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운산정 금남정맥 1구간 (모래재~피암목재)
솔길 남현태
작년 10월에 처음으로 백두대간 종주를 마치고 나니, 목적 산행에 재미가 붙게 되었는지 9정맥 종주팀을 찾다가, 고운산정 산악회에서 작년에 호남정맥 종주를 성공리에 마치고, 이어 병신년 1월에 금남, 금강정맥을 시작하여 12월에 완주를 목표로 종주 대원을 모집한다고 하여, 대원으로 신청을 하고 발대식에 참여했는데, 본의 아니게 처음 참여한 낯선 자리에서 막중한 부대표직을 맡게 되어 무한한 책임감을 느끼게 한다.
포항의 고운산정 산악회는 정회원, 일반회원의 신분 제도가 없이 포항, 경주 지방의 뜻이 있는 산꾼 중에 산꾼들이 모여, 1대간 9정맥과 지맥의 마루금을 어어 가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포항 유일의 산악회다. 산악회 임원도 회장, 부회장이 아닌, 대표, 부대표, 기획이사, 제무이사 등 산행을 프로젝트 경영 체제로 박진감 있게 구축해놓았으며, 무엇 보다 같은 목적으로 뜻을 모은 산님들이기에 단합이 잘 되고, 서로 양보하고 배려하는 마음이 충만한 소수 정예부대 라는 생각이 든다.
동해안인 포항에 살면서 포항을 가로 지르는 낙동정맥을 먼저 하고 타 지역의 정맥 길을 찾아야 하는 것이 순서이겠으나, 그 동안 거의 걸어본 길이 많고 언제든지 마음만 먹으면 쉽게 이을 수 있는 낙동정맥은 잠시 뒤로 미루고, 지리적으로 멀리 떨어져 있는 정맥 길부터 순서를 가리지 않고 하나씩 차근차근 종주를 해 보리라는 생각을 하면서, 병신년 한해 동안 고운산정 산우들과 함께 이어갈 금남정맥과 금강정맥에 대한 설명을 산행 안내문에서 발췌해본다.
"금남정맥 (산경표의 금남정맥)
금남정맥은 한반도 13정맥의 하나로 전북 장수군 백두대간 영취산에서 시작된 금남호남정맥이 끝나는 진안의 주화산(565m)에서 북서로 뻗어 왕사봉·대둔산을 지나 계룡산에 이르고, 계룡산에서 다시 서쪽으로 뻗어 부여의 부소산 조룡대까지 약 118km에 이르는 산줄기의 옛 이름이다.
조선시대 우리 조상들이 인식하던 산줄기는 하나의 대간과 하나의 정간, 그리고 13개의 정맥으로 나누어져 있으며, 10대강의 유역을 가름하는 분수령들을 기본정맥으로 삼고 있어 대부분의 그 이름이 강 이름과 관련되어 있다.
이에 따라 산줄기가 금강의 남서쪽을 지나므로 금남정맥이라 하였다.
금남정맥은 금강 상류 유역과 만경강 유역을 구분 짓는 산줄기 이다. 동사면을 따라 흐르는 물은 금강 상류를 이루며, 서사면을 따라 흐르는 물은 만경강을 이루고 일부는 금강 하류로 흘러 든다. 이 산줄기가 시작되는 주화산에서 남쪽으로 연결되는 호남정맥과 함께 전북의 동쪽 산간지방과 서쪽 해안의 호남평야를 경계 짓고 있다."
"금강정맥 (실질적인 금남정맥, 대동금남정맥)
금강정맥은 대동여지도를 따르는 금남정맥을 말한다. 산세가 금남정맥에 비해 미미하고, 미륵산과 함라산 사이는 거의 평지로 되어 있어 정맥의 이름을 갖지 못했다. 그러나, 길이가 금남정맥보다 길고, 종점이 금강 하구인 점을 들어 실질적인 금남정맥 또는 ‘금강정맥’이라 부르기도 한다.
