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동정맥 8구간(피나무재~질고개~통점재~가사령~성법령)
솔길 남현태)
한반도 상공의 열돔 현상으로 유난히 덥다고 하는 올 여름 마지막 불볕 더위가 연일 극성을 부리는 속에 8월도 어느덧 중순으로 접어들고, 금요일과 토요일 연 이틀간 경북 경산군의 기온이 40.3도까지 올라가 기상관측 이래 최고의 기록을 갱신했다고 한다. 토요일 포항의 기온도 사람의 체온을 훨씬 능가하는 39.3도까지 올라가 더위에 지친 사람들이 점차 기력을 잃어가는 듯하다.
지금 브라질 수도에서는 올림픽이 열려 스포츠를 좋아하는 동양인들의 밤잠을 설치게 하고, 무더위와 싸우고 있는 8월의 둘째 주말은 월요일이 광복절과 이어져 3일간의 연휴를 맞이한다. 이번 주에는 지난 주에 이어 낙동정맥 8구간 산행을 가기로 하였는데, 가만히 있어도 숨이 막힐 지경인 날씨에 산행은 엄두가 나지 않았지만, 모두 가자고 설치니 서로 눈치를 보며 어쩔 수 없이 따라 나서는 기분이 든다.
이번 주에 산행하게 될 낙동정맥 8구간은 지난 주에 산행을 마친 경북 청송군 부동면의 주왕산권인 피나무재에서 출발하여 질고개를 건너 포항 지역으로 접어들어, 우리 고향 상옥의 북쪽과 서쪽 능선을 따라 평수밭. 간장재, 바가지등, 통점재, 한바위 갈림길, 고라산, 가사령을 거처 낙동정맥 길에서 조금 벗어나 있는 성법령으로 탈출하는 약 25Km 정도의 부드럽고 완만한 코스라고 해야겠다.
실질적인 한반도의 등줄기라고 할 수 있는 낙동정맥의 한 구간 치고는 이름 있는 명산이 하나도 없지만, 오강지두 팔령지하의 고산 분지인 고향 상옥을 둘러 싸고 있는 해발 700여 미터의 무명 봉우리들을 오르내리는 수목 우거진 시원한 능선을 따라 어릴 적 향수가 고스란히 남아 있는 홈 그라운드 같아서 무더위에도 별 부담 없이 걸을 수 있는 산행이 예상된다.
한낮 더위를 피하기 위해 밤 11시 30분에 당산님의 차로 출발하여, 마지막으로 장성동에서 내가 타고 산행 날머리인 성법령에 도착하여 넓은 주차장 가에 주차하고 잠시 알파인님 차를 기다린다. 오늘 밤잠을 설쳐가며 차량 지원을 나온 알파인님의 차에 모두 옮겨 타고 가면서, 배낭 무게를 줄이기 위해 산행 중에 통과 할 통점재에서 얼음 물병 몇 개씩을 도랑에 묻어 놓고 산행 들머리인 청송군 부동면 피나무재로 향한다.
새벽 2시경에 피나무재에 도착하여 차량 지원으로 수고해주신 알파인님을 돌려 보내고, 피나무재 가로등 아래 둘러 앉아 햄버거와 과일로 간단하게 아침을 먹은 후 각자 배낭을 꾸리고, 새벽 2시 12분경에 어둠 속으로 절개지에 둘러진 철망 울타리의 개구멍을 찾아 가파른 비탈을 기어오르면서 제 8차 낙동정맥 길은 시작된다.
절개지 오르막 길을 오르니, 몹시 무더울 것으로 생각했는데, 예상외로 바람이 시원하게 불어주는 능선 길은 작은 임도에 내려서고 임도삼거리에 이정표가 있는 곳에서 '부남화장'을 알리는 방향으로 이정표 뒤쪽에 리본이 달린 등산로가 희미하게 보인다. 다시 임도를 만나면 건너고 오르락 내리락 이어지던 걸음은 주렁주렁 리본이 달린 봉우리에 올라선다.
낙동정맥 622.7봉 임을 알리는 준.희님의 팻말이 달린 이 곳이 GPS상으로 '평두산'이라고 한다. 평두산 정상에서 아이스크림을 나누어 먹으며 잠시 휴식을 취하고, 어둠 속으로 희미한 길을 찾아 능선을 더듬거리던 걸음은 마주 오던 한 무리의 산님들을 만나고 보니, J3클럽 포항지부 멤버들이다. 반갑게 인사를 나누고 기념 사진을 찍은 후 헤어진다.
