측으로 멀리 아곡지 골짜기를 상류를 돌아서 간다. 외골재를 돌아가는 무덤 뒤에서 바라본 관산, 멀리서 보면 산의 형태가 신라시대에 관리가 쓰던 관의 모양을 닮았다고 하여 관산 이라고 한단다. 비록 394m 밖에 되지 않는 낮은 산이지만, 주위에서는 견줄 산이 없을 정도로 홀로 우뚝 솟아 있다.
낙엽이 깔린 소나무 숲 속의 작은 봉우리들을 오르락 내리락 하던 걸음은 낙엽 미끄러운 급경사 길, 한발한발 밟아 올라 오색 리본들이 팔랑이는 낙엽 능선 관산에 올라선다. 정상이 거의 수평으로 이루어진 관산 능선을 걸으니, 제일 높은 곳에 무덤 한기 지키고 있는 관산 정상에는 관산(394m)을 알리는 정상석 대신 2개의 안내판과 오색 리본들이 달려있다.
수목이 우거진 관산 정상에는 조망이 별로 없고, 수목 우거진 사이로 도리 마을과 멀리 인내산 모습이 보인다. 가파른 낙엽길 따라 관산을 내려서서 오르락 내리락 하던 능선 길은 임도를 만나 함께 걸으니, 낡은 농장 건물 지대를 지나고 애기재에 내려선다. 시멘트 도로 애기재에서 우측에 달릴 리본들을 따라 올라가니, 리본들이 모여 있는 만불산(275m) 정상에 올라서고, 많은 리본들 중에 우리 고운산정 리본이 눈에 든다.
시설물이 있었던 것처럼 보이는 넓은 만불산 정상에는 방초 우거지고, 비가 오던 날씨가 이제는 완전히 개여 하얀 구름 사이에 파란 하늘 빛이 곱게 드러난다. 길게 늘어진 능선 따라 이어지던 길은 낙엽을 밟고 내려서니, 무덤들이 쉬고 있는 나지막한 언덕배기를 따라 4차선 도로가 가로 막은 아화고개에 내려선다.
잠시 도로 옆을 걸어 지하 터널을 따라 도로를 건너고, 서쪽 하늘이 벌겋게 마지막 빛을 발산하는 시간에 마눌이 마중 나오기로 한 애기지 휴게소 쪽으로 향하니, 한산한 애기지휴게소 옆에서 기다리고 있는 마눌의 차에 돌아와 여장을 풀면서 산행길은 종료된다.
새벽 5시 30분경에 깜깜한 이릿재에서 산행을 시작하여, 약 37.6Km 거리에 11시간 37분이나 소요된 오후 5시가 조금 지난 시간에 경주시 서면 아화고개에 도착하면서 이슬비 속으로 홀로 걸은 무료한 산행길 하나가 종료된다. 애기지휴게소에서 기다리고 있는 마눌의 차를 타고 집으로 돌아와 삼겹살 구워 소주 한 잔 마시면서, 정유년 첫 산행으로 시작한 낙동정맥 10구간 산행길 하나 갈무리해본다.
(2017.01.08 호젓한오솔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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