옛 백제의 숨결이 오롯이 남은 전주 익산 땅을 크게 휘감으며 지나는 이 산줄기는 군산의 점방산까지 120Km를 넘는다. 시작은 ‘산경표의 금남정맥’과 노선이 달라지는 일명 금만봉, 전북 완주군 동상면과 운주면, 진안군 주천면의 경계에 있는750봉부터다."
"금강과 만경강을 가르는 금강정맥 (실질적인 금남정맥) 종주
산경표가 가리키는 금남정맥은 진안 주화산에서 시작해 부여의 부소산에서 백마강을 만나며 그 맥을 다한다. 이는 정맥은 강의 울타리 라는 물 가름의 원칙으로 볼 때 금강의 온전한 남쪽 울타리를 이루지 못하는 산줄기로 오류다 라는 논란이 오래 전부터 있어 왔다. 산경표의 원리에 충실하자면 금남정맥은 군산으로 산줄기를 이어가는 대동여지도에 나타난 것처럼 운장산 지나 왕사봉에서 불명산 남당산을 거쳐 까치봉 천호산 미륵산으로 이어져야 합당하다는 것이다.
현재 대부분 금남정맥 종주산행을 산경표를 따라 나서고 있다.
산경표에 나타난 금남정맥 산줄기가 그 흐름이나 산세로 볼 때 당당하고 멋지고 걷는 재미가 좋다. 허나 ‘물 가름’의 원리를 두 눈으로 확인하며 걸어가는 대동여지도의 금남정맥은 그 와는 다른 감격을 건넨다. 산세는 낮아도 금강과 만경강을 끝까지, 뚜렷하게 가르며 이어지는 산줄기 본연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불명산, 화암사와 미륵산성, 미륵사지, 함라마을돌담길, 금강과 하구둑 등 찐한 볼거리도 많다."
금남정맥의 1구간인 이번 첫 산행은 시산제를 겸한 산행이라 산악회 버스가 새벽 5시에 포항시 남구 종합 운동장을 출발하여 5시 15분경에 연하재에를 경유한다고 한다. 대간을 하면서 새벽에 태워다 주고 저녁에 마중을 나오는 마눌이 잠을 설치는 것이 산행을 가는 내 보다 더 힘이 드는 것 같아 이 번에는 내가 차를 가지고 가겠다고 하였더니, 돌아올 때 음주 운전이 염려되는지 또 태워주겠다고 한다. 저녁을 먹고 나니 재무이사님의 문자가 들어와 있는데, 지나 가는 길목이라며 아침에 본인 차로 같이 타고 가자고 하여 약속 장소를 정하고 고마운 마음을 전한다.
개인적으로 이번 산행에 또 하나의 모험은 수십 년 동안 진저리 나게 마시던 멀미 약에서 탈출하는 것이다. 멀미 약 없이는 가까운 경주까지도 차를 타고 가기 어려울 정도로 멀미가 심하여, 산행시 새벽에 일어나 늘 찡그리며 억지로 신경을 죽이는 멀미 약을 마셔야 했는데, 지난 12월에 중국 여행을 가면서 준비해 간 멀미 약을 마시지 않고 끝까지 견디었더니, 이제 슬슬 자신이 생기는 것 같아 멀미 약에서 졸업을 해 보기로 한다.
아침 4시에 알람을 맞추고 일어나 산행준비를 하고 가다가 아침을 준다고 하였지만, 집을 나설 땐 곡 배를 채우고 나가야 하는 것이 습관이다 보니 간단하게 아침을 먹은 후 대체로 먼 거리인 오늘은 늘 마시던 멀미 약을 마시지 않고 혹시나 싶어 배낭에 한 병 챙겨 넣으니, 마눌은 걱정이 되는지 오늘은 그냥 마시고 가지 하더니, 만약에 있을 불상사에 대비하여 검정 비닐 봉지를 챙겨준다.