이어지는 오르락 내리락 하던 능선 길, 질고개가 가까워지는 주 능선 고개에서 좌측으로 휘어져 내려가는 길을 놓치고 건너 산 봉우리로 직진하여, 정상에 커다란 무덤이 있는 무명 봉우리에서 우측으로 가다 보니 길이 희미해진다. 다시 돌아 나와 좌측 다른 길로 가다 보니 또 길이 없어지고 하여 두 번이나 알바를 하고도 길을 찾지 못하고 마치 귀신에 홀린 듯 어둠 속에서 왔다 갔다 하는 동안 시간을 자꾸 흘러 날이 서서히 밝아오기 시작한다.
사방이 어두운 산상에서 지도를 펼치고 트랭글 지도와 비교를 해 보니, 갈림 길을 지나 온 것 같아 오던 길로 돌아 나오다가 목쟁이에서 우측에 내려가는 정맥 갈림 길을 발견하였는데, 그 흔하던 리본들은 다 어디로 가고, 작은 리본 하나가 매달려 달랑거리고 있다. 더위를 피하려고 일부러 일찍 출발한 귀중한 시간을 한 시간 가까이 체력과 함께 낭비를 하고 나니 무척 아까운 마음이 든다.
결국 알바를 한 관계로 날이 훤하게 밝은 시간에 질고개에 내려선다. 질고개 길가에 앉아 과일을 나누어 먹으며 잠시 휴식을 취한 후 질고개 건너 과수원 사이 길을 따라 오른다. 산불감시 초소가 있는 봉우리에 올라서고 산불감시 초소에서 바라본 은은히 밝아오는 좌측 내룡리 쪽 풍경은 뿌연 운무에 부시시 잠을 깬 듯하고, 이어지는 부드러운 능선 길은 새벽 바람이 시원하게 불어준다.
해발 육백여 미터의 봉우리들을 오르내리던 낙동정맥 마루금은 고도를 조금 더 높여 포항시 경계 능선과 만나 동행을 한다. 새벽에 질고개 건너에서 알바를 할 때 산천을 울리는 굉음소리가 그치지 않더니, 건너와서 보니 산악 오토바이를 타고 다니며 마루금 길을 도랑처럼 마구 헤집어 놓아 먼지가 폴폴 날린다.
시원한 바람이 불어주는 녹음 짙은 마루금 길 기온이 오르기 전에 조금이라도 더 가기 위해 걸음을 서두른다. 망할 놈의 자식들 오토바이를 타려면 길이 좋은 데서 얌전하게 타지 한 밤중에 산속으로 들어와 산짐승들 놀라게 엔진 굉음을 울려가며 무슨 지랄들을 했는지 길을 마구잡이로 헤집어 놓았다. 산악오토바이가 헤집어 놓은 등산로는 골이 깊이 패이고 먼지가 폴폴 날리며 마치 미끄럼틀처럼 되어 있으니, 이런 상태에서 강한 비가 내리면 길이 패이고 산사태가 나서 자연이 많이 훼손 될 듯하다.
인간사 그렇듯이 가파른 길 내려서면 다시 오르막 길 이어지고, 옛날 화전민들이 살았다던 상옥을 둘러 싼 칠전 중에 한 곳인 산상평원 평수밭을 지난다. 이어지는 시원한 평원 마루금 길은 낙동정맥 785.0m 이정표가 달린 봉우리에 올라서서 기념사진 찍어주고 찍혀보고, 이어지는 발걸음은 잠시 후에 오늘의 최고봉인 유리산(805m)에 올라선다.
이 곳이 왜 유리산 인지는 몰라도 비닐 코팅된 유리산 이라는 패찰이 몇 개 달려 있고 GPS 트랙에도 유리산 이라고 알린다. 상옥에서 나고 자랐지만, 이 곳이 유리산이란 이야기는 한 번도 들어보지 못했으며, 이 일대가 옛날 화전민들이 살던 칠전 중에 하나인 '평수밭'이라고 들어 알고 있었는데, 어느 날 갑자기 모두가 유리산이라고 한다. 이러면 어떻고 저러면 어떠리 모두가 우리 인간이 대자연에게 붙여준 하찮은 이름인 것을 하여간 무명봉 보다는 이름이 있는 산이 더 좋아 보이기는 하다. 생소한 유리산 정상에서 기념사진을 찍고 이어지는 발걸음은 간장현으로 향한다.
포항시 죽장면 상옥에서 청송군 부남면 간장리로 넘나들던 이곳 간장현은 어릴 적에는 간저이재 라고 불렀으며, 고개 넘어 청송군 이현리에 살고 있는 고모네 집에 가기 위해 자주 넘던 곳이고 자라서는 뚱거리 나뭇짐 지고 힘겹게 넘어 다니던 곳이다. 옛날 재넘어 '감배창골 안막창'까지 가서 나뭇짐 지고 오면서 힘에 겨워 쉬어 넘던 간저이재는 우거진 수목 아래 해마다 낙엽은 겹겹이 덮여가고 낙동정맥 간장현임을 알리는 팻말과 오가는 산님들이 달아놓은 오색 리본만 주렁주렁 열려있다.