새벽 5시에 약속된 장소에 나가서 잠시 기다려 도착한 재무이사님의 차를 타고 가다가 나루 끝에서 뜸달님을 태우고 연하재에 도착한다. 예정 된 5시 15분경에 도착하는 버스에 오르니, 오늘 금남,금강정맥 종주에 참여한 대원이 26명이라고 한다. 고속도로를 달리는 도중에 함양 휴게소에 전화하여, 사전에 카페에서 개인 취향 별로 조사한 여러 가지 아침 메뉴로 버스 도착 시간에 맞추어 먹을 수 있도록 주문을 하는 기획이사님의 섬세한 배려 덕분에 짧은 시간에 모두가 자기 취향에 맞는 아침을 맛있게 먹을 수 있었다. 아침 8시 40분경에 전북 진안군에 위치한 모래재 휴게소 앞에 도착하여 시산제 준비를 한다.
모래재는 전북 진안군 부귀면 세동리와 전북 완주군 소양면을 연결하는 465m 고개이며, 호남정맥에 해당한다. 모사골에 있다 해서 모사를 모새(모래)로 발음하여 붙여진 이름이며, 모사골(모새골)은 모래재 왼편에 있는 완주군 소양면 신촌리의 골짜기이다.
금남정맥의 출발지인 모화산을 향하여 모두의 정성을 담은 제사 상이 차려지고. 산악회 대표(회장)이신 태관님의 주제로 하여 시산제를 올린다. 주제자가 분향 하고 신을 모시는 강신과 제주와 모든 참가자가 두 번 절을 올리는 참신. 주제자이신 대표님의 초헌, 삼거리님의 독축에 이은 아헌은 부대표인 오솔길이 잔을 올리고, 종헌은 총 산행대장인 흑표님이 잔을 올린다.
각 산악회 대표님들 잔을 올리고, 우리 백두대간 동지들도 성심을 다하여 잔을 치고 재배를 올린다. 올 한해 동안 금남, 금강정맥 길 무사 완주를 기원하면서, 정성껏 시산제를 올린 후 막걸리 몇 잔씩 복주를 나눈 후 음복은 뒤로 미루고 모래재 휴게소 앞에 모여서 단체 사진을 찍는다.
출발선에 선 민트님, 호젓한오솔길, 알파인님, 당산님, 흑표 대장님, 기념 사진을 찍은 후 아침 9시 40분경에 이곳 모래재에서 금남정맥의 첫 발걸음이 활기차게 시작된다. 자동차가 별로 다니지 않는 모래재 도로를 무단 횡단하여, 전주공원 묘지 길을 따라 약 1Km 정도 걸어서 주화산 입구 고개에 도착하니, 시산제를 지내며 기다리느라 추워서 웅크렸던 몸이 서서히 달아 오르기 시작한다.
잠시 걸음을 멈추고 상의를 벗어 배낭에 챙겨 넣고, 등산로로 접어들어 잠시 오르막길 치고 오르니. 금호남정맥에서 호남정맥과 금남정맥으로 갈라지는 분기점인 주화산에 오르니, 걸어온 약 1.3Km는 접속 구간이고 지금부터가 금남정맥의 시작이 되는 샘이다.
주화산(563.5m)은 전북 진안군 부귀면 세동리와 완주군 소양면 신원리에 걸쳐 있는 산으로 예전에는 이름이 없었으나 2000년대 이후 산악인들이 산경표에 등장하는 주화산으로 해석하고 팻말을 세웠다. 산악인들은 이 주화산을 백두대간의 영취산에서 시작한 금호남 정맥의 마지막 지점으로 상정하고, 이를 기점으로 북쪽으로 금남정맥, 남쪽으로 호남정맥의 기점으로 삼고 있다. 이 부근을 기점으로 금강(정자천), 섬진강(부귀천), 만경강(완주군 소양면 소양천) 등 3개의 강으로 수계가 나누어진다.