통점재 1.6Km 남았음을 알리는 간장현의 이정표 아래서 잠시 배낭을 풀고 간식을 먹으며 쉬어간다. 간장현에서 잠시 가파른 길 치고 오르면 다시 평온한 능선 길은 이어지고, 낙동정맥 길을 모르는 사람이 잘 못 설치를 하여, 통점재 쪽에서 오는 사람들이 알바를 하기 딱 좋게 황장재, 주왕산 방향을 '사기정골 개골창'으로 떨어지는 길로 잘 못 가리키며 뻔뻔하게 서 있는 엉뚱한 이정표를 지나, 잠시 가파른 길 치고 올라 고향의 뒷동산 바가지등에 오른다.
고향의 각시원추리 길 가에 다문다문 피어 있는 각시들의 모습 사진에 담아보고, 이정표 외로운 호젓한 바가지등(703m)에 올라선다. 옛날 나뭇짐 받쳐두고 쉬어가던 바가지등 정상에서 잠시 호흡 가다듬고, 예쁜 각시 원추리 담아가며 송기 꺾어먹던 애기소나무들이 낙락장송이 되어 있는 가파른 추억의 옛길 따라 통점재 절개지를 내려선다. 새벽에 숨겨두었던 얼음 물병을 찾아서 통점재 도로를 건넌다.
통점재는 경상북도 청송군의 부남면 중기리와 포항시 죽장면 상옥리 사이에 있는 고개이다. 68번 지방도가 이 고개를 통과하고 있다. 조선지지자료에 '부남면 통점현'으로 기록되어 있다. 고개 아래에 통점주막이 있었다는 기록도 있는데 중기리 통점마을에 있었을 것으로 보인다. 고개 명칭은 이 주막에서 비롯되었을 것으로 여겨진다. 해동지도(청송)에 부남면에서 유현을 거쳐 죽장(당시는 경주부 관할)으로 가는 길 오른쪽에 역시 죽장으로 가는 길이 표현되어 있는데, 이 길이 통점재를 넘어가는 길로 보인다. 하지만 이 길은 주요 교통로는 아니었다. 그래서 대부분의 옛 지도에 통점재가 표시되어 있지 않다.
각자 숨겨두었던 얼음 물병을 담은 봉지를 들고 통점재를 건너 바람 시원한 그늘을 찾아 잠시 쉬어간다. 길가에 운지버섯 모양이 이뻐서 사진에 담아보고, 잠시 가파른 길 따라 '무시랍등'을 오른다. 이어지는 고향의 서산 능선을 가르는 시원한 오솔길로 접어들었지만, 수목이 우거져 좌측 발아래 고향 마을은 전혀 보이지 않는다. 776봉 아래 위치한 외증조부.모 산소 앞에서 배낭을 풀고 잠시 인사를 올리고 간다.
산소 뒤로 잠시 가파른 길 올라가다가 유일하게 고향 집이 보이는 전망바위에 올라갔지만, 거기에도 녹음이 우거져 고향집이 겨우 보일 뿐 마을을 바라보는 조망은 꽝이다. 녹음 짙은 가파른 길 치고 올라 고향의 서쪽 산 능선 중에 제일 높은 776.1봉에 올라선다. 시 경계구간을 알리는 포항시 산악 구조대 안내판이 걸려 있는 776봉 삼거리에 도착하여, 여기서 잠시 낙동 길을 벗어나면 멋진 한바위가 있지만, 오늘은 날이 더워지기 전에 산행을 마치기 위해 한바위 산행은 포기하고 그냥 지나간다.
오색 리본이 펄럭이는 776봉을 뒤로하고, 가사령으로 이어지는 능선 길은 시원한 녹색 바람이 불어주는 평탄한 길 룰루랄라다. 평탄하던 길이 잠시 가파르게 고라산 삼거리로 오르는 길에서, 돌아보니 멀리 오늘 가지 못한 한바위가 보인다.
살짝 당겨본 한바위의 위용은 언재나 당당한 모습 그대로 이다. 팔공기맥과 보현기맥의 분기점인 고라산 삼거리에 도착하여, 기맥 분기점을 알리는 안내판과 주렁주렁 달린 산님들의 발자취 앞에서 기념사진 찍혀보고 잠시 쉬어간다.