낙엽 위에 깔린 하얀 눈을 밟으며 시작되는 금남정맥의 첫 발걸음은 빼곡한 참나무 숲 사이 길 따라 오르락 내리락 정겹게 이어지다가 미끄러운 발걸음이 고도를 팍 낮춘다. 잠시 고도를 낮추며 이어지는 능선은 가파른 낙엽 눈길 미끄러지면서 치고 오르니, 방초 우거진 허름한 산정에 이르고 금남정맥의 입봉(637.4m)임을 알리는 준.희 님의 팻말이 걸려있다.
입봉(637m)은 전북 완주군의 소양면 신월리와 진안군 부귀면 궁항리의 경계를 이루는 산으로 산의 서쪽은 소양천의 상류이며 만경강 수계이고 동쪽은 금강 수계에 속한다. 지명은 산 모양이 삿갓 모양이어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오늘 산행의 첫 번째 알바 위험 구간이라고 산행대장님이 이야기하던 입봉에서 대원들이 올 때까지 잠시 기다릴까 하다가 뒤에 오는 알파인님에게 손짓을 하고 좌측 내리막길로 접어든다. 낙엽 위에 눈이 붙은 입봉 내리막 길은 미끄럽기가 장난이 아니라 자세를 팍 낮춘 종종 걸음으로 달려 내려간다. 이어지는 낙엽과 눈 덮인 능선 길은 고도를 서서히 낮추면서 중앙 분리대가 높은 4차선 도로가 앞을 막은 보룡고개에 도착한다.
보룡고개(405m)는 전북 진안군 부귀면 봉암리와 전북 완주군 소양면 신월리를 연결하는 고개로 전주 지역과 진안지역 사이에 가장 많은 물동량을 보여주는 고개다. 보룡 고개 바로 아래 소태정 마을이 있어서 소태정 고개, 소태정재로도 부른다. 보룡 고개는 풍수적으로 구룡농주에 해당한다. 아홉 마리 용이 여의주를 가지고 논다는 뜻에서 명칭이 유래되었다.
중앙 분리대가 있는 보룡고개 4차선 도로를 무단 횡단하여, 입구에 시멘트 포장된 임도를 따라 올라 혼자 무작정 가다가는 알바를 할 것 같아 잠시 기다리니, 건너 산에서 내려오는 대원들의 모습이 보이고, 이어서 4차선 도로를 아슬아슬 하게 무단 횡단을 하여 온다.
잠시 임도를 따라 걷다가 우측으로 희미한 등산로를 따라 잠시 가파른 길 치고 오르면, 고슴도치 등처럼 빼곡한 참나무 숲 사이로 이어지는 능선 길을 솔솔 거리며 걷는 발걸음은 여느 산행 길과 다를 바 없어 보인다. 오르락 내리락 낙엽 위에 눈 덮인 오솔길. 소나무가 없는 곳에선 독야 청청 산죽길을 신나게 달려 나가다 보니, 고개를 푹 수그린 낙엽 길이 건너 산이 빤히 바라 보이는 곳에서 황새목재를 향하여 곤두박질 친다.
황새목재는 전북 진안군 부귀면 궁항리와 완주군 동상면 사봉리를 연결하는 고개로 과거 진안 지역에서 서울로 가기 위해 넘었던 길이다. 망경강과 금강을 가르는 금남정맥에 있는 황새목재는 주변 산들과 대체로 200m 차이가 나는 안부이며, 남북으로 흐르는 능선을 동서로 가른다. 명칭의 유래는 황새 목처럼 길어서 명명되었다고 전한다.
황새목재에서 바라본 우측 진안군 부귀면 쪽 풍경은 운무에 아련하고, 걸어 온 산길엔 하얀 눈이 덮인 음지 비탈에 대원들의 모습이 보이지 않아 혹시 내가 알바를 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싶어, 애구 저기까지 다시 돌아 올라 가야 하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하면서 배낭을 풀고 폰을 꺼내 볼까 하다가 잠시 그냥 기다려 보기로 한다. 잠시 후 산마루에 그림자가 오락가락 하더니, 이어 마을 농가에서 개 짖는 소리가 요란스럽게 들린다.
대원들이 따라오는 것을 확인하고 다시 걸음을 재촉하여 황새목으로 내려온 만큼의 비탈길을 오른다. 능선에 올라서니 누군가가 바랑산 이라는 안내판을 걸어놓았다. 해발 675m의 여느 야산 같은 봉우리에 올라서고, 고만고만 한 봉우리들이 이어지는 능선 길, 점심 시간이 지난 듯 하여, 가다가 대나무 숲이 있는 봉우리 너머에 판판하고 바람이 불지 않는 포근한 낙엽 위에 앉아서 혼자 도시락을 펼치고 대원들을 기다리며 점심을 먹는데, 잠시 후 싸락눈이 내리기 시작하고 4명의 선두 팀이 도착하여 같이 점심을 먹고 출발한다.
점심을 먹고 나서 4사람을 앞에 보내고 선두팀 뒤에 붙어서 사진을 찍으면서 따라 가기로 한다. 낙엽 위에 남은 잔설 위에 오늘 다시 눈이 내리니 낙엽 길이 미끄러워 비탈 길에서 사진 한 장 찍고 나면 앞서 가던 일행들은 흔적 없이 사라진다. 내리는 눈 속에 우뚝 솟은 봉우리가 820 봉우리 인 듯한데, 눈 맞은 안경은 입김이 서려 눈 앞이 우중충 해지고 바위 벼랑길 오르면서 사진을 찍으려니, 두꺼운 장갑은 껴서 그런지 카메라가 젖어서 그런지 카메라가 말을 잘 안 들어 몇 번을 실패를 하고 시간만 낭비 하니 슬슬 짜증이 나기 시작한다.
바위 봉우리에 올라 돌아보니 사방이 내리는 눈으로 조망이 제로에 가깝다. 산죽 어우러진 봉우리와 멋진 바위와 소나무가 어우러진 봉우리들 내리는 눈으로 사방의 조망이 흐린 것이 조금은 아쉬운 마음이 든다. 파란 산죽에 하얀 눈이 쌓이기 시작하는 길, 키가 큰 산죽 사이로는 빠져 나가기가 성실겁은 길 따라 흰 눈이 펑펑 내리는 연석산 정상에 도착한다.
연석산(927m)은 전북 완주군 동산면과 진안군 부귀면, 정천면에 걸쳐 있는 산으로 완주군 동상면 쪽의 사봉천, 고상천은 만경강 수계이고, 진안군 정천면, 부귀면 쪽의 정자천, 주자천은 금강 수계이다. 산에서 벼루를 만드는 돌이 많이 난다고 해서 연석산 지명이 유래되었다.
삐딱한 이정표에 눈이 쌓여가는 연석산 정상에서 모두 아이젠을 착용하고, 연동마을로 내려가는 하얀 산죽 길이 유혹을 하고 있지만, 오늘은 우측 만항재 쪽으로 향한다. 눈 덮인 미끄러운 바위 길 따라 만항재로 내려서는 길 내리는 눈으로 안경이 젖으니 앞이 잘 보이지 않는다. 바위와 노송이 어우러진 아름다운 길에서는 걸음을 멈추고 사진을 찍어가면서 조심조심 옮긴 발걸음은 폭 꺼진 만항재에 도착한다.
만항재의 이정표를 지나 가파른 길 올라서니, 바위 전망대에 어우러져 활갯짓 하는 아름다운 노송은 싸늘한 눈보라를 온 몸으로 받아들이며 하얀 분단장을 하고 있다. 바위와 노송이 산수화를 그리는 아름다운 길 따라 사진을 찍어가며 서두른 발걸음은 하얗게 덮여가는 눈 길을 달려 가다가 마지막 운장산을 남긴 산죽 오솔길에서 앞서가던 선두팀 대원들이 막걸리 마시며 잠시 쉬어가자고 한다.