가사령까지 이어지는 내리막 길은 시원한 소나무 숲 길이다. 그런데 울창한 소나무 숲을 빡빡 밀어내어 민둥산이 된 곳이 있어 자세히 보니 어린 호두나무를 심어 놓았다. 조망이 시원하게 틔어 발아래 가사령과 멀리 성법령까지 이어지는 마루금과 좌측으로 괘령산과 내연지맥 풍경이 시원스럽게 펼쳐진다. 햇볕 따가운 길 따라 아래로 내려오니 죽장면 가사리에서 호두나무 농장을 일구었다고 한다. 호두나무 농장도 좋지만 죽어간 울창했던 송림이 아깝다는 생각이 든다. 발걸음은 고향 상옥에서 죽장면 가사리로 넘어가는 고개 가사령에 내려선다.
가사령은 경상북도 포항시의 북구 죽장면 가사리에서 상옥리로 넘어가는 고개다. 서남쪽은 낙동강에 합류되는 금호강의 최상류 발원지 중의 하나이며, 동북쪽은 영덕군의 영덕읍을 거쳐 동해로 흘러들어가는 오십천의 최상류이다. 가사령은 순우리말 이름인 가사재에 대해 한자의 소리와 뜻을 따서 표기한 것이다. 조선지도(경주)에는 법수현으로 나오는데, 대동여지도에도 동일하게 기록되어 있지만 위치가 잘못 표시되어 있다. 가사재가 왜 법수현이라는 한자로 표기되었는지는 아직 분명하게 파악하기 어렵다. 고개 서남쪽의 마을 이름도 가사리로 불린다. 가사리는 순우리말 이름인 가시내에 대해 한자의 발음을 따고 내를 생략하여 표기한 것이다. 호구총수(경주)의 죽장면에 가사천리가 표기되어 있는데, 가시내에 대해 한자의 소리와 뜻을 따서 모두 표기한 이름이다.
바람 시원하게 불어오는 가사령 길가 그늘에서 잠시 휴식을 취하고, 마지막 성법령으로 향하는 좌측에 벌목을 한 사이로 상옥 1리 마을과 괘령산 풍경을 건너다 보며, 가파르게 치고 오르는 능선 길은 시원한 녹음 속으로 오르락 내리락 하면서 진을 빼더니, 오늘의 마지막 봉우리이고 내연지맥, 비학지맥 분기점인 709.1봉에 도착한다. 다음에 이어갈 낙동정맥 709.1봉을 뒤로하고 내연지맥을 따라 자동차가 기다리는 성법령으로 내려간다.
잠시 내리막 숲 길을 걸어 철망을 좌측으로 우회하여 성법령 도로에 내려서고 주차되어 있는 성법령에 도착하면서 오늘 산행길은 종료된다. 성법령에 설치된 낙동정맥 이정표에는 아직 8.7Km 남은 다음 구간 배실재가 낙동정맥의 중간 지점이고 보면, 거리상으로는 아직 절반도 못 걸은 샘이다.
성법령은 경상북도 포항시의 북구 기북면 성법리에서죽장면 상옥리로 넘어가는 고개이다. 순우리말 이름인 생알재에 대해 한자의 뜻과 소리를 따서 표기한 것이 현재 한자 발음으로 읽히고 있다. 고개 아래의 마을 이름도 생알 또는 생알재에 대한 한자 표기인 성법리라 불리고 있다. 조선지도(경주)에 성법치로 표기되어 있다.
새벽 2시 12분경에 청송군 부동면 피나무재에서 산행을 시작하여 알바를 포함한 약 26.5Km 거리에 11시간 19분 이나 소요된 산행을 마치고 성법령에 도착하면서 산행길은 종료된다. 자동차 여러 대 주차되어 있는 성법령에는 시원한 바람이 불고, 쉼터 정자와 벤치에는 피서를 나온 사람들이 여기저기 누워 자면서 혹독한 무더위를 피하고 있다.
정자와 벤치를 둘러 보았지만 어디 한군데 빈 자리가 없어 주차장 옆 나무 그늘에 여장을 풀고, 하루 종일 지고 다니다 배낭에 남아 있는 얼음 물로 간단하게 머리 감고 세수를 하니, 고향 상옥에서 불어오는 바람 끝이 참으로 시원하게 느껴진다.
돌아오는 길에 기북면에 들러서, 오후 2시가 조금 지난 시간에 삼겹살과 물냉면을 시켜놓고 소맥으로 하산주를 마시면서 점심 겸 저녁을 먹고 나니 졸음이 몰려들기 시작한다. 느긋하게 하산주를 나누고 포항으로 돌아오는 길은 음주를 하지 않은 민트님이 졸리는 눈으로 대리 운전을 하여 모두 장성동까지 와서 나를 먼저 내려주고 돌아간다. 숨이 막히는 무더운 여름 날 아련한 옛 추억을 더듬으며, 고향 산천 마루금을 걸어본 낙동정맥 8구간 산행 길을 성공리에 갈무리해본다.
(2016.08.14 호젓한오솔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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