잠시 하얗게 분칠을 한 예쁜 산죽 길 지나서 이어지는 운장산 바위 길은 눈을 뿌려 미끄럽고, 매달린 로프도 눈이 얼어붙어 미끄럽게 느껴지는 눈 쌓인 오르막에서 갑자기 몸의 컨디션이 난조를 보이기 시작한다. 안경에 습기가 차서 앞이 잘 보이지 않아 더듬거리고 있는데, 바위 길에서 갑자기 허벅지에 경련이 일어나기 시작하여, 한 발을 잘 못 옮기면 쥐 내림으로 그 자리에 퍽 주저앉을 것 같은 느낌이 들어 앙탈을 부리는 허벅지를 살살 달래고 주물러가며 살금살금 기어가듯 올라간다.
앙상한 가지는 하얀 눈꽃을 피우기 시작하고, 로프가 매어진 오르막 길은 허벅지 통증을 달래며 한발 한발 더듬어 올라가다 보니, 산행 속가 많이 지체되는 듯하여 답답한 느낌이 든다. 작년 10월에 대간 종주를 마친 후로는 약 3개월 동안 산행다운 산행은 한 번 하지 않은 체 년 말 연시에 주지육림에 빠져 흥청거리며 자만하는 사이 자신도 모르게 서서히 몸은 망가져 간다는 자책을 하면서, 어렵게 마지막 봉우리 운장산 서봉 칠성대에 도착하니 3명의 선두팀이 먼저 올라와 있다.
운장산(1,126m)은 전북 진안군 주천면, 정천면, 부귀면의 경계에 있는 산으로 금강과 만경강의 분수령을 이루며, 정상에는 상봉, 동봉, 서봉의 3개의 봉우리가 거의 비슷한 높이로 있다. 서봉은 일명 독재봉이라고도 하며 큰 암봉으로 되어 있고, 서봉 아래 오성대가 있으며, 부근에 북두칠성의 전설이 담겨 있는 칠성대가 있다. 산 이름은 산중 오성대에서 은거하던 조선 중종때의 성리학자 운장 송익필의 이름에서 유래하였다고 전해지며, 19세기 중엽 까지는 주술산으로 불렀다.
하얗게 눈이 쌓여가는 운장산 칠성대에 올라서 산이좋아님 덕분에 기념 사진을 찍혀보고, 운장산 서봉 삼거리에 내려서니, 서봉 삼거리의 이정표에는 운장산까지 거리가 0.6Km 임을 알려준다. 오늘 예상 외로 눈이 많이 내리고 시야가 흐려 사방이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는 금남정맥에서 벗어나 있는 운장산까지 갔다 오는 것은 별 의미가 없다고 판단하여, 이곳 서봉 삼거리에서 금남정맥을 따라 피암목재로 하산을 하기로 한다. 알파인님이 오기를 잠시 기다렸다가 오늘의 종점 피암목재에 있는 동성휴게소 쪽으로 하산을 시작한다.
운장산에서 내려서는 비탈 길은 다져진 눈 위에 다시 눈을 뿌리니 미끄럽기가 장난이 아니다. 아이젠을 신어도 그냥 미끄러지는 느낌이다. 눈꽃이 피어나는 산죽 길 따라 가다가 앞을 보고 내빼기만 하는 선두팀에게 사진을 한 장 찍고 가자며 잠시 멈추라고 하니, 몰골이 말이 아닌데 찍으면 뭐하노 하면서 하얀 산죽길에서 잠시 포즈를 취해보는 오늘의 선두팀, 사진을 한 장 찍고는 하얀 설경 속으로 발걸음을 서두른다.
하얀 눈길을 걸어 아래로 내려올 수록 눈은 점점 비로 바뀌어 가고, 온 몸에 물이 줄줄 흐르는 축축한 몰골로 도착한 피암목재에는 궂은비가 내린다. 피암목재 출구에 모여서 잠시 기념사진을 찍고 가잔다. 오늘 1구간의 선두팀 선돌님, 흑표 대장님, 산이좋아님, 알파인님, 그리고 찍사 호젓한오솔길, 오후 3시 40분경에 피암목재에서 기다리는 버스에 도착하면서 오늘 하얀 눈 속을 걸어본 금남정맥 1구간 산행길은 종료된다.
자동차에 돌아오니 주위에 씻을 물이 없어 버스 뒤에서 비를 맞으며 배낭에 남아 있는 식수로 머리를 감고, 버스에 올라 뽀송한 옷으로 갈아 입으니 그래도 개운한 느낌이 든다. 후미 대원들이 내려오기를 기다리며 처음 막걸리로 시작하여 소주, 맥주를 썩어가며 몇 잔 마시니 금방 취기가 오른다.
선두 5명이 하산을 하고 잠시 후에 세거리님과 뜸달님이 하산을 했는데, 초반에 입봉 오르는 길 바로 뒤에 따라 오면서 나를 부르던 대간 동지 2명이 보이지 않아 물어보았더니, 분명히 앞에 갔는데 아직 안 내려 왔느냐고 한다. 알바를 했구나 하는 생각을 하면서 약 2시간쯤 기다리니 비를 맞으며 하산을 한다.
입봉에서 4사람이 좌회전 하지 않고 앞으로 똑바로 달려서 큰 알바를 하고 돌아 올라와서, 하산 길에 아이젠을 잃어버리고 미끄러져 수 없이 넘어지며 고생 고생했다며, 눈 위에 뒹구는 모습이 눈에 선하게 그려지도록 설명을 한다. 내가 입봉에서 잠시만 걸음을 멈추었더라면 하는 생각과 비를 촐촐 맞고 내려오는 모습이 안쓰럽게 보여, 다음 산행부터 발을 맞추어가며 함께 걸어야겠다는 약속을 해 본다.
차 안에서 하산 주를 나누며 대원들이 내려오기를 기다리는데 하산 시간은 점점 지연되는 듯하고, 날씨가 어두워지면서 비가 눈으로 바뀌어 어느덧 주위에도 하얗게 쌓여가니, 잘 못 하다간 버스가 잿길을 내려갈 수 없어 낭패를 격을 수도 있다는 생각에 모두 걱정을 하며 후미가 빨리 내려오기 만을 기도하는 마음으로 기다린다. 선두팀이 내려 온지 무려 4시간 이상 기다린 7시 40분이 지나 모든 대원이 하산을 완료한다.
젖은 아스팔트에 하얗게 눈이 쌓여가는 피암목재 미끄러운 밤길을 살살 내려오던 버스가 휘청거리니, 몇 사람이 내려가서 모래주머니를 찾아서 모래를 뿌리고, 모두 안전밸트를 매고 조바심을 태운다. 다행이 아무런 사고 없이 무사히 아래로 내려와서 모두 안도의 한숨을 쉬게 한다.
오는 길에 진안군에 있는 순두부 전문 집에 들려 퇴근 시간이 넘은 종업원들을 잠시 기다리게 하면서 따끈한 순두부로 저녁을 먹은 후 포항으로 돌아와 연하재에 내려서, 제무이사님 차를 타고 자정이 넘은 시간에 편안하게 집으로 돌아오면서, 오늘 시산제 산행을 준비해주신 산악회 임원진들과 눈 내리는 멋진 금남정맥 마루금을 함께 걸어본 모든 종주 대원님들에게 감사하는 마음으로 고운산정과 함께한 금남정맥 1구간 산행 길을 성공리에 갈무리해본다.
무엇보다 나에게는 오늘 금남정맥 길이 연원이 추억에 남을 의미 있는 산행길이 된 듯하다. 아침에 출발 할 때는 멀미 약을 먹지 않아서 가는 도중에 식은 땀을 흘리면서 조금은 고생을 한 것 같은데, 돌아오는 길은 하산 주에 취하여 신경이 많이 둔하여 졌는지 아무런 불편 없이 무사히 도착을 하니, 참으로 살다가 보니 나에게도 이렇게 좋은 일이 생기나 싶은 감사하는 마음으로 병술년 정초 멀미 약 탈출이라는 기분째지는 엄청난 추억 한 페이지를 넘겨본다.
(2016.01.17 호젓한오솔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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